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머지않아 입을 연다. 표정은 좋은 건지 억지로 먹는 건지 보여주지 않는, 전형적인 ‘포커 페이스’다.

“확실히 세상에서 본 적 없는 재료로 만든 건 칭찬해 줄 만합니다. 저도 만화에서 본 거거든요. 어떻게 그걸 다 재현했는지, 저도 맛을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는군요,”

카즈가 만든 요리를 먹어보고는 조금은 놀랐는지 눈을 조금 크게 뜨지만, 거기서 더 극적인 반응을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지 맛이 좋다는 반응에서 더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 말을 들은 도나텔라가 서둘러 한마디 한다.

“야, 윤진아, 솔직히 세상에 없던 재료 가지고 요리 만든 건 인정해야 하지 않냐? 안 그래?”

“어, 그렇기는 하지.”

윤진은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한번 카즈가 만든 요리를 한 점 먹고 말한다.

“그런데, 민이가 만들어 낸 소금을 여기다 썼으면 훨씬 맛이 더 좋았을 텐데.”

“야! 뭐라고? 그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소금이잖아. 세상에 없던 재료 같은 게 아니라고!”

“궁금하면 한번 먹어보든가.”

윤진이 민에게 눈짓을 보내자, 곧바로 민이 소금이 든 종지를 도나텔라에게 찍어 먹어보라고 가져다준다. 도나텔라가 그걸 손가락에 대고 찍어먹자...

“오!”

의심으로 가득 차 있던 눈이 곧바로 놀라움으로 바뀌더니, 카즈에게 그 종지를 내민다. 카즈도 그걸 찍어 먹어보더니, 눈이 확 떠진다.

“이야! 너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냐?”

곧바로, 그 경쟁심으로 가득 차 있던 표정이, 싹 바뀐다.


한편, 히어로 동아리는 격투기 동아리와 교류 모임을 하는 중이다. 물론 링 안에서 서로 스파링을 한다든가, 아니면 격투기 동아리 부원들도 함께 특정한 복장을 하고서 같이 히어로 활동을 한다든가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마주 앉아서 잡담을 떠는 것이다. 

“하하하, 요즘은 못 들어 본 동아리도 다 생기나 보네.”

“나도 설마설마하고 만들어서 넣어 봤는데, 승인이 나더라.”

격투기 동아리의 매니저 조르주는 치히로의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더니, 이윽고 다시 웃음을 짓는다.

“그래, 그러고 보니 요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동아리들이 꽤 많이 생겨났어. 5명씩 모아서 어떻게들 다 승인이 나나 봐?”

“그런데...”

치히로가 문득 입을 연다.

“베로니카가 왜 아직 안 오지... 이미 시작한 지 5분은 더 됐는데.”

그렇게 말하자마자, 마치 그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한 여학생이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서 빨간색 후드티의 후드를 내리고는, 푸른빛이 섞인 검은 머리와, 얼굴을 드러내며 말한다.

“좀 전에, 그 슬레인이라는 선배를 봤어요.”

“어? 너, 봤어? 오늘, 그 녀석 어째 보이지 않던데... 어디 있었던 거야?”

“몇 명이 모여서 저기 운동장에서 동아리 교류 활동 하고 있던데요.”

베로니카의 말을 들은 치히로는 의외라는 표정을 하고서, 눈을 둥그렇게 뜬다.

“이야, 그 애가 동아리에 다 들어가?”

“네. 이런 시간에 혼자 있거나 하지는 않던데요.”

“뭐야, 한동안 혼자 다니던 녀석이, 동아리에 들어갔다는 거야? 못 믿겠는데.”

“진짜라니까요.”

그러면서 베로니카는 자신이 찍어 온 사진까지 보여 준다. 그걸 보자마자 치히로가 웃음기를 없애고 베로니카가 보여 준 사진을 자세히 보더니, 그 사진 속에서 식별이 가능한 얼굴들을 몇 번씩 본다. 옆에 있는 조르주가 한 명을 가리키더니,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한다.

