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와 무관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W. 재재








"회의요? 전 그 사람들이랑 정국이에 대해 회의할게 없는데요."


"저도 안올거 같다고 했죠. 근데 어떻게해요,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번지고 싶지 않으면 태형씨 데리고 오라는데.."


"그거 협박이잖아요. 진짜 인간들이 왜그러는거야."


"한 번만 딱 눈 감고 가봐요. 뭐때문에 그러는지."





미국 연구원들은 정국에 대한 회의를 요청했다. 단, 태형이 꼭 껴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연구자료좀 공유하고, 함께 연구하자는게 아닐까 싶은데 왜 나를? 혹시 정국이 애착대상이 나라는걸 벌써 알아챈건가? 괜히 일만 더 늘어나는 상황에 태형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씨, 귀찮게. 기껏해야 계획은 자기네들이 짤테니 나한테 교육자 노릇이나 하라는거겠지. 정도로 생각한 태형은 보조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What??!"


"Are you going to accept our opinion?"

- 저희의 의견을 받아들이실 건가요?


"아니, 이게 의견이야 협박이야? Are you threatening us?"

- 지금 우리 협박하시는겁니까?


"No way."

- 그럴리가요.





회의에서는 태형이 생각지도 못한 주제가 오갔다. 바로 미국에서 정국과 태형을 데려가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보상은 충분히 지급하겠다며 뻔뻔스럽게 말해오는데 너무 당당해서 교수님들까지 할 말을 잃었다. 여태까지 어떻게 교육을 해놨는데 이제서야 정국이가 발달이 빨라 연구가 될 것 같으니 데려가겠다? 게다가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나도 데려가? 지들끼리는 못할거란걸 알았나보지?





"If it's not a threat, why bring up the political story?"

- 협박이 아니라면 왜 정치적 이야기를 꺼내는거죠?


"We just told you it could happen."

- 그럴 수 있다고 미리 말씀드리는겁니다.


"하.. 시발."





도저히 말이 안통하는 상황에 태형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다들 답답한건 똑같았는지 회의중에 욕 하는 태형에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미국 우월주의 새끼들 정치적으로 흔들면 다 되는줄 알지 씨이발. 미국이 내건 조건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정국과 태형을 달라. 그러면 여태까지 들었던 연구비용을 포함한 수 많은 돈을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 도대체 이게 협박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한 회의는 나중에 결정되면 말하겠다고 하며 끝이 나버렸다.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요! 도대체 저게 협박이 아니면 뭔데?! 자유의 나라? 지랄하네! 내 자유는! 정국이 자유는!!!"


"진정해라."


"진정하게 생겼어요 교수님? 교수님은 분하지도 않으세요? 우리나라에서 발견돼서 여태까지 우리가 연구하고 교육 다 했는데 정국이가 발달이 빠르고 스트레스 수치가 낮아서 이전 야생아들과 다르게 죽지 않고 교육에 성공할거 같으니까 이제와서 데려가겠다? 돈이면 다 되는줄 아나!"


"나도 분하지. 그동안 왜 야생아들이 죽어왔는지 알겠더구나."


"그쵸?! 저딴식으로 연구를 하니까 스트레스를 안받을 수가 있나!"





태형은 씩씩거리며 불만을 토해냈다. 많이 화가 났는지 교수 앞에서도 말을 가리지 않았다. 태형은 분하고 화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따낸 강의도 모두 취소를 하고 정국이에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건만 겨우 경계풀고 적응하게 만들어놨더니 홀라당 데려가버리겠다는건 무슨 심보인가? 게다가 우리가 쉽게 허락하지 않으니 정치적인 이야기를 들먹여 더욱 열이나 울분을 토해냈다.





"저를 데려가겠다는 것도 웃겨요. 지들끼지 안될거 같으니까 나를 데려가겠다는거 아니냐고요!"


"그래,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걸 쉽게 파악한거 같구나."


"내가 가나봐라! 정국이 데려가게 두나봐라!"


"...여러번 회의를 거쳐야 할 것 같군."


"네? 회의할게 뭐가 있어요? 그냥 거절하면 안돼요?"


"거절하기엔 우리나라에 손해가 너무 크지 않니. 자칫 잘못하면 청와대에서 공문이 내려올 수도 있을거다."


"하.. 협박이 먹히는거네요 그럼."


"....."




*




태형은 미국의 연구원들이 다녀간 이후로 정국의 언어교육에 더욱 힘을 쏟기 시작했다. 정국이 한국 연구소에 적응하고 한국어까지 하게 되면 그들이 포기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야생아 교육의 꽃은 언어교육이니까. 태형은 정국의 언어교육에 많은 시간을 쏟는 대신 정국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정국이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모두 해주었다. 예를들어 허그, 뽀뽀 등의 스킨쉽을 한다던가 산책을 나갈 때면 꼭 태형의 집을 들린다던가 혹은 태형과 함께 잠을 자기도 했다.





"나뭇가지가 많이 자랐네."


"....."


"이건 나무야. 나.무."


"....."


"나 봐봐 정국아. 나.무."


"...아...움.."


"크흐.. 잘했어! 오구 잘한다 우리 정국이!"





