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 주사위 게임입니다.




언제나와 다름없는 하굣길이었다. 그래, 그래야 했었다. 그래야 했을 터인데-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와 똑같이 쿠로오는, 부활동과 자율 연습을 끝낸 뒤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몸이 안 좋다고 켄마는 먼저 돌아갔으니, 혼자 자박자박 걸어갔었다. 다른 날과 조금 달랐다 할 수 있는 것은, 글쎄.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시내 쪽으로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던 것 정도일까. 그리고, 그 패스트푸드점에서 보쿠토를 만났던 것 정도일까.

 합숙이 끝나고 각자 시험과 연습으로 바빠 연락도 하지 못하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이었다. 서로 반가움에 얼굴이 밝아지며 마치 개학식 날의 여학생들마냥 수다를 떨었다. 간단히 햄버거 세트 하나씩을 먹어치우고, 패스트푸드점을 지나 시내를 벗어난 무렵, 보쿠토와 쿠로오는 갑작스레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낯선 방 안에서였다.

 "...으..뭐야.."
 
 "에..여긴 어디야..?"

 느릿하게 눈을 뜨자 보이는 낯선 하얀 천장에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보쿠토였다. 분명 자신은 쿠로오와 함께 햄버거를 먹고 집을 향하는 길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어딘가 이상한 곳에 드러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멍하니 생각을 정리하는데 발치에서 어딘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빠르게 상체를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하얀 방이 보였다. 보쿠토의 발치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는 사람은, 일전 연습 시합을 해봤던 미야기의 고등학교, 아오바죠사이의 짜증나던 세터였다.

 "...에..?"

 자신이 있는 곳이 도쿄라면,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둘의 시선이 멍하게 마주쳤다. 그리고, 그 둘의 곁에서 각각 들린 신음소리에 마주쳤던 시선은 다급히 빗겨 서로의 곁을 바라보았다. 보쿠토의 곁에서 낮게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뜨는 사람은, 조금 전까지 저와 함께 패스트푸드점을 나와 웃으며 걸어가던 쿠로오였다. 오이카와의 곁에서 낮은 신음과 함께 상체를 일으킨 사람은, 오이카와의 팀메이트, 마츠카와였다. 일전에 미야기에서 함께 연습 시합을 해본 적이 있는, 그리고 제법 상성이 잘 맞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할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된 사람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미야기와 도쿄의 거리가 있는 만큼 그들이 만난 것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상하다, 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상한 조합에, 넷의 시선이 멍하니 한 점으로 모였다.

 "...여기, 어딘지 아는 사람?"

 에, 그러니까-라며 말문을 연 오이카와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벽도, 천장도, 바닥도, 온통 새하얄 뿐인 이상한 방. 조심히 몸을 일으켜 방 안을 이리저리 살피던 중, 쿠로오의 낮은 비명에 셋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쿠로오의 발 옆, 하얗고 평평하던 바닥이 테이블 모양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거 자동이야?!"

 엉뚱한 곳에 포인트를 두고 이리저리 테이블 밑을 살피는 보쿠토는 내버려두고, 오이카와와 마츠카와, 쿠로오가 테이블 주변으로 모였다. 테이블 위에는 주사위 하나와 말 네 개가 주사위 판 위에 놓여있었다.

 "..주사위 게임-?"

 마츠카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 마츠카와의 옆구리를 쿡 찌른 것은, 다름아닌 오이카와였다.

 "근데 맛층, 주사위 판이 백지야."

 오직 시작점과 끝점만이 표시된 채 각 칸은 흰 색으로 채워져있을 뿐인 주사위 판이, 어딘가 불길함을 불러일으켰다.

 "오, 근데 이 말, 쿠로오 너 닮았어."
 
 테이블 아래에서 몸을 일으켜 주사위 판을 자세히 보던 보쿠토가 [START]라고 적힌 칸에 조르륵 늘어서있던 작은 말 중 하나를 집어올렸다. 붉은 져지, 검은 티셔츠, 그리고 베개에 눌린 머리 스타일. 영락없는 쿠로오의 인형이었다.

 "겍, 이거 엄청 기분 나쁘네."

 보쿠토의 손에서 말을 받아들어 이리저리 살피던 쿠로오가 얼굴을 찌푸렸다. 말은, 정말로 기분 나쁠 정도로 자신을 닮아있었다. 세울 수 있게 된 평평한 밑바닥에는 붉은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었다. 나머지 셋 또한 제각각 자신을 닮은 말을 집어들어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이야, 오이카와 상은 주사위 말도 멋진걸!"

 "이거 어떻게 만든걸까나!!"

 "..내가 이렇게 생겼나.."

 각자의 말을 이리저리 살피며 각각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쿠로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거, END 지점까지 가라는 거 같지 않냐."

 말을 보느라 정신이 없던 셋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START라 적힌 칸에 제 말을 먼저 올려놓자, 마츠카와와 오이카와, 보쿠토도 차례로 제 말을 START칸에 올려두었다.

 "뭐..나 먼저 한다. 얼른 끝내자."

 그 사이 주사위를 집어든 쿠로오의 손이 부드럽게 테이블 위로 주사위를 굴렸다.


조금조금 연성합니다. 지뢰컾 없음. 글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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