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꼭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이미 인생을 한 번 살다 오신 분과 같이 정답이 적혀있는 문제집을 풀 듯 나를 키우셨다. 


아드님. 이런 옷은 입는 게 아니에요. 

아드님. 그런 친구랑 놀면 안 돼요. 

아드님. 길거리에서 왜 음식을 먹어요. 불결하게. 


심지어 나는 외동이었는데 이미 수백 명의 아이를 양육한 듯 그렇게 나를 키우셨다. 내게 난 길이 오롯이 그렇게 한 곳인 줄 알고 살아온 나에게 세상은 다행히도 큰 거부반응 없이 다음 코스를 내어줬다. A다음은 B, 알파 다음은 베타, 기역 다음은 니은. 


대학시절. 짧지만 애틋한 만남이 있었다. 우리학교 앞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눈이 고운 여자애였다. 


“잘 생긴 손님에게는 샷을 하나 더 넣어드려요.”


시선을 온전히 받아내며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내 안으로 훅 들어온 그녀는 어쩌면 내 첫사랑이었을지도 몰랐다. 학교-학원-도서관-집의 사이클을 돌던 내 옆에는 언제나 운전기사로의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온전히 성인이 된 뒤에야 내 생활반경에 자유라는 글자가 흐릿하게나마 보일 수 있었다. 나는 더 진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명분을 이유삼아 그녀가 일하는 커피숍에 자주 찾아갔다. 평일마다 아르바이트하던 그녀를 카운터에서 만나던 우리는 주말에 야외에서 만나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녀는 부모님이 안 계셨다. 아니 정확하게는 계셨지만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나셨다. 중학교 때 부모님을 차사고로 여의고 고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그녀는 늦은 밤 소주 몇 잔을 걸친 취기 어린 말투로 내게 이야기 해줬다. 그녀는 꿈이 없다고 했다. 그저 오늘을 사는 게 버거워서 내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평일에는 커피숍에서 음료를 제조하고 주말에는 PC방에서 24시간 카운터를 보느라 꿈이란 단어는 잊혀진지 오래라고 말하는 그녀와. 아마 첫 키스를 했던 것 같다. 고단한 그녀의 삶이 안타까워서, 하지만 딱히 어떤 위로의 말을 해줘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나는 서투른 솜씨로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 


그렇게 한동안 연애라고 부를 정도의 데이트를 하던 우리에게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첫 키스 이후로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내 생활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를 그녀를 참아내기 버거웠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치여 숨이 막혀오고 있었다. 


“MT.. 그거는 꼭 가야되는 거야?”

“응. 이번에는 빠지지 말라고 선배들이-”

“그런다고 잡혀가는 건 아니잖아.”

“미안. 조용히 갔다만 올게.”

“싫어. 가지마.”


나는 그녀의 불안함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는 대학이란 작은 사회에서 또 하나의 삶을 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더 빈번하게, 그리고 더 극심하게 다투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눈이 부시게 화창한 가을날이었던 것 같다. 학교 오후 수업이 뜻밖에 휴강이 되고 나는 모처럼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려 그녀가 일하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난히 햇살이 좋은 오후였는지 1층에 위치한 카페는 블라인드를 다 걷어내고 내리쬐는 햇볕을 통유리로 받아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다름 아닌 평생을 봐온, 그래서 절대 아닐 수가 없는 내 어머니의 뒷모습이었다. 그 맞은편에는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나는 부러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어머니를 등지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가씨는 올해 나이가..”

“네..스물한 살입니다.”

“우리 니엘이보다 한 살 많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가늘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의 음성에 나는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부모님은 뭐하시고?”


그녀는 말이 없었다. 카페 안은 주위의 소음을 묻기 위해 틀어놓은 조용한 클래식 선율만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돌아..가셨어요.”


이번엔 어머니가 말이 없었다. 교차로 오는 숨 막히는 침묵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눌렀다. 


“대충은 알아보고 왔어요. 내가 몰라서 물었을 거라 생각하지 말아요.”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대화가 오고갔다.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고 아직 어려서 분별력이 없어 아가씨를 만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안타까워서 만나자고 했다. 과 친구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아르바이트 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찾아왔다.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겠느냐. 유복하고 사랑만 가득 받고 자라 애가 세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언제나 감정에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흔들려서 불안해서 그러니 교제를 그만 멈춰 달라. 