극초반에 정국은 앉아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매우 싫어했지만 이를 잘 따르면 태형이 상당히 기뻐하며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을 알았기에 큰 무리없이 태형의 교육을 따르기 시작했다. 정국은 태형의 입모양을 보고 말을 따라하려는 시도는 곧잘 했지만 자음발음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태형은 정국이 따라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을 다행이라 느꼈다. 언어 민감기가 지나버려 영영 언어를 배우지 못할 수 있다는 가정도 있었지만 정국이 계속해서 따라해 주는 덕분에 언어를 잘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사실 정국이 짧은 시간안에 태형의 입모양을 보고 따라하려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동안의 야생아들 중에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언어적인 발달을 한 경우는 없었다. 보고 된 야생아들의 수도 적었지만 사회적인 적응조차 잘 되지 않아 스트레스로 인해 죽거나, 언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고, 배워도 한 단어, 두 단어 시기에서 멈추는 야생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에비해 정국은 그동안 다른 야생아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영아들이 하는 언어 민감기 때의 행동이 그대로 나타났다. 예를들어 태형의 입모양을 보고 따라하려는 것.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영아들은 어른들의 입모양을 보고 따라하며 발음을 배운다. 정국도 이와 똑같지 않은가? 정국이의 성격인건지 아니면 어떤 자극제가 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의 다른 야생아들의 연구와는 확연히 다른 것은 확실하고, 이것이 긍정적인 쪽이라는 것도 확실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정국이를 노리는 거겠지.





"정해진 시간에 억지로 교육하려는 것보다 밥먹을 때나 산책할 때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지는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태형


"네, 관찰기록을 보니까 정국이가 생활에서 더 따라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네요." - 호석


"차라리 그 정해진 시간에 조금 더 놀면서 자연스럽게 말하게 하는게 더 효과적이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태형


"그럼 놀이 하면서 언어적 자극을 줄 때 스트레스 지수도 측정해보죠." - 호석


"발달 속도도 체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국이가 발달이 워낙 빨라서." - 태형


"네, 그것도 한 번 해보죠." - 호석


"발달 속도랑 스트레스 수치 가설은 제가 세워서 보내드릴게요." - 태형


"아닙니다. 태형씨는 하는 일이 많으시니 제가 해야죠. 제가 해서 보내드릴게요." - 호석





태형과 호석은 이번 연구에서 처음 보고 처음 합을 맞춰본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잘 맞았다. 사실 태형은 교육철학이 확고하기도 하고, 남에게 맡기면 불안해서 자신이 그냥 다 해버리는 스타일이었는데 호석은 자신과의 윤리적 철학과 맞을 뿐더러 교육하는 스타일도 비슷해 척하면 척 빠르게 진행이 되어 호석과 함께 할 때는 편하게 일 할 수 있었다.





정국이는 요즘 사람들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 것 처럼 보였는데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음식이나 태형이 옆에 있을 때 다가오면 조금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그런 정국이가 완전히 경계를 푼 사람은 몇 명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중 한 명이 호석이었다. 정국이도 자신을 연구대상이 아닌 인간 전정국으로 봐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듯이 태형, 윤기, 지민에 이어 호석에게 까지 완전히 경계를 풀었다. 물론 경계를 풀었다고 해서 태형에게 하는 것 처럼 애교를 부리고 스킨쉽을 하고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밥을 먹을 때 그들이 있다고 경계를 하면서 먹지는 않았다. 태형의 옆으로 가면 경계를 하는 것 같지만.





태형도 정국이 경계를 완전히 푼 사람들을 믿었다. 그들은 진짜로 정국이를 생각해주는 사람이기도 했고, 태형 본인도 인간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정국이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보고 경계를 푸는건지. 태형은 정말 본능이라는게 참 무섭다고 생각했다.




*




"회의에 참석하시랍니다."


"참석 하나마나 나는 절대 미국에 안갈거라고 정국이도 안갈거라고 대신 전해주세요."


"교수님들도 가는걸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아마 대책마련 때문인 것 같아요."


"하... 알았어요."





태형은 머리를 헝크리며 신경질을 부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가라앉질 않았다. 정국이가 다른 야생아들에 비해 나이가 많으니 실패할 것 같아 냅두다가 성공적으로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데려가려고해? 심지어 정치적인 이슈까지 들먹이면서? 진짜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태형은 정국의 방으로 향했다.





"정국아- 나 왔어."


"컹!"


"왜 또 짖어, 응? 태형 해봐 태.형!"


"...애..?"


"크흐흐.. 잘했어요~"





태형은 정국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이 안좋다가도 저에게만 애교를 부려오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태형이 기분좋게 웃으니 정국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는지 태형의 입술을 핥아왔다. 태형은 그런 정국을 떼어내며 입술에 짧게 뽀뽀를 하였다.





"쪽!"


"이게 더 좋지? 이렇게 하라니까."


"어억, 정국아 나 넘어간다! 어어?"





정국은 태형에게 더욱 붙으며 입술을 부벼왔다. 태형은 결국 정국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정국은 이에 상관않고 입술을 부볐다. 그러다 아직 성에 차지 않았는지 습관이 남아있는건지 또 다시 혀를 꺼내 태형의 입술과 그 주변을 핥아내렸다. 태형은 이런 정국을 포기하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당하고 있었다. 그럼 정국은 이 때를 기회삼아 태형의 입술을 앙 물어왔다.





"읍.. 정..그..!"





말도 할 수 없게 입술을 물고빠는 정국이가 계속해서 입술에 붙어있자 태형은 결국 정국을 밀어냈다. 정국은 아쉬운지 태형의 어깨에 고개를 묻어 비벼대기 시작했다. 태형은 이런 정국이의 모습에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거이거 아주 웃기는 애네. 응?"


"내가 그렇게 좋아?"


"그래 알았어, 알았어. 매트로 가자. 형아랑 같이 자자 우리 정국이-"








-








얘네 진짜 키스는 언제하나..


태형이가 정국이를 딱 애인으로 받아드려야 하는데 말이죠.

우리 정국이는 이미 뭐...^ㅁ^ 말해 뭐합니까!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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