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보스 08

W. 마음에 닿았네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바쁘네.”

“큰 형님 병문안 가야...아.....”


   옆에서 검은 정장을 입던 다니엘의 눈치에 성우가 당황했다. 지성에게는 말을 하지 말라는 당부를 전달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지성이 차갑게 물었다. 제가 한 말실수와 더불어 지성의 생소한 말투에 당황해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말 그대로다. 성운 형님 병문안 간다.”

“...다쳤어? 많이?”


   대신해 다니엘이 한숨을 짧게 쉬며 답했다. 누가 보면 재난이라도 닥친 것이라 추측할 법한 걱정스러움이 팔자로 처진 눈썹과 까맣게 일렁이는 눈동자, 살짝 떨리는 입술, 서서히 창백해지는 피부, 그리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목젖 곳곳에 깃들어있었다.


“가봐야 안다.”

“나도 갈래.”


다니엘은 난감했다. 그렇지만 실신할 것 같은 윤지성을 놔두고 갈 수가 없어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에 지성과 같이 남아 있기로 되어 있던 지훈도 외출 준비를 했다.


약속을 하나 했다. 다치면 꼭 연락하기로. 신변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숨기는 거 없기로 하자고. 하지만 100프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윤지성과 하성운은 사는 세계가 달랐고 살아가는 방식도 달랐기에. 무슨 정신으로 챙겨 입었는지 모를 외투를 입고 같이 저택을 나서는데 우진이 마중 나와 있다. 그러고는 흔들리지 않는 표정으로 투박하게 말한다.


“나랑 있자, 형은.”

“안 비켜?”

“지성 형, 지성 형! 성운 형, 완전 팔팔해.”


   우진은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성운을 부를 때 꼭 형님이라고 했다. 형이라 부르면 조직 위계를 무너뜨리는 것 같고, 제가 서 있는 세상이 어딘지 헷갈릴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온전히 제 가족인 지성과 성운이 함께 있을 때 외에는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팔팔한데 왜 날 안 만나?!”

“폼이 안 산다잖아.”

“그깟 폼이 지금 나보다 중요하다고?”


말도 안 되는 핑계인거 알지만 우진이 지성의 팔을 붙든 아귀에 힘을 더 주었다.


“그 형 뽈뽈뽈 돌아댕기가 빨빨빨 형만큼이나 조잘대서 시끄러워서 여기 온 거니까. 가지 말라면 가지 좀 말고 응? 나이는 얼굴로 먹고 정신은 먹다 만 것도 아니고, 내 말대로 해!!”

“박우진!!!”

“나랑 있자고 좀!!!!”


   말은 가벼운데 우진의 언성은 높아져만 갔다. 눈치 빠른 윤지성이 모를 일 없다. 우진은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지성도 성운을 보러 가야겠다는 의지가 강했으나 화를 내는 순간에 심각해진 그 찰나의 표정에 뭔가 더 있구나, 싶었던 지성이 형으로서 위엄을 무너뜨리는 것 같기도 해 정말 싫지만 져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막아서는 데에는 심각한 무언가가 있으니까. 하지만 싱숭생숭해지고 뾰로통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어 토라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쾅- 하는 방문 닫히는 소리는 사춘기 10대 여고생을 떠올리게 했다.


“형님이 할 말 있는 거 같으니까 꼬마보스랑은 가 봐요.”


어찌 되었든 지성을 막은 것에 한 시름 놓으며 무게를 잡은 그가 시간 지체하지 말라며 그를 재촉했다. 지성의 화를 풀어야 했기에 그는 지성의 방문을 노크했다. 답은 없었다. 그는 그대로 주저앉아 방문에 기대었다.


“형, 화내서 미안.”



“근데 성운 형, 지이이이인짜루 막 못 일어나고 밥 못 먹을 정도로 누워있는 거 저어어어얼 대로 아이다.”



“내가 거짓말은 안 하는 거 알잖아.”



“형 뻔히 울 거 아니까. 말했잖아. 형이 형을 내칠 것도 아니고 거기서 다정하게 안아줄 수도 없을 건데.”


