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케일, 왜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하는거야.. 응?"


"저하.."


"케일, 제발.. 다 괜찮아 제발, 응? 내가 다 괜찮게 할게."


"저하. 저는 더 이상 저하 곁에 있지 않을겁니다."


"케일!"


"건강하십시오."


케일을 향해 뻗어지던 손이 무색하게 작은 용의 마법이 그를 실어갔다.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왜?

왜 날 떠난거야?

네가 날 떠날 수 있어?

내가 너 없이 못사는걸 알면서?

정말로 가능해?

아닌데.. 넌..


내려다본 두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그 텅빈 손 끝엔 아직도 네가 남아있는데

정작 그 손을 쥐었을 때 느껴지는 건 차갑게 식어버린 살덩이 뿐이다.

네 작은 온기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손을 풀었다가 다시 텅 비어버린 손이 믿어지지 않아 주먹을 쥐었다.


내가 보고 있는게 내 손이 맞나?

원래 이런 느낌이었나?


"아.."


손끝에 바람이 맴도는 것 같다.

그냥 빙글하고 도는 바람이 내 손마저 같이 휘감아 흔드는 걸까


세상이 이상하다.

갑자기 모든게 나에게서 한걸음 물러선 것 같다.

나는 똑바로 서서 한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케일.. 네가 날 정말로 떠날 수 있어? 내가 너 없이 무너질 걸 알면서도 상냥한 네가 떠날 수 있던거야?"


업무를 보는 곳이기에 과한 장식은 없었지만 그 자체로 빛을 내던 모든 것들이 색을 잃었다.

분명 색을 가지고 있으나 저건 이미 색이 없는 것이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건 아직도 텅 비어있는 두 손바닥 뿐


아직이다.

뭐가 아직인지 모르겠지만 모든게 아직이다.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리고 여린 곳 어느 순간을 꺼내와도 지금처럼 무력할 수 있을까.


내 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네 입술은 붉고 예뻤다.

입맞추던 그 입술에서 나온 말이 정말 이별일까,

이렇게 바보같고 초라하게 혼자 남겨진 내가 정말 나일까.


케일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뿌옇게 변해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에서까지 눈물을 흘리진 않을 텐데도 뿌옇게 흐려져 보이지 않는다.


지금 생각나는건 손을 뻗으면 닿아오던 너의 손이,

그 손을 쥐고 손가락 하나하나 마디마디 쓸어보면 투정부리듯 쏙 빠져버리는 그 손이,

모른척 다시 쥐면 조금 올라가던 입꼬리가,

작고 매끄러운 네 손톱마저 사랑스러워서,

나는,



다급하게 텔레포트진으로 향했다.


"헤니투스 영지로 연결해."


"저하? 갑자기 헤니투스 영지는 왜.."


"당장!"


"네!"


놀라 파득거리는 마법사는 급하게 진을 연결했다.

빛과 함께 이동 될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여전히 궁의 텔레포트진 위에 서있는 내모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내가 아직도 이곳에 있지?"


"그.. 그것이..무언가에 막혀있습니다. 그래서 이동이 불가합니다."


"하.. 그렇단말이지.."


안절부절 못하는 궁정 마법사를 뒤로 하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래, 너에겐 용이 있으니.

차단쯤이야 너무도 쉽겠지.

늘 네가 나에게 와서 

내가 너에게 가는 길이 이렇게 쉽게 막힐 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내가 아는 게 뭐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주저 앉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이런 상황에서조차 시선이 신경쓰이다니


"케일..케일.."


내가 할 수 있는게 뭐야?

너는 뭘 원해?

제발 작은 눈길이라도 좋아

내가 읽어낼께


생각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입밖으로 흘러나오는건 신음과도 같은 네 이름 뿐이었다.


"케일 헤니투스.."


너에게 나는 뭐였을까?

쓰기 좋은 패? 

그저 한 장의 패여도 네 손안의 패여야지.

로운의 황제?

네 손으로 세운 너의 황제였잖아..

사랑하는 연인?

아님, 사랑했던 연인?


이렇게 주저앉아 생각만 할 순 없는 일이다.


적어도 네가 내 눈앞에 있어야

그래야만 무엇이든 끝낼수 있을 것이다.


끝내?


"케..일.."


목안으로 울컥 무언가 올라왔다.

토악질이 나왔지만 입밖으로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해도 내가 지금 해야할 일은 하나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용히 왕궁을 나섰다.

말을 끌고 일단 헤니투스 영지로 달렸다.


정말로 이게 최선이라니까?

이래야만 해

이게 가장 맞는 일이야

지금 가장 우선시 해야 하는 일이라니까?

알베르, 일단 달려.

잠깐 자리 좀 비울 수 있지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 하고 있을거야

괜찮아


계속해서 말을 재촉했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에 섞여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았다.

