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첫사랑

W. PAYA


1.

너는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사는 세계가 너무 달랐고, 나에게 너는 너무나 먼 사람이었다.

친구임에도 너와 닿을 수 없었다. 더 가까이 닿으려 다가가면 멀어지는 너이기에, 포기는 빨랐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너와 나. 우리 둘.


우리의 결말은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2.

스스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자각한 건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지금처럼 매미가 세상에 나와 힘차게 울어대고, 해가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더운 여름날이었다.


「안녕. 여기서 뭐 해?」


그날, 너를 만났다.

그때부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혼자만의 비밀이 생겼다. 죽어서까지도 말하지 못할,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비밀이.


“덥다.”

“…덥다면서 은근슬쩍 달라붙지 마.”


너에게는 장난일지 몰라도 나는 그 조그만 것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만다. 너에게 들킬까, 언제나 조마조마한 마음뿐이다.


“냉정해!”

“바보냐, 넌.”


서로 키득키득 웃으며 옥상 한구석 그늘에 앉았고, 너는 곧 벌러덩 누워버렸다.


“조심해. 팬티 보여.”

“히히. 괜찮아, 괜찮아.”

“…덮어, 칠칠아.”

“으, 사랑해! 역시 너밖에 없어.”


두근두근. 가슴이 떨렸다.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매미가 운다. 해는 여전히 쨍쨍했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혹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네가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그저 너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좋았다.


“아아, 잠 온다.”

“자면 나 혼자 내려간다?”

“우, 몰라!”


네가 조용해졌다. 몸을 일으켜 눈을 감은 너를 보았다.


“…자는 거야?”


너는 대답이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너의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너와 닮아 있는 머리카락에, 웃음이 났다.

…너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전하지 못하는 마음이 아른아른 주변을 맴돈다.


“……좋아해.”


끝끝내 너에게 전하지 못할 마음이겠지만.

결코, 너에게 말할 수 없는 마음이겠지만.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었다.


너를 좋아해. 그 누구보다도.


3.

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너를 마음에 담은 지 2년하고도 6개월. 졸업을 앞두고 생긴 일이었다. 너와 나는 멀어졌고, 나는 더는 너와 가까워질 수 없었다. 너는 행복해 보였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그것이 못내 슬펐다.


“졸업, 축하해.”

“…너도.”


너는 마지막까지도 사랑스러워, 눈물이 났다. 손을 뻗어 너의 긴 머리카락을 만져봤다. 그것은 너를 닮아 있어, 눈물이 났다.


“잘, 지내.”

“그래. …안녕.”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네가 허무해.

전하지 못한 마음이 아프다.

너의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여름도 아니건만,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다.


4.

“할머니!”


도도. 그 조그마한 다리로 달려와 품에 안긴다. 할머니, 할머니!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할머니 보고 싶었어!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 미소가 지어진다.


“나도 우리 아가 많이 보고 싶었지.”

“정말?”

“그럼.”

“진짜지? 봐, 엄마! 할머니도 나 보고 싶었다고 하잖아!”


내 품에서 내려와 당당하게 허리에 고사리 같은 손을 올리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딸은 그런 손녀의 모습에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너, 할머니 힘들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치-이. 내가 무슨 애야?”

“엄마도 그래요. 너무 오냐오냐하면 애가 버릇 나빠진다고요.”

“그래그래. 오느라 고생했다.”


말을 돌리며 손녀의 작은 손을 잡았다. 뒤에서 못 말려, 진짜. 한숨 섞인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손녀는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그럼 엄마, 부탁할게요. 넌 할머니랑 재밌게 놀고 있어.”

“그래. 다녀오렴.”

“응! 다녀오세요!”


나도 벌써 늙었나, 싶기도 했다. 시간이 참 빠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워낙 어른스러운 아이라, 편하게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집안일을 끝내고 앉아 쉬고 있는데 아이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뛰어왔다.


“할머니!”

“응?”

“이 사진, 엄마야?”


아이가 가지고 온 사진은 추억이 있었다. 사진 속에 쑥스러워하는 나와 그런 나에게 팔짱을 끼고 있는 네가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사진일까.


“…할머니란다.”

“진짜? 엄청나게 예뻐!”

“…그래, 그래.”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네가 있었다.


“…할머니, 울어?”


딸랑. 딸랑. 멀리서 여름을 알리는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5.

너의 무엇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아닌 너였기에 좋아했다 대답하고 싶다.

그저 너이기에. 너라서. 너이기 때문에, 너를 사랑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에게 감성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를 좋아하기 전까지는. 너는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폭풍을 만들고 가버렸다.


여름을 싫어했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 너를 만난 여름이 좋아졌다. 여름은 너를 닮아 있었다. 너는 마치 무더운 여름 같았다. 햇빛이 너무 밝아서,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아.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네가 좋았다. 거짓말을 하지 못해 난감해하는 모습이 좋았다. 나와 달리 다양한 감정표현을 하는 네가 예뻤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래. 사랑이었다. 그 모든 게.

…사랑이었구나.


6.

사랑을 했었다.

열일곱. 풋풋한 첫사랑이었다.


그것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의 이야기.

더운 여름날, 첫사랑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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