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로 차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어서오십시오, 여기서부터 A시입니다.'라는 문장이 박힌 거대한 간판이 도로 옆에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집착적으로 질문을 하는 시기에 있었고, 간판을 보자마자 운전 중이던 아버지에게 물었다. 저 간판 바로 밑에 집이 있다면, 그 집 주소는 어떻게 되나요? 경계선 위에 집을 지으면 그 주소는 A시로 시작하나요, 아니면 B시로 시작하나요? 경계선을 다리 사이에 놓고 선다면 저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왼발로 딛고 서면 X동에 있는 것이고, 오른발에 힘을 주면 Y동에 있는 건가요? 내 사소한 움직임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것이 뒤집힌다니, 그만큼 흥분되는 일이 없었다.

두 세계는 각각 내 왼발과 오른발 아래에 있었고, 어느 쪽에 무게를 더 싣는가에 따라 내가 속한 상황이 뒤집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두 세계 위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굉장히 정교한 작업이었기에 나는 누군가가 붙잡아주지 않으면 어느 한 쪽으로 넘어질 가능성이 농후한 어린아이였다. 내 주변의 어른들은 나를 그들이 있는 세계에 매어두고 싶어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모두가 있어야 할 곳은 밝은 세계였다. 그 즈음 내 주변의 어른들은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진심을 담아 경고했다. 제발 그쪽은 딛지 마라, 가지 마라, 말 좀 들어라, 보지도 마. 결국 나는 밝은 세계 위에 서서 온종일 다른 곳을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른들은 각자의 일을 하다가도 틈만나면 내 쪽을 주시했다. 주시하는 걸로 모자라서 아예 발목을 묶어버렸는데, 가끔 족쇄였고 대부분 구명줄이었다. 나는 밝은 세계의 가쪽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어두운 세계에서 일어나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쪽으로 영영 떠나버린 사람들의 일상, 혹은 그 세계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의 타고난 얼굴같은 것들. 나는 감시자가 바쁠 때면 어두운 세계에서 여행자의 신분으로 다니는 것을 즐겼다. 주민이 아니라 외지인으로 있는 시간은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물론 여행이 끝난 다음에는 항상 제자리로 돌아와 단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던 사람 행세를 했다. 

나는 사막같은 집 안으로 기어들어오면서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밖에서 고생했을 나를 위해 부모님이 깎아주는 과일 한 접시같은 것들. 두 분은 나의 바깥을 알고 계실까. 그러니까 나는 밝은 세계 안에서 언제까지나 두 분의 순수하고 어리숙한 아이인 척 연기했던 것이다.


01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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