나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억압과 집착도 애정이라면 어머니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신의 기준선에서 1도라도 벗어나면 실패라고 못 박는 판단력이 이성적인 사고력의 측정도라면 어머니의 말은 조금의 거짓도 없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 지르고 싶었다. 내 삶에서 유일한 오점은 어머니뿐이라고. 내가 마실 모든 산소를 가지고 간 건. 그래서 매일 숨 쉬기가 곤란해 산소통을 찾아 헤매는 건 다 어머니 때문이라고. 


“큰돈은 아니지만 예쁜 옷도 사 입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면 공허한 마음이 좀 없어질 거예요.”


그리고는 잠시 후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와 카페의 문을 열고 나가는 어머니의 향수 냄새가 내 코끝을 간질였다. 하지만 내 몸은 마음과는 다르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마치 석고상이 된 듯 우두커니 앉아있기만 했다. 잠시 후 작은 한숨소리와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를 볼 자신이 없어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왔다. 그런 어머니를 둔 수치심이었는지, 봉투를 거절하지 않은 그녀를 향한 원망감이었는지, 혹은 어떤 노력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핏줄을 향한 무력감이었는지. 그게 나와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녀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준 내 감성도 마지막 순간에는 내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소멸돼 버렸다. 하지만 더 최악이었던 건 어느새 내 것을 향한 소유욕에 무력해진 나 자신이었다. 나는 어느새 내 것에 대한 부정에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허물뿐인 존재에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그런 어머니의 통제에 수긍하는 그런 비겁한 겁쟁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런 껍데기. 





그런 무력감에 머리끝 정수리까지 잠식되고 있을 때. 빛이 없는 깊은 바닷속에서 더 이상 앞을 볼 필요가 없어져 눈동자가 퇴화해버린 심해어처럼 그저 그렇게 현실에 수긍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때. 그런 내게 기묘한 삶을 살고 있노라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지훈이었다. 


강변, 오빠, 여보, 형, 사위. 그럼 다니엘은 누가 불러줘요?

글씨 잘 써서 뭐해요?

사는데 큰 불편 없어요.

치킨은 여기서 뜯어야 제 맛이에요. 

후회하지 마. 다시 달라고 해도 절대 안 줄 거니까.



“다니엘-”


나를 업고 달나라를 가겠다던 그 아이가 저 멀리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지훈아-”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려 애썼지만 우리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지훈은 하늘에, 나는 땅에 있었으므로 내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도 우리의 거리는 길이가 아닌 높이였기에 더 이상 좁혀질 수가 없었다. 


“다니엘?”


지훈아. 지훈아. 지훈아. 제발. 


“다니엘- 다니엘?”


지훈아. 제발. 날 두고 가지마.

제발. 제발...


“니엘아. 우리 아들.”



흐릿한 조명과 새하얀 천장과 벽지. 숨 막히게 하관을 조이고 있는 방해물에 가느다랗게 들리는 첼로의 선율이 내 의식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 의식의 끝에는. 


아. 






어머니가 있었다. 


내 동공이 시선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어머니는 소란스럽게 나가 사람들을 우루루 데리고 왔다. 하얀 가운을 입은 걸로 봐서는 의료진인 듯 했고


“강다니엘씨. 제 말 들리세요?”


나를 향해 말을 거는 간호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침대 옆 그래프를 잠시 살펴보다 내 입을 감싸고 있던 호흡기를 천천히 벗겨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어보세요. 흐으읍 후우우 흐으읍 후우우”


기구에 의존해  숨을 쉬던 내가 도움 없이 온전히 내 힘만으로 숨을 뱉기 위해선 몇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답답하게 막혀있던 호흡이 서너 번의 실패 끝에 결국 후- 하고 힘겹게 뱉어졌다. 내 숨소리와 함께 내 손을 잡으며 어머니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신에게 영광을 돌리셨다. 하지만 나의 깨어남은 온전히 신이 아닌 지훈의 덕이었다. 꿈속에서 나를 그렇게 애타게 부르던 지훈의 몫이었다. 


“...어머니.”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는 새하얀 병실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우리 아들. 괜찮니?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질문을 전부 물리치고


“지훈이는요.”


