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내려갈수록 차량은 줄었다. 속도를 높이고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장인의 생신이었다. 상견례이후 처음으로 다시 가족 전부가 모이는 자리였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자가운전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셋이었기 때문이었다. KTX 도 항공기의 국내선의 비즈니스석도 지훈은 홀로 앉혀야했는데 그게 내게 썩 내키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모든 결정의 기준은 지훈이었다. 


보조석에 앉아있던 소영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든 사람의 안정된 호흡은 차 안의 분위기마저 나른하게 만들었다. 그 때 입 안으로 불쑥 뭔가가 들어왔다. 부드럽게 씹히는 잇 사이로 달콤한 소가 퍼져 온 입안을 감싸 안았다. 좀 전에 먹었던 호두과자였다. 


“안 졸려요?”


낮게 깔린 지훈의 음성을 나는 좋아했다. 뭐든 안 좋았겠냐마는 내게는 꽤 신선한 감정이었다. 어린 시절 그 언젠가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괴상한 작품이라 평했던 적이 있다. 사람을 얼굴을 조각처럼 나누고 불균형하게 조합한 작품은 어린 내게 균형미를 깬 부조화 극치의 낙서와도 같았다. 그런데 지훈을 만나면서 사람을 좋아하면서 전체 속에 담긴 부분이 보인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날은 지훈의 도톰한 입술이, 깊이 패인 눈매가, 짙은 눈동자가, 곧은 콧대가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는 낮게 깔린 음성도 시각적으로 보일 지경이었으니 빠져도 단단히 빠진 게 분명했다.


“나는 괜찮아. 너는?”


나는 백미러 안에 온전히 지훈이 담기게 하기 위해 각도를 조절했다. 거울로 보여지는 모습마저도 내게는 현실감이 없어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무는 등의 행동으로 통증을 만들어 현실임을 자각하려 애썼다. 지훈을 볼수록 내 판단에는 확신을 더해갔다.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니었다.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 계속 나아가는 일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었다. 자각한 순간. 유턴을 해야 그나마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법이었다. 


언제나 옆자리에 앉던 지훈이 한 칸 뒤로 밀려났을 뿐이었지만 마음의 안달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고작 30cm정도 뒤에 앉아 있었는데도 저 멀리 보낸 듯 하여 애가 탔다. 그럴수록 나는 엑셀을 더 꾹 밟았다. 빨리 도착해야 했기에 속도를 줄일 수는 없었다. 





차의 속도계의 바늘이 100에 다가갔을 그 때였다. 









쾅-하는 고막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차의 방향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제 멋대로 움직였다. 핸들은 이미 중심을 잃고 좌와우로 바퀴를 통제하지 못하고 역으로 바퀴의 흐름에 따라 엉망으로 흔들렸다. 그 위에 올려져 있던 내 손은 무력하게 흔들리는 핸들을 부여잡다 결국 놓아버렸고 차는 그 상태로 몇 바퀴를 돌았다.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았지만 대기의 흐름이 바뀌고 시야로는 거미줄처럼 가닥가닥 분리된 조각을 통해 지훈의 얼굴에서나 보았던 위치와 크기가 왜곡된 형태의 잔상만이 나뒹굴었다. 갑작스런 상황의 변화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좀처럼 듣기 힘든 굉음을 나열이 한참동안 귓가를 때리다 끝나고 다시 빗소리로 채워진 정적이 흘렀다. 찰나처럼,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깨진 창문 그 사이로 구겨진 보닛과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놀란 사람들의 움직임. 스무 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다 멈춘 걸음. 전화를 거는 듯 한 목소리와 비명소리가 빗소리를 타고 웅얼거리게 들렸다. 거대한 사고를 만든 차주도 역시 다쳤는지 느리게 운전석에서 핏물과 빗물에 젖은 몸뚱이를 끌고 절뚝이며 걸어와 소리를 질렀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저기요!”


