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 소리가 언덕을 타고 내려왔다. 은색 종이 걸린 첨탑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푸른 지붕에 흰 외벽을 세우고 스테인드글라스로 세 정삼각형으로 만든 아홉 뿔의 별과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성소가 그곳에 있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를 구해주소서.”


    성소로 들어가는 커다란 문 위 발코니에서 한 청년이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다. 건반을 만지는 그의 손길은 잔잔한 파도처럼 부드러웠지만, 손마디마다 굳은살이 작게 배겨있었다. 오르간 소리에 얹은 그의 목소리가 울리면 성소 곳곳의 촛불이 일렁거렸다.


    청년은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반투명한 상이 비쳤다. 달이 없는 초하루라고는 하나, 오늘은 유난히 별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아니면 마음에 걸리는 짐 탓에 별을 볼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오 년 전, 비바람이 너무나도 거셌던 그 날. 청년은 이 성소에 왔다. 열병에 시달리던 몸이 죽음으로 제 주인을 위협하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그 불쌍한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는 그 아이에게 기적을 주고 싶다고 울부짖었다. 그래서 그는 사제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날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오 년간의 수행 사제 생활이 끝난다. 그는 어엿한 한 사람의 사제가 되어 이 성소에서 사람들을 이끌겠지. 그중에 결국 자신이 기적을 주고 싶었던 그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다. 속세의 모든 연을 끊고도 남아 있는 마음의 짐이었다.


    “지고 가야지, 어쩌겠느냐.”


    사제는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뒤를 돌아보면 촛불에 몸을 뉘던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은덕을 쌓고 아름다운 삶으로 모범이 된 영혼, 필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세계의 일부가 된 ‘영원한 빛’들이었다.


    “우리의 가엽고도 아름다운 사제, 그렉이여. 오늘은 그대의 빛이 꽃을 피워낼 날이지 않으냐. 슬퍼하지 말아라.”


    그들의 목소리가 그를 꼭 껴안고 쓰다듬었다. 그렉은 그들의 위로에 감사를 표했다. 이미 피어오른 마음을 막을 길은 없었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네가 어디에 있는 지라도 알 수 있다면 다행인데. 그렉은 조용히 속삭였다.


    “조지.”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그렉의 그림자가 촛불 따라 일렁거렸다. 밝은 곳에 있는 만큼 더 짙고 어두운 그의 그림자가, 떠나지 못하는 몸을 대신해서 조지를 찾으려는 듯 손을 뻗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기적을 향한 몸짓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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