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는 결석이라는게야.]

[아니아니아니, 신쨩!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럴 거면 하루 전에는 말해줘! 난 이미 출발했다고!]

그런 라인 교환이 있었더랬다.


슈토쿠 고교 2학년, 농구부 소속 레귤러, 타카오 카즈나리. 원래도 웃음이 많다거나 친화력이 좋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자주 듣고 있지만 이건 정말 너무 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하하!!!"

배를 잡고 뒹구는 타카오를 내려다보며 미도리마가 버릇처럼 안경을 끌어올리려다가 스륵 바닥으로 쓰러지는 테디베어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또래보다 한참 큰 키를 자랑하는 미도리마만큼은 아니여도 그래도 같은 지구의 라이벌교에 재학중인 쿠로코만큼은 될 법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는 테디베어였다. 목에 예쁘게 묶여진 붉은 리본이 크림색 털 사이에서 눈에 띈다. 

"다 웃었냐는게야."

"하, 후~ 잠시…."

웃음을 멈춘 타카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눈을 살짝 찡그리고 다시 테디베어를 바라봤다. 검고 번들번들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크림색 인공 털에 가려져 순한 인상을 주었다.

"럭키 아이템이 아니라, 선물용?"

"그렇다는게야."

"사수자리 럭키아이템이 테디베어던가?"

"아니, 리본끈 이라는 것이다."

"근데 왜 테디베어야?"

"딱 봤을 때 생각했다는 것이야."

"??"

타카오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미도리마를 바라보았다. 미도리마가 코웃음을 쳤다.

"이건 아카시에게 보내야 한다고."

타카오가 이번엔 울상이 되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가는 대로 행동하라, 오늘자 오하아사 럭키 팁이다."

"그래그래, 선물하는 건 좋은데, 어떻게 보내려고?"

"신칸센으로."

"응?"

"신칸센으로."

타카오가 되물었다. 미도리마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언반구의 대답을 되풀이 했다. 타카오가 미도리마를 바라보았다. 미도리마가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듯 테디베어를 끌어안고 안경을 치켜올렸다. 

"직접? 택배가 아니라?"

"그렇다는 것이야."

"아, 어…라쿠잔, 오늘 휴일이던가?"

"등교일이라는 것이야."

"아카시가 학교를 쉰다던가?"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다는 게야."

타카오가 거대한 테디베어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타카오는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아, 그래, 그럼 잘 다녀와~ 학교에는 럭키 아이템 찾기 여행을 떠났다고 말해둘게!"

"어딜 가냐는 것이다, 타카오."

타카오보다 훨씬 긴 팔이 덥썩 타카오의 어깨를 잡았다. 젠장, 이럴 줄 알았어! 타카오가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도쿄역까지 챠리어카를 태우라는 것이다."

"응? 도쿄역?"

타카오가 눈을 끔벅였다.

"그렇다만?"

"아니아니아니, 이해했어! 오케이! 열심히 달릴게!"


"신쨩! 이거 이러다가 늦겠는데?"

"좀 더 밟으라는 것이야."

"아니아니아니, 이것도 최고 속도거든?! 그 인형이 얼마나 무거운데!"

"인형은 솜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타카오가 페달을 힘껏 밟았다.


벨이 울렸다. 미도리마가 테디베어를 옆구리에 끼고 승강장을 달렸다. 장신의 남자에 거대한 테디베어의 조합이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주차장에 챠리어카를 두고 열심히 역까지 달려들어간 타카오가 호흡을 고르며 그런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타카오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죽은 눈으로 라쿠잔 고교 앞에서 거대한 테디베어를 들고 서있을 뻔 했다. 같은 중학교 출신도 아닌자신이 선물용이라는 말에 당연히 아카시를 떠올릴 정도로 아카시에 대한 마음을 뿜어내는 미도리마니까, 생각해보면 아카시와 만날 수 있는 기회에 타카오 자신을 데려갈 리 없다. 타카오는 가벼운 마음으로 휘파람을 불며 챠리어카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향했다.

챠리어카 옆에는 경비원인듯 제복을 입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챠리어카를 살펴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학생, 이거 학생 껀가?"

"네."

"이거 아무리 봐도 도로교통법에 맞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엣."

타카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타카오가 경비원과 입씨름을 하던지 말던지 미도리마는 무사히 신칸센을 탔다. 미리 끊어둔 표에 적힌 좌석에 가서 앉고, 그 옆에 테디베어를 앉혀둔다. 물론 테디베어용 좌석도 미리 결제했다.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 테디베어를 받을 아카시의 표정을 상상하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신칸센에서 내려 버스를 타 라쿠잔 고교 근처까지 왔다. 익숙한 길을 따라 꼬불꼬불 걷다보니, 어느새 학교 정규수업이 모두 마칠 시간이 되었다. 교문 앞에서 라인을 보내니 잠시 뒤 기독 표시가 붙었다. 

