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새끼 이거 봐라 이거, 왤케 요즘 다시 얼굴이 폈냐?”

“아, 꺼져, 하지 마.”

“마이키, 요즘 여친이랑 좋은가봐?”

 
 

 

한 놈은 어깨동무를, 한 놈은 목을 쥐고 짤짤 흔드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 등신새끼들 눈에도 내 얼굴이 핀 게 보인다면, 헤헤, 내가 겁나 티내고 다니나봐. 요즘 좋긴 좋지~ 다시 채드하고도 전처럼 꽁냥꽁냥하게 됐고, 서로 다시 마음도 잘 확인했고... 히히.
 

물론 여친 어쩌구 하는 말에는 조금 움찔했지만, 뭐... 굳이 사실을 밝힐 것도 없고... 통념상.... 음....

...? 그런데 본테녀석은 지가 왜 저렇게 죽상이야? 마구 해맑은 녀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표정이 썩어있는 놈은 아닌데.

 

 
 

“아오, 야, 좀 놔봐. 본테, 너 괜찮아?”

“이젠 왜 쟤가 썩어 가냐, 진짜?”

“그니까. 너 진짜 괜찮아? 어디 아프냐?”

“저거 덩치를 봐라. 저런 건강체가 아프면 진짜 존나 큰일인 건데.”

“....”

 

 
 

여전히 목이 끌어안긴 채 간신히 본테를 쳐다보며 묻자, 다른 놈들도 그제야 발견한 듯 본테녀석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그때, 내 핸드폰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자, 한놈이 잽싸게 핸드폰을 인터셉트해간다.

 
 

 

“야, 니 뒤진다 진짜. 빨리 내놔.”

“야, 야야야 기다려봐. Whoaaaaaaaaa 이거 봐 ”Miss you babe“~!!!!”

“아 미친 새끼야;; 빨리 달라고!!”

“마이키, 네가 행복한 연애를 하는 것 같아서, 이 형님이 너무나 행복하고 뿌듯하다.”

“아 닥치고 좀 내놔;;;”

“야 얘 얼굴 좀 봐 빨개졌다”

 

 
 

겨우 다시 핸드폰을 뺏어서 화면을 보자, “Love” 라고 저장되어있는 이름 아래 정말로 “Miss you babe”라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씩 웃자 다른 녀석들이 비웃어대며 왁자지껄 난리가 났는데, 그 와중에 더 표정이 썩어가던 본테녀석이 ‘본테 간다’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리고는 홱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야~!!! 본테! 어디 가!”

“너 진짜 괜찮은 거지~?”

“....”

“야! 연락 해!!”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본테녀석이 그냥 휙 가버렸다. 사실, 얼마 전 일로 본테녀석이 좀 신경쓰이기는... 하는데.. 이 멍청한 놈들은 친구가 가든 말든.. 어휴, 지겨운 놈들.

본테한테는 따로 말해보기로 하고, 우선 나는 핸드폰을 지키는 데 더 신경쓰기로 했다.

 

 
 

“야, 이 짐승들아, 나 좀 냅둬라 진짜.”

“아 왜애애애. Babe만 중요하고 난 아무 것도 아니라 이거지?”

“... 이 미친놈들 진짜;;”

 

 

 

 

 

 

 

 

 

 

 

 

 

 

 

다음 강의는... 보스만 교수님의 강의였다. 물론 교수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는 했지만, 난 공과 사를 구분하기 위해 수업은 수업대로 열심히 참여하기로 맘먹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시간보다 더 열심히 집중해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이 수업 본테녀석도 같이 듣는 건데. 먼저 와있으려나...

저깄네, 저 덩치가 안 보이면 말이 안 되지.

 

 
 

“야!”

“...”

“너 진짜 괜찮아? 왜 그러는 거야?”

 
 

 

본테를 부르며 뒤에서 등을 팡 쳤더니, 누구냐며 확 째려보는 눈빛이 나인걸 보자마자 더 썩어간다. 아니, 이거 진짜 왜이래? 나 뭐 잘못했나?

