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의상은 이런 느낌



*난 달달한게 좋아.

*월요일이 오는게 싫어서 한개 더 올리고 마무리.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혼인을 허하며, 성주의 성혼은 안시성의 경사이니 혼례식은 안시성에서 치르도록 하라.'



"이게 뭔가?"


"제 주인께서 보내시는 허혼서입니다. 성주님"



깊숙히 고개 숙인 남자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제 눈앞에 장승같이 서서 한손으로 문서를 든 채 눈썹을 까딱하는 만춘의 모습에 다시금 고개를 푹 숙였다. 

저도 모르게 손발이 파들파들 떨렸다. 8척 장신에 검게그을린 얼굴은 조각같았지만 뺨에 흉터가 있어 서늘했고, 굵은 눈썹아래 커다란 눈동자가 등불에 비쳐 안광은 자개처럼 하얗게 번들거렸다.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데리고 온 군사들과 수하들은 개뿔 도움이 안됬다. 마음의 안식이여 영원히 안녕. 



"허혼서?"


"네. 감축드립니다."


제말이 이리도 눈치가 없게 들릴수가 있나. 등줄기에 땀이 솟았다. 올때부터 몹시 탐탁지 않은 일이었지만 막상 닥쳐보니 이건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제 주인이 반역자라 치를 떨던 자.  고구려 전역에 오천의 군사로 이십만의 당군을 물리친 불세출의 영웅. 태왕께서 그를 칭찬하여 감히 부른 이름은 고구려의 '무신(武神)'



"정혼기간이 필요하다 하셨는데 대막리지께선..."


"아..네..."

 


좋게 말해 간단명료, 노골적으로는 성의 없는 허혼서였다. 



"언제는 곧 죽어도 평양성에서 해야 된다더니..."



역시나 곧죽어도 곱게는 말못하는 풍의 비꼬는 한마디가 서늘한 밤공기를 갈랐다. 

저녁도 지나 밤으로 들어서 성민들도 모두 잠들려는 시간, 성문 앞에 들이닥친 일행으로 성은 소란스러워졌다. 



'대막리지가 사람을 보내?'



잠이 오지 않아 촛불 앞에서 서책을 뒤적거리고 있던 만춘은 경계근무를 서고있던 병사의 갑작스런 보고에 벌떡 일어났다.


"하하....좋은일이니까요...합하께서는 그저...성을 정비하고 겨울준비를 하시는 것도 여러모로 바쁘실텐데 빨리 혼인하시어 안정을 찾으시는게 좋을거같다고 하셨습니다..."


연개소문 자택의 집사라고 스스로를 밝힌 사내는 갑작스레 흉흉해진 주변 분위기에 어깨를 움찔했다. 

성주의 비상사태에 이른바 퇴근했던 부관들과 각 부대 수장들이 죄 쫓아나왔다. 

 

"아니 그럴거면 첨부터 두고 가던가, 말이 좋지 이건 

우리끼리 알아서 하란 소린데, 그때도 우린 분명 우리끼리 알아서..."


자다깨서 쫓아온게 분명한 활보가 인상을 찡그리며 하품을 한다.


"시끄러 이사람들아..성주께서 말씀중이시다"


둘을 조용히 시킨 추부지가 묵직한 창을 일없이 휭 한번 휘두른다. 깨끗한 품새가 소리없이 사람 목 하나둘쯤은 흔적도 없이 뜯어놓을 기세. 분명 자다 일어나 나왔을텐데 효과도 힘도 반응도 좋다. 입 다물게 하는데 어찌나 참 효과적인지. 사내는 제 주인의 마지막 전언을 모기만한 소리로 겨우 전달할 수 있었다. 


"사물님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니 이달안에 혼례를 하시면 좋을거같다 전하라..하셨습니다"


"몸이 안좋아?"


저를 보며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성주에게서 살기가 돋는건 순간이었다. 가엾은 연씨가문의 집사는 제소임을 겨우 끝내고 이 모든 걸 사물에게 일임했다. 살려고.


"네. 자세한건 공자님과 의논하여 하시라고..."






처소에서 맞이한 연개소문의 손님들 덕분에, 만춘은 사물이 왔다는 것도 겨우 대화의 끝에 들을 수 있었다. 아마 이마에 분노를 참는 힘줄이 몇개쯤 솟았을거다. 안그래도 흉터많은 이 얼굴 더 흉해지면 안되는데. 이것들이 뭐가 본론인지 파악도 못해. 다 뒤질라고. 하지만 그 소식을 끝으로 전한 덕에 연개소문의 손님들은 이른바 화풀이를 면했다. 만춘은 서둘러 자리를 파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번에 말씀하신데로 백하님 처소로 모셨는데 일단..."


"알았다."