   조직원들이 병문안 온답시고 들락날락거릴 텐데 거기서 울고 있을 지성이나 안 달래줄 수도 없고 해서 달래줄 성운의 모습을 상상한 우진은 참 이래저래 면(面)이 크게 안 설 것 같은 상황에 자신은 정말 옳은 일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대신 할 말은 안 하잖아.”


드디어 지성이 문을 열었다. 그 덕에 뒤로 발라당 누워버린 우진은 위로 보이는 지성의 빨간 눈동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또 울었나.... 울보 형.”

“너는- 어디 안 다쳤어?”

“난 멀쩡해.”

“이리 와봐.”


   지성이 여전이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안기라고 벌린 팔이었건만 정작 우진이 그를 폭 안아버렸다. 지성이 손이 몸, 팔, 다리 등을 무분별하게 만졌다. 살살 문질러 보기도 하고 조금 세게 쳐보기도 했다. 안 다쳤다니까. 우진이 유독 약해진 지성을 더욱 꼭 안으며 실실 쪼갰다.


“하성운이 다 뒤집어썼지.”

“그 형 알면서.”

“심하게 다쳤지.”

“어디 부러지고 그런데 없다니까? 중환자실도 아니고 일반 병실이야.”

“다 나을 때까지 나 안 볼 거래?”

“그 땐 내가 데리고 갈게.”

“꼭이다.”





*     *     *




“화상을 입으신 겁니까.”

“폭발 사고가 있었거든.”


   다니엘 네가 도착했을 때 이미 몇몇 조직원들이 도착해 있었고 성운은 등과 팔에 입은 화상을 치료 받고 있었다. 2도 화상에다가 범위가 넓었다. 수포가 일어나 보기만 해도 쓰라린 상처를 성운은 인상만 살짝 찡그렸다. 의사가 매우 아프실 건데 잘 참으신다고 우스갯소리마냥 읊었다.


“왜 안 만나 주십니까.”


치료 후에 다니엘이 잔뜩 토라진 지성의 얼굴이 떠나지 않아 물었다. 성운이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 괜히 기가 눌린 다니엘이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바락바락 대들고 떼쓰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화 낼 줄 몰랐습니다.”

“-우진이가 잘 했겠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몇몇 조직원들은 비밀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귀를 쫑긋거렸다. 성우는 이 자리에서 지뢰를 건드려야겠냐며 숨을 흡 들이마셨고, 지훈은 이 불편하고 답답한 공기에 다니엘과 성운의 눈치만 살폈다. 잠시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는가 싶더니 성운은 표정을 고쳐지었다.


“올 때 이상한 거 없었어?”


   그의 질문은 의아했다. 하지만 다니엘만은 태도에 각을 잡고 날카롭게 되물었다. 이 병원은 오래 전부터 MOLLO 협력사였다. 그렇기에 오늘 입구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껴지는 분위기와 잔뜩 날이 선 경계심이 느껴져 긴장을 함부로 풀 수가 없었다.


“이 병원 사람들 맞습니까.”

“몇몇은 아니야.”

“위험하신 거 아닙니까.”

“큰일은 못 벌일 거다.”


확신에 찬 어조에 비해 병원 곳곳에 숨은 수상한 인물들이 내뿜는 기세는 오늘밤에라도 무슨 일을 벌일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 못 오게 한 건가. 생각의 끝에 달하자 다니엘은 생각을 전환시켰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어디를 알아봐야 합니까.”


문 옆에 서 있던 진영도 일을 지시하려던 성운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를 기특해했다.


“YK 이사장. 그가 직접적으로 움직이진 않았을 거지만 구린 사람들을 많이 가지신 양반이야. 그리고 우리 구역에 근접해 있는 살쾡이들.”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연락은 한 번 해주세요. 그게 안심이 될 겁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다니엘은 병실을 빠져나갔고 그를 선두로 모든 조직원들이 떠났다. 문이 굳게 닫히자마자 성운은 조소를 흘리며 아프지 않은 팔을 들어 물 한 컵을 벌컥 벌컥 마셨다.


“쟨 갈수록 기어오르네.”

“그래도 일부러 형 이름 언급 안 한 거잖아요.”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 못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진영이 소리 없이 웃었다.


“기쁜데, 기분이 나쁘네.”

