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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 (남)사니와 +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커플링 기믹

- 혼마루 습격, 사망, 도검파괴 등이 들어있습니다.

- 시간정부 및 사니와, 혼마루, 남사에 대한 설정 날조, 개인적인 해석 등이 들어있습니다. 

- 오리지널 사니와(남), 정부 요원 등이 있습니다. 

- 검사니, 혹은 사니검의 기믹이 있습니다. 










네가 내뱉는 말 한 음절 한 음절이 마치 노래와 같다고 생각한 순간,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01.


 "사랑한다, 미츠타다. 우리 연인이 될까?"

 

  여름에 접어든 낮이었다. 점심식사 후 그릇 정리가 끝나고 다른 남사들은 제각기 느긋하게 쉬러 사라졌다. 북적이던 것이 거짓말같이 조용해진 주방,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았다고 말하며 돌아서서 무언가를-아마 저녁에 쓸 재료를 미리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려고 했던 거라고 짐작한다- 분주히 하고 있던 미츠타다의 늘씬한 뒷모습을 보다가 나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입 밖으로 툭 떨어진 말이 사랑의 고백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아무리 그래도 좀 더 분위기 잡고 로맨틱하게 고백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몰아쳤다.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라는 검은, 이 남자는 멋을 중요시하는 성향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고백을 했다고 해도 미츠타다의 대답은 언제나 같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미츠타다는 조금 놀란 듯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지만 이내 웃으며 다시 식 재료를 다듬었다.

 

 "나도 좋아해, 주인. 하지만 연인은 될 수 없어."

 "어째서?"

 "흔한 말이지만."

 

 미츠타다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미츠타다의 저음을, 상냥한 목소리를 아주 좋아했다. 달라붙는 것 같은 달콤함과 속삭이는 것 같이 귀에 내려앉는 상냥함이 좋았다. 말을 건넬 때마다 부드럽게 휘어진 금색의 눈매도 가만가만 움직이는 입술도 너무나 좋았다.

 

 "내가 말하는 '좋아'는 주인이 말하는 '사랑해'에는 닿지 못하니까."

 

 나의 좋아해 와 너의 좋아해는 같은 의미가 아니니까라는 거절이지 그거. 어딘가의 만화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자주 봤던 것 같은 레퍼토리다. 하지만 그런 거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상처받지 않았고 조금도 끄떡하지 않았다.

 

"시작한 다음 바꿔가는 건 안될까."

"바뀔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걸까, 내 주인은?"

"모든 감정은 언젠가는 바뀌기 마련이야. 방향만 잘 잡으면 나와 같은 곳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

 

후후, 자신만만하네. 혼잣말처럼 미츠타다가 웃었다. 가만히 어깨를 떨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만만한 걸까? 나는 그의 말을 되돌이켰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싫다는 사람에게 '일단 사귀어보자'라고 말하는 셈이니까 자신만만한 걸 넘어서서 오만 방자한 것일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도 물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미츠타다가 좋았고 미츠타다를 원했다.

 

"그러니까 얌전히 나의 것이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오사후네의 시조, 미츠타다의 한 자루. "

"이미 난 너의 것이잖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잖나."

"주인이 말하는 건 역시 연인의 의미겠지만."

 

물소리와 함께 그릇을 달그락 이는 소리가 들린다. 미츠타다는 재료의 손질을 마무리한 듯 통에 깔끔하게 나눠 담았다. 따각따각, 재료를 담기 위해 꺼내놨던 플라스틱 용기의 뚜껑이 야무지게 닫히고 그것을 냉장고에 잘 챙겨 넣은 미츠타다는 허리를 펴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한 번도 미츠타다의 몸에서, 눈에서,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마주한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를 보았다. 일렁이는 것 같은 금빛의 눈동자가 가만히 웃음 짓는다. 그것이 새삼 치명적이게 매혹적으로 보여서 숨을 삼켰다.

