먹고 싶은 거 생각해놨냐는 태형의 물음에 정국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이긴 했지만 시간이 있었다고 치더라도 딱히 생각하진 않았을 터였다. 워낙 식성이 좋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어 뭘 먹든 상관없기도 했고 세상엔 생각할게 차고 넘치는데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건 퍽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날거 좋아해?”

“나는 거 좋아하냐고요?”


태형의 말이 정국에게 제대로 수신되지 않았는지 정국이 큰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비스듬히 세운다. 수신 오류네 아님 발신 오류인가? 어떻게 날거가 나는 게 되지? 태형의 크고 까만 두 눈도 덩달아 끔뻑여진다. 체감 상 일분은 지난 것 같다. 정국은 그제야 수신이 제대로 됐는지 아 하며 입을 동그랗게 만다. 


“아, 날거요?”





태형이 정국을 데리고 간곳은 스무 평도 채 되지 않는 횟집이었다. 간판에 횟집이라고, 말 그대로 횟집이라고만 쓰여 있었는데 이 정도 규모도 과연 횟집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조그마한 수족관에서 팔딱팔딱 뛰놀고 있는 생선들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본 정국은 그제야 횟집이 맞긴 하네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바닥이 균형이 맞지 않는 건지 플라스틱 테이블이 균형이 맞지 않는 건지 정국이 팔 한쪽을 테이블 위로 올리니 반대편이 조금 올라간다. 정국은 팔 한쪽을 내리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곳에 데리고 오고 좀 그렇다 하며 저도 모르게 볼에 사탕 하나 넣은 표정을 짓는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전 다 잘 먹으니까 상관 없어요”

“그럼 방어가 제철이니까, 방어 먹자”

“네”


메뉴판을 갖다 주는 종업원도 없고, 창문 틈은 대충 메웠는지 바람도 새어드는 것 같고 진짜 무슨 가게가 이러지…정국은 속으로 온갖 타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태형이 큰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플라스틱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형, 윤기 형 우리 방어”






“오늘 호석이 아파서 안 나왔으니까 처음만 서빙해주는 거야 이 다음은 알아서 갖다 먹어”

“호석이형 아파? 어디?”

“독감. 나 네 방어 뜨러 가야니까 더 이상 말 시키지마”

“형 매운탕은 평소보다 더 맛있게 끓여줘 우리 토끼 먹어야하니까”

“토끼 아니라고요!!”


생판 모르는 남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토끼라는 말을 입에 올리니 정국은 목까지 벌게지는데 태형은 정국이 그러거나 말거나 반찬으로 나온 번데기를 먹고 있고 윤기라고 불리는 남자는 정국을 쳐다보지도 않고 주방으로 가버린다. 정국 혼자만 난리다. 태형은 번데기를 씹으며 여기 진짜 맛집이야 윤기 형 매운탕 먹으면 너 다른 집 매운탕 못 먹을 걸 한다. 저만 흥분한 이 상황이 영 못마땅한 정국은 매운탕이 뭐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요 했다 한 숟가락을 떠먹고 나서야 역시 사람은 세치 혀를 함부로 놀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형이 오늘 방어 진짜 실하다고 먹으러 오라고 했거든”

“...”

“그래서 너한테 오늘 아르바이트 끝나고 뭐하냐고 물어봤지”

“저한테 왜요?”

“너랑 술 한 잔 마시고 싶었거든”

“술 한 잔 마시고 싶었다는 분치곤 너무 안 마시는 거 아니에요?”

“한 잔 마시고 싶다 했지 여러 잔이라곤 안했는데?”


태형은 제 앞에 놓인 빈 소주잔을 들어 뒤집는다. 깔끔하게 마셨는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건 그거고 한량 도련님이 맞긴 한건지 말하는 법도 예사롭지 않다. 순발력도 좋은지 제가 던진 말을 순식간에 핑퐁처럼 잘도 쳐낸다. 방어가 실하다고 먹으러 오라고 할 정도면 꽤 친한 사이임이 분명한데 사장님이면서 머리는 민트색이고 허여멀건 해선 회칼 들고 있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좀 서늘한데 저런 사장님하고 친하게 지낸다는 건 암만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라고 정국은 생각했다. 날티가 느껴지는 게 하드웨어에서 오는게 아니라 이런 짬밥에서 나오는 건가 싶다.







정국은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은 아니었지만 허술한 창문 틈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국은 계속해서 두 손을 문지르다 안되겠는지 허벅지 안으로 두 손을 집어넣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소주라도 마시면 추운 게 좀 가실까하여 한잔 털어보지만 찬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르르 떨리기만 하고 이것도 별 도움이 되진 않는다. 


“자, 방어”


방어회가 둘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다. 윤기 형이라고 불리는 민트색 머리 사장님은 여전히 한손에 회칼을 들고 있다. 보통 위협적인 게 아니다. 칼 좀 치워달라고 말해야지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생각과는 딴판이다. 


“히터 틀어져있는 거 맞죠?”


윤기는 가게 한켠에 놓인 히터를 회칼로 가리킨다. 눈이 제대로 달려있으면 네가 직접 보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전원버튼에 빨간불도 켜져 있고 초록색으로 이십사도라고 온도도 표시되어 있다. 눈이 똑바로 달려있으니 히터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건 알겠는데 그럼 도대체 왜 추운거야 하다 허술하게 메운 창문 틈 사이로 또 바람이 새어 들어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추워? 거봐, 형 내가 말했잖아 뽁뽁이 사서 붙이라고”

“많이 추워요?”