계단을 한번에 두세개쯤  한꺼번에 뛰어올라가다보니, 금방 2층 백하의 처소에서 오랫만에 불빛이 보인다. 낯선 얼굴의 정갈한 노복들이 복도에 짐을 쌓아두다가 올라온 만춘을 보고 꾸벅꾸벅 절을 했다. 아까 연개소문이 보낸 자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본능적으로 이들은 연개소문 자택과는 다른 사물 집안의 사람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


"사물은?"



그러자 여인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방쪽을 가리켰다. 만춘은 끌리듯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물님. 따뜻한 작약차에요. 내일 아침에 시원한 매실탕을 만들어 올릴테니 오늘은 이대로 참으셔요"


"응. 고마워."



두건이 달린 검은색 긴 장옷을 걸친 누군가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덩치 큰 여인에게 찻잔을 받아들다가 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성주-"


"아니다. 일어나지 마라."


이 얼굴을 언제 다시보나 싶었는데, 한달이 하루같기도 했고, 한달이 일년같기도 했다.

그를 보고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뭔가 믿기지 않아서 탁자에 올려진 아이의 손을 쥐었다. 



"제대로 인사도 못드렸는데..."


"괜찮다...."



이거면 충분해. 크고 거친 손이 따뜻하게 사물의 손을 감쌌다. 뜻하지 않은 사내의 행동에 사물은 조금 놀라더니,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가슴 어느께가 간질간질해진다. 



"아지. 인사해. 이분이 성주님이셔"



"아지?"



그제야 그 옆에 있던 여인네가 시야에 들어왔다. 덩치는 추수지보다도 좋아보이는 당당한 중년의 여인이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은 야행복이었지만 다른 노복과는 수준이 달랐고, 여인이지만 몸가짐은 왠만한 군인보다 깍듯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등에 대검을 차고 있었다. 



"사물님을 어릴때부터 모신 유모이고 지금은 집안일을 보고있는 미천한 소인, 용혜가 안시성의 성주님을 뵙습니다."



"아....그런가..."



뭔가 못마땅해보이는 기색은 저조차 움찔하게 하지만. 사물이 말했다.



"성주께도 차를 올려드려"


"네."



용혜가 자리를 뜨자, 만춘은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풀렸다. 

쥐어졌던 손의 힘에서 그 기색이 느껴진 사물이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리 긴장하십니까"


"아니. 뭐..그게..."


말을 얼버무리던 만춘은 쥐고있던 손에서 사물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섬세하고 정갈한 얼굴이다.  비로소 현실감이 느껴졌다. 만춘은 반대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덮고있던 두건을 뒤로 넘겼다. 은은한 잿빛 광택을 띈 아름다운 머리칼이 등불빛을 받아 붉게 빛났다. 



"이런 늦은 시간에 와서 죄송합니다. 놀라게 해드린거 같아서...마차를 타고오다보니 속도가 느려져서 도착해보니 이시간이 되었습니다"


"아 그랬지..."



그러고보니 아까 올라오기 전, 사물일행을 처소로 안내했다던 병사가 만춘에게 그랬었다. 사물이 마차를 타고 도착했다고. 만춘은 사물의 기색을 꼼꼼하게 살폈다.





"무슨 일이 있는게냐"


"일은요"



약간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하루에 천리도 달리며 말등에서 활도 쏘고 칼도 쓰던 태학도의 수장이었다. 단신으로 당나라군을 뚫고 평양성까지 원군을 요청하러 갔던 건강한 아이인데?


만춘은 그런 사물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이리와?" 


"뭐가 문제가 있습니까?"



있지. 아주 많이. 만춘은 말을 삼켰지만 표정은 불만스러웠다. 분명 각오하고 있었다. 

개소문이 사물을 이용해 자길 아주 많이 우려먹을거라는 걸. 그리고 저를 이리저리 휘둘러 길들이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도. 당장에도 당나라에서 그의 용맹함과 충성심을 칭찬하여 보낸 비단 300필에 대고 개소문은 제 사위의 혼사를 축하해주어 고맙다고 회신하며 이세민을 엿먹였다. (당황제는 만춘을 치켜세워 개소문이 열받길 기대한거 같지만) 어차피 만춘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지만 개소문은 앞으로도 양만춘의 이름을 써먹을 계획으로 시간표가 꽤 바쁠것이다. 근데 아이가 아프다고 곧장 이리 보낸다고? 



"정말 평양성엔 아무 일도 없습니다."


사물이 웃고있는 것도 맘에 걸렸다. 다른 방향으로. 뭔가 난처해보이기도 하고 장난스러워보이기도 하고. 처음 보는 아이의 표정이라 만춘은 분석이 어려웠다.


"성주님. 차 드세요"


어느새 용혜가 다가와 찻잔을 가져왔다. 향기로운 찻물에는 꽃잎이 떠있었다. 

그녀는 눈꼽만큼도 난처해보이지 않는 얼굴로 송구하다며 말했다.


