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도이즈/토도데쿠] 다정한 존재

- 170806,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토도로키 쇼토 X 미도리야 이즈쿠

- 시간배경 : 중학교 시절 어느 날









불행은 희망을 좀먹는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여기 서있다.




"높네…"



쉬이잉, 평소에는 접할 리 없는 세찬 바람소리가 귓가를 매운다. 이제 갓 중학교 2학년이 된 미도리야 이즈쿠가 서있는 곳은 바로 학교 옥상의 난간 바깥쪽. 한발짝만 더 뻗으면, 떨어지기 딱 좋은 위치였다. 들어왔을 직후만 해도, 생각보다 먼 하늘을 바라보며, 다른 장소를 선택해야하나 싶었는데, 난간쪽으로 가서 밑을 내려다보니 그 생각이 쏙 들어갔더랬다. 그래서 난간을 넘어 가는 것조차도 꽤나 고생한 그였다. 뒤로 뻗은 양 팔로, 긴장으로 젖은 두 손으로, 약간은 녹슬어버린 난간을 잡으며, 미도리야 이즈쿠는 눈꺼풀을 살짝 내렸다, 닫았다. 삭막한 잿빛 콘크리트 바닥이 청명한 녹빛 눈동자에 담기니, 참으로 이질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이 곳에 오게 된 걸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만고불변의 진리이긴 하지만, 유독 이 세계는 그 사실이 너무 빨리 피부로 와닿았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시기에 미도리야 이즈쿠는 차이를 알았고, 차별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예외라는 것 또한 알았다.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로든 주어지는 능력, 즉, '개성'이 그에게만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세상은 개성을 이용해 곤란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히어로'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미도리야 이즈쿠의 하나뿐인 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 또한, 처참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인간은 그러하다. 자신과 다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배척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결핍되어있기까지 한다면, 무시하게 된다. 주변인들에게 미도리야가 바로 그러한 대상이었다. 어릴수록 순수하니 더 잔인하다고 하지 않은가. 미숙한 이들에게서 나오는 정리되지 않은 언어들이 한 글자씩 비수가 되어 꽂히니, 그는 호흡하여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지는 다수에 의한 폭력은 그를 더욱 비참한 신세로 만들었다. 그러한 형태는 대부분 신체적이었지만, 의외로 더 견디기 힘든 건 정신적인 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꿈을 간직하던 미도리야 이즈쿠였다. 무개성이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히어로가 될 수 있어, 라고 자기 전에 밤마다 다짐했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약하다. 긍정적인 생각을 백번하여도 부정적인 생각 한 번에 무너지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 또한 그렇게, 어제 저녁에 망가졌더랬다. 최후의 보루조차 스스로 무너뜨린 미도리야 이즈쿠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려하고 있었다.



"죽는 건 상관없는데, 여기서는 자제해줄래?"



낯선 목소리에 아래를 바라보고 있던 미도리야는 겨우 뒤돌아보는 데 성공했다. 어느새 다가온 정체불명의 학생은 미도리야의 뒷덜미 쪽 옷깃을 잡고 당겨서, 그를 그나마 안전지대로 이끌어 보였다. 미도리야에게는 초면이었지만, 이미 전교에서 유명한 자신이니, 상대방은 본인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저런 독한 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겠지. 다시 체념한 미도리야는 겨우 들었던 고개를 또 푹, 하고 꺼버렸더랬다. 한편, 그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이름 모를 학생은 입가에 막대사탕을 문 채, 말하기 시작했다.



"나, 이 옥상 좋아하거든. 근데 네가 여기서 죽으면 좀 그렇잖아?"  

"뭐?"



그 학생은 미도리야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그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느닷없이 미도리야에게 악수를 청하듯 뻗어보이는 게 아닌가. 미도리야의 눈이 꿈뻑꿈뻑, 무심한 표정의 상대방을 한 번, 비어있는 손에 한 번 향했더랬다. 좀처럼 미도리야가 행동을 취하지 않자, 그 학생은 이 정도면 알아서 해야하는 게 아니냐고 투덜거리곤 말했다.



