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 교차 주의







여름.









월요일 출근길.


어디 사고라도 난 건지 오늘따라 차가 막히는 바람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회사 건물로 전력질주를 했다. 5분을 남겨두고 연신 속으로 아 늦었다- 거리며 1층 복도를 뛰어 엘리베이터가 보일 즈음 그제야 가쁜 숨을 내쉬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저기요.”


누군가가 불러 세웠다. 다급한 목소리. 사실 머릿속에는 온통 지각 걱정뿐이었기 때문에 안중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앞에서 사람이 오는 줄도 몰랐는데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움찔 놀라며


“네?”


돌아보며 물었다. 막연히 길이라도 물어보려나 싶었는데


“번호.. 좀 주실 수 있어요?”


웬 처음 보는 사람이, 것도 남자가 하는 말이며


“왜.. 요?”


내가 그냥 가버릴까 어쩐지 막아서고 있는 듯한 그의 자리 선정까지, 퍽 당황스러워하며 묻자 까칠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그가


“그쪽 마음에 들어서요.”

“....”


하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약간 언 듯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그게 벌써 4년 전.


-잘 지내?


한밤중에 또 이런 식으로 연락이 오는 걸 보니 만나던 사람과 그새 또 헤어진 모양이었다. 2달 좀 안된 거 같은데. 점점 간격이 짧아지고 있다.


“그냥. 똑같지 뭐.”


매번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어올 때마다 결국 연락할 구실일 뿐 별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 스스로가 피곤했다. 그냥 웬일이냐- 한 마디면 될 걸.


건너편에서 그래- 거리며 조금 뜸을 들이던 그가


-지금 시간 괜찮으면 볼래?


예상대로 그렇게 물어왔다.


“.. 피곤해.”


-야근 했어?


“아니. 그건 아닌데,”


퇴근 후 센터에서 운동을 조금 빡세게 했더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널브러져 꼼짝도 하기 싫었다. 안 그래도 막 잠들려던 참이었는데. 그런 게 아니어도 워낙에 밤늦게 나가는 걸 싫어하기도 했다. 나 어떤지 알지 않느냐고, 4년이면 좀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그냥 내가 보기 싫은 거네.


“그게 아니라..”


말을 가로막고 건너편에서 내쉬는 제법 묵직한 한숨 소리에 자연스럽게 말을 멈췄다. 이어지는


-그래. 뭐 한두 번도 아니고..


푸념.


“... 야.”


-너한테 거절당하는 거 익숙하니까.


또 한숨.


한풀 꺾인 듯한 말투로 쉬어라- 거리는 걸 가벼운 마음으로 못내 미안 그래 다음에 보자- 하고 융통성 있게 넘기면 될 걸


하아.


“어딘데, 지금.”


쓸데없이 무덤을 팠다. 어디냐고 묻자마자 건너편에서 녀석이 웃음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너네 집 앞.


빨리 와- 라고.


-


집 앞 편의점.


후드를 뒤집어쓴 채 슬리퍼를 끌고 녀석에게 갔을 때는 이미 소주 한 병을 비운 상태였다. 주량이 맥시멈 소주 3병인 녀석이라 그닥 걱정이 되진 않았지만 나를 발견하자 엎드린 자세 그대로 고개만 들고 손을 흔들며 희미하게 웃는 얼굴을 보자 괜히 마음이 심란해졌다. 짧게 한숨을 내뱉고 녀석에게로 걸어갔다.


녀석은 소주를,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 얘길 잠깐 하다가


“연애, 지겹지도 않아?”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얼마 못가 헤어지고 또 새로운 사람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핀잔주듯 말하고 캔 맥주를 들이켰다. 고개를 돌려


“그러니까 몸이 목적이라는 소문이 나지..”


중얼거렸다.


동네 자체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밤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번쩍거리는 간판들 하며, 쉼 없이 달리는 차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 얘길 할 장소도 타이밍도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었는데 왜 그랬는지 말이 계속 나왔다.


“안 그래도 좁은 바닥인데. 이젠 좀 진지하게,”

“그러는 넌.”


벌 받는 아이처럼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소주를 홀짝이던 녀석이 고개를 들고 똑바로 쳐다봐오는 강한 시선에


“.. 나 뭐.”


약간 위축이 되기도 했었다.


“너는 나 거절하는 거 안 지겨워?”

“.....”

“너야말로 뭐하는 짓인데. 보잔다고 이렇게 또 나오는 거, 너무 잔인하지 않냐?”


“...”


녀석이 시선을 비스듬히 내리깐다.


