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박스/빅토카츠] Hello!




“제가요?”

“응. 그 높은 분을 보러 가는데 유리가 가게 됐다니까!”


 간단한 인사치레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공식적 회합자리였다. 어깨를 떠밀리듯 고개를 끄덕이던 유리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이미 정해진 일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완전히 싫은 이야기도 아니다. 상대 쪽에는 ‘그’ 남자가 있다. 조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유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을 잔뜩 쭈그렸다.

 유리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카츠키 유리가 속한 조직은 꽤 이름이 있는 곳이었다. 막연히 꿈꾸던 곳에 들어서기로 했을 때였다. 조직의 앞에 도착해 약속 시각을 기다리던 도중, 그의 앞에 나타난 남자가 지금까지 유리를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첫인상은 물음표뿐만이 가득했다.


 “응? 신입?”

 “……처음 뵙겠습니다!”


 영락없이 본인 조직의 큰 손인 줄 알았다. 지금 와서 유리에게 남자의 첫인상을 물어본다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절대복종의 표시를 하는 유리의 앞에 선 남자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유리는 잔뜩 긴장함을 숨기지 못했었다. 언제 대답을 하고 언제 물러갈까. 그러나 앞의 남자에게 되돌아온 답은 뜻밖에 가벼운 말이었다.


 “아하하. 열심히 해. 신입이면 언젠가 또 볼 수 있겠지.”

 “어? 네, 네!”

 “빅토르 님. 어서 들어가시죠.”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 마주친 눈. 누구에게나 상냥하다고 볼 수 있다면 그렇겠지만, 그 눈에 유리는 사랑에 빠졌다. 사랑이라고 하기도 뭐한, 존경심이 앞서는 무언가의 감정이었지만 벅차오르는 가슴 한쪽의 설렘을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수행원의 부름에 유리를 뒤로하고 걸음을 빨리한 남자의 이름은 빅토르. 뒤로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들어가는 남자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다시 오기를. 유리는 빅토르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쫓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그다지 좋은 정보가 아니었다. 빅토르는 유리가 들어가기를 희망하던 세력과는 적대 되는 조직의 높은 사람이란 것이다. 언젠가 다시 본다면, 이라는 전제는 싸움밖에 없겠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힘들 때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흘러간 적도 많았다. 정말로 이렇게 해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을 때, 세력 싸움에서 만난다면?


 “어차피 기억도 못 할 거니까.”

 “유리 님! 슬슬 나가셔야 합니다!”

 “아. 응. 고마워.”


 유리를 회합장에 데려가기로 한 부하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상념을 깨왔다. 차려입은 정장이 빳빳하게 목을 죄어왔다. 긴장을 풀래야 풀 수 없는 자리다. 실수하지 않기로 잡생각을 지우고 차에 올라타는 유리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있었다.

 회합장은 예상했던 대로 살기등등한 분위기였다. 유리를 마지막으로 모든 조직이 도착했다. 호위를 위해 붙은 한 명의 부하를 빼고 다른 모두는 밖에서 대기한다, 오늘 만남의 조건이었다. 곧이었다. 문을 열기만 하면 빅토르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다들 참석해줘서 고마워.”


 정중앙에 앉아 유리와 다른 조직들을 반기는 남자, 빅토르의 말에 일제히 모두는 고개를 숙였다. 적대라고는 해도 모두가 함부로 덤빌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다. 앉아. 상냥하게 건네진 말에 모두는 준비된 자리에 앉는다. 동시에 준비된 차가 따라지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따스한 향이 방안을 채우고 경직된 몸들이 하나둘 편해지기 시작하는 듯 보였다.


 “이야. 다들 모여준 거 정말 고마워. 어려운 결정이었잖아? 응. 차도 들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도 없는데 말이야. 우린 이제 동맹관계잖아?”


 다른 이들은 감격에 차거나 두려움을 가득 담아 빅토르를 쳐다보았다. 이다지도 강한 남자가 가볍게 차를 권하고 우호를 강조한다는 말에 대한 일종의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유리는 쉽게 차를 들지 못했다. 일에 대한 긴장과 별개의 긴장감은 그를 더욱 굳게 만들었다. 드디어 만났는데 얼굴조차 바라보지 못한다니.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지 못하는 유리를 빅토르는 여지없이 발견할 수 있었다.


 “왜 마시지 않아? 카츠키군.”

 “아? 아! 아닙니다. 마시려고 했습니다.”

 “드디어 봤네.”

 “푸웁.”


 너무 긴장한 탓일까, 유리는 빅토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잔을 들어 올렸다. 겨우 한 모금 차를 입에 넘겼을 때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들자 숨이 바로 맞닿을 거리에 빅토르가 웃으며 서 있었고 말이다. 겨우 들어갔던 차가 입술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삼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너무 가까웠다.


 “뱉을 만큼 무서워?”

 “아니, 아닌데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차. 다 흘렸어.”


 우와악! 오늘을 위해 장만한 새 정장이 차에 적셔지고 있었다. 싱긋 웃으며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린 빅토르는 빠릿하게 반응이 오는 유리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동시에 유리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떤 말인지 그 누구도 듣지 못한 채 상황을 보며 차를 마시던 사람들은 이윽고 빅토르의 손에 끌려나가는 유리를 보며 참았던 한숨을 내뱉었다.

 젖은 정장을 상의를 벗고 빅토르에게 건네받은 편한 차림의 유카타를 보던 유리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왜 여기서 이 옷을 대접받고 갈아입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가장 중요한 것은 빅토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기. 옷은 감사한데.”

 “응? 얼른 입어. 감기 걸리겠다.”

 “아…… 가, 감사합니다.”

 “유리라고 부를게.”


 넥타이를 푸르고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느껴지는 시선에 차마 부담스럽다 얘기하지 못하고 팔을 뺀다. 누군가 본다면 스트립쇼라도 하는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그냥 빨리 옷을 갈아입고 말자,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이었다.


 “……!”

 “말랐네. 단련은 하는 것 같은데 근육이 많지 않아, 허리가 특히 얇아서 안쓰러워.”


 소름이 돋았다. 백허그를 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로 유리를 끌어안은 빅토르는 태연하게 유리의 허리를 꼬집었다. 바지 버클에 손을 대던 유리는 또다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행동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남자는 알고 있는 것일까? 놔주세요. 유리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 겨우 내뱉은 말이다. 그 말에 빅토르는 한참을 더듬던 허리에서 손을 떼고 곧 유리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듯 쓰다듬었다.


 “갈아입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랑 있던 방에 가 있을 테니. 유리는 맛있는 걸 많이 먹고 가야겠는걸.”


순순히 손을 떼고 방에서 나서는 빅토르는 싱긋 웃고 있었다. 또다. 예전과 같은 두근거림. 닫힌 문을 뒤로하고 유리는 혼미한 정신을 붙잡느라 한참을 방에서 나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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