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곧 내용. 나 트위터 계정 또 영정먹음. 왜 과거 십년쓴 @sithclare 계정이 어느날의 해킹 피해 이후 갑자기 영구정지되고, 트위터 고객센터에 아무리 '내 잘못 아님' 의의제기를 보내도 매크로 답변만 돌아와 결국 새 계정 @sithclare_for 을 만들었잖음? 트위터는 좆같아도 가좍과의 네트워크는 버릴 수 없어서? 그런데 그렇게 신설한 계정이 또 영구 정지를 먹었네... 불꽃남자 기믹으로 닉네임 바꾸고 싶어서 프로필화면서 불꽃 이모지🔥 로 닉변하고 메인화면 돌아오니까 당신의 계정은 영구 정지됐다는 익숙한 안내 문구가 타임라인 상단에 또 떠 있더라고. 원인은 불명. 이번엔 해킹도 안 당했는데... 굳이 추론해보자면 최초의 해킹 피해 이후 내 계정의 무언가(아이피든 뭐든)가 트위터의 계정정지 매크로를 쉽게 자극하게 된 게 아닌가 싶은데, 지금 이렇게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 어떤 일이든 2회차 대응은 최초보다 침착한가보지. 이래서들 그렇게 회귀를 하나. 

트위터 고객센터에 '나 잘못한 거 없어 이거 실수 같아 영정 풀어줘' 이의제기 일단 넣긴 했는데, 일론머스크 이후 개판났다는 트위터 고객센터가 머스크 이전에도 안 해준 답변을 이번에는 과연 해 줄 것인가. 안 해 주면 그 계정에서 손실된 과거를 보상하겠다는 마음으로 새로 쓴 그 모든 트윗들은 어디로 가는가. 나의 일상과 사념과 고민의 기록들은...... 이라고 쓰며 분노를 목으로 삼키는데 같이사는사람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재난 뉴스를 공유해주네. 우연한 타이밍의 일치지만 덕분에 머리가 차가워졌음.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로 가득한 곳이 세상인데 그래 십년짜리 반년짜리 아카이빙이 어느날 수장당하는 사건이야 뭐 달달하구나 싶다. 

그래 트위터가 내 SNS 중독을 치료해주고싶은가보다. 어제도 그제도 트위터에서 뭐 검색하고 마음찍고 알티하느라 일상생활에 지장 있었는데 (아 미친 진짜 재밌었지ㅠㅠ) 그렇게 살지 말라고 몽둥이로 내 머리를 힘껏 내리쳐주는구나! 고맙습니다 트위터! 하나같이 유저의 중독을 유도하는 요즘의 SNS 생태계에서 자체 셧다운 서비스라니 윤리적이시네요.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한시간 지나면 업데이트 멈춘 타임라인 열어보고 억울해 하겠지만 힘내서 정신승리 해야지 달리 뭘 또 할 수 있겠냐...... 


+ 어제 그제 일상 날리고 트위터 쳐 한 이유를 부연하면: 불꽃공주 정대만. 이거 읽어주시는분들중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아직 안 본 분 계시면 꼭 보세요, 그리고 영화 내내 코트를 가득 채우는 정대만의 오메가매력을 느껴줘. '영화 내내'라기엔 사실 비중 높지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음: 그가 북산의 공주이자 본투비 오히메사마 프린세스라는 것을. 하 트위터에 대만공주 어화둥둥말, 송태섭한테 제발 내 딸 대만과 결혼해 사위가 되어달라고 옥장판 강매하는말, 대만이 구남친 박철 앓는말 해야되는데 이 타이밍에 계정이 날아가다니 분하고 원통하며 가슴아프고 안타깝도다.


++ 1차 영정 사태 때보다 감정적 동요가 훨씬 덜한 게 신기하네. 그땐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음. 생각하면 울화통이 치밀어서 마음이 힘들어지니까 가능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고개 돌렸고, 그러면서 포기 못 하고 매달렸고. 십년간 내 인생의 반을 적어둔 계정이 어느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열어볼 수도 사용할 수도 없게 된 일은, 트위터라는 기업에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는 일개 서민인 나의 힘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한세월 걸렸고... 받아들이고 새 계정에 정착한 후에도 한동안은 수장되어버린 옛 계정의 내용물이 어떤 계기로든 연상되면 커다란 바늘로 마음을 푹 찔린 것처럼 속상해했었지. 

그런데 이번엔 (사태로부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속단은 이르다만) 모든 상황을 훨씬 쉽게 받아들이고 있음. 여러가지 팩터가 작용했겠지, 똑같이 잃어도 십년 쓴 계정보단 반년 쓴 계정이 덜 아깝겠고. 어떤 자극이든 반복되면 무뎌지고. 그런데 가장 큰 팩터는, 이 사태에 대한 나의 인지가 인재에서 천재로 바뀐 데 있는 듯 해 씁쓸함. 

영문모를 영정을 처음 당했을 때, 메일함 'Twitter' 검색결과창의 n번째 매크로 답변을 노려볼 때, 나는 마음속으로 트위터라는 기업과 그 기업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었음. 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왜 내 이의제기를 받아주지 않는 걸까, 한 번만 내 계정을 들여다보면 규정 위반 사항이 없다는 걸 알 텐데. 해킹 피해자라는 걸 알 텐데. 정말 문제가 있다면 뭐가 규정 위반이라고 말을 해 줘 제발! 어쩌면 담당자가 휴가를 떠난 걸까. 수많은 이의제기 사이에 묻혀 버린 걸까. 첫 번째 이의제기가 충분히 예의바르지 못했나, 그래서 고의로 내 문의를 못본 척 하나. 스팸 문의를 걸러내는 어떤 사내 알고리즘에 걸려버린 걸까? '굳이 대답할 필요 없음' 폴더에 이미 들어가서, 아무리 문의를 반복해도 직원 눈에 띄지 않는 걸까? 고객센터 근무환경이 열악한가? 그래서 무시해도 탈 안 나는 내 케이스 같은 건 적당히 모른척 하고 있는 건가... 그들의 의도, 그들의 피로, 그들의 업무환경, 그들의 사디즘, 그 회사의 내부 알고리즘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며 추론하고 고민하고 미워하고 원망했음. 

그런데 오늘 나는 그들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음. 그냥... 와. 세상에 벼락을 두 번 맞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머리를 긁음. 분노와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울화통이 터지지'는 않음. 대신 합리화함. 세상은 원래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지진과 화산 폭발, 전쟁과 수재 같은 훨씬 큰 재난으로 인해 아카이빙 따위가 아닌 물리적 집, 아니 심지어 인생 자체를 잃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 정도면 얼마나 가벼운 피해냐? 이렇게 나는 '그들'을 내가 받아들여야 할 삶의 조건의 일부로 만들어 비인격화함. 내가 어찌할 수 없고 그렇기에 순응해야 하는 일종의 자연 환경처럼. 전 같은 묵묵부답이 계속돼도 아마 이번엔, 전처럼 여러 번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임. 한두번 해보고 해결 안 되면 포기하겠지... 새 계정을 또 만들든, 트위터를 떠나든....

내가 말을 하면 들어줄 것 같은 상대에 대해서는 전력으로 분노하며 부조리를 읍소하고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은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상대에게는 이렇게 쉽게 순응해버리는군. 권력의 부조리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시민 저항이 줄어드는 전형적인 매커니즘을 이렇게 직접 체험해본다. 고마워 트위터야. 덕택에 내가 배움까지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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