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터는 에드워드5세의 사후 2년여간 미친듯이 전투에만 몰두했다.




훗날, 「굶주린 사자」사자왕 리차드2세가 회고하길, 자신의 왕권을 확고히 하고, 프랑크 제국의 황제의 자리에 올라 대륙을 통합하고 정벌하는데, 집권초기에 초석을 다진 군터 아르헨의 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했다.




아르헨 1대공작 이란 브리태니아의 영광된 대귀족의 중심에 서서, 결혼을 하여 자손을 불려 그 세를 후대에 남기며, 천한 농노에서 최초로 자수성가한 전설로 남을 수도 있었다.



그는 원하기만 하면, 브리태니아의 윈져나 버킹검 공작처럼 국가를 대표하는 명문가를 이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군터는 평안한 귀족의 삶도, 가정도 포기하고 전쟁터에서 자고 전쟁터에서 부하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이 언제 꺼져갈지 모르는 격렬한 전투에만 출전하여 항상 승리하고 부하들의 목숨을 구했다.


모든 이들이 군터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별명 「검은 늑대」의 이름은 적들을 공포에 떨게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5살 아이부터 90세 노인들까지 오직 국왕과 국가에 헌신하는 군터 아르헨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그는 역사에 남을 영웅이 되어갔다.


'폐하. 보고 계십니까?

당신의 첫번째 기사는 이제 이 시대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기쁘십니까?

 하아. 나는 당신이 잊혀지긴 커녕,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일신의 영광에도 군터의 얼굴은 항상 어둡웠다.



사실 그가 그렇게 악귀처럼 전쟁터에 나아가 미친듯이 적의 목을 베었던 것은 그가 죽은 주군 에드워드5세의 기사답게 전쟁터에서 영광스런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어서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죽음을 강렬히 원했던 그는 오히려 죽음의 사자가 되어 자신의 죽음이 아닌 타인(他人)의 죽음을 불러왔다.


그 어떠한 위기에서도 검은 늑대는 살아 남았다.


참으로 신은 불공평하여 정작 죽음을 원하는 군터에게는 사신(死神)을 보내주지 않았다.


군터의 눈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며 진짜 살인기계가 되어갔다.


그는 매일 전장터로 떠나기 전 신께 기도했다.


제발 오늘만은 죽음의 긴잠에 들게 해달라고.


그래야만 그가 그토록 보고싶은 저 세상의 그리운 한 소년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군터는 군장을 꾸리며 또다시 신에게 기도했다.




'신이여.진정 당신이 존재하신다면 제발 오늘만은 저에게 영원한 잠을 허락하소서.'




경건한 기도를 마친 군터는 오늘도 보호구도 없이 얇디 얇은 닳아빠진 검은 가죽갑옷 하나만 걸친채 30여년을 같이 해온 바스터드 하나만을 허리에 걸쳤다.



그의 이런 차림은 제롬이 8살때 문스트 거리의 야외격투장에서 처음 보았을때의 복장 그대로였다.



아름다운 주군의 적장자를 처음 보는 순간, 군터의 심장은 쿵 내려앉았다.



꼬마 요정같은 깊은 남청색의 눈동자의 어린 미소년은  그 순간부터  줄곧,  이 시대의 영웅 군터의 심장속에 들어와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군터는 적어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도 죽어서도 바로 제롬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게끔 제롬이 자신을 처음봤을 때 모습 그대로이고 싶었다.


그리고 전쟁터로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그의 갑옷 소매 건틀렛 안에서 닳고 닳은 낡은 색바랜 천조각 하나를 꺼내들었다.



제롬의 눈동자를 닮은 청남색 스카프는 본래 에드워드4세의 마지막 유품인 국왕의 상징인 검은 용이 수놓인 스카프였다.


부왕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유일하게 건질 수 있었던 유품인, 선왕이 생전 전쟁터에 매고 다녔던 소중한 스카프를, 제롬은 저 자신의 첫번째 기사이자, 유일한 기사였던 군터에게 이별선물로 주었었다.


군터는 그 스카프를 품안에 지니고 전쟁터에서 항상 잘때마다 꺼내들고 제롬의 체향을 추억했다.