"잡아."

"왜?"



미도리야의 입에서 지극히 당연한 물음이 나갔다. 말리기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바람이 분다. 예상보다 강해서 미도리야의 다리가 살짝 휘청이고 말았다. 상대는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갈까, 반대쪽 손으로 꾹, 하고 잡아보이더니, 다시금 권유해 보인다.



"나는 미래를 보여줄 수 있어."

"… 그래서?"

"싱겁네, 여기서 죽지 않는다면 만들어질 네 미래라고?" 

"궁금하지 않아."



그도 그럴게, 다가올 비참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게 아니었던가. 대답과 동시에 빠각, 막대사탕이 잘근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혹시나 화난걸까, 싶었지만, 그는 오히려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미도리야에게 얘기한다.



"그럼, 저승길 선물이라고 생각해." 



하긴, 여기서 떨어지면 다 사라질 것들이긴 하지. 타인에게 받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도 나쁘진 않을테고. 어차피 최악이어도 지금보다 더 할까, 싶던 미도리야는 주저없이 그 손을 잡았다. 잠에 빠지듯 스르르 눈이 감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건 없는거다. 죽음을 엿본 듯하여 미도리야는 사실 이게 끝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계속 머물고 싶던 그의 의사와는 반대로 또 눈은 떠진다. 그건 마치, 해가 뜨고 지는 양, 자연스러운 현상과도 같았다.









"잘 잤어?"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 들어온다. 쏟아지는 싱그러운 햇살, 몸 전체에 느껴지는 푹신한 느낌, 미도리야는 단박에 여기가 침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맞은 편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정도일까. 자신은 지금 이 사람과 상당히 밀착되어 있는 상태였다. 약간 위쪽에 자리잡은 이를 올려다보니, 얼굴의 반이 베개에 파묻힌 그는 대충 보기에도 백발에 준수한 외모를 지닌 주인공이었다. 그 중에서도 흑갈색과 연옥색의 두 눈동자와 얼굴의 반 좀 안되게 덮인 범상치 않은 화상자국이 눈에 띄었더랬다. 그래서 미도리야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상처에 얹으며 물어보고 말았다.



"아프지 않아?"

"새삼스럽네, 이즈쿠."



아프지 않아. 푸스스, 싱겁게 웃으면서도, 또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았는 지, 미도리야의 손에 자신의 것을 얹고 놓지 않는 그였다. 순간, 열기가 전해져온다. 단순히 사람의 온기라기보다, 따뜻한 스프같은 그런, 조금 다른 느낌이려나. 아, 그러고보니 이름을 불렸다. 그게 마치, 자신이 아닌 타인을 부른 것처럼 낯선 느낌이었더랬다. 멍청이를 뜻하는 '데쿠'라는 별명이 아닌, 온전한 나의 이름. 그 단순한 글자가 이리도 계속 듣고 싶어지는 거였던걸까, 미도리야는 괜히 뭉클해져 상대의 품에 더 포옥 안겼다. 남자는 오늘따라 어리광을 부리네, 악몽이라도 꾼걸까, 라고 말하며 미도리야의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주었다. 그의 말에 미도리야는 톡, 하면 팟, 하고 터질 듯이 글썽이면서 얘기했더랬다.



"꿈… 을 꾼거 같아."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은 그런 꿈. 기억이 흐릿해져간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한 까닭이다. 차라리 여기가 현실이었으면 싶어, 미도리야는 그리 답하고 말았다. 어째서 불행을 겪었고, 죽음을 결심했는 지 잊혀지고 있었다. 그저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은 소망이 자신을 지배했다. 여기가, 진짜야. 진짜여야 해. 미도리야 이즈쿠는 끊임없이 되뇌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라. 한편, 상대는 미도리야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검지로 닦아준 후, 일부러 내려와 마주보는 그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붉은색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그리고는 아까와 달리 사뭇 진지하게 말했더랬다. 