 
 

 

“... 옆에 앉아도 되냐?”

“..... 마음대로 해.”

 

 
 

본테녀석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겠노라고 맘먹은 듯 턱을 괸 채 아예 몸을 내 반대쪽으로 틀어 앉아버렸다. 이쯤 되면 나도 굉장히 심상하는데, 그래도 얼마 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녀석이 생각나서 나도 그에 보답하고자 진심으로 녀석을 걱정해봐주기로 했다. 아니 진짜로 걱정되기도 하지만.
 

 

 

“야.. 본테, 본테 맥.”

“.... 왜.”

“... 힘 내. 뭔진 모르지만..”

 

 
 

내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자, 본테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턱을 괸 손을 푼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보는데, 어.. 뭔가 엄청 낯익은 표정. 내가 눈을 껌뻑이며 어떤 표정인가 고민하는 동안 교수님이 들어왔고, 나는 일단 그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오늘도 보스만 교수님은 완벽한 머리에 완벽한 정장을 입고 완벽히 셋팅된 모습으로 강단에 섰다. 정말, 단 한 번도 교수님의 머리가 곱슬거리는 걸 본 적이 없다. 가발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찰랑일 수가 있지? 음... 채드가 반한 모습 중에 하나일까? 항상 완벽하고 아름다운 저 모습 말이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청자켓 안에 받쳐입은 흰 티에 튄 커피자국을 나도 모르게 내려 보았다. 아오, 아까 난리치던 동기놈 중 하나가 기어이 커피를..... 음, 아니야, 채드는 내 모든 걸 사랑한다고 했는 걸.

 

잡념도 잠시, 보스만 교수님이 매끄러운 목소리로 강의를 시작하자, 나는 칠판과 노트를 번갈아 노려보기에 바빠졌다.

 

 

 

필기하느라 조금씩 사각거리거나 종이를 넘기는 소리, 그리고 교수님 본인의 목소리를 제외하고, 강의실은 정말로 조용했다. 점심 후의 강의시간이기도 하고... 나도 진짜 졸려 미칠 것 같은데, 눈에 띄거나 지적받기 싫어서 지금 두 눈을 어떻게든 부릅뜨고 있으려고 노력중인 상황이었다. ...의외로 본테녀석도 졸기는커녕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다.

 

 
 

[ 야, 너 왠일로 안 조냐? ]

 
 

 

노트 귀퉁이에 농담을 휘갈겨 쓰고 본테의 팔뚝을(그래, 그 대단한 이두삼두박근이 있던 팔) 손가락으로 톡톡 치자, 본테녀석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노트로 눈이 내려간다. 내용을 읽은 본테가 아주 나지막하게 피식 웃더니 그 밑에다가 짧게 답변을 적는다.

 

 
 

[ Fuck you ]

[ Do it ]

 
 

 

상스러운 단어 밑에 내가 재치있게 답변을 달아줬더니, 갑자기 볼펜을 들고 있던 손을 멈칫거리더니 손을 거둔다. 뭐야 싶어서 본테녀석을 봤더니 세상에, 얼굴이 갑자기 시뻘개져있는 거다. 김이라도 날 거 같아서 어리둥절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본테는 미친 듯이 앞만 노려보고 있었다. 앞으로 돌진이라도 할 까봐 무서울 정도였다.

 

거 참 이상하네, 하면서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는데, 갑자기 책상위에 올려놨던 핸드폰 진동이 작게 드륵 울리면서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뜬다. 무음으로 한다는 게 깜빡 했.... 오, 이런, 채드의 메시지였다.

 
 

 

[ Love: I wish I was inside of you right now, bae ]

 

 
 

..............헉. 아 아아아니 보통 내가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거나 하는데 지금 본테녀석한테 정신이 팔려서.......... 보 본테가 봤을까?? 아;;;; 왜이래 이인간이... 요즘 우리 사이가 너무 다시 좋아져서 가끔 채드가 저런 더티톡스러운 문자를 가끔..보내는..데...

