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오지니





그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무겁게 내리는 비가 오랜만인지라 일부러 물웅덩이를 피하지 않으면서 걷던 나는 귀에서 웅웅대는 음악 소리에 집중하느라 시선을 앞으로 바르게 두지 않았고, 걸을 때마다 운동화 속으로 스며드는 축축함 조차도 신경 쓰지 않다 보니 나는 어느새 신호등 앞까지 잘도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애초부터 그런 점이 문제였을까. 슬슬 차들의 시동이 다시 걸리고 멈추라는 듯 요란하게 깜빡이던 파란불이 빨간 불로 바뀌는 순간에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직진하려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내가 멍청했다고 생각한다. 정신도 안 차리고. 당시 내 주변에 있던 사람이 날 당기지 않았더라면, 아마 난 이렇게 그날을 회상하고 있지 않았겠지.


"위험해요!"


빠앙-


"야!!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
".. 깜짝 놀랐네. 괜찮아요?"


날 끌어당기는 손에 이끌리는 대로 따라가니 웬 남자가 나를 향해 울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허리를 숙이며 내 상태를 확인하는 그 남자가 난 왜 그랬을까, 굉장히 낯설면서도 묘하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차가운 물들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어폰. 방금 전 정신없는 틈에 이어폰이 빠졌나 보다. 남자의 여전한 시선에도 난 아랑곳 않고 이어폰을 주워들었다. 축축하게 딸려오는 물기. 또다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정말 죽을 뻔했어요. 앞으로는 조심히 다니세요!"

".. 감사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그때 내 어깨를 토닥이고 돌아서는 그 남자가 계속 낯설면서도 몸 어딘가가 불편한 느낌을 받았던 건,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어떤 기분을 하고 있었나 하니 그게 또 제일 어렵게 다가왔다. 횡설수설 말이 샌다. 내가 그날의 남자의 모습을 아직까지 잊고 있지 않는 걸 보면 그 남자는 내게 어떤 존재였나, 정말 도무지 알기 힘든 것 같다.


'잘 가요-'



이 시점에서 내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그 남자가 돌아서서 멀리 사라질 때 모든 소리들이 하얗게 사라져 갔었다는 것. 그리고 뛰는 심장이 유난히 요란했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잠에 쉽게 들지도 못 했고, 온통 그 사람만 생각났으며 목소리가  내내 들린다는 것. 그것들까지 합치면 어떠한 답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지금도 생각나는 그 사람이 나는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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