“그래도 원하는 대로 잘 성장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꼬마보스?”


입술을 다물고 일순 고민하던 성운은 진영에게서 건네받은 핸드폰으로 바로 연락했다. 신호음은 얼마가지 않아 끊겼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우물 쭈물거리는 소리만 한참동안 들려왔다. 결국 성운이 먼저 대답했다.


“나 괜찮아.”



“미안해. 걱정시켜서.”



“진영이가 나 감시하고 있는데 제발 환자처럼 있으라고 난리야.”

“둘이 아주 돌아가면서 다치고 난리입니다. 형님들만 생각해? 우리가 많이 걱정하는 건 신경 쓰고 있나 몰라.”

[아 쫌! 이 형 또 울어. 도대체 어디가 감동 포인트에요? 찮은이 형 진짜.]


우진의 타박 뒤로 물기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넌 아직 멀었다는 거야, 박우진. 성운이 그 포인트를 찾지 못하는 우진을 나무랐다. 


“우리 형님들은 신파극 찍는 게 취미인가 보죠.”

“배진영, 기어오른다.”

[내가 우리 형 달래느라 진을 뺐다.]

[과장하지 마!]


그러니까 어서 둘이서 말 좀 하라며 우진이 닦달하자 울음이 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따진다.


[미리 좀 말하면 입 안에 가시라도 돋아? 왜 날 맨 마지막으로 미뤄놓는 건데? 왜 내가 뒤늦게 알게 해, 바보 만드는 거야? 내가 호구인줄 알아?]

[어, 호구 맞는데, 형.]


한 발자국 떨어져 듣고 있는지 조금 거리감 있는 우진의 목소리가 사실을 폭격했다.지성이 찌릿, 째려보았는지 겁 나는 척 하는 우진의 말이 들려왔다.  성운이 한층 밝아진 분위기를 인지하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서 사과하잖아. 미안하다고.”


   윤지성은 너무 단단해서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늘 말을 아낀다. 무너질 땐 언제나 숨어서 절망하고 단단해질 땐 강철 같은 태도로 행동하니까. 그렇기에 그 절망이 오는 그 시간을 혼자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 성운의 심정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늦게 아는 거 싫어.]


가벼운 투정처럼 들렸지만 성운은 수화기 너머의 지성의 두려움을 캐치했다. 성운이 입을 무겁게 다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우진의 행동과 표정을 짐작하던 성운이 지성의 떨리는 입술을 상상하며 핸드폰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아마 지성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두려움을 삼키고 있을 거다. 아까의 말을 끝으로 침묵이 이어지는 이 찰나의 순간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지성은 말로 뱉어버리면 정말로 그런 순간이 다가올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그래서 타인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마음을 숨기면서 언제나 다른 말을 뱉었다.


[고집불통.]

“너도 만만찮은 고집불통이니까. 쌤쌤이네.”


지금처럼. 

불안함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다 생각한 성운이 맞장구치며 웃었다.




*     *     *



“다녀왔습니다~”


   지훈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 하는 인사를 KOEL 사람들은 집에 누가 있든 없든 하루도 빠트리지 않았다. 처음엔 낯설었다. 성우와 함께 돌아오던 어느 날은 집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성우는 지성에게 인사말을 강요했고, 지성은 어색해하며 다녀왔습니다, 했다. 그러더니 성우가 제 앞에 마주 서서 활짝 웃더니, 어서 와요.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휑한 저택에 혼자와도 어디선가 튀어나와서 반겨줄 거 같았고 자신이 돌아올 누군가를 반겨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졌다. 지성이 기억 못할 뿐, 예전엔 그도 매번 외출한 뒤 집에 돌아가면 꼬박 인사를 했었다. 텅 빈 집과 사람이 든 흔적이 없다고 알리는 냉한 온도에 지쳐서 서서히 그만두었지만.


“얘 왜 이래?”


허리에 두 손을 감고 말없이 찰싹 붙어 있는 다니엘을 가리키며 당황해하며 물었다. 병문안을 갔다 오자마자 두 팔 안에 가둬 안더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였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뭘 새삼스레 그럴까 싶은 성우는 허허, 웃었고 지훈은 형 오늘은 얼굴 안 빨개지냐며, 약 올렸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화장실도 맘대로 못 가겠고 일을 하지도 못하겠고 뭘 맘 놓고 먹지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충전 중이다.”