 

이런, 본테녀석도 문자를 봐버리고 만 것 같았다.. 아오 미친, 왜 무음으로 안 해가지고; 그런데 본테녀석 표정이 이제는 붉은 게 아니라 파래보일 지경이었다. 하.. 이게 여자친구랑 주고받는 건 아니란 건 알게 됐겠고.... 미치겠네..

 

 

나도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고, 본테도 노트로 눈을 돌렸으나, 단언하건대 우리 둘 다 수업엔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얘기 좀 해.”

“어? 어... 지금?”

“본테 강의 없어, 넌?”

“나도 없..기는 한데...”

 
 

 

뭔가에 쫓기듯 가방 안에 필기구들을 쓸어담고 일어나려는데, 본테가 나를 멈춰 세운다. 나는 솔직히 그냥 지금 이 상황을 빨리 피하고 싶었지만, 본테녀석 눈빛이 지금 완전 장난 아니라 나는 쭈구리처럼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유독 천천히 가방정리를 하는 녀석을 뻘쭘히 기다리다 보니, 교수님 포함 모두가 강의실을 나갔고, 강의실은 약간 써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해졌다.

 

 
 

“.... 왜애..”

“....”

 
 

 

그런데 막상 본테녀석, 할말 있다고 큰소리 쳐놓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얼굴이 혼자 붉으락푸르락해지고 있었다. 평생 못 본 본테녀석의 요상한 모습을 오늘 하루 안에 총천연색으로 즐기고 있자니, 조금 웃기기는 했는데, 표정이 사뭇 심각해 웃을 수도 없었다.

 

 
 

“... 너.”

“어.”

“니가 만나는 사람.”

“어.”

“.....”
 

 

 

누가 봐도 대번에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소같이 커다란 눈을 껌벅이면서 입술을 핥는 본테녀석을 보고 있자니, 이 황소같은 놈이 귀여워 보일 지경이었다. 긴장으로 인해 조그맣게 씨근거리느라 본테놈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뭐 그래봐야 여친이 아니고 남친이었냐, 어째 애인이라고 부르던 게 이상했다, 놀랐다, 너 원래 게이였냐, 뭐 이런 얘기나 하겠지. 아휴, 채드는 왜 그런 문자를 보내가지고, 주책이야 진짜. 본테녀석이 뭐 편견이 크거나 포비아성향이 있다고는 못 느꼈으니 괜찮

 

 

 

“니가 만나는 사람이 보스만 교수님 남편이야?”

 

 

 

을 수가 없네. 뭐라고?

갑자기 내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놀라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걸..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야, 무, 무슨 소리야. 그래, 남자는 맞는데, 그래서 너네한테 말 못한 이유가,”

“그건 상관없어. 본테 말이 맞아?”

“....저기..”

“아니라고 하지 마. 본테 다 알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도대체 이녀석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애써 다듬으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야 너 진짜 상상이 지나치다ㅋㅋㅋㅋ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해.”

“끝까지 아니라고 할 거야? 교수님 남편을 본테가 한두 번 봤을 거 같아? 우리 학교에 자주 오잖아.”

“아니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

 

 

나는 강한 부정으로 맞받아칠 준비를 했으나, 무섭도록 싸늘한 얼굴로 두 주먹을 꽉 쥔 채 나를 노려보는 녀석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하... 씨발.”

“야, 너...”

“너 진짜 미쳤어?!”

 

 

본테가 별안간 내 어깨를 잡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본테를 밀쳐낼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탈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이녀석이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지. 다른 사람도 알까? 안 돼, 그러면 안 돼, 시발,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또 알아?”

“....”

“누가 또.. 아냐고. 대답해 줘.”

“..본테밖에 몰라. 본테가 알기로는.”

 

 

나도 모르게 작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본테 녀석한텐 어떻게든 잘 둘러대든 구워삶든 해야지, 아... 진짜 이걸 어떡하냐고..

