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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아버지께.

 태백 산맥으로의 여정 길입니다. 산해 삼촌도 다른 이에게 들었다고 해도, 그가 확인을 안했을리 없다고 사유하여 범에게 설원(雪冤)하기 위해 남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확실히 조선 제일의 산맥 근처는 다른 곳과 다른가 봅니다. 단순히 생활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 구분되는 점을 생생히 느꼈습니다. 너무 오지여선가요, 지금 머물고 있는 마을은 호랑이와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한 나무꾼의 이야기입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늦을 때까지 아이가 들지 않았던 한 부부가 아기 호랑이를 주워 자식처럼 기르고, 나중에 아이가, 나무꾼이 태어났을 때 그 둘을 형제처럼 대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립니까. 당연히 믿지 않았지요. 여태 호랑이와 혈투를 버린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범이 길들여지는 짐승이라는 것을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나무꾼과 호랑이를 보고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범이 고양이 마냥 새침하고 유순하더군요. 두 눈으로 보고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죠. 다행스러게도 그 호랑이는 그 범이 아니었고, 나무꾼과 마찰없이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착호갑사로서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넌지시 무섭지 않냐고 물자, 나무꾼이 말하길,

 "모든 호랑이가 식인을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듣고 왜인지 산해 삼촌이 언젠가 말했던 "모든 이에게 존재하는 양면적인 모습"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에겐 모두 양면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곤 있지만 아직 저에겐 잘 모르겠는 말이지만요. 산해 삼촌이 어떤 의미로 말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가족처럼 돌보아주던 그이니까요.

 어쨌든 짐승에게 양면적인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나무꾼의 범처럼 예외는 존재하겠지만, 그 숫자는 극히 적고, 무릇 호랑이란 제 사리사욕을 위해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닙니까. 양면적이란 것은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함흥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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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김성연)

해당 저작물의 모든 권리는 스토리텔러 김성연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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