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났습니다."


영녕, 해연, 그리고 상아 앞에서 서서운은 머리를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오늘이면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세 사람도 일동 서운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서서운은 금자희 실종 사건이 일어난 어제 간택일 내내 황궁을 쏘다니며 일했다. 


"대체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면 어디로 가 있는 것인지 좀 아시는 바 없습니까?"

'대체로 궁에서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발견되지 않는다면 어딘가에서 죽어 있는 편이 가장 흔한데…….' 상아가 수어로 중얼거렸고 해연만 한층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 모양을 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죽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하셨어요." 

"그댄 좀 돌려 말하게."


해연이 멀쩡히 대꾸하고 영녕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금 소저가 어젯밤까지는 궁에 있었다는 증언이 있어서, 사라지기 전까지 반나절간 황궁 안팎으로 드나든 사람들과 있었던 일은 다 조사했는데 수상한 사람이나 물건이 나간 것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있어도 아직 궁 안에 있다는 뜻일 텐데요……." 


서운이 퀭한 얼굴로 말했다. "잠은 좀 잤니?" "누워도 이 생각 때문에 잠이 안 옵니다." 


"다른 태자비 후보들과 이야기를 좀 해 보는 건 어떨까." 상아가 해연을 통해 말했다. "유력 후보자가 사라지면 가장 이득을 얻는 것은 결국 그 두 사람이야. 직접 관련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과 이어져 있는 호부상서나 예부상서, 등 뒤의 세력들이 무언가 꾸몄을 수도 있지. 그런 가정을 하고 이야기를 해 보면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정치적인 음모와는 친하지 않은데요……." 서운은 아득한 표정을 지었고, 영녕이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서운, 너는 장차 대장군이 될 사람이다. 정치적인 행위와 완전히 거리를 두고 살 수는 없어." 

"저 이제 졸린 것 같습니다." 

"자고 나서 탐문하러 가겠니?"


말은 그렇게 하지만 오늘 오전까지도 별궁을 둘러싸고 수사를 벌이다 온 서운이었다. "저녁쯤에 가겠습니다." 하고 서운은 한숨을 쉬었고, "그래. 눈이라도 좀 붙이렴." 하고 서운을 다른 방에 집어넣은 군주와 그 조력자와 책사 3인방은 토론을 시작했다. 


"금자희가 왜 사라졌을까요." 

"스스로 사라진 건 아닌 것 같고." 

"누군가 구금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누가 말이냐?" 

"금자희가 태자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능하지요. 간택이 미뤄진 것 좀 보세요. 다른 후보자였으면 이렇지 않았을 거예요. 사정이 어떻든 간택에 불참한 것은 개인의 문제이니, 그대로 금자희를 태자비로 삼고 나중에 발견된 이에게는 죄를 묻거나 하겠지요."

"그런 유력 후보를 제치고 싶어하는 인물이 있겠다는 것이군."

"그러니 양춘만과 천호겸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에 양예진과 천은하와 이야기를 해 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물으면 좋겠습니까?"


영녕의 질문에 상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했다. "각자 집안에서 전해들은 말이 있는지부터 태자비가 되는 것에 대한 생각과… 그 이외에도 개인적인 이야기가 좋겠군요. 간택에 참여하기 위해 궁에 들어온 이상 행동에 있어서는 이미 일거수일투족을 다른 이들과 함께했을 것입니다." 


"저라면 현 상황에 관한 견해를 묻는 데서 시작할 거예요. 사람이 뜻을 말하면 은연중에 가정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지요."


해연이 눈을 빛냈다. 직접 따라가서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기색이었다. "서운과 동행하지 그러니?" 영녕이 권했다. 


"어쩔 수 없군요. 저 해연, 가문의 이름을 걸고 밖으로 나서는 일은 최대한 줄이고 싶지만 사안이 중대하고 외금위의 중랑장이신 서 대장께서 저를 잘… 감춰 주시리라 믿고 따라가 보겠어요."

"밖으로 나서는 일을 줄이는 것은 또 왜이냐?"

"제가 사사로이 군주를 모시기로 했다는 소문은 최대한 자제하고 싶거든요. 아직까지 때가 이르기도 하고, 울우계화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고……."

"자네는 차림새도 생김새도 너무 눈에 띄어. 변장을 해 보면 어떨까."