 

"인간은... 가정이 있거나, 더 늦기 전에 가정을 가지지."

 

 미츠타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는 종류 것이었다.

 

"결혼 같은 거 말이지?"

"결혼 같은 거."

"...제법 잘 아네, 도검남사 님."

"인터넷, TV, 책이나 잡지 같은 매체는 널 통해 충분히 접하고 있으니까."

 

 미츠타다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마치 채소를 상대하는 것 같은, 아니 사실 이 녀석은 야채를 상대할 때도 있는 힘껏 자극적이다. 처음 봤을 때 '어딘가의 넘버원 호스트 같은 얼굴이지 않나'라고 솔직하게 생각했을 만큼 매사에 정성 들여 관능적이다. 검이 이렇게까지 매력적일 필요가 있냐? 그야 대신 성격과의 갭은 제법 있었지만.

 

"그게 뭐 어쨌는데?"

"너도 언젠가 그런 게 필요해지겠지. 인간이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녀석.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째서 내 결혼사정이나 노후 일 같은 게 이 녀석의 입에서, 지금 이 순간-그러니까 내가 고백을 던진 순간에 나오는 걸까.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필요해하는 인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어. 나는 후자 쪽."

"... 그렇다고 해도."

 

 미츠타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 얼굴을 나는 완벽한 포커페이스라고 생각했다. 가면이라도 덧씌운 것처럼 웃고 있는 얼굴. 하지만 나는 미츠타다의 웃는 얼굴이 솔직히 좋았다. 곤란해하거나, 화를 내거나, 울거나, 짜증을 내는 얼굴도 전부 알고 있지만 진심으로 웃거나 따뜻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얼굴까지도 전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이 순간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미츠타다의 표정이 싫다고 말할 근거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미츠타다의 뺨에 손가락 끝을 얹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를 스쳐 눈가까지 손가락을 끌어올리면 미츠타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주인."

"가정이니 인간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데. 나를 거절하고 싶으면 단순히 내가 싫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깜빡, 손가락 끝에서 미츠타다의 눈동자가 떨린다. 바보 같구나,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나를 거절할 때는 내게 미련이 남지 않도록 단칼게 잘라줘야지. 틈을 보이지 말아야지. 네게 조금이라도 틈이 있다면 나는 그곳에 파고들고 싶어진다. 네 안에 스미고 싶어진다. 조금이라도 네게 날 남기고 싶어진다.

 

"싫지는 않아."

"그럼-"

"이야기가 처음으로 돌아가네... 싫지 않다는 건 너를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야. 그러니까...안 돼, 주인."

 

손 끝에 닿아있던 미츠타다의 온기가 멀어진다. 나는 그제야 미츠타다가 몸을 물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곤란한 듯 가볍게 웃는 얼굴을 한 채로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나를 스쳐 주방을 나갔다. 그 뒷모습까지도 완벽할 정도로 아름다워서 나는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02.


 고백하고 차인 사이라면 보통 어딘가 어색하기 마련인데 나와 미츠타다는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는 혼마루에 현현한 후로 죽 근시였고 한 번도 그 자리를 비워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곁에 있었고 언제나 살뜰하게 나를 챙겼다. 덕분에 나는 사니와가 해야 하는 업무 대부분을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차였기 때문에 그를 피해 다니면 어딜 봐도 나만 손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나는 한 번 차인 정도로 그를 피해 다니며 눈물짓기엔 너무나 세상을 오래 살았고(도검남사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나이지만) 신경 줄이 너무 굵어져 있으며 감수성은 마른 논바닥 같은 인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오후 업무는 평범하게 원정 부대를 관리하고 다음 주 내번 조의 일정을 정리한 뒤, 관리청에 보낼 서류를 작성해 콘노스케에게 전달했다. 서류를 받아 든 콘노스케는 쏜살같이 정부 관리처로 사라졌고 일과를 일단락시킨 나는 금쪽같은 휴식시간이 생겼다.