"지금 막 도착한지라 처소를 어지럽힐 수가 없어서 찻잎을 여쭐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사물님이 드시는 것과 같은 작약차입니다만..."



"아니다. 충분해. 괜히 신경쓰게 하였군."



듣고보니 방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물건과 가구만 치워놓고 아무것도 없는 방안은 썰렁하기 이를데 없었다. 방 한구석에는 좀전까지 올린게 분명한 짐이 가득 쌓여있었고, 잠자리만 겨우 봐둔 상태였다. 다른 노복이 방안으로 들어와 가져온 짐에서 꺼낸 것이 분명한 화로를 놓았다.


"여긴 지금 식솔들도 노복도 아무도 없다. 나혼자 뿐이니 그대는 신경쓰지말고 내일부터 자유롭게 사용해도 되네."


"감사합니다. 성주님. 그럼 일단 오늘 부엌부터 사용하겠습니다. 내일부터 처소를 정리하고 마무리한 뒤 보고 드리지요"


"사물이 편할수 있으면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


만춘의 말에 고개를 숙여 답한 용혜는 사물에게 다가왔다.


"그럼 겉옷은 벗으시고 말씀 나누세요. 너무 오래 이야기하진 마시고"


"응."



순순히 장옷을 풀고 옷을 벗어 건내자, 용혜는 옷을 갈무리하고 모포를 가져와 사물의 무릎을 솜씨있게 덮어주고는 물러났다. 



"어찌 그러십니까"


"처음봐서 그런다"


"무얼요?"


"네가 색깔있는 옷을 입은 걸"


"아..."



검은색 장옷을 벗자 그와 상반된 화사한 옷차림이 드러났다. 흰바탕의 촉금으로 지은 도포에 잠자리날개처럼 은근하고 부드러운 푸른색 무늬가 든 전복을 덧입고 수를 놓은 띠를 둘렀다. 긴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었던 예전과 달리 반만 묶고 청금 장식이 달린 파란색 머리끈으로 매듭을 달았다. 학도병으로 갑옷입은 모습만 보던 그에게는 신기하고도 생경했다.



"맘에 안드십니까?"


"아니."


순순히 좋다고 말하긴 싫은데 싫다고 말하기도 싫은 이 마음은 무얼까. 


갑옷의 검은색, 선혈의 붉은 색, 태학도의 하얀색만이 아이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사물의 하얀피부에 푸른색이 이토록 잘 어울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입을 다문 만춘에게 슬쩍 웃어보인 아이는 찻잔을 기울여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느낌의 좋은 꽃향기가 퍼졌다. 그제서야 만춘은 사물의 얼굴이 몹시 피곤하고 안색이 창백하다는 걸 깨달았다. 



"사물"


"네. 성주"


"몹시 피곤해보이는구나. 정말 병이 있는건 아닌게냐?"


"괜찮습니다. 자고나면 좋아질겁니다."


아니라곤 안한다. 걱정하는 기색을 읽은 사물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단지 제가 어지럼증이 있어서..."


"어지럼증?"


"네. 낙마할 위험이 있다고 해서 마차를 타고 온 것일뿐입니다. 걱정마세요"

 


어지럼증때문에 낙마라니. 이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야. 사물의 말과 달리 만춘은 얼굴이 심각해졌다.  


"아프다는게 설마 이것이냐? 단순한 어지럼증이 아닌것같은데? 아까 말한 병이 이런 것이냐? 무슨 병인게냐?"


"성주...그것이..."


사물은 얼굴에 가벼운 고민이 떠오른다. 이걸 어찌 이야기해야되나. 머뭇거리는 사물의 모습에 만춘은 조급함을 참지못해 화를 냈다. 


"자꾸 말을 하지 않으면 내 화를 낼수밖에 없다! 아니지, 아니다. 일단 의원부터 들라고 하겠다"


"'그런게 아닙니다...그저.."


"그저?"



사물을 머뭇거리다가 의자를 당겨 만춘의 곁에 앉았다. 그러더니 이내 결심한 듯 주춤거리던 두손으로 만춘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응?"



사물에게 손이 잡힌 만춘은 영문을 모르고 그를 보았다. 



"종종 있는 일인데..몸이 허해졌을 때, 음인이 양인을 잉태하면, 처음부터 기질이 상반되니 예민한 몸이 적응하느라 그런다고 합니다"



"........뭐?"



"몸이 적응하고 안정을 되찾으면 차차 없어진다고..."



".뭐라?"


순간 만춘은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정쩡하게 얹혀있던 손은 그제서야 사물의 배위에 있다는것도 알아챘다. 말을 끝낸 사물은 눈을 어찌둬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고개숙인 머리칼 밑 귀는 이미 피처럼 붉었다.



"그러니까.......그말은.....네가..."