언제나 흰옷만 입고 다니는 해연을 이르는 말이었다. 영녕의 그 말에 상아가 뒤에서 큭 웃었다. '궁녀 옷을 빌려줄까?' 해연은 한숨을 쉬었다. "서 대장께 부탁해서 차라리 병사 옷을 빌리겠어요. 그건 모자가 있잖아요." 


'키가…….' 상아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손짓했다. 해연은 이 셋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였지만 외형상 거의 아이처럼 보일 만큼 작았다. 병사가 되기에는 신체조건에서부터 탈락했을 것이다. 

"……."

'애기 궁녀 옷도 괜찮을 거야.' 상아는 드물게 신나 보였다. '제발, 차라리 그냥 궁인으로 하겠어요.' 해연은 절박하게 마주 이야기했다.





"그 어찌 그런 의혹을 가질 수 있단 말이오! 천자께서 내려다보시는 이 황궁에서 설마 그런 무도한 일이 일어났다고는…!" 


양예진은 서운이 피곤하니 차나 좀 얻어 마시겠다고 핑계를 대고 들어와 하는 말에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턱선은 우아한 흰빛을 띠고 간택에 참여하는 처자답게 화사한 옷으로 차려입었지만 기세만은 영웅 호걸이었다. 머리도 최대한 움직이기 편하게 최소한의 장식만을 단 모습이 서운은 왠지 낯설지 않았다. 영녕군주에 비하면 예진은 훨씬 광택 좋고 긴 머리를 가졌고, 말씨는 당당하다 못해 씩씩한 것이 달랐지만.


"그……." 이 반응에 잠시 할 말이 없어진 서운이 잠시 망설였다가 입을 열었다. "간택 때와 모습이 많이 다르십니다?" 


"폐하와 태자 전하가 내려다보는 앞이시잖소. 예를 갖춰야지."

"예를 갖추지 않으면 이렇게 시원시원해지시고요?"


이 사람의 면면에 흥미를 느낀 서운이 물었다. "그야 물론이오.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그 모든 법식을 다 지키며 삽니까. 사람은 난 성격대로 자유롭게 지내기가 제일이오." "하지만 태자비가 되시면 항시 예를 갖추고 살아야 하실 텐데도……." "간택을 받는다면 그 또한 천명! 어찌 사람이 하늘이 준 운명을 또한 거절하겠소?" 


이거 참……. 서운은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나온 것은, 


"자당께서 궁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시라고 안 말해 주셨습니까?" 


"말씀해 주셨지요. 허나 아버님께서 원하시어……." 양예진은 한숨을 쉬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이건 사연이 있소. 보다시피 나의 용모가 또래들 가운데서도 빼어나서……." 미인이 스스로 미인이라고 말하는데 납득이 되기는 하나 우습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양예진은 말을 줄이고 새침한 미소를 지으며 소매 너머로 눈짓을 한다면 딱 어울릴 고전적인 미인상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아버님께서는 나를 궁으로 들이고 싶어하셨소. 민간의 보통 사내들과 맺어질 만한 면모가 아니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이러한 일을 기다리며 걷는 법과 웃는 법과 서는 법 등을 익히고, 아가씨로써 행해야 할 도리와 재주에 대해서도 가르치셨소. 나는 그 모든 것을 배울 만큼 퍽 영민한 편이라……." 양예진에게 부족한 것은 말을 고르는 방법뿐인 것 같았다. 아닌가. 서운은 속으로 갸웃했다. 삼간택에서 최종 후보까지 올라왔다면 필시 그때와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말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아가씨의 말투는 아마도 지금까지 억눌러 오던 본성에 가까울 것 같았다.


"… 모든 것을 시키는 대로 배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있소. 그러나 또한 단 하나 있는 아비의 간절한 마음을 어찌 대놓고 거역하겠소." 

"소저께서는 차라리 저나 저의 친구와 같이 검을 휘두르고 들판에서 말을 달렸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검은 배웠지요. 유사시에는 태자 전하를 지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갈수록 태산이었다. 물론 서운이 상상하기에 검을 든 예진은 지금까지 보았던 모든 모습들, 그러니까 간택에서 조심스럽게 걷거나, 우아하게 차를 마시거나, 다가온 상궁과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모습보다도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말이다.