제롬의 곁을 떠나 온갖 전쟁터를 누빌때도, 제롬이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겼을 때도,그리고 제롬이 그를 버리고 영원히 돌아올수 없는 길을 떠났을 때도,군터의 유일한 위안은 그 스카프를 안고 울음을 참는 것 뿐이었다.


너무나 불운했던 제롬의 첫사랑 군터는, 그의 연적들과는 달리 죽은 제롬의 옷이나 소지품등을 챙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달리 유일하게 연인을 기억할 수 있는 제롬이 준 '유일한'선물, 선왕의 스카프는 흐르는 세월에 낡고 헐어가며 이미 본래의 색인 푸른빛은 바래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청남색은 시간이 흐르며 연한 푸른색이, 푸른색은 다시 누런색이, 그리고 누런색조차 빠져 이제 낡디 낡은 희뿌연 낡은 넝마조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군터는 소중히 그 천조각을 끌어안고 소중하게 입을 맞췄다.



군터는 이제 막 리차드2세의 기사로서가 아닌, 죽은 주군 에드워드5세를 위해 죽으러 나갈 것이다.


더이상 군터에게 기사로서의 신의나 충성심은 의미가 없었다.


그는 죽은 연인을 위해, 그 역시 죽으려 홀몸으로 전쟁터 한복판에 뛰어들 것이다.


"네. 폐하. 폐하가 이겼습니다.

제가 졌어요.

이제 폐하 곁으로 가겠습니다.

오늘 저는 당신의 첫번째 기사이자, '첫번째 연인'으로서 영광스럽게 전쟁터에서 이 질긴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그때 랭카스터 백작이 막사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순간 수십년간 어린시절부터 같이한 그의 예민한 감이 그의 오래된 벗 군터 경이 죽음의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려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쥬드 아이스너의 농노였던 군터는 쥬드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아이스너 가문의 막내도련님의 전속 노예였다.


쥬드는 걸음마를 할때부터 군터와 대련을 하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사실 주드에게 있어 군터는 친형제와 다름없었다.


이 오랜친구의 온몸에서 느껴지는 비장한 죽음의 결의는 오래전 한 소년왕이 간곡히 부탁했던 청을 떠오르게 했다.




'쥬드 경. 부탁이 있어.

앞으로 꼭 군터곁에 붙어 있어줘.

혹시 군터가 죽으려 할 것같으면...

그를 때려 기절시키더라도 죽지 못하게 막아줘.

내 마지막 청이야! '



제롬의 진지한 푸른 눈이 반짝였던 그 당시 모습이 쥬드 아이스너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랭카스터 백작이 다급하게 군터의 앞을 가로막았다.



"군터! 어딜 가려 하나.

잠깐 자네에게 할말이 있어!"




랭카스터는 너무 마음이 급한 나머지 두서없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군터의 얼음처럼 차가운 눈이 귀쟎은 파리보듯 랭카스터 백작을 마주 보았다.



"어딜가냐니? 랭카스터 백작.

총사령관이 당연히 전쟁터로 달려가는 것이 당연하쟎소."


쥬드는 침을 꿀떡 삼켰다.


" 군터.그것 아나?

난 널 한번도 내 노예나 하인으로 생각해본적 없어.

넌 언제나 나에게 형제같은 친구였어."



군터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알아.쥬드.

그래서 날 농노에서 해방시키고 아르헨이란 성까지 에드워드4세 폐하께서 하사하시게끔 해주었었지. 평생 이 고마움은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 놓았었어.

그리고."


군터가 의미를 알수 없는 무언가를 담은 잿빛눈동자로 랭카스터 백작을 똑바로 주시했다.



"죽어서도 자네의 은혜는 잊지 않을꺼야.

특히나 나는 자네덕분에 평생의 연인을 만났네."



랭카스터 백작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몇년전 제롬이 예언한 그대로 군터는 정말 죽기위해 이길로 전쟁터에 나서는 것이었다.


군터는 망설임없이 홱 돌아서서 막사를 나섰다.


'어...어떻하지. 정말 폐하 말씀대로 저 자식 기절시켜?'


랭카스터가 잠시 망설이는 동안, 이미 군터가 자신의 말에 올라타 출발하려고 하자,  말울음소리가 막사밖에서 들려왔다.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랭카스터는 더이상 고민할 여유가 없어 속으로 외치며 급하게 막사밖으로 뛰어나갔다.


