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양도

6. 전초전(3)




혼비백산이 된 이안은 휘청휘청 밖으로 나섰다. 그의 발이 그리는 궤도는 그가 걸음을 내디딜수록 휘어지고 구부러져 그를 멀쩡히 지탱하지 못했다. 삽시간에 무너지는 이안을 부축해 어깨를 감싸 안는데 마구잡이식으로 흩어지는 호흡이 목덜미에 닿았다. 뜨겁고 습한 숨이었다.

적막했던 공간에 이안이 물을 삼키는 소리가 퍼진다. 달빛에 반사되어 그림자로 어렴풋이 보이는 코끝이 거의 천장을 향할 때까지 목을 꺾어 물을 마신 이안이 이내 둔한 속도로 나와 가까워진다. 그가 여전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내가 등을 기댄 문에 마찬가지로 등을 기대 앉았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들리는 숨은 아까보다는 덜 뜨겁고 덜 습했다.

“악몽 꿨어?”

“······응.”

무슨 꿈이었냐고 다시 물으려다가 마음을 접었다. 이런 시대에 꾸는 악몽은 한정적이었다. 나는 집에서 도망치고 몇 주 동안 매일 같은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우리 집에 들어갔고 <개>가 되지 않은 그들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품 안에 고이 숨겨 가지고 온 식량을 그들에게 주었고 그들은 내가 구한 식량을 먹어치우자마자 퇴행했다. 그다음부터는 꿈이었지만 동시에 현실이기도 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현실에서는 창우의 집에 다다랐는데 꿈에서는 한참을 달려도 다다를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엄마와 동생의 잔상처럼, 창우를 괴롭히는 텅 빈 길거리처럼 이안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개들>에 의해 파생된 무형의 것이 존재할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화자에게도 청자에게도 괴로울 뿐이었다.

적막한 공간엔 이제 창 너머로 빗방울이 추락하는 소리만 퍼진다.

“······그날도 비가 왔어.”

곧게 떨어지는 빗소리 사이로 이안의 음성이 나지막하게 도달해 왔다.

“기지 사람들이 죽었다던 그날 말이야.”

이런 이야기는 화자에게도 청자에게도 괴로울 뿐이지만······ 대개 괴로움은 나눌수록 덜어진다.





아악!

그날 벽에 기대어 졸고 있던 나는 그 비명에 눈을 떴다.

“얘 왜 이래? 야, 정신 차려!”

“어떡해? 기절시킬까?”

반쯤 뜨인 시야로 버둥거리는 팔과 다리가 보인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그 팔과 다리를 붙잡아 몸부림치는 이를 고정시키는 것도 보이고, 발길질이 거세지자 그의 다리를 잡고 있던 이가 신경질적으로 그를 걷어차는 것도 보인다. 한밤중에 일어나는 발작 같은 건 이제 익숙했다. 이런 건 기지에서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지금 기지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사정으로, 각자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왔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개>가 나타난 지 반년 만에 집을 버리고 도망친 기구한 사람들이다. 집을 버리고 도망치게 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거기에도 공통점은 있다. 이들은 대개 사랑하던 이가 <개>가 되어 그를 피해 도망쳐 왔다.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지만 그런 부류에 해당하는 다른 이들은 자주 악몽을 꿨고, 밤마다 허공에 소리를 질렀다.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아무래도 침대에 가서 자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귓가에 꽂히는 고성과 주뼛대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장대비 소리가 듣기 싫었다.

이제 완전히 뜨인 시야로 버둥거리는 팔과 다리가 보인다. 팔과 다리뿐만 아니라 온몸 전체가 경련하는 것도 보이고, 다리를 잡고 있던 이의 손이 기절시키려는 듯 다리에서 목으로 올라가는 것도 보인다. 한밤중에 일어나는 발작을 제압하는 것도 이제 익숙했다. 이런 건 기지에서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언제나처럼 다리를 잡고 있던 이의 손이 다리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등으로, 등에서 목으로, 목에서······

······

제이?

그런데 손을 타고 올라간 곳에 있는 뒤통수는 익숙한 게 아니었다. 이건 기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제이는 기지에 오고 단 한 번도 발작한 적이 없었다.

“잠깐······”

“아악! 이 미친 새끼가!”

고통에 펄떡이던 몸부림이 멎더니 제이가 순식간에 목을 졸라 기절시키려던 남자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흥분한 얼굴의 남자가 제이의 얼굴을 향해 발을 휘두르는데,

“물러나!”

허공에 발을 휘두른 남자가 물어뜯긴 손가락을 감싸쥐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선다. 그러자 사람들 틈에 가려져 자세히 보이지 않던 제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녹아내리는 얼굴의 제이가 나를 본다.

“어떡, 어떻게 해?”

그의 얼굴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뭘 어떡해! 죽여야지.”

꺄아아아악!

위층에서 누군가 지른 비명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왔다.