아직 윈터컵에서 자른 앞머리가 채 다 자라지 않아 동그란 이마를 드러내며 아카시가 교문으로 나왔다. 제일 먼저 테디베어를 보고 입술을 꼭 깨문 후, 눈에 띈다며 학교 건물 안으로 초대했다. 이제껏 몇번 왔기는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서나 교토역에서 합류해 아카시가 지내는 별저로 직행했기 때문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품위가 없기 때문에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흥미로웠다. 

아카시는 학생회실로 미도리마를 안내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카시는 제일 상석에 있는 책상에 걸터 앉았다.

"학생 회장이라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데, 뭘."

아카시가 작게 키득키득 웃더니 거대한 테디베어를 가리켰다. 

"그건 오늘의 럭키 아이템인가?"

"아니, 오늘의 럭키 아이템은 신칸센 표다."

"그럼 그건…아니, 알 것 같아. 말하지 말아줘. 그거 받아도 놔둘 곳 없어."

미도리마는 전력으로 거부하는 아카시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이제껏 만날 때마다 계속 럭키 아이템을 줬더니 이 테디베어도 럭키아이템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네가 예상이 어긋나는 일도 다 있군. 이건 네 럭키 아이템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이다."

"선물? 나에게?"

아카시가 고양이 같은 눈을 크게 뜨며 깜박거렸다. 미도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때까지 옆구리에 껴서 땅에 닿지 않도록 들고 온 테디베어를 불쑥 아카시에게 내밀었다.

"생일 선물은 아닐테고. 발렌타인 데이도 지났고."

아카시가 난감한 듯 중얼거렸다.

"그냥 내가 주고 싶었다는 것이야. 마침 오늘 네 럭키아이템인 리본끈도 매달고 있었고."

"하아, 리본."

아카시가 테디베어가 목에 하고 있는 리본을 보았다. 공단천이 노을 빛에 반짝거렸다. 

"이걸 보자마자 네가 생각났다는 것이야."

"의외인데. 미도리마가 보는 나는 이런 이미지인가?"

"아니. 단순히 이것과 함께 있는 네가 보고 싶었다 쪽이 맞다는 것이야."

"하아."

아카시가 조심조심 미도리마의 손에서 테디베어를 건네받았다. 책상에 앉아 있는 아카시와 비교해서, 덩치가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았다. 아카시가 테디베어를 껴안고 얼굴을 보았다. 딱딱한 코가 아카시의 시야에 들어왔다.

목에 둘린 빨간 공단천으로 된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아카시가 호기심에 천을 매만져 보았다. 스륵하고 리본이 쉽게 풀려나왔다. 

"아카시? 리본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그렇지만 그건 오늘 네 럭키 아이템인데,"

아카시의 모습을 일거수 일투족 살피고 있던 미도리마가 당황해서 말을 건네왔다. 하지만 아카시는 테디베어가 시야를 가려 미도리마의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리본이 풀린 테디베어는 인상이 확 달라졌다. 어딘가 비어있었다. 아카시는 잠시 그 모습을 보고 미도리마에게 다시 건넸다. 미도리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아카시의 손에서 잠자코 테디베어를 가져가 주었다. 

"그거 들고 한발자국만 물러서 봐."

미도리마는 아카시의 말에 따랐다. 아카시가 이 선물을 마음에 안 들어하는 건지 몰라 안절부절하면서도. 아카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테디베어를 봤다가 손을 뻗어 자신의, 더 정확히는 학생회장의 책상 서랍을 뒤적였다. 두번째 칸에서 아카시의 손이 무언가를 쥐고 나왔다. 둔중한 녹색으로 빛나는 벨벳 끈이었다. 

아카시는 다시 서랍에 손을 넣어 가위를 꺼냈다. 눈대중으로 동그랗게 말린 벨벳 끈을 늘려 자르고, 그것을 그대로 들고 미도리마에게 다가섰다. 테디베어의 목에 새로운 옷감을 둘러 예쁘게 매듭지었다. 

"이제 마음에 드네."

"아카시?"

"너무하잖아, 미도리마. 네가 나에게 주는 거라면 녹색이어야지."

"녹색?"

"그래. 이름도 이미지 컬러도 빨간색인 나한테 또 빨간색을 줘서 어쩌자는거야."

아카시가 웃음소리를 냈다. 미도리마의 두 귀가 빨개졌다. 

"응, 마음에 든다."

그렇게 말한 아카시가 미도리마에게서 테디베어를 다시 건네 받고 그 품에 폭 파묻혔다. 실제로는 테디베어를 지탱하는 힘은 없으니까 아카시가 꽉 끌어안은 것이지만.

"…마음에 든다면 다행이라는 것이야."

미도리마가 그런 아카시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

"그러고보니 벨벳끈 받기를 잘 했네."

"웬 벨벳끈이라는 것이다."

"서기가 어제 너무 많이 남았다면서 떠넘기고 간거야. 모아뒀다가 행사 때나 쓰려고 했는데 바로 써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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