“알아. 넌 그냥 내 장단에 억지로 맞춰주는 거라는 거. 별로 의미 없고 별 생각 없다는 것도. 내가 먼저 연락 안하면 절대로 연락 안하는 게 그 증거니까.”

“현우ㅇ..”


너 취했다고, 술주정도 적당히 하라고 면박주면 될 걸


“부정 안하네.”

“...”


이번에도


“하긴 부정하는 것도 웃기겠다.”

“......”

“니 입장에선.”


괜히 생각만 많아서는.


**


점심시간, 건물 앞에서 친구 녀석과 통화 중이었다.


-어떤 놈인데.

“몰라, 그냥..”


점심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다른 동료들은 다 담배 피우러 쪼르륵 옥상으로 올라가버리고 나 혼자 편의점에 들러 에너지드링크를 사서 나눠 마시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 아침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바로


-생긴 건.


외모부터 물어왔다.


“그게..”


어땠더라.


-잘 생겼어?

“.. 음.”


그게 잘생긴 건가.


“뭐.. 나쁘진 않ㅇ,”

-니 취향은 아니었나보네. 바로 말 안 나오는 거 보니까.

“잠깐 봤는데 기억이 나겠냐..”


이목구비가 진한 게 남자다운 인상이었다는 것 정도.


-키는?

“나보단.. 컸던 거 같기도 하고.”


시선이 위에 있었으니까.


-몸은 좋아 보이든? ㅎㅎㅎ


건너편에서 갑자기 친구 녀석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 그렇게 티나나?”

-뭐가.


이쪽인 거.


“게이.. 인 거.”


주변을 흘깃거리며 조그맣게 말했다.


-너 같이 일반처럼 보이는 놈도 없을 걸.

“그런데 ㅇ,”

-그럴 수도 있지.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런 말에도 안심이 안 돼 급기야 손톱을 물어뜯는 중.


“혹시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아침부터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내내 삽질만 했다.


-그러게 뭐하러 상대를 해줘.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아침에 정신없었다니까..”


아 진짜..


-아무튼 번호를 줬다는 거지?

“.... 어.


뒷머리를 움켜잡았다.


-뭐 아주 싫진 않았나보네? ㅎㅎㅎ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


첫 눈에 반했단다.


‘나 그런 사람 아닌데. 번호 따고 그런 거, 가벼워 보여서 싫었거든요.’


애초에 번호 준 것도 후회하고 있었으니까 만날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질린다 싶을 정도로 끈질기게 구는 바람에 그 며칠 뒤 만나러 나가선 그런 말을 들어버렸다.


‘앞에서 걸어오는데 후광이 비추더라고요. 심장 멎는 줄 알았어요.’


후광이 비췄다느니,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느니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듣고 있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었다. 새로 찾아온 인연에 대한 설렘이라든가 호기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런 거 처음이에요.’


직접적인 표현에 대한 민망함이 컸다.


대화를 나누며 그에 대해 알게 된 건 동갑이라는 것, 집은 ㅇㅇ동, IT계열 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으며 운동이 취미.


아무튼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대화를 나눌수록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그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보다 중요한 건 회사 다니는 덴 지장 없겠구나, 그런 심정이었다.


‘주말에 뭐해요? 시간 되면,’

‘죄송해요.’


어차피 거절할 생각이었다.


‘네?’

‘이 말 하려고 나온 거에요.’


이럴 거면 애초에 번호는 왜 줬냐고 하면 할 말은 없었지만.


‘괜찮아요, 뭐.. 기회가 있겠죠.’

‘...’


친근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선 나란히 일어나 밤거리로 나오며 속으로 이젠 다신 볼 일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


다음 날 아침 모르는 곳에서 잠이 깨었다. 눈을 뜨자 보이는 낯선 천장이라든가 배경, 소품에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키고 앉았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머리가 다 흔들리고 속이 메슥거렸다. 그러다


“... ㅇ음..”


인기척에 옆을 돌아보곤 튕기듯 그 자리에서 침대 아래로 기어 내려갔다. 슬며시 고개를 들어보자 그가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상의를


“...”


탈의한 채.


순간 숨도 못 쉬었다. 눈을 꾹 감았다가 슬며시 허리 아래를 덮은 이불을 들어 올려 보곤 참았던 숨을 토하며 속으로 ‘주여’를 외쳤다. 종교 따위 없었지만 종교 따위가 상관없어지던 순간이었다. 살금살금 짐을 챙겨 그의 집을 나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움직임을 조심스럽고도 최소화한 까닭은 그저 아주 곤히 잠들어 있는 그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자위했다.