“오? 얘 ‘로베르토’잖아? 얘 우리 동아리였는데, 적응을 잘 못 해서 한 달 만에 나갔지. 그런데 또 다른 동아리를 찾아갔나 봐?”

“어... 그래?”

“아쉬워. 피지컬도 좋고 이것저것 다 좋은 녀석인데, 적응을 못 했으니.”

조르주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아쉽다’는 말을 몇 번씩이고 반복한다. 그러다가 또 한마디 한다.

“좀 더 우리 동아리에 있었다면, 아마추어 대회 정도는 나갈 수 있었던 실력인데.”


한편,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 동아리방.

민과 카즈는 각자 자신이 만든 요리를 보고 있고, 만화부원들과 요리 동아리 부원들 중 먹고 싶은 사람들은 한 점씩 요리를 집어 먹었다. 이윽고, 민과 카즈가 서로의 요리를 바꿔 먹는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말은 하지 않는다.

이윽고 모두의 시선이 윤진과 베로니카에게 쏠린 가운데,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윤진이 결과를 발표한다.

“자... 이렇게 ‘세상에 없던 요리 만들기’는,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성심성의껏 요리를 만들어 준 두 부원에게 박수 부탁드리고, 이후는 자유 주제 토의 시간이 있겠습니다!”

민이 큰 숨을 내쉬더니, 자리에 앉는다. 카즈도 옆에 가서 앉더니, 언제 그렇게 열을 내며 경쟁을 했냐는 듯한 웃음을 짓고서는 민에게 말한다.

“나중에, 우리 집 한번 놀러 와. 그때는 우리 누나가 아마 내 것보다도 더 맛있는 요리를 해 줄 테니.”

“어... 그래.”

민에게 그렇게 말하고서, 카즈는 리카를 돌아본다. 리카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별 표정 없이 민과 카즈를 보고 있다. 아마도 리카도 따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모양인데, 민이 돌아보자마자, 바로 다시 고개를 돌려 버린다. 마치 뭔가를 숨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리카 또 시작이네. 내가 다 안다고.”

민이 뭐라고 하기도 전, 카즈가 한마디 한다. 민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건지, 슬며시 웃는다. 그러자 그걸 또 알고 있다는 듯, 이제까지 가만히 보고 있던 유도 끼어들어 말한다.

“하하하! 알지. 안 당해 보면 그런 말은 이해 못 해.”


그리고 그날, 교류 모임이 다 끝나고, 동아리 총연합회 회의까지 마친 오후 5시. 방송실을 나오는 각 동아리의 부장, 매니저, 총무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이야- 내일도 오늘처럼 재미있겠네-”

윤진은 박장대소를 하며 한껏 들뜬 표정을 하고서 방송실을 나서고 있다. 반면 그 뒤로 나서는 치히로와 슬레인은 무언가 모르게 표정이 좋지 않다.

“에이, 메이드 연구회라니! 무슨 우리가 마법소녀를 할 것도 아니고..”

치히로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윤진의 뒤에 방송실을 나오자, 그걸 옆에서 보던 슬레인은 그게 꽤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치히로를 돌아보며 버럭 성질을 낸다.

“선배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예요? 메이드 연구회 정도면 그 잘난 히어로 동아리하고 아주 관련이 없지는 않잖아요! 우리를 한번 봐요! 요리 동아리하고 자동차 연구 모임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치히로가 슬레인의 그 말을 듣자마자, 마치 범인의 거짓 진술을 잡아낸 형사라도 된 것처럼, 눈을 빛내고는 슬레인의 앞을 막아서며 말한다.

“에이! 너희 자동차 연구를 위해서 동아리 만든 거 아니잖아. 다 알아.”

“그게 또 무슨 소리인가요.”

“너희 ‘자동차 연구 모임’ 멤버들 보니까 아주 화려하던데.”

그렇게 말하며 치히로는 마치 슬레인을 도발이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한번 까딱거린다.

“내가 잘 안다니까?”

그걸 본 슬레인은 굳이 숨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대신 코웃음을 칠 뿐이다.