군터가 딸랑 3명의 기사만 이끌고, 이제 막 출발하려고 말고삐를 쥐고, 발로 말의 허리에 달린 박차를 가하려 하고 있었다.



" 군터!! 군터!! 잠깐만!!"


군터는 또 너냐란 표정으로 말위에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또 뭐지? 랭카스터 백작. 

보다시피 난 바쁘다네.

 내 적들이  항.상. 나를 기다려주진 않거든."


헉헉거리고 달려온 쥬드 아이스너는 다짜고짜 군터의 군마에 달린 말고삐을 음켜잡고 거의 매달리다시피 달라붙었다.



"자...잠깐만! 내가 자네에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했는데!

까...까먹어서 지금 말할깨!"


너무 급한 나머지 랭카스터 백작의 혀가 꼬였다.


마침내 군터가 폭발해서 버럭했다.


"어떤 빌어먹을 중요한 일이기에!!!!!

전쟁터 나가는 총사령관 앞길을 가로막아!

정녕 영창에 갇히고 싶나?"


랭카스터가 소리를 냅다 질렀다.




"에드워드!!!"


순간 군터의 몸이 빳빳히 굳었다.


" 제로미..에드워드5세 폐하 말일쎄."



군터가 말위에서 이를 갈며 말했다.


"돌아가신 선왕 폐하의 존귀한 이름은 왜 전쟁터 한복판에서 들먹이는 것인가?"


랭키스터 백작이 할떡이며 말을 이었다.



"그...그게..사실 폐하는 살아계시네!"


군터의 눈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어느새 그의 무지막지한 바스타드 검날이 이미 랭카스터의 목에 붉은 색의 가는 실금을 만들었다.



"아무리 자네라도 감히 돌아가신 그분의 이름을 들먹이며 나를 희롱하는 것은 못참네."


어둡고 음침한 목소리가 낮게 깔려 군터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아냐! 아니라고. 군터.그게 아니라고!

실은 내...내가 달리아와 짜고 폐하를 죽은 척 연기시키고, 가짜 장례식을 벌려 진짜 에드워드5세는 해외로 빼돌렸네.

그리고 지금 폐하는 아라곤의 술리엔 황궁에 계시다네."


군터의 눈이 또한번 섬뜩하게 빛났다.



" 지금 네 말은 멀쩡한 브리태니아 국왕을 가짜로 죽여, 그것도 적의 심장부인 슐리엔에 갖다 놓았단 말이지?"



랭카스터 백작이 울음을 터트렸다.



"고...고의는 아니었네.군터.

제발 믿어줘! 흐흐흑.

폐하가 원했던 것은 국왕자리가 아닌'자유' 와 '사랑'이었네.

난 폐하가 평생 사랑하지도 않는 자와 궁전에 갇혀 생을 쓸쓸히 마감하게 하기 싫었어.

그건 정말 나의 진정한 충심이었어.믿어줘."



그제서야 군터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저 여우같은 계집 달리아라면 그러고도 남을 년이었다.


군터는 분노가 솟구쳐 순간 눈이 뒤집혔다.


울며 매달리는 랭카스터 백작을 발로 차버리고 말을 미친듯이 몰기 시작했다.


재빨리 군터의 뒤를 따르던 부관들은 곧 자신들의 상관이 전쟁터가 아닌 전혀 반대쪽으로 말을 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방향은 아라곤 제국의 수도 슐리엔으로 향하는 대도(大道) 로 연결된 곳으로 향해 있었다.


브리태니아 대군은 발칵 뒤집혔다.


브리태니아 역사에 없는 총사령관의 '탈영'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미친듯이 말을 몰며 다 씹어죽일 듯한 굳은 표정을 지었던 군터의 얼굴이 점차 풀리며, 이윽고 군터의 얼굴위로 희열에 가득찬 미소가 피어 올랐다.



'폐하! 내사랑 제로미가 살.아.있.다!

그는 지금의 나처럼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작은 그의 심장은 아직도 힘차게 뛰고 있다!'


죽은 자의 눈을 했던 군터의 잿빛 눈동자에 생기가 생며 빛을 반짝였다.


그는 더이상 죽으려는 자가 아니고, 살려는 자였다.


군터는 말고삐를 더욱 강하게 움켜잡으며 속으로 외쳤다.


