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해리는 기운 없이 다니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티가 났다. 그럼에도 수업은 차질 없이 진행해서, 10월 하순에 들어설 무렵에는 미리 예고했던 대로 패트로누스를 가르칠 만큼 진도가 나갔다. 그 날 해리는 다음 주부터는 드디어 패트로누스 마법에 들어갈 것을 예고하며 필요한 사람은 교과서를 지참하는 것도 권장하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 짓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전에는 수업이 끝나고도 한동안 교실에 남아서 학생들과 이야기하던 해리였기 때문에 요 며칠간은 확실히 평소보다 어색해 하는 것이 보였다.

  “찔리니까 피하는 거지 뭐.”

  그리고 제임스는 간단하게 진단을 내렸다. 무슨 소리냐고 묻는 리무스에게 제임스는 며칠 전에 퀴디치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리무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해리의 평소 태도라든가 수업하는 걸 보면 별로 거짓말을 잘 하거나 즐겨할 것 같은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시리우스도 제임스의 말에서 한 가지는 정정해주었다.

  “적어도 수색꾼이었다는 건 정말일 것 같던데.”

  제임스가 돌아보자 시리우스는 해리가 하늘 거의 끝에 있던 제임스를 단번에 찾아냈던 것을 말해주었다. ‘제법이더라.’ 하는 짤막한 평을 시리우스가 곁들이지 않아도, 그 때 자신이 날았던 고도와 속도에 대해서는 제임스가 더 잘 알았다. 그 정도면 다른 건 몰라도 시야는 꽤 넓은 모양이다. 차마 그걸 부정하지는 못하고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는 제임스를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한 리무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런 얼굴을 하고 퀴디치 못하면 그것도 문제 있는 거 아냐?”
  “뭐, 그것도 그렇군. 뭐랄까, 나는 것밖에 못할 것처럼 생겼어.”

  시리우스까지 거기에 동조하고 나오자 제임스는 배신당한 것 같은 표정으로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너네 지금 나 욕하는 거야?”
  “너? 아니, 에반스 말하는 건데.”
  “뭐야 제임스, 너랑 안 닮았다며?”

  인정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제임스는 결국 불만스럽게 입을 다물었지만 그것은 친구들의 웃음을 자아낼 뿐이었다.

  “그럼 난 도서관에 들렀다 갈게.”

  갈림길에서 리무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한 발짝 방향을 틀자 친구들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어? 리무스 너 과제는 다 끝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그래서 주말에 한가하다며.”

  리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주 동안 쏟아지는 과제 속에서 허우적대며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던 리무스였지만 힘들어도 미리미리 해둔 덕분에 이번 주는 모처럼 한가한 주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지난달에 제출 마감날짜를 봐가며 약간 여유를 두었더니 결과적으로 휴일을 온전히 휴일로 삼을 수가 없었던 경험을 겪은 탓이기도 하거니와, 사실 이번 주 주말이 호그스미드 외출이 허가되는 날이라 날짜를 맞추려고 좀 무리한 것도 있었다.

  “응, 그러니까 오늘 도서관에 가야지, 주말에 나가려면.”
  “왜?”

  주말에 호그스미드에 간다는 것과 오늘 도서관에 간다는 것 사이가 ‘그러니까’ 라는 접속사로 연결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들에게, 리무스는 패트로누스에 대한 내용이 5학년 교과서에는 간략하게 소개 수준으로만 나와 있으니 그것에 대해 추가로 더 찾아보러 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두 자로 예습이라고 요약해 주었더니 친구들은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지만 왜 그러는지는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다.

  “대체 왜?”
  “아, 그리고 너희들한테는 내가 없는 게 더 움직이기 편하지 않아? ‘그거’ 아직도 안됐다면서.”

  리무스는 한 마디로 간단하게 친구들의 입을 막았다. 내친 김에 ‘나 정말 기대한다?’ 하고 추가로 쐐기를 박아두자 친구들의 얼굴에 애매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리무스는 작게 웃었다.

  “그건 그거고…… 근데 오늘 아니더라도 다음 주에도 찾아 볼 시간 정도는 충분히 있지 않아?”
  “글쎄. 솔직히 말하면 난 시간이 충분한지는 잘 모르겠어. 오히려 이제 3년 남짓밖에 안 남았나 싶은걸.”
  “3년이면…… 우리 졸업할 때까지?”
  “응.”
  “졸업할 때까지 찾아볼 시간이 부족하다고?”