   지성이 슬슬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때 다니엘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지성의 어깨에 턱을 괴었다. “우리 피해 줄까?” 성우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놀렸다. 그를 째리고는 다니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충전하는 건 좋은데, 무슨 일인지는 말해줘.”

“또 바빠질 거 같아서 그러는 거예요.”

“바빠져?”

“큰 형님이 일거리를 하나 줬거든.”

“YK? MOLLO?”

“둘 다요.”

 

   지성이 저를 붙든 다니엘의 손등을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매운 손길에 파득, 몸을 떨며 손을 떼자마자 지성이 제 방으로 쏙 들어갔다. 그만하라고 말로 달랜 적은 있어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한 다니엘은 지성이 지나간 행적을 눈으로 쫓았고 오늘따라 너무 앵긴다 싶었던 성우와 지훈은 까먹던 견과류를 오독, 오독 씹으며 짜 맞춘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후 지성은 자료 뭉치를 가지고 내려왔다. 두 부분으로 나눠 내려놓는데 한 쪽은 색이 바라져 있었다.


“그게 뭐예요?”

“이건 YK 이사장 관련 자료. 이건 조직 100과 플레시보, 그리고 검은 토끼.”


무덤덤하게 말하는 지성과 자료들을 번갈아보며 성우는 YK자료를 다니엘은 조직에 대한 자료를 살폈다. 지훈이 그가 조사한 양을 보며 존경의 눈빛으로 박수를 치더니 저도 동참해 내용을 살펴보았다.


“무서운 사람이었네.”

“이제 알았어?”

“이걸 어쩌려고 했어?”

“민현이랑 거래하려고 했다가 거절당했어.”


다니엘의 예리한 질문에 몸을 한 번 들썩이며 답했다. 이유는 다분히 어이가 없었다. 지금이다 싶은 타이밍이 있었다. 이 정보를 세상에 꺼내놓아야 될 것 같다는. 그래서 전략을 잘 짜는 민현에게 연락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새삼 충격이었다.


‘지성 씨, 그거 꼬마보스도 알아?’


말문이 막혔다. 존칭을 붙여 부르는 제 이름이 처음 만나는 타인이 부르는 것 같았다. 그 말 한 마디에 민현의 의도를 파악해 버렸다.


‘꼭, ...지금 이래야 해?’

‘형, 우리 서열은 확실히 하자. 이건 회사 일이기도 하지만 조직일 이니까.’


   자신이 KOEL 소속의 조직원으로 확정 된 것은 그 날 정기 회담을 참석한 날 부터였다. 누가 말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지성은 알아차렸다. 알았지만 주변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기에 평소처럼 행동했을 뿐인데 민현의 입을 통해서 듣는 현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쓰든 용이하게 써.”


제가 조사한 정보였고 제 손으로 모든 걸 결론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쓰게 웃었다.


“자기는 안 할 거처럼 그래요? 형도 KOEL이잖아요.”

“같이 해야지, 그치 대니?”

“당연하지, 형 덕분에 부산스럽게 움직일 필요도 없겠다.”





*     *     *



“처음 뵙겠습니다. 규.”

“당황스럽네.”


   남자의 농락에 제대로 당한 검은 토끼 조직의 보스 규가 턱을 여러 번 쓸며 눈을 날카롭게 떴다. 이 밑바닥 거리에 MOLLO의 머리가 나타날 줄 몰랐다. 오더라도 새롭게 뜨고 있는 차기 보스가 올 줄 알았더니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큰 키에 귀족같이 생긴 말끔하게 하얀 얼굴이 이 상황을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저희 차기 보스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규의 오른쪽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불쾌감이 서렸다. 굳이 그 원인을 집어내는 남자의 말에는 웃음이 서려 있는 듯 했다. 남자는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이어갔다.


“서론부터 시작하자면 정상에 서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지 압니까?”

“답해야 하나?”