웃음소리가 서서히 사라져 갈 수록 말의 속도도 느려졌다.


이미 해는 졌고, 말은 지쳤다.

쉬지않고 달렸지만 하룻새에 가기엔 헤니투스가는 아직도 먼 곳에 있었다.


그럼 내가 달리면?

말이 못달리면 내가 달리면 되잖아?


생각보다 몸이 빨랐고 나는 이미 뛰고 있었다.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내 생에 단 한번도 이렇게 달려본 적이 없으나

나는 이미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고 있다.


정령들의 웃음소리 였던 걸까?

귓가의 웃음소리가 다시 커졌다.


등 뒤에서 조금씩 빛이 밝아졌다.

나는 계속해서 그림자 속으로 내달렸다.


이 하루를 아직 끝내고 싶지 않았다.


끊임없이 내달렸지만 결국 태양 빛은 나를 감쌌고

빛을 느낀 그 순간 나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에 투박한 소리를 내며 두바퀴는 굴렀다.

넘어진 그대로 뻗어 누워 밝아지는 하늘을 원망스레 보았다.


온몸이 욱씬거렸다.

뭐가 서러운지도 모른채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흙바닥에 구르고 드러누워 울고 있는게 황제라는 걸 그 누가 알까?

절대로 알면 안되지.


머리는 차가웠으나 온 몸이 뜨거웠다.

뱉어 내야만 했다.

억울하고 서러웠다.


언젠가 잠행하다 보았던 어린아이처럼,

모든것이 서럽고 억울하단 듯이 울던 아이는 어떻게 울음을 그쳤더라.


"저하.."


"흐..으으.."


들릴리 없는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이젠 환청인가?

어이가 없어져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눈물도 흐느적 거리는 웃음소리도 어느것도 제어할 수 없었다.

내가 미친건가?


"알베르."


그래, 케일.


"알베르."


그래 알겠다니까?


"알베르!"


환청주제에 화도 낸다.

그래, 속아줄께.

그 목소리로 말하는데 환청이면 어때.


고개를 돌리자 환청에 이어 환각도 따라왔다.


저 표정은 한번도 못 본건데


"케일, 왜 화가났어?"


"..."


"케일, 왜 울고있어?"


"...당신"


"케일, 내가 포기할께. 이제 바보같은 짓 하지 않을께"


"정말.."


"그러니까, 응? 울지마 케일. 나는 네가 울면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모르겠어."


"황제가 궁에서 사라지다니 제정신이십니까? 타샤가 다급하게 절 찾았습니다. 중간에 말은 왜 버리고 달린겁니까? 거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말만 남아있는걸 발견한 제가 얼마나 놀랐을진 생각이 안되십니까?"


"내가 여기있는건 어떻게 알았어?"


 "정령들이 알려줬습니다."


"이야~ 우리 케일 이젠 정령도 보여? 대단하네~"


"얼른 일어나세요. 무슨 꼴입니까 그게. "


"케일~ 케일아~ 우리 케일."


"말 들으면서도 설마해서 사람들 멀리 두고 혼자 와서 다행이지 꼴이 그게 뭡니까?"


기울어진 고개를 따라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케일아~ 큰일난 것 같다. 나 미쳤나봐."


"그래보이십니다."


"응, 눈물도 안 멈추고, 생각도 안된다."


"일단 일어나서,"


"굴러서 온몸이 아픈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안느껴지는 것 같아."


"..."


"나 혹시 공중에 떠있나? 일어나면 멀리 날아가버릴 것 같아."


"알베르.."


"응, 케일."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이만 일어나서 정리하고 돌아가십시오."


"그래, 그래야겠지."


"라온 불러서 바로 보내드릴 테니까."


"케일, 나중에, 나중에 한번만 만나러가도 될까?"


"..."


"그때, 딱 한번만 웃어주라."


"..."


"나는 그걸로 너를 기억할거야."


"네가 너무 보고싶을 때, 너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고 싶어."


"반짝이는 암갈색 눈도, 찡긋거리는 코도, 올라가던 입꼬리도, 전부."


"황제고 뭐고 다 의미없어진 것 같아질 때, 그 때도 너를 떠올릴거야."


"네가 그곳에서 웃고있을테니까."


"그러니까, 내게 마지막 추억을 줄래?"


껍데기만 남은게 이런 기분일까?

속이 전부 타버리고 새카만 재가 되어, 부서지고 으쓰러져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면서

그런 주제에 멀쩡한 껍데기라도 유지하고 있는게


"케일, 나는 괜찮아."


"정말 너무 아픈데, 그래도 괜찮아."


"그러니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너를 계속 사랑해도 될까?"


언젠가 단 한번, 부르면 꼭 찾아오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케일은 제입으로 내뱉은 약속은 꼭 지키는 녀석이니 안심이 됐다.


언젠가 한번은 널 볼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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