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허억, 헉......우리, 이미 늦은 게 아닐까......"

하두 달린 탓에 반 죽을 기세로 비틀거리던 하루카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계속 아즈사를 쫒은 끝에 저 멀리 건너편 길에서 모습을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하필이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때 신호가 빨갛게 바뀌었던 것이다. 무단 횡단은 시민으로서도 아이돌로서도 하면 안되니까, 얌전히 기다려야 했고.....그 사이에 겨우 발견한 그 사람은 온데간데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후우.....미나세씨 말로는 저기 아래로 갔다는데."

치하야가 가리킨 곳은 지금 그녀들이 있는 곳보다 더욱 더 번화한 사거리였다. 대형 백화점이 즐비하고, 그밖에 여러 상점들이 즐비한 그 곳에는 입지적으로도, 시간대적으로도 엄청난 사람들이 지나가고, 머물고 있었다.

"저렇게 붐비는 데 어떻게 찾으라구....."

하루카가 모자를 꾹 눌러쓰고 안경을 정비했다.

"지금 우리로서는 해볼 수밖에 없어. 가자."

"우, 응.....그렇지.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두 사람은 다시 전진했다. 여기서 또 실패하면 헬기를 띄운다는 말이 그녀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전진, 또 전진. 그러면서 사람들을 살펴보는 그 때.....멀리서 근처를 서성이는 젊은 여성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자, 잠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모자를 쓰고 있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짙은 남색의 단발. 얌전한 인상의 원피스에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풍만한 가슴.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느긋한 오오라......미우라 아즈사다! 횡단 보도 때보다는 좀 더 가깝긴 했지만, 조용히 손을 잡고 끌고오기에는 너무 멀었다. 아즈사가 또 그녀들과 멀어지기 시작한다......!

"저기요!"

이대로 있다간 또 놓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카는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어머?"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춘 아즈사.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도 뭔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에 흠칫했다. 지금이 기회다!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하루카와 치하야는 그대로 후다닥 뛰어들려 했지만......

돈가라갓샹~

"우, 우 우와악!?"

"하, 하루카!?"

하루카가 약속의 전개로 넘어지고 말았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걸로 인해 사람들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하, 하루카다......."

"진짜야, 저 넘어지는 각도, 포즈! 이건 틀림없는 진짜야!"

"그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은 키사라기 치하야!?"

넘어지면서 모자도 벗겨진 바람에 그녀의 챠밍 포인트 한 쌍의 분홍 리본도 확실하게 드러났다. 더 이상 얼버무리거나 할 수는....없다! 설상가상으로 치하야의 정체까지 들키고 말았다!

"아, 아하하하....."

".....크..."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해지는 걸 체감한 하루카와 치하야가 은근슬쩍 뒷걸음질치며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와아아아!!!!! 하루카쨩!!!!!!"

"치하야씨!!!!! 싸인해주세요!!!!!"

"어, 어험......자네들이 그 유명한 765 프로덕션 소속 아이돌인가?"

"저, 저랑 사진 한 장만요!"

남자, 여자. 청소년, 청년, 장년, 노인.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말았다.

"저, 저기 그러니까......어, 이렇게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다는 게 기쁘긴 하지만....."

"죄송하지만 저희에게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므로......"

꼼짝없이 갖힌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포위하는데 머물러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용기있는 누군가가 돌격을 시도할 테고, 그 순간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어, 얼레.....오, 오면 안되는 거였나......"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아미. 저대로 가다간 위험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아미는, 곧 크게 외쳤다.

"거기 다들 스퇍!"

그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 한 명을 향했다. 아미 역시 변장을 하고 있어도 특유의 발음과 목소리 때문에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류, 류구코마치다! 아미다!"

"아, 아미쨩!!!!"

"응후훗.....곧바로 알아채다니 과연 아미님의 인기는 대단하군......"

속으로는 식은 땀이 주륵 흐르는 걸 감추기 위해 자화자찬을 하는 아미.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지만 그래도 이걸로 기회가 생겼다.

"치하야 언뉘! 지금이야!"

아직 사람들의 벽은 견고하다. 도저히 떨쳐낼 수 없다. 건장한 남성이라도 뚫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틈새를 파고들어 도망치는 것 정도는.....가능.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지금으로서는 오직 1명뿐!

"......큿.....!!"

아미의 의도를 알아챈 치하야가 통한의 큿 소리를 내며 도보 블럭을 박차올랐다!

큿, 큿, 큿!

오랜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탄탄하고 마른 몸매로 당황한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 치하야는 그대로 또 어디론가로 가려는 아즈사를 향했고.....그대로 앞질러나가 마침내 막아서는데 성공했다!

"멈춰요!"

"치, 치하야......쨩?"

"하아.....모두 계속 찾고 있었어요. 같이 돌아갑시다."

겨우 아즈사를 발견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치하야였지만, 곧 하루카하고 아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아아아!!!! 가면 안돼요!"

"치하야쨩! 부탁이야! 나랑 악수 한 번이라도오오오!!!!"