“맞추신다고 상품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남자의 말 하나, 하나가 신경에 매우 거슬렸다. 탐욕이 많지. 규가 괜한 자존심에 답했다. 남자는 부드럽게 눈매를 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욕심이 없으면 얻고자 하는 의지조차도 없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답은 아닙니다.”

“하긴 정해진 답이 하나라는 법은 없지.”


남자가 휘말릴 듯하면서도 냉정한 판단력을 잃지 않는 규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좋은 경쟁자가 있다는 거죠.”


   이 바닥에서 MOLLO를 모르는 조직은 없었다. 지하 세계 뿐 아니라 지상 세계까지 뻗어 있었기 때문에 성장하고 싶은 수많은 조직들의 가장 먼저 물어뜯고 싶은 조직 1위였다. 그런 곳에서 말하는 선의의 경쟁자가 과연 그들과 대등하게 있는 자가 확실한지 묻고 싶어 입술을 달싹였다.


“저희를 적대하는 쪽에 큰 힘을 실어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는 게 너무 늦었네.”

“위협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좋은 경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이라 여겨 두고 본 건 사실입니다.”


   상생 파트너, 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자신의 조직이 아등바등 굴어도 정상에는 우리가 아닌 자신들이 서 있을 거라고 공표하고 있었다. 심기가 매우 불편한 규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지금의 밀회가 무산될 직면이었지만 남자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본론이 아직도 나오지 않았는데?”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저런 포커페이스에 휘말릴 규가 아니었다.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는 규의 모습에 지금의 판이 너무 흥미진진해져 남자는 눈매까지 휘어가며 웃었다. 이 모습을 본다면 재환은 아마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하고 생각 없이 묻고 말테지만 대휘는 가장 먼저 치를 떨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짐작을 하는 아이이고 자신만큼은 아니더라도 머리를 굴릴 줄 알아서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릴 것이다. 그 반응을 옆에서 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옆에 없기도 하고 눈앞의 상대에 다시 집중했다.


   규는 조직에 이익이 되는 단물만 쏙 빼 먹기로 유명했다. 그런 평판이 생긴 증거는 소규모 조직이었던 검은 토끼가 MOLLO가 주시해야 하는 조직으로 급성장했다는 거였다. 신생 조직이었을 때부터 규의 존재를 눈여겨봤기 때문에 대휘나 재환에게 애들을 시켜 예의 주시하라고 일렀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가 다르게 조직의 세력은 커져갔고 며칠 전 강 다니엘이 가져온 조직의 정보는 제가 가진 정보에 힘을 실어주었다.


“곧 저희 회사 쪽에서 일이 터질 겁니다. 미리 발을 빼시라고 왔습니다.”

“왜 그래야 하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좋은 경쟁 관계가 될 조직을 허무하게 무너뜨리고 싶지 않거든요.”


쾅-!!! 규가 내려친 원목 테이블이 거세게 흔들거렸다. 우리 따위는 어렵지 않게 짓밟을 수 있다는 건방진 태도가 매우 불쾌했다.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거 아닌가?

“지금의 상황을 재미없게 만들지 마세요. 조직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죠.”

“내가 그쪽에게 너무 우습게 보인 건가?”

“아니요, 과소평가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드리는 충고라고 하죠.”


   규는 순간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남자가 하는 말이 단순한 위협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지금의 MOLLO에게 남자가 말하는 만큼의 힘과 열쇠가 있는지. 몇 주 전에 발톱을 드러낸 여러 조직들의 합동에 의해 타격을 꽤 입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가장 큰 기둥인 하성운이 크게 다쳤다는. 거기다 현재 보스는 지병도 있어 몸이 온전치 않다는 희소식도 있었다. 그런 MOLLO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지금의 판을 뒤엎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규는 최대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려고 애썼다.


“대의를 생각하세요. 조직을 성장시킬지 말지는 보스 규의 말에 달렸습니다.”

“우리를 잡음으로써 주변 조직들을 견제하려는 거 아닌가?”

“험하게 말을 하자면 찌꺼기들입니다. 굳이 검은 토끼의 손을 잡을 필요가 없어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무시도 정도껏 해야지.”

“고작 큰 형님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저희가 약한 놈들이 아니라서요.”

“차기 보스가 매우 대단한가 보군.”

“저희 개개인이 매우 대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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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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