 

 미츠타다가 눈치 빠르게 내려놓은 것은 각 얼음이 들어가 있는 커피와 양갱이었다.

 

 "커피와 양갱이라니 취향을 알기 힘든 조합이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양갱을 잘라 드는 내게 미츠타다가 태연하게 말한다.

 

 "미카즈키 씨와 우구이스마루 씨가 다과에 쓸 양갱을 사다 놨었는데 이제 슬슬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하니까 말이지."

 "오호라,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님. 그래서 주인에게 지금 잔반 처리를 시키시는 것이로군요?"

 "엄밀히 말하면 잔반은 아니지만."

 

 후후하고 숨을 내쉬듯 웃으며 미츠타다가 받아친다.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이쪽도 단 것은 좋아했고실제로 잔반 처리였다고 해도 별반 불만은 없을 것이다. 밥상에서 튀김이라던 가를 두고 검들(주로 단검이나 협차들)과 티격태격하는 것은 매일의 일이다.

 

 "뭐 상관없지만."

 

 입으로 밀어 넣은 양갱은 다과와 차에 까다로운 두 노인네의 입맛에 맞춰 준비한 것답게 농후한 밤과 팥의 맛이 확 퍼지는 제법 고급 진 것이었다. 어디 거야, 이거. 입안에서 우물우물 양갱을 씹으며 커피잔을 들어 올리는 나를 보며 미츠타다도 자신 몫의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그 우아한 동작에 기시감을 느끼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면 너랑 마주앉아서 차를 마신 지도 꽤 됐지."

"그러네. 내가 현현하고 나서 한 번도 빠짐없이 계속이었지."

"네가 가지고 오는 조합에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달까, 오히려 언제나 만족스러운 쪽이었는데."

 

 커피 잔을 들어올렸다. 손안에서 자그랑 가볍게 얼음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적당히 차가워진 온도를 만끽하며 나는 잔을 입가로 댔다.

 

"너의 이 커피와 양갱의 조합에는 조금 불평을 하고 싶어져."

"하하, 조금 나빴을까? 하지만 이번만이니까."

"이번만이었나? 전에도 한 번 그런 적 있지 않아?"

 

 커피잔을 내려놓던 미츠타다가 그대로 굳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의 시선이 그대로 나에게 날아들었다. 좋아, 짜릿하군. 나는 조금 기뻤다.

 

"어디선가 먹어본 조합인데, 이거. 그때도 밤양갱이지 않았어?"

"...글쎄,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이렇게 내준 적이 없는데."

"...?"

 

착각했나. 짧게 중얼거리면 미츠타다가 웃어 보인다. 뭐였을까, 꿈이라도 꾼 걸까? 라고 입을 여는 미츠타다에게 나는 예지몽이라면 좋겠다고 웃어넘겼다. 신력이 있는 사니와는 예지몽이라던 가를 꾸는 일도 있다고 하니까 아마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데자뷔라 던가도 은근 흔하게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담아둘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미츠타다가 시작한 다른 남사에 대한 이야기에 손쉽게 올라탔다.

 




03.


 짧은 원정을 다녀온 아이들을 갈무리한다. 단검들은 정비해 부대를 꾸려 야전을 보낸다. 단검들이 떠나면 뒤를 이어 레벨이 높은 녀석들을 정리해 먼 원정을 보냈다. 이르면 내일 낮, 늦으면 내일 저녁 즈음에나 올 원정이었다. 너무 혼마루를 텅 비워놓는 게 아니냐고 흘리듯 미츠타다는 말했지만 이제껏 아무 일도 없었던- 지금까지 줄곧 지금과 같은 체제를 유지해왔던 혼마루에서 새삼스러운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혼마루에 남은 것은 레벨이 낮은 남사들과 야전에 참가하지 않는 단검이나 협차들, 그리고 미츠타다와 자신뿐이다.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전력 적으로 보면 강하진 않은 수준이지. 역시 오늘의 원정은 조금 과도했나? 혼마루 구석의 결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내가 중얼거렸다. 뒤를 따라오던 근시인 미츠타다에게도 분명히 그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미츠타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시력은 밤에는 극단적으로 약해졌고,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몇 번이고 넘어지거나 휘청거릴 정도였다. 이런 야밤에 끌고 다니는 건 좀 가엾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휘청이면서 손을 뻗어 나를 잡아오는 미츠타다를 나는 썩 기꺼워했다. 그래서 모른 척 이런 수준 낮은 심술을 부리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성공적으로 미츠타다는 휘청였고 나는 그 허리를 안았다.

