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 말 들어봤어요?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전 그 말을 언니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폭우가 쏟아 지던 날 씌워진 우산. 언니가 딱 그랬어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그랬잖아요. 시험을 다 망치고 엉엉 울면서 비 맞던 저한테 딱 나타나서 우산 씌워줬잖아요. 기억나요? 전 그때 언니가 해줬던 말까지 다 기억나요. 다 젖었다고, 춥겠다고,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모르는 척 하더니 제가 고맙다고 하니까 울지말라고 했잖아요. 그 말에 사탕 쥔 애마냥 뚝 그친 저도, 그 모습에 환히 웃는 언니 모습도. 전 다 기억나요. 그 얼굴에 세상이 멈췄거든요.


어떻게 얼렁뚱땅 대학에 합격하고 오티에 와서 언니를 만났을때, 그때 저는 정말 말그대로 뒤로 넘어갈뻔 했어요. 너무 좋아서요. 숨길수가 없었어요. 주인찾은 개마냥 언니 주위만 빙빙 맴돌았죠. 어떻게 보면 언니가 귀찮았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근데 그렇게 예쁘게 웃으면서 절 반겨주는데, 귀엽고 착하다며 예뻐해주는데 어떻게 제가 가지 않을 수가 있어요? 어떻게 고양이가 생선을 두고가며,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가 있겠냐구요. 이건 다 예쁜 언니 탓이에요. 아...아니다. 아니예요. 어떻게 언니 탓일 수가 있어요. 언니한테 빠져버린 제 탓인거죠 뭐. 


전 늘 언니 곁을 맴돌았어요. 아니, 매달렸다는게 더 맞는 말이겠죠. 사진에는 쥐뿔도 관심없으면서 언니를 따라 사진 동아리에 들어가고, 반장은 커녕 조장도 해본적 없는 주제에 언니가 과대를 했었다는 얘기만 듣고 과대를 자처했어요. 같은 공감대를 만들고 싶어서요. 오로지 그거 하나 때문에요. 덕분에 친구들 사진 담당은 제가 됐고, 제 자기소개서에 한 줄 쓸 내용이 더 생겼어요. 하지만 그것들이 언니의 칭찬보다 기분 좋지는 않아요. 사진 공모전에 내려고 땡볕아래 몇시간 내내 사진을 찍었어도, 과대 일과 과제에 짓눌려 밤을 새우는 일이 흔했어도 언니의 토닥임 한번이면 언제 그랬냐는듯 눈이 반짝였어요. 언니만이 제게 위로였어요.


너무 유치하죠? 왜 그러나 싶죠? 근데 언니는 왜 그랬어요. 왜 친구들한테 제일 예쁜 동생이라고 소개시켜 줬어요? 제가 그렇게 예쁜편은 아니잖아요.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어색하게 김새버린 그 얼굴들을 보는게 얼마나 민망한 일이였는 줄 알아요? 그런데도 어떻게 계속 예쁘지 않냐며 절 매만질수가 있어요. 그런데서도 예뻐해준다며 좋다고 웃은 저도 정상은 아니지만요.


왜 자꾸 다정하게 절 불렀어요? 심심하다고 부르고, 외롭다고 부르고, 기뻐서 부르고, 슬퍼서 부르고. 한 치의 고민 없이 나서면서도 집에 돌아올때면 저는 텅텅 비었어요. 매번 모든 마음을 다 줘버려서요.


왜 자꾸 저를 껴안았어요? 제 얼굴 달아오르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왜 그 바다에서 저한테 입맞췄어요? 제 시간은 이제 그 바다에서 일초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됐는데.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잖아요. 전 그 말을 언니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제 마음이 이리도 큰데 언니에게 털끝도 스치지 못하는 걸 보면 우린 타이밍이 맞지 않는거겠죠. 근데요. 알아채지 못해도 좋고, 제 마음에 답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 남자 보면서 웃어주지 마요. 연락에 답해 주지도 마요.


 언니 그 남자 만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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