그리고 자기 자신도 걱정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 765 아이돌이 있대!"

"뭐!? 진짜!? 어디어디!?"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멀리 있던 사람들까지 이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노래, 노래 불러주세요!"

".....저, 저어 그러니까.....이러시면 매우 곤란합니다만....."

점점 사람들이 치하야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증원이 되어서 그런지 그녀로써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스크럼이 형성되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아까 치하야쨩이랑 같이 있던 사람은 누구에요?"

"친한 듯 보였는데......"

"어? 그 사람 어디 있지?"

아즈사는 아직 정체가 들키지 않았지만, 곧 시간 문제다. 거기다 겨우 만났는데 사람들의 벽으로 인해 또 갈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머리를 굴리던 치하야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덜컥.

......

- 당장 이 근처로 와. 빨리!

"엣.....!?"

갑자기 치하야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자마자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리츠코가 움찔했다.

"요 근처에서 발견했어! 가능하면 같이 돌아가고 싶지만......"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아우성에, 대략적인 상황을 판단한 리츠코가 투덜거렸다.

"아 정말, 이래서야 이오리가 헬기 끌고오는 거랑 별 다를 바가 없잖아."

- 어쩔 수 없어. 이미 일어난 일인 걸. 하여튼, 빨리 와줘. 저 사람마저 들키는 건 이제 시간 문제니까.

"알았어."

리츠코는 통화를 끊고 서둘러 달려갈려고 했다. 하지만, 곧 중요한 걸 깨달았다. 정확한 위치를 못 들은 것이다.

뚜- 뚜-

"......."

다시 전화를 걸어봐도, 받질 않는다. 이오리가 여기서 아래 쪽이라고 말했지. 그러면 일단 쭉 내려가볼까. 사람들이 그렇게 모였다니 바로 눈에 띄겠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무작정 내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사탕 조각에 달라붙는 개미떼들처럼 특정 인물들을 향해 달라붙으려 드는 수많은 인파를 목도하고만 리츠코는 할 말을 잃은 체 그저 두 눈을 껌뻑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다. 대형 사건이다. 이것만으로도 신문에 해프닝으로 출연 가능, 아니 확정이다. 뒷수습할 생각에 머리가 절로 아찔해져왔다. 리츠코는 어지러운 머리를 꾹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바라봤다. 당연하지만, 변함 없었다.

"하, 하하......"

이게 꿈이라면 좋았을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크고 작은 사람들을 관찰해본다. 역시, 멀리서는 뭐가 뭔지 분간할 수가 없다. 뒷수습은 나중에 생각하고, 뛰어들 수밖에 없다. 아즈사씨를 위해서라면.

"후우......"

각오를 다지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안경을 고쳐쓰고.....좋아, 됐다. 가자.

"테이야!!!!!!"

리츠코는 보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운 사람들의 파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하루카쨩! 사인 고마워!"

"아, 아하하......"

"치하야쨩과 악수를 하다니.....이제 죽어도 좋아....."

"아, 아니 그러시는 건 좀....."

결국 즉석 싸인회 및 악수회가 벌어지고만 주변의 안쓰러운 풍경을 애써 무시하며, 리츠코는 계속해서 사람을 찾았고......마침내 발견했다. 찾아냈다.

"이, 이걸 어째......"

자신을 위해 희생한 동료들을 안절부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뜨지도 못한 체 침울해하는 조금 큰 키의 여성. 리츠코는 흥분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여가면서, 흐트러진 정장 차림으로 겨우겨우 그 사람에게 도달 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녀의 뒤로 다가간 리츠코는 옷자락을 붙잡았다.

"......겨우 찾았네요."

"아......"

그녀가 담당 프로듀서 쪽을 돌아보았다.

"갑시다."

"그, 그치만....."

리츠코는 이미 늦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결국 아즈사는 리츠코와 함께 이 장소를 탈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말 운이 나쁘게도(?).....

"자, 잠깐만......저 사람, 류구코마치의 프로듀서 아니야?"

"......헤......?"

어째서인지 몰라도 프로듀서를 알아채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면 옆에 있는 나이스바디의 참한 여성은 역시...."

"아즈사씨!"

"어, 어머나......"

하루카나 치하야, 아미의 싸인이나 악수 기회를 위해 알아서 순번을 기다리던 사람들 중 일부가 큰 소리로 외치며 성큼성큼 리츠코와 아즈사를 향해 전진했다. 일부라 해도 그것 또한 어마어마한 수다.

"이, 이런......"

점점 다가오는 군세에 저절로 물러나게 되는 두 사람. 사람들은 놔줄 생각이 없다는 듯 퇴로를 서서히 막기 시작했다.

"아즈사씨."

".....네."

"뛰세요, 있는 힘껏!"