 

 여태까지는 평범하게 팔을 잡아주거나 혹은 어깨를 잡아줬었다. 미츠타다도 손을 뻗어 어깨를 잡거나 팔을 잡는 것이 다였다. 내가 웃고 조금 장난 어린 말을 하고 미츠타다가 볼품없다고 중얼거린다. 밤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단검들의 이야기를 한다. 타도까지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오오쿠리카라와 하세베의 이야기가 나온다. 언제 나의 흐름으로 나는 그것이 즐거웠다. 그러니까 오늘도 팔이나 어깨같이 아무런 색도 띄우지 않은 것으로 마무리했더라면 같은 밤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명백히 의도를 가지고 허리를 끌어안았고 그 의도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눈치가 나쁘지 않았던 미츠타다는 당황했다.

 

"당황해준다는 건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다는 걸까."

"주인."

 

인기척은 없었다. 이 시간이면 다들 잠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와 미츠타다가 결계 정비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면 모두 자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줄곧 그래 왔다. 그래서 이런 일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미츠타다의 손이 밀어내듯 어깨 위에 올라와 힘이 들어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작정하면 나 따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애초에 힘의 차이라는 건 비교해봤자 의미가 없을 정도로 미츠타다가 압도적이다. 그러니까 나는 형편 좋게도 주인이라는 위치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을 실행으로 옮겼다. 사니와가 되고 나서 한 번도 휘두른 적 없는 권력을,

 

 한 번도 휘두른 적 없는?

 

 미츠타다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금을 녹인 것 같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일렁였다. 나는 그 눈을 어디선 가 본 적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야 미츠타다의 눈은 언제나 항상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입술에 강제로 입을 맞추고, 싫어하지만 밀어내지 못한 그의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고, 그리고.






 

 결계가 깨어졌다.









 불길은 순식간에 올랐다. 도망치는 남사는 없었다. 모두가 검을 들었고 자신보다 강한 적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한 자루 한 자루 부러져 나갔다. 짠 것처럼 모두가 원정을 나가고 혼마루가 텅 빈 시각에 결계를 깨고 들어온 것은 역행군이었다. 시간의 틈에 마련해놓은 혼마루는 금방 시간 역행군에게 노출되었다. 나의 결계도 어이없을 정도로 쉬이 깨졌다. 깨어진 구멍은 점점 커져서 적은 점점 밀려들었고 그런 적에게 당한 남사의 수가 늘어나면서 손을 쓸 방법도 없어졌다.

 

 미츠타다는 솜씨 좋게 적을 베어내며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칸스토라고 해도 수로 밀어붙이는 적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쓰러지는 아군을 뒤로하고 나만을 데리고 도주한다고 해도 포위된 혼마루를 벗어날 방법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없었다. 더구나 한밤중이다. 야전에 약한 태도인 미츠타다가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냉정하게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미츠타다가 부러지는 것을 보는 것은 더 싫었다. 점점 이어져 있던 것들이 끊어지는 느낌은 선명해서 내게 현현되어 현재 혼마루에 두 발로 선 도검남사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미츠타다에게 팔이 잡힌 채 끌려다니고 있던 나는 결국 다리에 힘을 줘 버텨 섰다. 그리고 내가 제동을 걸어 역시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미츠타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주인."

 "이것 참."