  친구들의 얼굴에는 오늘따라 리무스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리무스는 더 설명해주는 대신 웃으면서 ‘그럼 다녀올게.’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5학년이 되면서 리무스는 정말로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앞으로 3년이 지나고 호그와트를 졸업한 후의 자신이 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지 리무스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 그러니까 마음껏 궁금해 하고 필요한 만큼 찾아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닐 거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남들보다 한참 어렵게 시작해야 하는 만큼 리무스는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준비를 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리는 지금 시간이 즐겁고 소중한 거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리무스 역시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하는 호그스미드 외출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패트로누스 마법을 비롯한 고급 마법에 관한 서적이 비치된 서가는 도서관에서도 꽤 깊은 곳에 있었다. 어차피 NEWTs를 준비하면서는 뻔질나게 드나들게 될 곳이지만 미리 와보는 기분도 꽤 괜찮았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며 리무스는 근처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관련서가 사이로 들어갔다.

  「어둠의 마법 허점 찌르기」, 「어둠의 힘 : 자기 방어를 위한 지침서」, 「실용 방어 마법과 사용법」, 책 제목을 눈으로 훑으면서 리무스는 적당히 아무거나 한 권 뽑아서 뒤적여 보았다. ‘패트로누스 마법의 기원’, ‘패트로누스 동물의 종류에 따른 특성과 성향’, ‘실전 패트로누스 마법’, 챕터 자체도 많았고 그 분량도 꽤 많아서 이거 올해 안에 다 배울 수는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집었던 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을 꺼내서 목차를 찾아보는 식으로 대충 훑어보던 리무스는 같은 서가 안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지나가려나, 아니면 조금 비켜줘야 하나 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리무스는 그가 스네이프임을 알아보았다. 스네이프 역시 리무스를 알아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비록 리무스와 스네이프가 직접 갈등의 당사자가 되어 부딪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사이가 될 관계도 아니었다. 다만 도서관에서만큼은 서로의 목적이 일치했기에 편의상 암묵적으로 서로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오늘 여기에 왔다는 것은 십중팔구 자기와 같은 목적일 거라 짐작한 리무스는 일단 눈여겨보았던 책을 뽑아들고 옆으로 비켜주었다. 스네이프도 내키지 않는다는 걸음으로 리무스가 지나갈 자리를 내주었다.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고 나서야 리무스는 건너편에 아까는 없던 가방이 놓인 것을 발견했다. 주인이 누군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또 그렇다고 이미 잡은 자리를 옮길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해서 리무스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속표지의 삽화에서 늙은 마법사가 지팡이 끝에서 은색의 빛무리를 내쏘고 있었다. 결국 패트로누스란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행복한 기억에서 나오는 선한 에너지의 집결체였다. 대단히 행복한 기억에 집중할 것을 몇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는 페이지를 보다가 리무스는 옆에 펴두었던 빈 양피지에 ‘a very happy memory’ 라고 옮겨 적고 그 밑에 밑줄을 두 번 그었다.

  ‘대단히 행복한 기억이라.’

  리무스는 깃펜을 내려놓고 자신이 옮겨 적은 글자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패트로누스 마법의 성공 여부도, 그 위력도 그 사람이 가진 행복한 기억에 달려있다는 말은 얼핏 낭만적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애매한 문제였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행복의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본인이 느낀 행복으로 한정한다고 하고, 그러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패트로누스 마법을 쓸 수 없는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나는 행복한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리무스는 다시 깃펜을 들어 자신이 쓴 글씨 옆에 물음표를 연이어 두 개 그리고는,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책을 한 무더기 안고 돌아오던 스네이프도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리무스를 보고 멈칫했다. 그러나 리무스가 앉아있는데 굳이 자기가 옮길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에 스네이프 역시 맡아두었던 자리에 책을 내려두고 앉았다. 흘끔 리무스를 쳐다보던 스네이프의 시선이 무심코 리무스의 손, 정확히는 그 아래 펼쳐진 양피지와 거기 쓰여 있는 글씨에 가 닿았다. ‘대단히 행복한 기억’이 패트로누스의 발동 조건이라는 건 스네이프도 상식선에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저렇게 따로 빼서 써놓은 것을 보니 새삼스럽게 의미가 와 닿았다. 스네이프는 가져온 책을 펼쳐보는 것도 잠시 잊고는 눈을 가늘게 한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 묻는다면 리무스는 ‘행복하다’ 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분히 현재 시점에 고정한 대답이었고, 리무스가 지금도 안고 있고 앞으로도 안고 갈 고민들을 더한다면 리무스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행복한 기억이 있느냐고 한정지어서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그렇다’였다. 리무스에게는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존재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이 있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걸고 리무스는 ‘행복하지 않지 않다’ 고 결론을 내렸다.