가장 먼저 지훈을 찾았다. 


한참 아무 말 없이 그런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말했다. 



“니 처가 죽었다.”


지훈의 상태를 묻는 내 질문에 어머니는 지훈의 안부 대신 소영의 죽음을 알렸다. 어머니는 그다지 슬프지 않은 말투였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니 처가 죽었다는 말이 니 처만 죽었다는 뜻인지 니 처도 함께 죽었다는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나는 그 다음 질문을 뱉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제발..


질문과 결을 달리하는 어머니의 답변은 내게 오히려 참을 수 없는 공포심을 새기고 사라졌다. 






소영은 즉사였다고 했다.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변경을 시도하던 트럭의 운전수는 음주운전이었다.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기는 했지만 이미 운전석을 치고 들어온 뒤였고 날카롭게 깨진 보닛의 조각은 견고하게 채워져 있던 에어백을 터뜨리고 소영의 목을 관통했다고 했다. 차 사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들었다. 그 자리에서도 가장 위협에 가까이 있던 소영은 의료진이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사고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목숨을 잃어있었다고 했다. 소영과 불과 30cm 뒤에 앉아있던 지훈도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였으나 그나마 가해차량의 충돌을 직접적으로 받지는 않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여러 위험요소들에서 빼낸 뒤 이뤄진 구급조치가 생명부지에 결정적인 판단이었다고 링거를 교체하러 온 간호사가 구급대원의 말을 인용해 설명해줬다.


“네가 깨어났으니 소영이 장례를 진행해야겠구나.”


이 모든 일을 덤덤하게.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비현실적임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소영의 장례. 


절반의 무너지는 억장과 절반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가 동시에 일렁였다. 마취제를 넣은 링거에 의식이 흐릿해져 가면서도 장례의 주체에 다행히 지훈이 없었기에 그 작은 단서 하나에도 나는 수 천 가지 생각을 복합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에 정확히 반나절이 지나 장인 장모님이 내 병실로 찾아오셨다. 다행이었다. 적어도 나의 어머니보다 말이 통할 것 같은 분들이셨다. 병실로 들어와 나와 눈이 마주친 장인어른은 무너지듯 내 위에 고개를 묻고 내 환자복이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셨다. 


“미안하네. 우리가 올라갈 것을 내가 괜히 내려오라고..”


차마 끝맺어지지 못한 흐느낌을 뒤로 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지훈의 모- 장모님의 얼굴을 바라봤다. 


“장모님..”


내 부름이 어머님은 두어 발 더 다가와 아버님 옆에 서셨다. 


“지훈..지훈이는요..”


장모님은-그래. 아직까지는 장모님과 사위의 관계임에는 틀림없었으니까- 내 손등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겹쳐 얹어놓으셨다. 떨리는 손바닥을 느끼는 그 몇 초가 내게는 억겁의 시간과도 같아 목이 타고 심장이 조여 왔다. 


“지훈이는.. 아직..”


뒷말을 미쳐 다 듣기도 전에 나는 의식을 다시 잃었다. 가물가물해지는 청력 너머로 소란스럽게 간호사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렇게 다시 한참을 헤매던 꿈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났다. 


꿈에서 나는 지훈과 함께였다. 더 이상 허공에 떠 있지 않는 지훈의 손을 나는 덥석 잡았다. 


가지마. 지훈아. 나를 두고 가지마. 


내 말을 알아 들은 건지 아닌 건지 지훈은 그저 웃으며 나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다니엘. 

그래. 지훈아. 

아직은.. 아직은 아녜요. 


지훈은 내게 장모님의 마지막 말을 똑같이 하고는 점점 흐릿해져 가다 결국에는 사라져버렸다. 내가 좋아하던 낮게 잠긴 목소리와는 상반되게 눈물 나게 순수 무구한 미소만을 남긴 채 그렇게 흐릿하게 사라져갔다. 


꿈에서도 지옥을 본 나는 깨어났지만 깨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악몽이 희망으로 바뀌기 전까지 나는 깨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결말의 꿈을 꿀 때까지 계속해서 잠이 들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이렇게는 아니었다. 


이런 엔딩을 위해 그 아이를 사랑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는 아니었다. 

이렇게는.



J의 이야기는 녤윙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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