“하... 좋아요. 제가 진짜 화려한 모임이 무엇인지, 보여 드리죠. 일주일 뒤를 기대하라고요. 교류 행사 기간에도 신규 부원 모집은 가능하니까요.”

슬레인은 씩씩거리더니, 곧바로 치히로를 밀치고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 슬레인의 뒷모습을 보며 치히로는 한마디 한다.

“하, 저런 자신감 어디에서 나오는지. 없는 데서 끌어온다든가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 길로, 슬레인은 전화를 꺼내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준후 맞지? 네가 아는 후배들 있지?”

“아, 물론 있지. 몇 명 소개해 줘?”

“그래. 누구든 우리 앞에서 방해하면, 본때를 보여 주자고. 알겠지?”

“좋아.”

그리고 1분 뒤, 슬레인은 메시지 하나를 받는다. 그 메시지를 받은 슬레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름 : 루카스 키팅]

[소속 : 미린중학교 3학년]

[연락처 : XXX-XXXX-XXXX]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슬레인은 바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어... 누구세요?”

“그래. 네가 루카스냐?”

“네, 맞는데요?”

전화 너머의 루카스의 목소리는 제법 불량하게 들린다. 마치 자신이 악명높은 갱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듣기 불쾌한 목소리가 슬레인의 머릿속까지 파고든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목소리만 듣고도 손사래를 치거나 거부반응이 나오겠지만, 슬레인은 오히려 그 반대다.

“좋았어, 너, 시간이 나면 이따가 나 좀 만나봐도 될까?”


그리고 약 1시간 후, RZ타워 5층의 오락실. 수요일 저녁이라서 그런지, 여느 평일보다는 조금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그중에는 에어하키 테이블도 보이고, 또 사격, 노래방 같은 것도 보인다. 하지만 지금 민과 친구들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여느 날처럼 한 자리에 모인 민과 친구들의 관심은 지금 막 자리를 잡고 앉은, <라이트닝 헌터>라는 새로 나온 게임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이야, 이 게임 저번 주에 나왔다고? 나는 못 들었는데...”

민의 옆에서 게임의 데모 화면을 보고 있던 코니가 화면에서 눈을 뗴지 못하며 말한다.

“조작이 좀 복잡해 보이기는 하는데, 괜찮으려나...”

“뭐, 괜찮아 보이기는 한 것 같은데.”

코니의 말에 민은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한다. 사실 화면에 보이는 것 정도면 초심자가 하기에는 조금은 어려워 보이지만, 조금 시간을 들인다면 충분히 마스터가 가능한 정도다.

“한번 해 볼래, 코니?”

“어... 그래.”

“좋아. 그럼 상대는 내가...”

민이 옆에 앉으려고 하자, 그걸 기다렸다는 듯, 토마가 갑자기 옆에 끼어든다.

“내가 질 수 있냐? 얼마나 이걸 열심히 갈고 닦았는데...”

“어? 토마 너, 자신이 있나 봐?”

“그래. 매일 저녁 이거 연구했다고.”

“어, 장난을 못 치니까 이런 데다 시간을 쏟나 보네?”

“......”

그렇게 코니와 토마는 게임을 시작하고, 몇 명은 구경하려 할 무렵이다.

“호오, 여기 있었네-”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굵은 남자의 목소리인 것으로 들어 볼 때, 민의 또래 나이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뒤에서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이쪽으로 똑바로 말이다.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야? 여기 내가 맡아 놓은 자리인데.”

푸른색과 회색이 뒤섞인 후드티를 입은 그 남자는 민과 친구들이 그 기계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제법 불쾌해 보이는 모양이다. 후드를 벗자, 검은색의 일자로 자른 듯한 머리가 드러난다.

“아무리 나보다 어리다고는 해도, 남이 맡아 놓은 자리에서 함부로 뭘 하면 안 되겠지?”

“음?”

민은 그 남자를 돌아보고 한번 훑어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런데, 자리를 맡아 놨다는 증거는 혹시 있나요?”

글 쓰고, 가끔 그림도 그립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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