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레드 팬드래건은 그 백발의 기사를 볼 때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성배의 기사. 신에게 선택받은 이. 이 브리튼에서 가장 깨끗하고 고결한 영혼. 어딘가 만사에 초연하고, 질척한 운명에도 매이지 않으며, 그저 당연하다는 듯 올곧은 그 남자.


아서 왕의 파멸을 초래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자신과는 참 대비되는 존재였다. 그가 선이라면 자신은 악이고, 그가 백이라면 자신은 흑이며, 그가 샘물이라면 자신은 오물이리라.


그럼에도 어째선지 모드레드는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왜 나는 그와 달리 이렇게 태어났냐고 억울할 법도 한데, 그를 보면 그러한 생각이 씻기듯 사라진다.


그것도 그럴 게, 저 맹한 얼굴을 보고 뭘 증오할 수 있겠어? 그냥 실없는 웃음만 피식 나올 뿐이다.


모드레드는 그에 대해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라 지칭했고, 그 상태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의 길과 자신의 길이 겹쳐질 일은 없지만, 엇갈릴 일도 없겠지. 그 녀석은 파멸이니 뭐니 하는 거에 관심이 없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이대로 두어서 문제가 생길 것은 없을 것이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내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하여 모드레드 팬드래건은 모든 것을 저주하며 죽은 날까지도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무거나 끄적이는 잡덕 글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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