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총리님 1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 파티가 있어. 기업인들과 그 자녀들까지 모두 필수로 참석하니 너희들 모두 참석해야 해.” 


고위층 사람들이 모인 자리라면....그 안엔 알파 천지일텐데 지금 나보고 거길 참석하라고?....


“...아빠. 저도 꼭 참석해야해요?”

“방금 아빠가 한 말 못 들었니? 너도 내 딸이고 우리 기업의 차녀인데 당연히 참석해야지.”

“거긴, 다...알파들만 있을텐데. 제가 그 사이에서 혹시나 실수라도 하거나 오메가라는 걸 들키면 어떡해요.”


혜원의 입장에선 가고싶지 않은것이 당연했다. 당연히 자신은 오메가니까, 알파들 사이에서 베타로 숨기는건 학교에서도 이미 지겹도록 했다. 혹시라도 아는 애들을 만날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빠 역시도 우성오메가인 딸이 불안한 탓에 혜원을 이런 모임에 잘 데리고 가지 않기도 했고.


“괜찮아. 그냥 가벼운 자리야. 그리고 뭐가 걱정이니 너 오빠가 옆에 있어줄꺼고 이 아빠도 있잖니. 너가 걱정 할일은 없어.”

“......”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오빠라니, 김태형이 어딜 봐서 오빠라는거야...분명 우린...완벽하게 남 일 뿐인데. 


*


태형은 차를 타고 학교를 가고 혜원은 걸어서 학교를 간다. 원래 같이 타고 가는거지만 애들 눈도 있고, 둘이 있는것 자체가 불편해서 차라리 걸어가는데 낫다고 생각했다. 


반에 도착했다. 새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건지 아직까지 꽉 차있는 아이들의 수가 무색할만큼 시끌벅쩍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다들 대화할 상대가 한 두 명은 있는듯 보였다. 혜원은 원래부터 혼자 다니는것이 익숙했기 때문에, 아니. 사실 혼자 다니는것이 익숙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 괜히 친구를 사귀었다가 정체가 들통나는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겠지. 처음엔 많이 외로웠지만 이제 꽤 적응은 되었다. 이번에도 김태형과 같은반은 피했지만 김태형의 친구 중 한 명인 박지민과 같은반이 되었다. 


물론 그리 신경쓰이진 않는다.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을뿐 대화까지 할 사이는 아니라서. 그도 혜원에게 딱히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저 이번년도도 작년같기만을 바랬다. 바랬는데...작년에 혜원과 같은반은 아니였지만 종종 찾아와 시비를 걸었던 얼굴들이 보였다. 


여자 알파무리들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혜원이 마음에 들지 않은것 뿐, 평범하기 짝이 없어야 할 베타가 알파인 자신들보다 더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일까. 알파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오메가 따위가 아니고서야...어떻게든 혜원을 까내릴 이유는 많았다. 혜원은 애써 그들의 시선을 피했고 종이 울리기 전까지 마땅히 할것도 없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그때 누군가 혜원의 책상 앞에 섰다.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녕?”

“.......”


혜원은 표정을 감출수 없었다. 말을 건 상대는 지민이었다. 학교 아이들은 혜원과 태형이 남매인지 몰라도 그들은 어릴때부터 친해서 우리 집 가정 사를 다 알고 있었다. 혜원과는 그저 얼굴만 몇번 본 사이, 그는 알파였다. 또한 혜원이 오메가라는 것을 알고있기도 하다.


 “표정에서 너무 티 나는거 아니야? 난 너랑 같은반 되서 꽤 반가웠는데.”

“.......” 

“너무 경계하는 눈으로 보지마. 상처받게, 나 너한테 악의적인 감정 없어.” 


물론 너 정체 까발릴 생각도 없고, 마지막 말은 혜원에게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꽤 선한 인상이였지만 왠지 모를 꺼림직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경계 한 적, 없는데.”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말이야.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

“너네 진짜 하나도 안 닮았네?” 


아침 조회시간 선생님이 앞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그리곤 그 뒤를 따라서 다른 한 사람이 들어오는데 그 순간 반 아이들 모두가 일제히 굳어버렸다. 그저 두 발로 걸어 들어왔을 뿐인데. 확연히 범접할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전학생이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에게서 서로가 먹히고 먹히는 이 지긋 지긋한 먹이사슬 최상위 층에 군림하는, 우성알파의 페로몬을.


그가 교탁 앞에 섰을땐 선생님 조차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혜원 역시 그가 들어오자마자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곤 고개를 숙였다. 우성알파와 우성오메가가 서로를 알아보는것은 페로몬 탓도 있지만 서로의 얼굴만 보고도 알아차릴수있듯이 아주 자연스럽고도 당연스러운것이었다. 그걸 아는 혜원이 바보같이 겨우 고개를 숙인다고 절대 숨겨질리가 없었다. 하지만 절대 그와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윤기의 시선이 한 쪽으로 쏠렸다. 맨 끝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은 여자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얼굴을 일부로 피하기라도 하는듯이 고개를 푹 숙이곤 들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서서히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았다. 


“윤기야 애들한테 간단하게 너 소개 좀 해줄래?...”

“빈자리 아무데나 앉아도 되는거죠.”

“어?...어, 그래.”


선생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의 할말만 한 뒤에 혜원이 있는 뒷자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이미 몇몇 오메가인걸 숨기는 아이들은 암묵적으로 윤기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기에겐 다른 오메가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오직 한 명, 그가 보고있는 오메가 뿐이었다.


역시나 그는 혜원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아예 혜원쪽으로 몸을 돌리곤 턱을 괴어 혜원을 빤히 쳐다본다. 그 시선이 식은 땀이날만큼 감당하기 버거웠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반 아이들 모두 수업에 집중하기 보다 윤기에게로 관심이 쏠렸지만 차마 뒤를 돌아볼만큼 용기있는 아이는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한번도 뒤 돌아보지 못하는 그 많은 알파 중에서 단 한명만이 그들을 재밌다는 듯 쳐다봤다. 과연 태형이 저 투샷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안녕.”

“........”

“야, 안녕이라고. 귀 먹었냐?”

“....안녕.”

“짝꿍이 귀가 어둡네.”

“........”

“향도 존나 이상하고.”

“....뭐?”

“니가 뿌린 향수, 얼마나 독하면 내 머리가 아파. 좆같으니까 다른걸로 바꿔.”

“.....하,”


오메가는 체 향을 감추기 위해서 인위적인 향이 나는 향수를 뿌린다. 물론 혜원은 향수 중에서도 유독 향이 강한걸 쓰는 편이다. 강하다고 해서 인상이 찌푸려지는것이 아니라, 오메가의 체 향이 그 잠시동안은 감춰질 정도로 농도가 진하다는것이였다. 또한 그 가격만큼 고급스러운 향이라고 생각했다. 일반 오메가들은 구하기도 힘든 최고급 향수였으니까. 그런데, 이 향이 좆같다고?....


“왜, 좆같다고 하니까 기분 나빠?”

“......”

“근데 좆같은걸 어떡해. 그리고 그렇게 달달한 향이 가려지면 아깝잖아?”

“.......”

“...아, 넌 아닌가?”


자신이 말을 하고도 웃기다는 듯이 킥킥 거렸다. 그리곤 언제 웃었냐는듯 표정을 굳히고 혜원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면, 내 향으로 바꿔줄까?”


그 좆같은 향수보다 비교도 안될만큼 좋을텐데. 소름이 끼쳤다. 아무렇지 않게 내 던진 그 말 한마디가 혜원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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