' 폐하!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 군터가 폐하를 구하러 갑니다!'



******




한편, 줄리앙은 전쟁터에서 군사를 직접 지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정조대를 채워서라도 황후 제롬을 묶어놓고 오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으나,이미 제롬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애처가를 넘어 팔불출 남편이 된 그는 차마 제롬에게 어떠한 족쇄도 채우지 못한 채 석달이나, 격전지의 야전사령부에서 밤새고 적들과 대치하며 작전을 짜기 여념이 없었다.



솔직히 줄리앙에게 황제란 고달픈 직업이었다.


가진게 많은 만큼 지킬것도 많았다.


가진 것을 즐길 여유조차 없이 바빳다.


그중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단연코 자신의 황후 제롬이었다.


'애효. 얼굴이나 좀 덜 예쁘면...쯧.'



에누리없는 완벽한 미모의 황후를 들인 것이 그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제롬을 저 바람둥이 양아치이며, 게으름뱅이 월급쟁이 왕 율리우스에게 맡기고 왔으니,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 하아.지금쯤이면 한참 제로미랑 사랑을 나눈 후 아기공주를 품에 안고 단꿈에 빠져 딩굴거리고 있을 시간인데..이건 뭐 사서고생이 따로 없네.'


줄리앙은 계속 머리속에 제롬의 예쁜 얼굴이 맴돌아 자신의 작전참모들과 작전회의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때 막사밖이 어수선하더니, 연락병 하나가 급히 뛰어들어 왔다.


그는 줄리앙을 보자마자, 무릎이 까질 정도로 급하게 무릎을 꿇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폐하.

아라곤의 새로운 태양을 뵙습니다.

급보입니다!!"


"뭔데?"


줄리앙은 만사가 다 귀쟎아 성의없이 물었다.


"적...적장. 검은 늑대...아...아니 총사령관이..."


"아.난또 뭐라고 그 군터라는 천한 짐승새끼말이냐?

왜 그놈이 이 위대한 황제 줄리앙의 이름을 듣고 바지가 지려서 도망이라도 간게냐?"



줄리앙의 농담에 뒤에 좌우로 정렬해 서있던 장수들과 참모들이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줄리앙의 실없는 농담은 잠시나마 아라곤 군의 '검은 늑대 공포증'을 다소 해소시켜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연락병은 웃지않고 얼굴빛이 더 창백해졌다.


"어...어찌 아신겁니까? 폐하.

정말 그 유명한 군터 아르헨이 탈영을 했답니다."



"뭐?"


줄리앙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삭 가셨다.



줄리앙의 머리속엔 '군터의 탈영'과 동시에 자신의 어여쁜 황후 제롬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이 놈의 늑대 새끼가 드디어 제로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아챘군!

빠...빨리 슐리엔으로 귀환을..."


그때 또다시 이번엔  황실 근위대 복장의 기사 한명이 뛰어 들어왔다.


"급보입니다! 폐하. 황후 마마께서..."


신은 줄리앙에게 너무 많은 시련을 연달아 주셨다.


"뭐? 제로미가? 왜? 어디 다치신게냐?"


줄리앙은 불안해서 점프하듯 뛰어가 황실 기사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그게..다름아니라 황후께서 가출하셨습니다."


줄리앙이 놀라 뒤로 넘어갔다.


부관들이 잽싸게 달려와 줄리앙을 부축했다


기사는 편지 한장을 줄리앙에게 공손히 올렸다.


"황후께서 편지 한장을 폐하께 남기셨습니다."


편지지는 제롬을 닮은 작고 예쁜 파랑새가 그려진 예쁜 종이였다.


줄리앙이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열었다.


또박또박 귀여운 제롬의 글씨가 편지지위에 씌여 있었다.


「줄리앙에게.


사랑하는 줄리앙. 

심심하고 지루해서 도저히 슐리엔 황궁안에서 못견디겠어.

그래서 율리우스랑 잠깐 바깥세상에 놀러갔다 올깨.

오래는 안걸릴꺼야.한 3주정도?

저번에 못간 프로이젠 공화국 삐에로 축제에 이번엔 꼭 참가하려고!

그리고 여기저기 시장이나 마을 축제 구경하면서 신나게 놀다 꼭 돌아올깨.