"만일 이 사건이 해결되고 태자비로 간택되지 않으신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버지의 고집도 한 풀 꺾이지 않을까… 궁에 다녀오느라 피곤하고 답답했으니, 경치가 그리 좋다는 강남으로 유람이나 보내 달라고 졸라야겠소."

"아, 수주 강남은 제 고향입니다." 

"이거 인연이로군요! 혹시 추천할 만한 경치가 있다면 부디 말씀해 주시면 어떻겠소이까." 


옆에서 은완궁의 궁녀인 척 시립하고 있던 해연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두 사람은 이제 곧 친구가 되고 이 사건이 끝나면 강남으로 함께 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예진의 성격으로 볼 때 아무래도 그가 직접적으로 금자희의 실종에 관련되지 않은 것도 명백해 보였다. 이 정도로 솔직한 인간은 보기에도 드물었으며, 예진은 용의자 신분이라 움직일 수 없는 점을 제외하면 서운과 함께 사건을 캐기라도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호부상서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믿을 수는 없겠으나…….


"소저께서 간택에 참여하러 궁으로 오실 때 아버님께서 혹시 뭐라고 말씀하신 것이 있나요?"


해연이 슬쩍 끼어들어 물었다. "음? 궁궐은 심중 심처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놀랄 것 없으며, 지금까지 배운 바 최선을 다해 임하면 돌아올 때는 존댓말을 올리는 사이가 되어 있으리라 하셨소."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말이었다. 금자희가 태자비로 내정에 가깝게 되어 있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는데도 저런 태도였다면, 호부상서는 아무래도 따로 만나서 떠보거나 해야겠는걸…… 하고, 해연은 생각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양예진에게서 캘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인가 싶었다. "혹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수상한 기색을 느끼신 것은 정말 없으시고요." 서운이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없소. 그런 것이 있었다면 내 진즉 나에게 물어보러 온 모든 사람들에게 명백히 정리해 밝혔을 테니."


분명 그럴 사람이었다. 알겠다고 서운은 대접에 감사하는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모쪼록 수사에 진전이 있기를 바라겠소. 나 또한 이 모든 의혹이 밝혀지고 금 낭자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기를 바라니." 예진은 두 사람을 배웅했다. 서운은 별다른 것을 알아내지 못한 것과 별개로 양예진이 정말로 무사에 어울리는 인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예진이 묵고 있는 처소를 떠나는 발걸음이 느려졌다. 해연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해연, 천명이라는 것이 이리 타고난 조건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을 믿습니까." "믿지요." 


해연은 곧바로 대답했다. "왜입니까?" "제가 이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몸과 이런 모습으로 자랄 일 없었을 것이고, 서고에 있는 모든 책의 순서와 내용을 통독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지금 공과 함께 은완궁의 궁녀로 변장해 걷고 있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대답은 몇 보나 앞질러 서운이 하던 생각을 가로막아 버렸다. 서운은 다소 답답함을 느낀다. 


"그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형태라고 해도 따르게 되는 것이 인간일까요." 

"따른다, 따르지 않는다를 선택하려고는 할 거예요. 그러나 주어진 조건에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양 소저는 수주 유람이 아니라 관직에 올라 수주를 다스리는 관리가 되었어도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어울린다, 그렇지 않다를 사람을 두고 가를 수 없는 일이나……."


해연은 조금 웃었다. "지금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양 소저가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는 동의해요." 


"그런 사람들을 좀 많이 보셨습니까?"

"공은 바로 근처에 있잖아요?"

"제 근처에?"

"일개 왕부의 군주보다는 더욱 크고 높은 자리가 어울릴 것 같으신 분이."


아. 하고 서운은 영녕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 양 소저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나 군주께 느꼈던 가능성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어찌 같을까요. 다른 사람인데."


해연은 씩 웃곤 몇 발 달음박질쳐 서운의 앞으로 갔다.


"하지만 다른 길을 택한다면 도와 주고 싶기는 하지요?"

"다른 길을 택한다면 도와 주고는 싶습니다."

"서 대장이 원하신다면 이 사건이 끝난 후에도 양 소저를 지켜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양 소저가 만약 어떤 선택을 한다면, 그를 도울 수도 있을 것이에요."


서운은 끄덕였다. "예, 그러면 먼저는 이 사건이 끝나고 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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