 

 웃을 수 없는 일이네.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입가가 비죽 웃음을 만들어낸다. 왜 지금 웃음이 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인간이다. 도검남사들이 출진을 할 때 함께 나가는 일명 전투 계의 사니와도 있다곤 하지만 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혼마루에서 그저 얌전히, 착하게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상황이 매우 무서웠다. 손을 뻗어 미츠타다의 두 뺨을 감싸 쥐면 미츠타다가 온몸이 얼어붙는 듯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할지 알아챈 듯 고개를 가로저으려고 했다.

 

"안 돼, 주인."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다치는 건 무섭다. 죽는 건 더 무섭다. 눈 앞에서 자신을 지키다가 너덜너덜해진 남자- 연모하고 있던 미츠타다를 보면서 나는 어딘가 머릿속이 싸하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다. 제발 이게 미츠타다와 복도를 질주했기 때문에 안 하던 운동을 해서 심박 수가 오른 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주인, 제발, 하지 마."

 "미츠타다, 있잖아."

 

사니와가 죽으면 도검남사들은 본체로 돌아간다.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현현될 힘을 잃는다. 현현될 힘을 잃은 검은 시간 역행군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고 그들은 남사에게 관심을 잃는다. 실제로 많은 혼마루가 야간에 습격을 당하곤 했지만 - 전력으로 물리친 상황을 제외한다면 사니와가 사망한 시점에서 습격 전은 끝이 난다. 그들에게는 사니와 이외의 목적은 없는 것이다. 언젠가 정기회의에서 들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말로 좋아해."

 "주인,"

 "....정말로 좋아해."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둬서 다행이다. 네가 검이라서 다행이다. 네가 나를 받아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너를 만나서 다행이다. 너를 사랑해서 다행이다. 너를.

 

 너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쇼쿠타이키리 미츠타다를, 혼마루 내의 아직 남아있는 도검 남사를 전원 본체로 돌리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미츠타다의 긴긴 비명이 들린 것 같았다. 원정표가 남아있으니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원정에 나간 도검남사들의 본체는 관리처에서 갈무리해줄 거라고 믿는다. 손 안에 떨어진 미츠타다의 본체를 감싸 안으며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도검남사들이 강제적으로 본체로 돌아가면서 혼마루 내의 기척은 나밖에 남지 않았다. 안을 점령하다시피 밀려오던 시간 역행군들의 시선이 일제히 꽂혔다. 그것이 마치 검과 같았다. 나는 조금 무서웠다. 아니, 많이 무서웠다. 하지만 손 안에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있다.

 




미츠타다.

나는 아직 너를 두고 죽고 싶지 않은데.









 

 





 




04.

 

 "사랑한다, 미츠타다. 우리 연인이 될까?"

 

  여름에 접어든 낮이었다. 점심 식사 후 그릇 정리가 끝나고 다른 남사들은 제각기 느긋하게 쉬러 사라졌다. 북적이던 것이 거짓말 같이 조용해진 주방,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았다고 말하며 돌아서서 무언가를-아마 저녁에 쓸 재료를 미리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려고 했던 거라고 짐작한다- 미츠타다의 늘씬한 뒷모습을 보다 나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입 밖으로 툭 떨어진 말이 사랑의 고백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아무리 그래도 좀 더 분위기 잡고 로맨틱하게 고백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몰아쳤다.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라는 검은, 이 남자는 멋을 중요시 하는 성향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고백을 했다고 해도 미츠타다의 대답은 언제나 같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미츠타다는 조금 놀란 듯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지만 이내 웃으며 다시 식 재료를 다듬었다.

 

 "나도 좋아해, 주인. 하지만 연인은 될 수 없어."

 

 어쩐지 예상하고 있던 대답이었다.

 

 "어째서?"

 "흔한 말이지만."