기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제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수 번의 번식이 추가로 일어났다. <개들>의 확산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이제 누가 사람이고 누가 <개>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누가 사람이고 누가 <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개>로 보이는 인간들을 살해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자 유일한 것이었다. 의무실에서 발생한 <개>가 다른 층에까지 퍼지지 않도록 계단을 통제하러 가는데 위층에서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도망쳐 내려왔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패닉 상태가 된 채 앞다투어 도망쳤다. 그 꽁무니에는 생존자들을 쫓는 <개들>이 나타났다.

그때 아수라장이 된 의무실에서 총 소리가 났다.

위층에서 내려오는 <개들>을 죽이며 나는 그 총에 맞은 <개>가 제이만 아니기를 빌었다.



의무실을 포함해 기지에 쌓인 시체는 모두 트럭으로 운반됐다. 시체를 등에 업고 등에 업은 것을 다시 짐칸에 던지는 행위를 반복하자 순식간에 시체로 산을 이루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 시체 무더기 속에서 제이를 봤다. 수십 명이 엉겨붙은 채 잠들어 있는 그 공동묘지에서 제이의 흔적을 찾았다. 그날은 사태가 일어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고 사태가 일어났을 때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해서 줄기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사태가 진정되고 가장 먼저 제이의 시체를 찾아 헤맸지만 의무실에 남은 시체 중 제이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는 이미 제임스와 자매가 의무실에서 트럭까지 몇 번이나 왕복한 뒤였기에 제이를 찾아 트럭으로 향했지만 이미 모든 층에서 나르는 시체들로 뒤덮인 곳에서 제이의 얼굴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체가 이루어낸 산 위로 빗물이 떨어졌다. 평온하게 죽어 있는 사람들의 몸 위로 물이 흐르는 걸 보면서 이기적이게도 제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는 게 훨씬 덜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죄스럽게도 그다음 날 나는 제이의 마지막 모습을 봤다. 산처럼 쌓인 시체 사이로 튀어나온 팔 한 쪽이 그것이었다. 울긋불긋하고 부르튼 손은 명백히 <개>의 것이었으나 약지에 감싸인 반지는 제이의 것이었다. 나는 그 손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운전을 가야 한다는 4층 사람이 머뭇거리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나는 손가락이 부어올라 잘 빠지지 않는 반지를 간신히 빼내 다시 의무실로 돌아갔다. 제이가 약지에 끼고 있던 반지는 중지에 딱 맞았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안은 감정을 삭히는 듯 천장을 향해 고개를 거의 수직으로 꺾고 있었다. 눈에 괴어 있던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게 달빛에 비쳐 어렴풋이 보였다. 무릎을 감싸고 있는 왼손 중지에 끼워진 반지와 기이하게 울렁거리는 입꼬리, 변칙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가슴 같은 것들이 눈동자에 각인되듯 박힌다.

“제이도 화주에서 왔어. 폐쇄된 화주에서 도망치다가 우연히 흘러들어왔다던 여기에서 처음 만났지.”

“······.”

“그땐 우리 둘 다 너무 어리석었어.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힘든 세상에서 지킬 걸 만들었잖아.”

“······.”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가는 속에서도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니 이상하지.”

<너무 정 붙이진 마.> <당장 내일 <개>가 된 저들이 너를 <개>로 만들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어.> <죽일 수 있을 정도로만 정 들란 소리야. 그게 누구든.> 이안······ 당신이 내게 이렇게 말했을 때 당신이 얼마나 처절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일상적인 조언처럼 수더분하게 내뱉어진 말이 이렇게 처참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비참했다. 막힌 건 말문인데 말문이 기도라도 되는 듯이 호흡하는 게 버겁다.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는 일련의 과정이 힘에 부친다. 얼마 전 이 이야기의 일각을 들었을 때 나는 위로하는 방법을 잊어 그저 현저하게 느려진 그의 발걸음에 맞추어 더디게 발을 내딛기만 했지만······

방법을 잊었어도 이안을 위로해야 했다.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가 더는······ 죽은 이들을 위해 죽지 않기를 바랐다. 마침 창문을 부술 듯이 내리꽂히던 빗방울은 잦아들었고 담 너머에서는 동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기 봐.”

잘게 떨리는 이안의 손을 잡았다.

두 손이 서로의 진동수를 닮아가다가 이내 정지한다.

“비 그쳤어.”

”······.”

”죄책감 가지지 마.”

”······.”

”죽은 사람들은 거기서 보내 주라고 했잖아.”

맞잡은 손 위로 이안의 턱 끝에서부터 흘러내린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안은 사람들이 일어나기 직전에 눈을 감았다. 가장 먼저 일어난 제임스가 이안을 안아 옮겼다. 밝은 데에서 내려다 본 이안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고 제임스는 사정을 안다는 듯이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잠든 이안을 보고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와 별개로 비가 그쳤으니 우리에겐 할 게 있었다. 얼마 전 표독스러운 얼굴로 쏘아붙이고 간 3층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날 아침 식량을 구해 오겠다고 의무실을 나선 이는 윤정이었고······

그녀는 다음 날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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