  기분 좋게 고개를 들던 리무스의 눈에 미간을 좁히고 고민하는 스네이프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상황에서 고민할 만한 것이라면 어쩐지 방금 전의 자신과 같은 주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네이프 역시 고민이 긴 걸 보면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별로 서로를 걱정해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악담을 쏟아 붓는 취미도 없어서, 리무스는 그도 좋은 기억을 찾아내기를 마음속으로나마 잠시 빌어주고는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며 도서관을 나섰다.



  모처럼의 호그스미드 외출은 즐거웠지만 몸은 무척 피곤했다. 제임스와 시리우스가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서 새로 나온 장난감들을 잔뜩 사는 것을 본 리무스는 다음 주에는 학교가 아수라장이 될 것을 예상하고 아마도 주된 피해자가 될 슬리데린 학생들을 애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리무스는 그 날 저녁 식사시간에 바로 알았다. 음식과 더불어 테이블에 나타난 음료에서는 평소처럼 달달하면서도 어딘가 밍밍한 호박주스가 아니라 탄산이 많이 섞인 버터맥주와 같은 맛이 났다.

  리무스처럼 한 모금 맛을 본 후 얼굴을 찌푸리며 바로 잔을 내려놓는 학생도 있었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은 바뀐 음료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즐겁게 마시고 있었다. 안 그래도 호그스미드에서 놀다온 직후라 한껏 기분이 고조되어 있던 학생들의 얼굴이 점차 붉어지고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리만큼 왁자하고 어지러워진 분위기에 교수들도 차츰 의심이 들기 시작한 모양이다. 부산한 중에 급기야 몇몇 학생이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서 일어나질 못하자 플리트윅이 학생들 테이블로 내려와서 가까운 곳에 놓여있는 잔을 들어 냄새를 맡고는 한 모금 마셔보더니 깜짝 놀라 외쳤다.

  “술이잖아?!”
  “뭐라고요?”

  그 말에 교수진에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물론 학생들 자리도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목청을 돋워 꽥꽥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을 헤치고 학생 테이블로 온 맥고나걸은 마찬가지로 잔에 담긴 음료의 냄새를 확인하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제임스와 시리우스를 불러 세웠다.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미네르바 교수님, 왜 늘 우리를 범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너희들이 한 게 아니라는 소리니?”
  “우린 그냥 마실 것을 선택할 기회를 넓혀줬을 뿐인걸요.”

  맥고나걸은 혈압이 오르는 듯 날카로운 눈매로 둘을 쏘아보았지만 일단은 잔뜩 취해서 해롱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한 학생들을 어떻게든 수습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듯 옷자락을 쥐고 급한 걸음으로 휘청거리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오 멀린이여, 저 악동들은 대체 부엌엔 어떻게 들어갔담?”

  저만치서 들리는 맥고나걸의 푸념에 제임스와 시리우스가 비밀스럽게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어떻게 들어갔는지에 대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리무스는 대신 다른 것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부엌엔 언제 갔다 온 거야?”
  “오자마자 바로.”

  그러더니 둘은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괜찮네? 떨이라서 효과 별로일 줄 알고 왕창 넣었더니.”
  “뭘 넣었는데?”
  “주정뱅이 사탕. 허니듀크에서 팔더라고.”

  그러면서 제임스는 주머니에서 남은 사탕 몇 개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허니듀크 특유의 포장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미성년 마법사를 위한 어른스러운 아이템 주정뱅이 사탕 버터맥주 맛, 15분 지속.’ 이라고 쓰여 있는 걸 용케 읽고 리무스는 피식 웃었다.

  “이런 것도 있었구나.”
  “그러니까. 안 팔릴 만하지? 마실 거면 진짜를 마시지 누가 이런 걸 쓴담.”

  낄낄대는 친구들 뒤로 이미 몇몇 학생들은 사탕의 효과가 다 된 듯 불콰했던 얼굴이 원래 색으로 돌아와서는 멀쩡하게 자기 발로 일어나고 있었다. 학생들이 틀림없이 취했다고 생각하고 부축하려던 교수들은 벌써 깨는 것에 어리둥절해하며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주위에서 대충 상황을 전해들은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이번에는 당황한 교수들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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