리츠코가 아즈사의 손을 꽉 잡고는 끌었다. 몰려오는 사람들과 거리를 벌리고, 가로막는 사람들을 모조리 제치면서 마구 달리는 두 사람. 하지만 리츠코는 지쳐있었고, 아즈사는 원래 달리기 속도가 심각하게 느렸다. 반쯤 리츠코에게 끌리다시피 달리는 아즈사. 변장용으로 썼던 모자는 이미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

"아즈사씨!!!!!! 가지마세요!!!"

"헉, 허억.....리, 리츠코씨,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데.....어쩌죠?"

"어쩌긴 어째요! 달려요!"

"후, 후우.....그렇지만 팬들을 무시하는 건, 헉.....아이돌의 태도가, 허억, 아니라고......"

"헉, 그, 그렇지만 그래도 공과 사는 구별해야한다구요!"

도망가는 아름다운 두 여성, 그 뒤를 쫒아가는 사람들의 대행진. 누구라도 호기심이 드는 신기한 풍경. 뭔 일이길래 저러는 걸까, 하고 모여드는 사람들은 새로운 장벽이 되어 리츠코와 아즈사를 막아섰다.

"리, 리츠코씨.....저, 더 이상은.....무리~"

"헉, 허억.....헉.....으으......"

앞도 뒤도 옆도 온통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완벽한 사면초가의 상황. 체력도 완전히 다운. 이대로 꼼짝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결말로 직행이란 말인가. 리츠코는 맥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된 거, 수많은 팬들에게 응답할 준비하시죠."

"후, 후후......히, 힘내겠습니다아......"

그렇게 모두가 포기한 그 때.....기적이 일어났다.

두두두두두두두-

"뭐, 뭐야!?"

별안간 들려오는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 푸른 하늘에, 검은 헬리콥터가 떠 있었다. 놀란 사람들이 차츰차츰 뒤로 물러나고, 그 틈을 타 헬리콥터가 착륙했다. 스륵 열리는 문. 중년의 집사와 빛나는 이마가 인상적인 류구코마치의 리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 안 오고 뭐해?"

"와아아아!!!!! 이오리쨔아앙!!!!!!"

"니히힛, 모두의 슈퍼 아이돌 미나세 이오리에요~!"

"와아아아아!!!!"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어필은 잊지 않는 이오리였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 본론에 들어가는 그녀.

"아미한테 전화받았어. 상태가 심각하다고 해서."

"아,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미 늦었어. 이렇게 된 이상, 긴급 뉴스정도는 노려봐야하지 않겠어?"

"으아아....."

리츠코는 안경을 벗고, 완전히 머리를 감쌌다. 지끈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리츠코씨! 아즈사씨! 빨리 오세요!"

"빨리 안 오면 이오링이 두고 갈거래~"

헬리콥터에는 하루카, 아미, 치하야가 이미 타고 있었다.

"가죠, 리츠코씨.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요."

이번에는 아즈사가 리츠코의 손을 상냥하게 붙잡고, 끌었다.

"......후, 후후......"

에이, 될 데로 되어라. 리츠코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해지기로 했다.

......

이렇게 대형 사고(?)가 일어나는 사이, 프로듀서와 히비키는 일을 끝내고 늦다못해 저녁이 다 되어가는 점심을 먹고 있었다.

"어때? 이 집의 고야 참플, 괜찮지?"

"그렇게 자주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쓴 맛이 조금 강한 쪽도 괜찮네."

아직 뭔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그들은 느긋하게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피곤함과 허기를 조금씩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먹었던 것과는 좀 다르지만, 여기 껀 여기대로 좋다는 느낌."

"용케 이런 가게를 찾아냈네."

"뭐, 그만큼 자신의 감은 대단하다는 거지. 앞으로도 자주 신용해달라구, 프로듀서."

"오냐."

식사를 하며 즐겁게 대화를 하는 사이, 그동안 꺼져있던 식당 내의 TV가 켜졌다.

"엥, 속보? 무슨 사건이라도 벌어졌나?"

"어디어디? 아, 진짜다. 거리에 갑자기 헬리콥터가 나타났다고?"

뉴스채널에는 돌연 나타난 헬기에 대해 뭐라뭐라 설명하고 있었다. 잘 보니 헬기뿐만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모인 사람까지 해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불안해진 프로듀서는 젓가락을 멈추고, 뉴스의 내용에 집중했다.

".....갑작스레 등장한 헬리콥터의 정체는 미나세 가의 개인 헬리콥터로 보이며, 아키즈키 리츠코씨와 미우라 아즈사씨를 태우고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헬리콥터가 향한 방향은 그들의 사무소 건물로 추정됩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

자료 화면에는, 당당하게 리츠코와 아즈사를 부르는 이오리, 카메라에 비치자마자 깨알같이 브이자를 해보이는 아미, 하루카, 어째서인지 치하야까지.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브이자도 함께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유히 사람들로 가득찬 거리를 떠나는 검은 헬리콥터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프로듀서......이거, 꿈이지?"

자기 뺨을 꼬집으며 선명한 아픔을 느낀 프로듀서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꿈이었으면 좋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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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끗끝끗입니다만, 후일담도 있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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