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병실의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어쿠스틱한 기본 벨소리로 되어 있는 동주의 휴대폰으로 저장되어 있지 않은 낯선 번호가 화면으로 떴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YQN 뉴스 기자 정기남입니다."


뚝.

동주는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 다시 베개에 머리를 뉘었다. 창밖을 볼 수 없게 블라인드가 쳐진 병실에는 모두 각자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 5명이 있었다.

내일이면 검사를 받고 퇴원을 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란 생각이 앞서는 동주였다. 매번 검사를 할 때 마다 전날 입원을 해야 하는 방식이었는데, 동주는 늘 그게 불편했다.


다음날. 

퇴원 준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고 있는 동주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서동주씨?"

뒤돌아서는 동주 앞으로 내민 명함에는, 어제 전화를 끊은 'YQN 뉴스 기자 정기남'이란 이름이 표기되어 있었다.


동주는 자신을 찾아온 그 기자의 이유가 뻔해서 피할 생각이었다.

"이펀스코리아에서 근무하셨던 거 맞으시죠?"

체크무늬 카라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기자는 흔하다는 듯이, 자신의 손에 든 명함을 다시 명함지갑에 넣으며 물었다.


그런 기자를 무시하고 병실을 빠져나온 동주는 수납창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내내, 청구된 병원비 숫자를 보고 있는 거 외에는 할게 없었다.

대기 번호가 동주 차례가 되자, 수납 창구로 간 동주는 신용카드를 몇 개 꺼내 들어야만 했다.

겨우 4개의 카드로 결제가 완료 되자, 안도의 한숨이 입 밖으로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 그런 동주를 놓치지 않으려는지, 정기자는 병원을 빠져나가는 동주를 한 번 더 뒤쫓았다.


"서동주씨!"

"저 인터뷰 안 해요."

"병원비 감당 되세요?"

동주의 멈칫거리는 발걸음을 빠르게 캐치한 정기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주 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혼자 계속 감당하실 수 있으세요?? 충분히 보상 받을 수 있습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지금 다니고 있는 직원들도 앞으로 질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동주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리는 듯했다.

"다른 분들도 지금 인터뷰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발병되었다는 증거도 지금 준비 중에 있고요. 한분 한분의 힘이 필요할 때 입니다. 이펀스코리아가 문성그룹 하청업체인 거는 알고 계시나요? 분명히 이 문제는 문성그룹이...!"

문성그룹이란 말에 동주는 말을 하고 있던 정기자를 뒤로 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동주를 향해 정기자가 소리쳤지만 동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서동주씨! 서동주씨!"


따르릉따르릉


동주의 핸드폰에서 진동과 함께 울린 벨소리에 뛰던 걸음을 멈추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야, 내일 집합하는 거 알지? 너 저번에도 계속 빠졌잖아. 이번에 본사 건물 앞에서 할거니깐. 아침 8시야, 어딘 줄 알지? 꼭 나와!"

일방적인 대화법에 동주는 답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화가 끊어졌다.

함께 일했던 박씨 아저씨였다. 이펀스코리아에서 일 할 때 자신을 살뜰하게 챙겨주신 분이라 그의 부탁을 계속 거절하기도, 그 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집합에 안 나간 적도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빠지기가 힘들 거 같았다.


올해 봄이었다. 갑자기 근무 중에 쓰러진 서연희씨가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고 난 이후, 얼마 안 되어 최경애씨 또한 병원에서 급성 암 선고를 받았었다. 이후 몇몇 직원들의 지속적인 구토와 어지럼증 등으로 비슷한 증상으로 보이며 결근을 하자,

근무 중 발생한 재해로 보고 이를 신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증상이 동주뿐만 아니라 같은 업무를 보았던 다른 직원에게도 나타나자 함께 회사에 산업재해 관련 요구를 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1차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증거불충분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이의제기를 한 직원 전원을 강제 퇴직시켰다. 갑자기 직원 15명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쳐지게 된 것이다. 


날은 찬바람이 부는 겨울 앞이었다. 11월은 겨울인 듯 겨울이 아닌. 그래도 추웠다. 마스크를 낀 동주와 다른 직원들이 문성그룹 본사 건물 앞에서 챙겨온 플래카드를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 무리에서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서동주씨! 나오셨네요!"

정기자가 마치 동주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살갑게 반기며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동주는 고개만 까딱하고는 캡모자를 눌러 쓰고 대열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박씨 아저씨가 동주의 곁으로 갔다.

"이쪽은 정기자라고 YQN 뉴스 기자인데, 인사해. 우리 일 도와주시는 분이셔."