"나는 네가 꿈에서라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와 어떤 형태의 사이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소중하다는 거, 그것만큼은 틀림없을 터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항상 듣고 싶었던 말을 당연스레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게 마치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어 꺼내온 단어인 듯 정갈해서. 한 치 앞조차 캄캄한 그 길에서 어떻게 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거지. 미도리야의 눈에서는 마치 비처럼 주르륵,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웃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까닭이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남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저, 지켜봐 줄 뿐이다. 그래서 미도리야는 용기내어 물었다. 생각만 수 만번 했을 뿐, 한번도 꺼내본 적 없는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다.



"…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본질적인 물음에 이번엔 익숙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남자였다. 평소보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기우였나, 하며 미도리야의 주근깨를 어루만지는 그. 지금의 미도리야는 모르겠지만, 이는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애정행위 중 하나였더랬다. 닿은 부위가 아까와는 달리,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진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키스가 이루어진 탓이었다. 그리고는 눈가를 휘어보인 그는 미도리야에게 언제나 그러했듯이 말한다. 



"너는 이미 히어로야. 나를 구원해 준 그 순간부터."

"… 구원해줘? 내가?"

"네가 없었다면, 나도 여기에 없었을테니."



언어가 닿아 마음이 되고, 다정함이 닿아 상냥함이 된다. 미도리야 이즈쿠는 지금 그 사실을 깨달았다.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떠한 연유로 자신은 이 사람을 구제했다. 그리고 이건 죽으면 오지 않을 미래다. 미도리야는 더는 옥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계속, 이 살가움에 기대고 싶어. 비겁하게 이루어진 만남에 머물고 싶어. 그런 미도리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나지막이 얘기했더랬다.



"조금 더 자, 아직 이르니까."



힘을 주고 있음에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러지는 의식에 미도리야는 그의 이름을 알고 싶었지만, 끝내 묻지 못한 채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역시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다만, 의연했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오한이 들 정도로 무서운 미도리야였다. 이른 상냥함은 그렇게,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두려움을 자각시켰다. 그리고 변함없이 떠지는 눈에 들어온 건, 현실을 빗댄 잿빛의 콘크리트.









"어땠어, 선물은?"

"드문드문 남았달까…"

"하긴, 아마 만났던 사람도 기억 안날껄."



그건 어쩔수 없어, 라고 미래를 보여준 이가 말한다. 미도리야는 애써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그나마 있던 것도 사라지고 있어서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잊혀지지 않는 건, 다정한 사람의 존재. 그것 뿐. 외향이라던가, 목소리라던가, 그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 한편, 확연하게 달라진 미도리야의 생기도는 얼굴을 본 학생은 다시금 묻는다.



"그래서, 떨어질거야?"

"아니,"



미도리야는 바로 난간 안쪽, 옥상으로 들어왔다. 아까와 같은 바람이 분다. 그저 날카로운 줄 알았던 그것이, 이리도 부드러웠던가. 하늘을 본다. 막연히 높아보였던 그곳이 지금은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듯했다.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았다. 아니면, 자신이 그런걸지도 모른다. 미도리야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막대사탕 하나를 꺼내, 상대방에게 내밀며 말했다.



"고마워, 눈부신 미래를 보았어."

"뭐, 이 정도로."



그는 냉큼 받아들더니 레몬맛, 럭키, 하곤 유유히 사라진다. 그러고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네, 미도리야는 지금과 비슷한 일을 어디선가 겪은 것 같았지만 끝내 알 수는 없었다. 사탕 하나로는 과분할 정도의 보답을 받았다. 이제 자신은 그 미래를 원동력으로 살아갈 테니까. 탁탁, 바지에 묻은 난간의 먼지를 털어내보였다. 그건 마치 고통으로 얼룩진 과거를 닦아내는 것과 같았으리라. 망설이지 않고 앞을 향한다. 이제 더 이상 절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지나간 불행에 안녕을,

이른 상냥함에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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