 

 

“.... 말하지 말아줘. 아무한테도.”

“그럼 헤어져.”

“? 뭐라고?”

“비밀 지킬게. 그럼 헤어지라고.”

“야, 씨발, 니가 뭔데?”

 

 

울컥 화가 솟아올라서, 본테녀석의 팔을 쳐내버렸다. 내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물리기는 했지만, 본테는 이 문제에 대해서 손 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지가 나를 판단하든 말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각오했었으니까. 물론 친구한테 들킨다는 선택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근데 지가 뭔데 헤어지라 마라야?

 

 

“그럼 넌 그 말도 안 되는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야?”

“니가 알 바 아니야.”

“정신 차려, 너 미친 것 같아 진짜.”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고. 내 인생이니까 신경 꺼, 시발.”

“너 그런 인간이었어?”
“그런 인간이 뭔데? 시발, 닥쳐,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뭐가 아닌데?”

“.......”

“대답 해봐, 마이클, 뭐가 아닌데?”

“.......”

“행복해?”

 

 

내 양심을 공격해대던 본테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른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이지 말라고, 나는 존나 행복하다고 공격을 퍼부을 참이었다. 뭔데 나를 판단하고 뭔데 나를 우리를 무시하는 거야?

 

 

“나 진짜 조오오온나 행복하거든. 니들이 그랬잖아, 나 얼굴이 폈다고. 그래, 시발, 내가 미친 죄인이야. 맞아. 그런데 행복해. 진짜 존나 행복해.”

“웃기지 마. 그딴 걸 행복이라고 부르는 미친 놈이 어딨어.”

“씨발 듣자니까 진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마이클? 지금 이건 단순히 바람피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

“그 사람이 널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데 니가 뭘 믿고 혼자 행복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어금니를 꽉 물었다. 나도 머리로는 알았다. 본테가 존나 멀쩡하게 제정신으로 말 되는 말을 하고 있는 중이고 나는 미쳐 돌아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본테가 우리나 그를 공격하는 순간, 홧병이라도 도지듯 화가 치밀어 오르고 숨이 가빠졌다.

 
 

 

“다시 말하는데, 니가 알 바 아니,”

“니가 행복하면, 그래 펴, 바람 펴, 아무나 만나. 본테 남편도 아닌데 본테가 뭐하러 너한테 꼰대질 해.”

“.....”

“그냥 하나만 봐, 마이클. 니가 진짜로 행복한지. 본테는 내가 데이트하는 사람이랑 같이 셀피도 찍고, 인1스타그1램에도 올리고, 같이 손잡고 데이트하고, 친구들한테 가족들한테 소개도 하고 그러고 싶고 그러는 게 행복해. 넌 어때? 아니야?”

“..... 니가 뭘 알아. 그래, 시발, 니 말대로 떳떳하진 못 해,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존나 행복하게 잘 지낸다고. 그 사람이 얼마나 다정한지 넌 몰라. 그 사람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 사람이 날 위해 해주는 걸 너도 들으면-”

“.... 너 지금 존나 열심히 변명하는 거 알아?”

“뭐라고?”

“그 사람이 나랑 이걸 못하는 건 이것 때문에, 나랑 밖에서 저걸 못 하는 건 저것 때문에, 마이클, 니가 뭣하러 그 사람을 위해 변명해야 돼? 니가 안 행복한 증거를 위해 뭘 자꾸 둘러대야 하냐고.”

 

 

아니야, 아니야, 난 변명하는 거 아니야. 사실이잖아. 할 수만 있으면 그도 나를 남들 앞에 보이고, 같이 밖에서 데이트하고, 그렇게 할 거잖아, 안 그래, 마이클?

 

 

“..... 본테 말 잘 못해. 본테도 알아. 그래도 뭐가 옳고 틀린지는 알아. 그래서 할 말 열심히 연습했어. 니가 정신 차렸으면 좋겠어서.”