박씨 아저씨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동주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악수를 청하는 정기자의 손을 잠시 멀뚱히 보던 동주가 손을 맞잡을 때였다. 클래식 검은 차가 들어오자, 대열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떠밀리듯 정기자의 손을 잡고 동주도 그 대열에 포함되어 움직였다. 차에서 내린 건 다름 아닌, 문성그룹의 사장 이영재였다. 깔끔한 회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그는 자주색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웃지 않아서 그런지, 무표정함에 날카로움이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관리직원들은 달려드는 시위대를 저지하였고, 경호원들은 영재를 싸고 경호하고 있었다. 건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영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저지를 당하며 서 있는 시위대를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시위대 중 한 사람에게 눈길을 두었다.

동주는 눈이 마주친 영재의 얼굴을 보자, 당황해하며 고개를 돌려 모자를 꾹 눌러 섰다. 그 모습을 정기자가 의아한 듯 보는 것도 잠시였다. 다시 영재는 빠른 걸음을 옮기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소란스러운 순간이 지나고 시위대는 다시 원래에 서 있던 자리로 이동하였다.

모두 함께 그 자리를 지키지는 못하였다. 몇몇은 생계를 위해 재취업상태였고, 동주 또한 어쩔 수 없이 알바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아저씨, 저 들어갈게요."

"어어... 이제 일하러 가지?"

"네... 몸은 좀 어떠세요?"

동주는 박씨 아저씨가 며칠 전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걱정이 되었다.

"검사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올 거 같아. 조직검사라 뭐라나... 뭔 놈의 검사비가 그렇게 비싼지..."

움츠러드는 박씨 아저씨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동주는 인사를 하였다.

자리를 떠나는 동주의 뒤로 정기자가 붙었다.

"아직 안 가셨어요?"

자신의 곁에 다가오는 정기자를 보고 동주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하자, 정기자가 서글서글 웃으며 말하였다.

"아, 다 같이 있어야 힘이 나죠. 근데, 혹시..."

"네?"

"아니, 뭐 그럴 일이 있으려나... 하지만, 혹시..."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동주는 무슨 말을 저리 흐리며 끄는지 몰라 무시하고 가려고 하였다. 그런 동주의 팔을 잡아 세우고는 정기자가 물었다.

"혹시 문성그룹 사장 이영재 아세요?"

"네?!"

눈이 약간 커진 동주를 보자, 다시 갸우뚱해진 정기자가 더 친근하게 굴었다.

"아니, 아까... 왠지 동주씨를 보는 거 같아서요. 물론 시위 중이라 볼 수는 있는데..."

"그거겠죠."

"네?"

"시위대니깐 본 거겠죠. 제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압니까?"

동주는 자신을 잡고 있던 정기자의 손을 밀어내듯 걸어가면서 말하였다.

"그... 그쵸?... 아니. 그 보는 눈빛이 마치 아는 사람 보듯이."

정기자의 말을 자르듯 동주가 물었다.

"어느 쪽으로 가세요?"

"아, 저는 회사로.."

"그럼."

동주는 정기자가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 반대로 걸어갔다. 그런 동주를 다시 불러 세우는 정기자는 기자스럽게 조금 끈질겼다.

"동주씨, 인터뷰요!"

"... 언제요?"

더는 정기자를 거절하기도, 박씨 아저씨의 부탁을 외면할 수만도 없었다. 동주는 하는 수 없이 인터뷰에 응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썩 내켜 하지 않는 투였다.

"제가 동주씨 있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우선 1차 저랑 인터뷰하고, 추가로 사진이나 영상 촬영은 후에 다른 분들과 같이하면 될 거 같습니다."

"네, 알겠어요. 저 일 끝나면 밤인데..."

"네네. 괜찮습니다."

"그럼, 새벽 1시 사가정역 앞에서 보죠"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정기자를 뒤로 하고 무심히 돌아서는 동주였다. 정기자는 팔짱을 끼며 멀어지는 동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참, 까칠한 사람이네. 자기 일 도와주는 사람한테 너무 비협조적이구먼, 못 배워서 그런가."

돌아서려는 정기자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자신의 촉이 예리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저 멀리 그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주 앞으로 검은 클래식 차가 멈춰 섰고, 창문 너머 얼굴을 보인 건 다름 아닌, 문성그룹 이영재 사장의 비서, 최실장이었다. 동주가 당황하지 않고 차에 올라 타자, 정기자의 눈은 더 의심에 차 있거나 호기심에 차게 되었다.

"이거 특종인가?!"


동주가 내린 곳은 유명한 H호텔 주차장이었다. 비서실장에게서 받은 카드키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 동주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 시켜야 했다.

띠딕

경쾌한 문 열림 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방문을 연 거실 소파에는 문성그룹 이영재 사장이 서류를 보며 앉아 있었다. 출근할 때 착용한 넥타이는 어디에 있는지 온데간데없고 풀어진 셔츠 카라 사이로 쇄골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들어온 동주의 소리를 들었는지, 곧 시선이 서류에서 동주로 향했다.

"네가 왜 거기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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