 

 미츠타다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미츠타다의 저음을, 상냥한 목소리를 아주 좋아했다. 달라붙는 것 같은 달콤함과 속삭이는 것 같이 귀에 내려앉는 상냥함이 좋았다. 그리고 끝이 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절규와 닮은 비명이 좋았다. 말을 건넬 때 마다 부드럽게 휘어진 금색의 눈매도 가만가만 움직이는 입술도 너무나 좋았다. 나를 위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함이 좋았다.

 

 "내가 말하는 '좋아'는 주인이 말하는 '사랑해'에는 닿지 못하니까."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건 너의 좋아해와 나의 좋아해가 달라, 라는 의미인가?"

 

 미츠타다가 웃었다.

 

 "주인은 내게 수백 번의 고백을 건네도 단 한 번이면 되는 나의 고백을 들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야."

 

그래서 뭔데, 나한테 고백하고 싶다는 뜻이야? 내가 되물었지만 미츠타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사랑은 너무 무거워졌고, 너무 더러워져서 주인에게는 닿을 수 없어. 속삭이는 것처럼 그는 말했고 나는 여전히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05.


 혼마루는 입구부터 박살이 나 있었다. 얼룩덜룩 묻어있는 것은 피의 흔적이다. 하지만 감찰사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부서진 문을 밀고 들어가면 내부는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길게 막아서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러진 단검이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해온 상자에 단검조각을 갈무리 해 넣으며 몸을 일으키면 뒤를 따라 너울거리듯 들어온 감찰사의 검-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입을 열었다.

 

 "...특별히 움직이는 것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데."

 "목적을 달성하고 물러난 모양입니다. 조금 더 빨리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더라면."

 

 감찰사가 허리를 일으켰다. 그리고 내부를 더듬듯 천천히 복도를 따라 걸었다. 엉망이 된 실내에 여기저기에 드물게 검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그 뒤를 츠루마루가 따라 걸어왔고 두 사람은 엉망인 실내를 움직이며 조각난 검들을 갈무리했다. 한 자루, 두 자루, 혼마루 내에 남아있던 검들은 전부 단련 도가 그리 높지 않은 검들이었다. 츠루마루는 혀를 찼다.

 

 "사니와가 얼마 되지 않았나? 남아있는 검들이 전부 어려."

 "보고서를 보면 제법 단련된 혼마루였습니다만... 대부분의 도검남사들이 원정이나 야전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부서진 다다미를 헤치고 감찰사가 단검을 꺼내 들었다. 부러지지 않은 것이었다. 긁힌 자국이 있었지만 충분히 수리가 가능한 단검을 쥔 감찰사는 츠루마루를 올려다봤고 츠루마루는 감찰사를 내려다보았다.

 

 "부러지기 전에 주인이 죽은 모양이군, 유감이야."

 "...그럼 확실히 사니와는 사망한 모양이군요. 사니와의 시신도 수습하도록 하죠."

 

 두 사람은 다시 움직였다. 혼마루는 좁지 않은 저택이라- 그리고 구조도 복잡해서 한참이나 걸었다. 밀려 들어온 역행 군을 피해 도망가고 있었다면 적당히 뒤져서는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감찰사도 츠루마루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두 사람은 묵묵히 실내를 탐색해 때로는 부러진 도검을, 때로는 부러지지 않은 도검을 갈무리하며 사니와의 주검를 찾았다.

 

 본채와 별채, 마구간과 밭, 주방과 욕실, 사니와의 집무실과 개인실까지 전부 살핀 두 사람이 사니와의 시신를 찾아낸 곳은 혼마루의 끝, 가장 남쪽 구석이었다. 아마 뒤쪽의 화단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은 좁은 마당의 가운데, 그는 무릎을 꿇고 웅크리듯 앉아있었다. 도망가기를 포기했었던 것이라고 감찰사도 츠루마루도 의견을 모았다. 웅크린 그의 등에는 수많은 검이 솟아올라 있었다. 두 사람은 말을 잊었다. 다만 감찰사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는 사체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츠루마루는 감찰사가 주검을 만지게 두지 않았다.