“뭘...”

“마이클.”

“.....”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엉키고 설켜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문득, 그가 교수님과의 짧은 점심데이트를 위해 멋진 차림으로 우리 학교로 와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님에게 입 맞추고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서로의 가족 모임에 참석하고 서로의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 나하고는 절대 할 수 없고,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해도- 그가 앞으로도 나와 절대 할 일이 없을 그런 것들.

 

 
 

“마이클.”

“....”

 
 

 

손이 달달달 떨렸다. 내가 어떻게든 덮어놓고 무시했던 모든 것들이, 이 빌어먹을 본테 새끼 때문에 자꾸 빗장을 가르고 뚫고 나오고 있었다. 심장이 너무너무 아파서, 내 모든 게 무너지는 기분이라, 본테가 내 이름을 부르건 말건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답 좀 해, 마이클.”

“...난 할 말 없어.”

“시발, 대체 무슨 말을 더 해야 돼, 그 새끼는 너를 존나 가지고 놀고 있,”

“닥쳐 개새끼야!!! 니가 뭔데 내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훈계질이야. 니 앞가림이나 잘 해, 씨발!! 누가 보면 니가 무슨 대단한 심리학자라도 되는 줄 알겠다? 존나 전문가세요?”

 

 
 

본테의 말에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나는 욕지거리를 줄줄 뱉어내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시발,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면서 왜 자꾸 나를 힘들게 해. 아니라고. 그런 거 아니야, 너는 아무 것도 몰라...

 

 

 

“.... 미안해.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어.”

“웃기지 마, 꼰대질이 싫다고? 니가 하는 게 바로 꼰대질이야. 나는 그를 사랑해, 그도 나를 사랑하고,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니가 싫다는데도 널 억지로 안는 게, 그게 사랑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본테녀석이 갑자기 파랗게 질려 언다. 나도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머리에 얼음양동이를 거꾸로 들어 쏟아 부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나는 이게 남자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수치스러운 기억이 떠올라서 인지, 혹은 ...그것조차 사랑이었을 거라고 혼자 부정하고 북치고 장구치던 내 모습이 얼마나 병신 같았는지 깨달아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너... 너...”

“미.. 미안해 마이클. 이건..”

“.....어떻, 어떻게...”

“.... 정말 미안해.. 너희 집에.. 갔었는데.. 너 놀래켜줄..려고..”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어쨌든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차갑게 적시는 것은, 어찌되었든 수치심이었다. 나도 안다, 내 낡은 아파트가 방음이 존나 구리다는 건, 하지만, 하지만... 내가 내 연인에게 하지 말라고, 제발 나를 범하지 말라고 울며불며 애원하고 고통스럽게 박히는 모습을 친구에게 들키는 건 180도 다른 문제였다.

 

 

 

“... 마이클..”

 

 

 

본테가 내 이름을 애닳게 부르며 내게 손을 뻗는다. 나는 그 손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그 전에 내 눈에서 눈물이 먼저 흐르고 말았다. 그걸 본 본테의 눈이 굉장히 심란해졌는데, 그제서야, 나는 아까 봤던, 그 낯익은 표정이 지금 본테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과 같으며,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해냈다.

 

 

... 그날, 질투에 젖어있던 채드의 표정과 똑같은 표정을, 본테녀석이 얼굴에 띄우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받은 얼굴, 질투, 슬픔, 그게 뭐든 간에 내가 원하는 사람을 내가 온전히 갖지 못할 때의 그 표정.

 
 

 

 

그러나 나는 지금 그 표정을, 그 얼굴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소매로 눈을 쓱 문지르고 뒷걸음질 쳐 본테에게서 멀어졌다. 본테의 얼굴도 거의 울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그 얼굴을 안 보는 걸 택했다.

 

 

내가 몸을 돌려 강의실 뒷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본테는 아마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것 같았다. 나를 따라오는 발소리를 듣지 못한 채, 나는 소매로 눈을 한번 더 문지르고 강의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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