마침 택시를 잡아타기 위해 대로로 나왔을 때였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려 꺼내 보자


-야! 너 어제 어떻게 된 거야!


친구 녀석이었다.


“나..”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조각 난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다시금 두통이 시작됐다.


-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엎어지자마자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에 고개만 슬쩍 돌려 보자 친구 녀석이 쯧쯧 거리며 들어섰다. 비난의 시선으로 날 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멋대로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야- 거리며 생수통을 든 채로 걸어와


“혹시 니가 전에 말했던 그 남자가 강현우였어?”


어제부로 익숙해진 이름에


“알아..?”


묻자 으이구- 중얼거리며 또 한숨을 내쉰다.


“아 왜..”


한숨 쉬냐고. 철부지 아들내미가 된 기분이었다.


“맨날 집, 회사, 센터만 오가는 바른생활청년인 니가 뭘 알겠냐.”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 왜 뭐, 내가 뭘 모르는데.”


웅얼거리는데 침대 옆으로 다가온 녀석이 손바닥으로 머리를 꾸욱 눌렀다. 손을 휘저으며 아 하지마- 거리는 목소리 사이로


“걔, 걔잖아.”


“뭐, 누구..”


무작정 걔라고 하면 내가 알겠,


“지민이 속 썩인 새끼.”


냐..


“....”


고개를 들고 힐금 돌아보자


“지민이 뿐만이 아니라..”


다시 한숨.


“이 바닥에서 유명한 새끼라고, 너야 모르겠지만.”


몰랐다.


“어제 너랑 그 새끼랑 나란히 홀로 들어오는데 기절하는 줄 알았다.”


둘 다 술은 이미 반 쯤 돼보였다고.


“.. 혹시.”

“어.”

“거기 지민이도 있었어..?”


제발..


“........어.”


다시 베개로 얼굴을 파묻었다.


“몰랐어. 난 정말.. 나는.. 아....”

“니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그 새끼가 문제지.”


**


친구가 좋아했던 사람.


친구가 밥 먹여주냐고,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지인도 있었지만 녀석과 연애 하면 좋든 싫든 맘 고생할 거 안 봐도 비디오였다. 연애 경험 많고 클럽 좋아하고 친구 많고 술 좋아하고.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 그 밖에도..


“나 안 취했어..”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면서


“안 취했다고....”


고집은.


“알았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


비틀거리며 일어서다 휘청거리며 주저앉는 녀석의 허리로 손을 넣어 팔을 목 뒤로 두르게 해 부축했다. 그러자 조용해져선 또 어깨로 기대오는 녀석의 온기가 여름밤의 후텁지근한 공기와 더해진다. 상승하는 심박수.


간신히 대로로 걸어가 택시를 잡으려 손을 뻗었는데


“수빈아..”

“어, 택시 잡아 줄게.”

“나 오늘 너네 집에서 하루만 재워주라..”


그동안 같이 술은 마셨어도 한 번도 집에 데려간 적은 없었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나 몸부림도 안치고 코도 안골아.. 얌전히 잠만 자고 갈게, 어..?”


고민하고 있는 걸 아는지 그 와중에 어필 중. 이즈음에서 택시라도 와주면 좋을 텐데. 택시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녀석은 자꾸만 발을 헛디뎌댔다. 아- 거리며 고민하고 있는데 급기야 녀석이


“아.. 나 토할 거 같아.”


욱, 거리기 시작.


“뭐? 야, 잠깐만, 미치겠네.. 잠깐, 참아!”


하는 수 없이 녀석을 등에 업고 집 방향으로 뛰기 시작하니까


“뛰지 마.. 속 울ㄹ...”


-


아무튼 집에 도착. 집에 도착하자마자 녀석을 화장실로 밀어 넣었는데 이젠 괜찮단다. 괜히 뛰었어 누굴 개고생시키냐고, 화장실 앞에 벽에 등을 기댄 채 힘없이 앉아있는 녀석의 머리를 꾸욱 누르자 남의 속도 모르고 피식피식 웃어댔다. 멀끔하게 잘생긴 얼굴을 보다


“아 더워..”


목 부분을 잡고 옷을 펄럭거렸다. 이 열대야에 나보다 큰 놈을 엎고 거의 뛰다시피 했으니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된 지 오래, 일단 옷부터 갈아입었다. 윗옷을 벗고 대충 눈에 보이는 걸로 꿰입은 다음 누울 자리를 살폈다. 침대를 함부로 나눠 쓸 수는 없는 법. 녀석을 소파로 옮겨 눕도록 해주고 서랍장에서 새 담요를 꺼내 이미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녀석의 위로 덮어주었다. 세상모르고 잠든 녀석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양치를 하고 나도 침대에 누워 잠시 핸드폰을 보다가 이제 막 잘 생각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나..”


