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2일


따스했던 바깥 날씨와 새벽에 일어나 빠르게 준비한 도시락. 스팸을 캔에서 꺼낼 때 조각이 나 버려서 저렇게 볶았다...따스했던 바깥 날씨와 새벽에 일어나 빠르게 준비한 도시락. 스팸을 캔에서 꺼낼 때 조각이 나 버려서 저렇게 볶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글을 재미있게 써보고는 싶다.

그러나 그런 재주도 딱히 없거니와, 다른 건 몰라도 일기는 진중한 어투로 쓰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이런 지루한 포스팅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다. 



개강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부쩍 피곤해졌다.

거의 이십 년 동안을 아침 일찍 일어나 생활해왔으면서도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본인은 아주 전형적인 새벽형 인간으로, 공부든 창작이든 모두 새벽에 가장 잘 되는 타입이다.

그 탓에 다른 사람들처럼 밤에 잠을 자려고 시도하는 건 꽤나 힘들다.

아무리 피곤하고 심지어 밤을 샌 상태라고 해도 새벽에는 정신도 신체도 말짱해지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나름 수 년 째 고생 중이다... 

리듬을 바꾸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보거나, 일부러 자지 않고 피곤한 상태로 있어 봐도

새벽에는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불면증인가도 의심해봤다. 숙면유도제를 알아봐야 하나?)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전날 사온 도시락을 미리 싸두기 위해 여섯 시 이십 분에 일어났다.

스팸과 스크램블 에그, 단무지를 밥과 함께 담은 후 도시락 통을 차곡차곡 쌓았다.

아무 무늬도 없는 심심한 디자인의 통이길래 잠시 생각하다가 가지고 있던 고양이 스티커를 붙였다.

나만의 도시락 통이 완성되니 쓸데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도시락을 싸 가방에 넣고는 씻고 준비한 뒤 길을 나섰다.


스타트업 연습 수업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제목은 'カラー・オブ・ハート'. 일본으로 수입되며 의역된 것으로 원제는 'Pleasantville' 이다.

1999년 게리 로스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 남매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Pleasantville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통해 흑백이었던 동네를 눈부신 컬러로 물들인다는 스토리이다.

꽤나 재치있으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인상 깊은 영화였다.

이름 그대로 언제나 유쾌하고 즐거움으로만 가득 차 있는 마을 Pleasantville.

하지만 이렇다 할 변화없이 늘 고리타분한 일상이 반복되는

삭막하고 무의미하기만 한 흑백의 인생이 정말 행복한 인생일까?

이 영화는 이렇게 대답해준다.


'연인 사이에 어떻게 평생을 손만 잡고 지내? 화끈하게 키스도 섹스도 하면 좋잖아.

365일 내내 쨍쨍한 햇빛 대신 시원하게 소나기도 한 번 맞아보고.

때론 울고, 화내고, 슬퍼하고, 부끄러워 하는, 

달콤한 것도 씁쓸한 것도 모두 섞일 때에, 그제야 비로소 인생은 아름다워지는 것 아니겠어?'

사랑, 쾌감, 분노. 다양한 감정과 자아를 마주할 때, 흑백의 세상에 색이 칠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서의 제목을 보니 의역을 적절하게 참 잘한 것 같다.)


영화를 본 후 제작진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팀을 짜 의견을 나누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옆에 같이 앉았던 수미 언니와 뒷자리의 두 일본인 남자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는 챙겨온 도시락을 먹고, 같은 스즈키 클래스인 사람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 후

공터에서 바람을 쐬다가 교실로 돌아갔다.

3-4교시는 표상문학론이라는 수업이었는데, 첫 시간인만큼

'표상'이란 무엇인지, 사진과 영상, 영화라는 분야는 표상 행위 중에서도

어떤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夏時間の庭’라는 프랑스 영화를 30분 정도 감상했지만, 난 아무리 봐도 프랑스 영화는 취향에 안 맞는 것 같다..

왜 늘 보는 것마다 흥미가 안 생기는 걸까...

대충 기억에 남는 대사를 하나 골라 리액션 페이퍼에 수업 후기와 함께 적어내고 강의실을 나왔다.


학교를 빠져나오기 직전, 1층 컴퓨터 앞에서 끙끙대던 한국인 남성 분이 날 발견하고는

이리 와보라며 도움을 요청해왔다. 전에 한 번 인사한 적이 있는 구면이었다.(집 월세 물어봤던 사람...)

이수등록 확인 순서를 물어보길래 아는대로 설명을 해 줬더니

감사인사와 함께 이것저것 말을 건네더라. 

다른 건 다 좋은데 자신이 나이가 꽤 많다며 처음부터 반말을 하더니 자꾸만 날 '애기야'라고 불러서

뭐 씹은 것 마냥 기분이 떨떠름했다.

내가 어린 게 사실이니 반말까진 신경 안 쓴다고 쳐도, 나도 이름이 있는데 왜 애기라는 호칭을 쓰는 건지...

내 쪽에선 '오빠'라고 불러야겠지만 왠지 싫어서 앞으로 마주치면 일본인 대하듯 '--さん'이라고 할 거다.

교문까지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같이 걷다가 갈림길에서 인사를 나누고 그와 헤어졌다.



골목길에 핀 붉은 목련과 오늘 도착한 우체국 통장. 카드와 함께 보니 정말 농협스럽다. 처음에 고른 건 이 디자인이 아니었는데...흑골목길에 핀 붉은 목련과 오늘 도착한 우체국 통장. 카드와 함께 보니 정말 농협스럽다. 처음에 고른 건 이 디자인이 아니었는데...흑

저녁에는 라인 페이 카드를 이용하여 로손에서 먹을 것을 조금 샀다.

그리고서 우편함을 확인해보니 또 언제 온 건지 우체국 택배 부재표가 들어 있었다.

보아하니 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 찾아오는 것 같다.

헛걸음을 했을 집배원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내 고의가 아니니 별 수 있나.

다행히 저녁 9시 전까지는 당일에 택배를 받아볼 수 있었기에 7시~9시 사이로 재배송을 신청하고는

저녁을 먹으며 택배를 기다렸다.

일곱 시를 조금 넘기자 바로 벨이 울리길래 문을 열어 우편물을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전에 신청했던 우체국 통장이 들어있었다.

이로써 카드도 통장도 무사히 내 손 안에 들어왔으니, 당분간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부재표를 받을 일도 없을 거고...!)


시간표를 보니 내일은 일본어만 2교시 들으면 일정이 없다. 신난다!

게다가 오후 한 시 수업이니 조금은 늦잠을 자도 될 것 같다. 더 신난다!




오전까진 분명 괜찮았는데, 점심시간이 지나고서부터

이상하게 계속 재채기가 나고 맑은 콧물이 줄줄 흐른다.

날도 따뜻해서 감기가 걸릴 만한 틈도 없었는데... 일본인들처럼 꽃가루 알레르기라도 생긴 걸까?

혹시 모르니 감기약을 하나 먹고 자야겠다. 감기 걸리는 거 너무 싫어...!



今の瞬間を大切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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