너무 늦지않게 올꺼야! 너도 부럽지?

내가 돌아올때 줄리앙 선물 많이 많이 사가지고 올깨.

그러니깐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전쟁끝나고 일찍 오게 되면, 내 고양이들이랑 토끼, 그리고 내 애마 오르테가 밥 좀 챙겨줘.

꼭 부탁해!  줄리앙. 사랑해~~


- 제로미로부터 -      



줄리앙은 땅이 꺼질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남편은 마누라 먹여살린다고 이런 험한 전쟁터까지 나와 고생하는데, 정작 예쁜 황후는 정부란 놈이랑 밖으로 놀러나 다니고.


자기 발등 자기가 찍는다고 누굴 탓하겠는가?


그럼에도 제롬이 돌아올때 사가지고 온다는 선물 이야기로 들뜬 철없는 황제 줄리앙1세였다.




******



리차드2세는 불과 10살의 나이에 직접 전선에 나와 보고를 받고 있었다.


보고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오직 국왕과 조국에 몸바쳐 충성한 영웅 군터 아르헨이 모든것을 하루아침에 내팽겨치고 사병들도 안하는 탈영을 했다.


군터는 평소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로 유명했다.


"기어이 군터 경이 미쳤군.쯧.

군터 아르헨의 공작위를 거두고, 재산과 영지를 모두 몰수한다.

새 총사령관은 칼 자이거다. 알았나?

지체없이 바로 시행하도록."


"넷! 폐하"


"아.그리고..."


리차드2세가 깜박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상대편 줄리앙 황제의 동태는?"


 메신져가 잠시 망설였다.


"왜? 적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그..그게 갑자기 아라곤 황제가 군대를 모두 물리고 슐리엔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네 황후가 가출을 했다나 뭐라나..."


리차드2세는 어렸지만, 그 어떤 군주보다도 냉철하고도 냉혹했다.



"줄리앙.그자가 미친 여자를 황후로 들였나 보군.

세상에 어떤 황후가 가출을 한단 말인가?

그럼 이번 전쟁은 우리 브리태니아군의 승리로 기록하라.

전쟁부담금을 잔뜩 줄리앙에게 물려야 겠다.

이참에 전리품도 좀 챙기고."




회의를 마친 리차드2세는 홀로 국왕 막사안의 거울앞에 섰다.


거울안엔 16살은 족히 되어보이는 원숙한 외모의 건장한 10살의 국왕 리차드2세가 우뚝 서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의 키는 180cm에 육박해 이미 죽은 숙부 에드워드5세의 키를 넘긴지 오래였다.


'숙부님.보고 계십니까?

이 조카가 오늘 첫 전승(戰勝)을 거두었습니다.

앞으로 더 기대하세요.

당신의 조카 리차드가 검의 용이 되어 날아올라 이 대륙을 덮을 것입니다.'




리차드2세는 태어나자 마자 그의 생모를 잃었고, 그의 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이미 6살의 나이에 잃었다.


그의 생에서 가장 사랑한 이는 숙부 에드워드5세였다.


그가 인간을 식별할 수 있는 2살의 나이부터 그의 숙부는 그의 곁에 있었고, 그가 사랑에 눈을 뜬 그 순간 처음이자 마지막 '연인'으로서 각인하게된 숙부 에드워드5세가 바로 그의 눈앞에 서있었다.


그것은 그의 '운명'이었다.



상실의 아픔은 컸지만 그가 얻은 것도 있었다.



그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의 유일한 '약점'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브리태니아 국왕 리차드2세에게 더이상 두려운 것은 없었다.


세기의 영웅,「굶주린 사자」리차드2세에겐 후회도 더이상의 아픔도 없었고, 수치와 부끄러움 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사랑한 이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그의 영혼은 항상 굶주렸다.


그래서 그는 텅빈 그의 영혼의 밑바닥에서  항상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인간의 생에서 얻은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





명예,부, 그 모든 영광들.


그는 모든 대륙을 정벌하고 ,모든 왕국의 황제와 왕의 왕관과 권력을 찬탈했다.


 그는 숙부의 유언대로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역사의 길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계속 전진하는 그의 앞길에 거칠것이 아무도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가 사랑한 왕, 에드워드 5세.

   The End」




★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조아라 노블레스 작가. 회사원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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