 

"기다려, 주인."

"츠루마루 님?"

 

 옷깃을 잡힌 감찰사는 츠루마루의 말대로 성실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츠루마루가 시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다시 시신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그간 다른 혼마루에서도 여러 번 시신을 봐 온) 츠루마루가 어째서 자신을 말렸는지 알지 못했다.

 

"만지면 안 되는 종류의 것입니까?"

"만져도 되는지 아닌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저것, 사념이 남았어. 이건 놀랐는데!"

 

사념. 츠루마루의 말을 감찰사가 되씹는다. 츠루마루는 무릎을 굽혀 몸을 숙이고 웅크리고 있는 주검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주검이 검 한 자루를 감싸듯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부러지지 않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의 본체라는 것은 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주인."

"네, 츠루마루 님."

"좀 더 제대로 된 전문가를 부르는 편이 좋겠어. 이건 나도 주인도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감찰사는 여전히 츠루마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틀린 말을 한 적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얌전히 그가 시키는 대로 관리처에 지원요청을 넣었다.

 

 

 

 

 

 

 

사니와는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영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오래된 물건을 신으로 만들고 그 육신마저도 인간마냥 현현시켰다.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능력이 아니었다. 그 힘을 사용하기로 한 정부조차도 힘의 한계는 알지 못했다. 어느 상황에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본디 관료라는 것들은 상상력이 빈약한 법이라고 츠루마루가 웃으며 말했기 때문에 감찰사는 그러려니 했다.

 

 보고서에 적힌 남자는 이제는 없는 혼마루의 사니와였다. 그가 정성껏 키운 도검 대다수는 원정이나 야전 중이었기 때문에 관리처에 의해 무사히 수습되었다. 그들은 주인의 사망 후 본체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주인에 의해 강제로 본체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리처 내에서는 이 사니와의 판단이 옳았다 아니다로 잠시의 논쟁이 있었다. 단련도가 높은 검들을 희생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옳은 판단이었다는 의견과 정작 사니와 본인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무게를 단련도가 높은 도검남사에 두는지 사니와에게 두는지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논쟁이었기 때문에 감찰사는 그저 소모성 논쟁일 뿐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는 사니와의 판단이 아니었다. 그 후의 문제였다. 그가 그 자리에서 사망하면서도 그의 사념이 그대로 남은 것이었다. 강하게 남은 그의 미련은 영력과 섞였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그가 품은 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의 힘까지 섞였다. 신이 가진 신력과 사니와의 영력, 죽으면서 남긴 사념이 섞이면서 그 자리에 틈새가 벌어졌다. 할 수 없는 것을 해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틈새를 벌려 시간을 역행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죽은 사니와는 시간을 계속 되돌렸고 거기에 신력이 삼켜진 미츠타다는 졸지에 그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누구도 미츠타다가 시간을 역행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는 시간을 역행하면서도 정해진 주인의 죽음을 바꾸려 들지 않았다는 것만이 확실했다. 몇 번이고 주인을 다시 만나고 주인의 죽음을 보면서도 미츠타다는 시간의 흐름 어느 하나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보고서 끝 문장을 매만지면서 감찰사는 츠루마루에게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강한 검이군요, 라고 스치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츠루마루는 그런 그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츠루마루가 웃는 영문을 알지 못한 감찰사는 멀거니 그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웃은 츠루마루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한 감찰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놀랍게도, 그건 강한 게 아니야, 주인."

 

 상냥하게 미친 거란다. 하지만 츠루마루는 자신의 올곧은 주인을 위해 다음 말은 내뱉지 않았다.

 




 

 

06.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시간을 역행한 것은 총 584번, 주인의 죽음을 목격한 것 역시 총 584번으로 확인되었다.








네가 내뱉는 고백이 마치 눈송이 같다고 생각한 순간,

나의 사랑은 끝이 났다.




@Jseeun 그리고 싶은 걸 그리고 싶을 때 그리고 싶은만큼만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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