중얼거렸다.

자는 줄 알았는데


“자는 거 아니었어?”

“왜 안 돼?”


아니었다 보다.


“....”


일부러 못 들은 척 대꾸 없이 가만히 있었다.


“.. 친구 때문에?”


잠에 취한 목소리도, 술에 젖은 목소리도 아니었다. 또렷했고 분명한 말투였다.


“나 걔랑 밥 한 번 먹은 적 없어. 여지 준 적 없다고.”


어둠 속에서 녀석의 나지막한 음성이 조금은 절박하게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 그것 때문 아니야.”

“그럼 왜?”


녀석이 몸을 일으켜 앉는다.


“... 이런 얘기,”


피곤해.


“그만 하자.”

“김수빈.”

“얼른 자.”


옆으로 돌아누웠다. 저편에서도 더 이상 말없이 잠잠해서 한숨 놓을 참이었는데 성큼성큼 다가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자마자 이불이 들춰지고 어깨가 잡혀 반대쪽으로 돌려 눕혀 졌다.


“뭐야..”

“한번만 안아보자.”

“뭐..?”


내려다보는 녀석을 올려다보며 잡힌 어깨를 빼 내려는데 꿈쩍도 안했다.


“너랑 한 번 하고 나면 마음 접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 미친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누구한테도 마음 못 붙이고 자꾸만 너한테 돌아가는 거, 너랑 연애를 한 것도 아닌데.. 넌 나한테 잘해준 적도 없고 난 아팠던 기억 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널 못 놓겠는 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말곤 답 없어.”


어깨를 잡은 손의 힘이 너무 세 어깨가 다 얼얼할 지경이었지만 그것보단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이쪽이 더 급했다. 잘못하면 진짜 일 칠 거 같은 분위기라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게 싫음 나랑 딱 한 달만 같이 살래?”


웃음도 안 나왔다. 웃음이 나올 수가 없었다. 날 향한 녀석의 눈빛이, 표정이, 입술이 진심 같았기 때문에.


“...... 놔라, 화내기 전에.”

“넌 진짜 이기적인 새끼야.”

“가서 잠이나 자.”


팔을 쳐 내자 순순히 물러나긴 했다. 다시 옆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고 쿵쾅거리는 심장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그랬는데


“나쁜 새끼.”


거리는 말에 단번에 일어나 앉아


“누가 할 소린데? 너야말로 이기적인 놈이지..! 니 멋대로 마음 밀어붙이고 강요하고,”

“너도 나 싫지 않잖아. 좋잖아. 가끔 상상하잖아, 나랑 자는 거! 근데 왜 안 돼? 어? 왜 안 되는데? 왜 나는 널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하냐고!”

“....”


상상한 적


“4년이다.”


있다. 녀석의 밑에서


“이제 그만..”

“....”


“나 좀 살려주라.”


헐떡이는 자신.


“.......”


녀석의 연애가 새로 시작될 때마다 방해하고 싶은 충동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스스로를 다잡아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한 마디만 하면 바로 나한테 올 녀석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 연애가 단순히 내게 시위하기 위한 전시용이라는 걸 또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오만했고 자만했다. 어차피 금방 끝날 관계. 나는 녀석의 우위에 서고 싶었던 걸까.


“현우ㅇ..”


고개 숙인 채 애써 울음을 억누르는 다 큰 남자를 본다. 보며 내가 지금 한 인간의 감정을 쥐고 흔들 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봤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가, 나라고 뭐 그렇게 깨끗할까.


“.....”


끝내 소리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턱 끝에 걸려있었다. 녀석이 거칠게 닦아 올리기 전에 먼저 손을 뻗어 걷어내며


“후회할 거야.”


말했다.


“나.. 별 거 없거든.”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후회하며 돌아서는 모습, 감당할 자신 없었다. 사랑이 변하는 거라는 거, 영원하지 않다는 걸 부모의 이혼으로 경험했고 깨달았고 절감했다. 결국 우리도 그렇게 될 거다.


“상처받을 거야..”


상처만 남을 거다.
















-

이후 둘은 어떻게 됐을까용..? 결국 끝났을까요, 이어졌을까요?? ㅎㅎ 생존 신고할 겸 글 한쪽남기고 갑니다. 모두 무더위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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