".....성주"



순간 한꺼번에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가며 만춘은 모든게 들어맞는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제 손위에 있던 사물의 손위에 다른 손을 올려쥐었다. 

 


".....내 아이를 가졌다는 뜻이냐?"


"......네...."



사실 저도 아직 실감을 안나지만요. 더듬는듯해도 말마무리는 야무지다. 



"그럼...대막리지가 아프다고 널 보낸건..."


"네. 그분도 아셨습니다."



만춘은 비로소 단 두줄로 작성되었던 허혼서가 이해가 되었다. 그건 성의가 없는게 아니라 분노가 담긴 축객령이었다. 자신의 뜻으로 이루어진 정략혼으로 발표했던 혼사였는데, 혼전임신이 알려지면 저가 모두에게 웃음거리가 될수도 있다. 사물은 떠나기 전, 대막리지와 했던 지리한 신경전은 만춘에게 전달하지 않기로 했다. 알아봐야 좋은건 없다. 



"형질은 사실 태어나기 전에는 모르는거라서 이리 일찍 알게되는 일이 많지는 않다는데..."



"......."



"....아마도..성주를 닮은 양인인거 같습니다...이 아기..."



사실 저도 좀 놀랬다. 만춘과 몸을 섞은건 후회하지 않으나 운우지정을 논하기엔 그는 아직 많이 미숙했다. 만춘도 그런 그를 알고 있었다. 제 손과 그의 손, 그리고 두사람의 손이 올려진 배를 보며 묘하게 자조적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아이가... 아이를..."


"성주."



저 그정도로 어린애는 아닙니다. 억울한듯 말하는 그의 불퉁한 말에 만춘이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당황 했었겠구나..."


"괜찮습니다..그냥..."


"응?"


성주께서..어찌 생각하실지...우물쭈물하는 목소리에 만춘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제 어리지만 곱고 예쁜 정인. 눈에 별이 든듯 어여쁘다.



"생각지 못한거라 솔직히 좀 놀랍긴 하지만..."


"...성주..."


만춘의 얼굴에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가 걸리자, 사물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안심되는걸 느꼈다.


"그래도..기쁘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염치가 없지만...그래도 속없이 좋구나."


수많은 목숨을 비명속에 죽어간지 얼마 안되었기에, 새로운 생명은 참으로 귀하고 기쁜 일이었다. 그것도 사랑하는 정인이 가진 제 첫아이라면 더더욱. 만춘은 그대로 사물을 당겨서 무릎에 앉히고 품안에 안았다. 그대로 기대오는 아이의 체온이 참으로 편안했다.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 



"혼자 알게해서....그게 미안할 다름이다..."



"전..정말 괜찮습니다..."



사물은 어설프게 제 배위로 두손을 올렸다.



"많이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제 인생에 닥쳐온 이 아이에 대해서. 음인으로써 아이를 가질 수있단 건 안다. 하지만 자신은 줄곧 고구려를 위해 살고 이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만 꿈꾸어왔다. 혼인도 사실 실감있게 와닿지 않았는데 덜컥 아이라니.



"하지만 제 마음은...이 아이를 지키고싶다는 거였습니다."



아직 부모가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중히 지켜주고싶습니다. 

안시성을 지켰듯, 고구려를 지켰듯 그리 진심을 다해서요.



"성주와 저의 아이가 아닙니까."


".....그래..."


이 아이는 어쩜 이리 한결같이 곧고 당당할까. 너와 나의 아이라. 

지켜달라지도 않았고, 어쩔꺼냐고 묻지도 않는다. 스스로 지키겠다고 한다.


만춘은 그의 배위에 있던 두 손을 가만히 잡았다. 


"아직 이 두손이 한참 자라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성주..."


"나보다 더 어른같은 소릴 하는구나..."


"저도 어른입니다. 자꾸 그런 말씀하시면..."



애취급에 발끈하는게 영락없이 어린애인데, 더 놀리면 화낼테지. 만춘은 다시금 사물을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툴툴거려도 가만히 안겨준다. 그런 사물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어쩌다 이런 보물같은 아이가 내게 왔을까. 어쩌다 이런 천금같은 아이가 날 선택했을까.



"백하가 들으면 웃을거다. 나는 등짝을 맞을지도 모르지..."


"......그럴까요"


하나뿐인 가족인 너를 잃고 죽고싶을만큼 괴로웠던 나날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또 이렇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여길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또 웃을거다. 기쁘다고.."


"....네..."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가까운 사물의 얼굴이 웃고있다. 


이 순간이 내가 살아있어 가장 기쁜 순간일테지.


만춘은 눈을 감고 그의 입술을 맞췄다. 꽃내음을 머금은 촉촉한 입술이 열리면서 그의 팔이 부드럽게 제 목을 끌어안았다. 



"고맙다. 내게 돌아와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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