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0일 브런치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곡 자체의 즐길거리는 이전보다 적어졌다. 웅장하면서도 어딘지 가볍고 노이지한 브라스 사운드와 무겁지만 루즈한 비트, 터지질 듯하며 터지지 않는 훅 사이의 빈 공간을 멤버들의 카리스마와 랩, 보컬이 채운다. 이런 작업 방식은 곡의 구조와 사운드적 풍부함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멤버들 각자의 음색과 성격을 곡의 노출된 골격 사이에 채워 넣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Kill This Love'는 하나의 완성된 곡이라기보다는 앨범을 시작하는 인트로 트랙에 더 가까운 성격을 가진다.

거기다, 'Kill This Love'는 여러 장르와 트렌드를 가져다 하나로 엮고 훅과 하이라이트에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최근의 K-POP 곡들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Kill This Love'는 최근 수년 동안 Fifth Harmony나 Little Mix가 보여온, 드랍과 댄스를 중심으로 한 걸스 힙합 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 'Don't Know What To Do'나 '아니길(Hope Not)'과 같은 수록곡들 역시 K-POP의 문법, 특히 YG의 클리셰보다는 팝 댄스나 컨트리 등 북미의 팬들에게 익숙할 골격을 빌렸다. 이 트랙들 역시 정교하고 풍부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최근의 경향과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SQUARE] 시리즈가 끝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KILL THIS LOVE]는 국내의 팬과 리스너들이 아니라, '본토'로 지칭되는 북미 시장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블랙핑크와 YG가 취한 자세는 BTS나 NCT 같이 북미 시장에 진출한 팀들이 취한 전략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은 못 박아두자. 블랙핑크는 웰메이드 음반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팀이 아니다. [SQUARE] 시리즈가 시작됐을 때부터 YG와 블랙핑크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블랙핑크는 그보다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을 전달한다. 화려한 조명과 의상, "예쁘장한 SAVEGE"라는 가사가 대변하는 와일드 하면서도 정제된 에디튜드, 귀에 꽂히는 보컬과 드랍이 한 데 모아진 무언가. 그것은 YG라는 대형 기획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프로듀서 테디가 걸 그룹을 바라보는, 혹은 외국의 팬들이 K-POP을 바라보며 재생산해낸 판타지에 가깝다. 그리고, 블랙핑크는 그 판타지와 기대를 극대화하고 다시 한번 재생산한 것들을 우리에게 다시 보여준다.  [KILL THIS LOVE]와 이전 작들의 차이가 있다면,  [KILL THIS LOVE]가 [SQUARE] 시리즈보다 더 노골적으로 그 판타지를 재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색의 뮤직비디오와 카리스마 있는 군무, 트렌디한 아웃핏 등 블랙핑크는 K-POP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기대,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다시 외부를 향해 재생산해낸다. 그 '외부'가 YG가 그토록 추구하는 음악과 스타일의 '본토'인 미국이라는 점 또한 재생산의 가속에 박차를 가한다. YG는 블랙핑크를 통해 완벽히 자아실현을 한 셈이다.

2NE1이 걸그룹의 전통적인 역할을 벗어나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며 그들만의 롤을 수행했던 것과는 달리, 블랙핑크는 아이돌 팀이라는 전통적인 롤을 수행해왔다. 프로듀서 테디와 YG의 판타지와 클래식들을 변주하고 재생산하며. [KILL THIS LOVE]는 그 위에 북미 K-POP 팬들의 기대와 욕망이라는 또 하나의 판타지를 얹은 채 한 번 더 재생산된 결과물이다. 평균 이상의 실력과 강한 존재감을 갖춘 멤버들의 역량 또한 그 판타지들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그 결과물이 K-POP의 미래와 가능성을 향하지 않고 재생산에 재생산을 거듭하고 있다 하더라도, 블랙핑크는 이를 통해 독보적인 위치의 팀이 되었다. 지금의 YG와, 그들이 그려내는 여성상, 사운드적 완성도에 대한 부족한 욕심 등 많은 행보에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블랙핑크는 지금 명백하게 K-POP이라는 개념의 중심에 있다.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미래에 지금의 K-POP을 회상하며 블랙핑크를 생각하지 않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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