누가 봐도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보내는 의미 없는 말들이었다. 차주의 몸에서 흐르는 핏물이 소나기에 씻겨 아래로 타고 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시야 안에 들어오는 그 모든 장면들이 핏빛의 색감으로 서서히 물들었다. 이마에서 시작해 눈 안으로 뜨끈한 액체가 스며들어왔고 순간 사방이 붉게 변한 걸로 봐서는 명확한 내 피의 색으로 물들인 배경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려 애를 썼지만 오히려  숨이 막혀 올 뿐이었다. 차 안에는 헉헉거리는 내 숨소리만이 존재했고 그마저도 무언가가 막고 있는 듯 폐부를 찌르는 듯 한 통증에 그 숨마저 온전히 뱉을 수가 없었다. 명백한 사고였다.  무언가가 차를 들이받았고 내 차는 몇 바퀴를 회전하고 겨우 1차선 옆 난간을 들이받고 부딪쳐 있었다. 사고의 순간. 살아왔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누군가 그랬던 것 같은데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단 하나의 이름만이 가득했다. 


지훈아. 지훈아. 지훈아.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호흡이 온전하지 않아 쇳소리만을 담은 짐승의 호흡소리와도 같은 울림만이 성대를 안에서 맴돌았다. 내 앞에는 한참 멀리 차가 서 있었고 안전거리는 필요이상으로 벌려진 상태로 그 차 역시 반파된 상태로 버려져있었다. 1차선을 타던 내 차를 2차선에서 들이받은 듯 했고 아까부터 속도가 들쭉날쭉하던 25톤은 돼 보이던 화물차의 잔상이 그려지자 나는 절망했다. 그 절망에 다시 숨이 막혀와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불러야한다. 불러서 확인해야한다. 의식을 놓아버리면. 진짜 끝이었다. 


나는 손끝부터 천천히 움직였다. 관절 하나하나씩 감각을 찾으려 애를 썼다. 오른쪽 손목을 움직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왼쪽 팔에 찌를 듯 한 통증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 이쪽은 제 기능을 못할 듯싶었다. 


“저기. 여기요.”


나는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쥐어짜듯 소리를 내보냈다. 소리를 밀어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내 호흡과 아직도 굵게 내리쏟아지는 빗소리에 들릴 턱이 만무했지만 할 수 없다.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뭐라도 두드려서 소리를 내야했다. 나는 그나마 온전한 오른손으로 클랙슨의 위치를 찾아 때렸다. 이미 터진 에어백을 걷어내고 빵. 빵. 빠앙---


있는 힘을 다해 클랙슨을 울렸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화물차의 차주는 내 쪽 창가로 다가와 다시 물었다. 걸어오는 자신의 팔과 다리에도 피갑칠을 해서는. 제 정신이냐고. 과연 당신 눈에는 괜찮아 보이냐고 욕설을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일단은 급한 불부터 꺼야했다. 나는 일단 의사표현이 가능했고 얼얼한 왼쪽 팔을 제외하면 몸을 누르고 있는 장애물만 걷어내면 살아 나갈 수 있는 듯 보였다. 


“일..일단 뒷좌석에.. 남자애가 한 명..”


지훈을 구해야했다. 내게는 그 생각 하나만이 온 정신을 지배했다. 주변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내가 클랙슨 소리를 내자 내 자리로 몰려 왔다. 


내가 아니라. 지훈을 구해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두려운 나의 들뜬 호흡과 빗소리. 그리고 가슴을 누르고 있는 부서진 차체의 잔해들 때문에 전해지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나가야했다. 내가 구해야했다. 지훈을. 