태형의 타박과 눈 흘김에 윤기는 마지못해 말을 건넨다. 정국은 네, 추워요. 몹시 추워요 근데 그것보단 회칼 좀 저리 치워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횟감이 된 거 같아서요 라는 말이 더 하고 싶지만 창문 틈 사이로 새어드는 찬바람에 얼어붙기라도 한 것인지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가만히 정국을 바라보던 태형은 가만 보자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 하며 제 목에 둘러진 머플러를 푼다. 태형이 머플러를 풀자 정국은 그제야 태형의 옷차림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슬리퍼 사이로 삐져나온 맨발하며 달랑 풀오버 하나 그리고 머플러. 그 머플러 마저도 지금 저한테 주려고 하고…지금 십이월 아니야? 맞지? 아닌가? 순간 정국은 계절이 헷갈린다. 머플러를 푸니 맨들맨들한 목이 훤히 드러난다. 당사자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보는 사람은 춥다. 추워도 너무 춥다. 두 손으로 목을 막 감싸주고 싶다 아님 두루마리 화장지라도 돌돌 돌려주거나. 윤기는 춥다고 머플러를 벗어주는 놈이나 한사코 거절하는 놈이나 둘 다 똑같이 꼴값이라고 생각한다. 방어가 실하니 먹으러 오라고 문자를 보낸 건 맞는데 돈은 받으려고 했다.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잘사는 놈은 돈 좀 써도 된다. 아니 써야만 한다. 그래야 경제가 돌아가고 나라가 돌아가니까. 매운탕은 처음부터 서비스로 주려고 했다. 근데 거기다 방어까지 공짜로 주면 진짜 땅 파서 장사하는 건데.. 한숨만 나온다. 윤기는 방어를 공짜로 줄까 말까의 기로에 놓여있는데 태형이 달고 온 토끼같이 생긴 애가 영 맘에 걸린다. 토끼는 온몸이 털로 덮여있으니 추워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윤기는 말 같지도 않은 엉뚱한 생각을 한다. 좋아, 결심했어. 윤기는 추위에 벌벌 떠는 토끼 같은 낯선 청년한테 적선하는 셈 치기로 한다. 


“그냥 먹고 가”

“어?”

“추운데 날거 먹어서 체했다고 하지 말고 그냥 먹고 가라고”

“뭐야? 그러니까 지금 돈 안 받겠다는 거?”

“어, 거 미안하게 됐어요. 추워도 좀 참고 먹어요”

“아, 아니..저 그런..”


윤기가 정말 미안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모르는 정국은 한손에 머플러를 든 채 굳어 있는데 태형은 혼자만 신이 나있다. 콧노래를 부르며 방어 한 점을 입에 쏙 넣는다. 꽁으로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다고 야무지게 추임새까지 넣으며. 






방어 밑에 깔린 천사채만이 남고 매운탕 국물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을 즈음 태형은 잠시 주방에 좀 다녀오겠다며 사라졌고 정국은 그 틈을 타 목에 둘러진 머플러를 풀었다. 곱게도 접어놨다. 정국 본인이 깔끔한 편이어서도 있었지만 어쨌든 빌려준 것이니 그게 예의였다. 태형이 주방에서 돌아오자 정국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머플러를 내민다. 


“여기요”

“왜?”

“이제 안 추워요”

“갈 때 두르고 가, 바깥이 더 추워”

“전 패딩 입었잖아요”

“나 추위 안타, 그리고 윤기 형한테 태워다달라고 하면 돼”

“저만 가요?”

“왜, 아쉬워? 이차 가고 싶어?”


태형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런거 아니고요”

“꽁으로 방어 먹었으니 마무리 도와주고 같이 퇴근해야지”


머플러는 다시 정국의 목에 둘러진다. 태형은 횟집이 마치 자신의 가게인 것 마냥 정국을 문 앞까지 배웅한다. 확실히 머플러를 두르고 안 두르고의 온도 차이가 크긴 하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니 찬바람에 코가 시큰하지만 목만큼은 든든하다. 정국은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코를 한번 훌쩍인다. 태형의 까만 눈동자가 간판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근데 머플러 돌려는 줘야 돼, 선물 받은 거거든”

“저 먹튀 안해요”

“으으, 춥다 들어가야겠어. 잘 가고”


춥긴 추운지 태형이 슬리퍼 사이로 삐져나온 맨발가락을 꿈지락거리며 어깨를 움츠린다. 태형이 다시 횟집으로 들어가자 텅 빈 문 앞이 썰렁하다. 정국은 운동화 끈을 한번 고쳐 매곤 가게를 나선다. 불과 십분 전의 술자리를 곱씹는다. 내일이 아르바이트 휴무일이면 모르겠는데 내일도 출근, 모레도 출근이다. 다섯 시간 동안 빡세게 일하고 술을 먹으러 온 거라 제 딴에는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한 거다.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딱히 소득이랄 게 있나 싶다. 정국은 말이 없는 편에 속했는데 태형은 정국보다 더 말이 없는 편인지 술자리동안 대화를 주도한 건 거의 팔 할이 정국이었다. 그래도 태형이 술을 잘 못한다는 것, 그나마 마실 수 있는 건 과일소주, 콜라를 엄청 좋아하고, 또 그림을 좋아하고, 재즈를 좋아하고, 어쨌든 전혀 모르는 이에 관해서 새로운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되었으니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게 과연 저에게 별 상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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