비싼 차를 산 건 잘 달리기 위해서였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사방에 설치돼 있을 에어백에게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쪽 자리에서는 여기저기서 터진 에어백과 부서진 차체의 흔적들 때문에 고개를 돌려도 뒷자리에 있을 지훈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무슨 충격을 받아 사고가 난 건지 차 안에서는 식별이 불가능했다. 그러다 문득 이 공간에 나와 지훈을 제외하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아-여보


미처 불러지기도 사고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내가 나갈 수 있는 공간을 차체를 들어 올려 만들어줬다. 그 공간으로 거센 빗줄기가 새어 들어와 눈을 뜰 수도 없었지만 일단 나가야했다. 차 밖으로 몸을 구겨 겨우 빠져나왔다. 왼쪽 팔과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있었지만 일단은 무시했다. 나중에 더 심해지더라도 그래서 심지어 불구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와서 본 내 차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반파상태였다. 특히 소영이 앉아있던 보조석을 제대로 밀고 들어온 듯 그 자리의 문은 거의 종잇장처럼 구겨져있었다. 나는 서둘러 지훈이 앉아있던 뒷좌석 문을 확인했다. 앞 쪽 문보다는 나았지만 손잡이 부분이 들어가 있어 열림 장치를 고장 낸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뒷좌석 손잡이를 잡고 당기면서 왼발로는 차체를 밀었다. 내 주위에서 사고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움직이지 마세요. 피나요.”


고함소리가 연달아 들렸지만 그 소리가 내 행동을 제어할 수는 없었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눈 안으로 스며들고 사람들의 말대로 내 왼쪽 팔에는 유리의 파편이 박혀 핏줄을 건드린 듯 피가 끊임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지훈아! 지훈아!! 정신 차려야해.”


눈물과 신음소리가 섞여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빗소리와 함께 퍼져갔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문이 조금씩 열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한 둘씩 내 옆으로 와 내 행동에 힘을 보탰다. 하나 둘 하는 구령과 함께 삐거덕거리는 문짝의 기울임이 조금씩 그 각도를 더해갔다. 손가락 한 마디에서 세 마디로. 급기야는 한 뼘까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제발. 


결국 반팔 정도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상체를 집어넣고 터진 에어백을 걷어내고 지훈을 찾았다. 있다. 거기에 지훈이 있었다. 눈가가 찢어져있는 것 밖에는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두 팔로 상체를 잡고 차 문 밖으로 끌어냈다. 유리 파편이 박힌 왼쪽 팔에서는 피가 더 심하게 흘렀지만 한 쪽 팔을 잃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다가와 지훈의 다리를 잡아 몸의 평형을 유지하며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훈아! 지훈아. 눈 좀 떠 봐”


나는 지훈의 뺨을 두어 번 때리고 코와 입 사이에 귀를 갖다 댔다. 미약하지만 숨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착각이 아니어야했다. 외상은 없어보였지만 의식이 없었다. 나는 지훈의 코를 손으로 막고 입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혹시라도 갈비뼈에 손상이라도 갔으면 어쩌나싶어 심폐소생술을 강하게 시연할 수도 없었다. 


지훈아. 지훈아. 제발. 제발. 


숨을 불어넣고 또 불어넣었다. 제발.


내 눈에서 눈물인지 핏물인지 모를 뜨거운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 멀리서 싸이렌소리가 들리고 


“이제 됐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사람들의 외침을 뒤로하고 내 몸도 지훈의 상체 위로 쓰려졌다. 혼자 사는 것은 의미가 없었기에 내 숨을 온전히 다 내어주고 싶었지만 사람의 나고 자람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나대신 지훈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나는 지훈의 위로 내려앉았다.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기억과 정신을 흐릿해져만 갔고 안타깝게도 내 기억도 여기까지였다. 




신이 없길 바랐던 날들을 후회했다.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했고 혹시라도 벌을 준다면 다 내게로 주길 기도했다. 의식의 끝자락에서도 지훈 만큼은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그래야했다. 


‘문제면 해결하면 되고, 잘못했으면 벌 받으면 돼요.’


지훈의 목소리가 흐릿해져가는 나의 정신을 잠식했다. 그 벌의 칼끝이 지훈에게도 향해 있는 줄 알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지훈의 말을 반박하며 막았을 것이었다. 


모든 걸 포기할 테니 지훈이를 살려주세요.


지훈이를 포기할 테니. 

지훈이를 살려주세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처참한 생각을 되 내이며 나 역시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을 조금씩 놓아버렸다.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는 불안감이 나를 잠식했다.



J의 이야기는 녤윙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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