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에리히.”

“네, 부장님.”

“공식적으로 팀장이다.”


슈미츠의 호칭 정정에 에리히가 머쓱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어제 이미 고지 받았는데 입에 붙은 대로 부르다 보니 부장님 호칭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와, 그럼 팀장님 승진하신 거죠?”


헉슬리가 해맑게 말하자 엘리자베스가 팔꿈치로 툭 쳤다. 헉슬리는 약간 억울한 표정이었지만 엘리자베스가 무서운 얼굴을 하자 이내 조용해졌다.


“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파일 받으시죠.”


에리히는 복사해온 파일을 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헨리는 받은 파일을 들춰보았다. 피해자의 이름과 부검 결과 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피해자들은 라이프치히 근교에 사는 이들입니다. 사건은 일주일 전 발생했는데 아직은 용의자 특정도 안되어서 저희 팀으로 배당이 되었습니다.”

“유일한 공통점은 살해 시점이군.”


피해자는 둘.

첫 번째는 45세 남성, 음악홀 부관리인.

두 번째는 37세 여성, 초등학교 교사.

각각 출근길과 퇴근길에 납치되어 인적 드문 곳에서 살해당했고 남성은 복부를 찔렸고 여성은 목을 관통 당했다.


“둘 다 일주일 전 살해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검기록을 보던 빅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한데.”


파일을 보고 있던 이들이 고개를 들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부검기록을 보면 망설인 흔적이 없는 것 같아. 그렇다고 감정이 담겨 있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슈미츠의 물음에 빅터가 재깍 답했다.


“팀장도 알겠지만 얼굴은 일체 훼손되지 않았어. 게다가 시체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의 말대로 시체는 공원과 다리 밑 인적 드문 곳에 가지런히 누운 자세로 발견되었다.


“죄책감에서 비롯된 거라고 보는 건가?”


이번엔 헨리였다. 살해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 피해자의 몸을 깨끗이 씻기거나 두 손을 모아 천사와 같은 자세를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있었다.


“글쎄. 이것만으로 판단하긴 어려운데.”


주저흔이 없는 검상과 가지런한 시체는 상당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슈미츠가 입을 열었다.


“전문 킬러와 비슷한 느낌인데. 물론 살해 방식은 너무 초짜 느낌이긴 한데.”


헨리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슈미츠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름을 부르는 헨리의 모습에 슈미츠가 한쪽 눈썹을 올렸지만 헨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다만 옆에 있던 엘리자베스만 눈을 가늘게 뜨고 둘을 응시할 뿐이었다.


“일단 난 시체를 실제로 보고 싶은데.”

“그래. 그럼 빅터는 부검실로 가도록 하고 나머지는 현장으로 이동한다.”

“어? 저도요?”


슈미츠의 지시에 따라 다들 일어서는데 헉슬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컴퓨터 셋업은?”

“끝났습니다, 라져.”


거수 경례를 붙이는 그의 모습에 슈미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장은 여기로군. 정보 백업 부탁한다.”

“넵.”








라이프치히로 이동한 넷은 둘씩 나누어져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제가 슈미츠님이랑 같이 가면 안됩니까?”


슈미츠가 엘리자베스와 이동한다고 말하자 나온 말이었다. 슈미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들이랑 가는 거 별로인가? 그럼 엘리자베스랑,”

“아뇨, 전 슈미츠님과 이동하고 싶습니다.”

“…”


에리히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고 엘리자베스는 둘의 실랑이에 아닌 척 하며 집중하고 있었다.


“애들만 보낼 수는 없어.”

“저희 둘이 이동하겠습니다. 괜찮죠, 에리히씨?”

“네? 아, 네, 괜찮습니다.”


눈치 빠르게 슈미츠의 말 뒤로 끼어든 그녀는 이내 에리히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헨리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윙크하는 것을 확인한 그는 뿌듯함을 느꼈다.


‘역시 내 제자.’


“자 그럼 저희도 이동하죠. 남성 피해자 쪽이죠?”

“하아, 당신.”


이마를 짚은 슈미츠는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식이면 곤란해. 이 팀은 내가 이끄는 팀이고 당신은 그거에 맞춰주어야지.”

“제가 왜 이런 귀찮은 걸 수락한 것 같습니까?”


전 경찰과는 그닥 친한 사람이 아니에요~ 라고 덧붙이는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어 그녀는 그저 눈을 가늘게 떴다.


“전 당신한테 관심이 있어서 수락한 겁니다.”

“헛소리. 수사하는데 그런 쓸데 없는 감정은 금물이다.”

“아니 뭐가 문제입니까?”


깊은 한숨을 쉰 슈미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 때문이다. 당신 때문에 애들만 보냈잖아. 하나는 인턴이고 하나는 햇병아리이고.”

“제 아들놈은 잘 모르겠지만 엘리자베스는 잘 할 겁니다.”


확신해야 할 상대가 잘못된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아무튼 다음부터 지시에 불응하면,”

“불응하면, 절 혼내시기라도 하시려고요?”


그녀에게 바짝 다가간 헨리가 나지막이 건네는 말은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니었는데 그가 내뱉자 이상한 뉘앙스로 들리는 것 같았다. 왜인지 모르게 나른한 그의 목소리도 그에 한 몫 했다.


“흠흠, 아니 내 말은 다음부터는!”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죠.”


부드럽게 말하며 그가 한걸음 물러섰다. 둘 사이 긴장도가 내려가면서 다시 페이스를 되찾은 슈미츠가 그를 조금 노려보았다.


“그렇게 뜨거운 눈길로 보시면 어쩔 줄을 모르겠군요.”

“…”

“아, 그리고 제 왼쪽에 서주시겠습니까?”


슈미츠가 그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눈 때문이군.”

“어라, 알고 계셨습니까?”

“그 정도 조사도 안 했을 거 같나?”


‘이제 진짜 가야 해.’ 라고 말하며 걸음을 옮기는 그녀 뒤로 만족스러운 표정의 헨리가 걸음을 옮겼다.









라이프치히 시 경찰의 양해를 구해 서 한 켠에 수사 본부를 차린 이들이 다시 모였을 때엔 늦은 저녁이 되었을 때였다.


“에리히, 어떻지?”

“어, 그게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긴 한데 알리바이가 확실하더라고요.”

“이쪽도 마찬가지다.”


아마 기존 수사관들은 여기서 막혔던 듯 했다. 두 피해자는 서로 공통된 생활 반경이 없었다. 유일한 용의자로 볼만한 사람은 남성의 경우 음악홀의 전체 관리자였고 여성의 경우 전 남편뿐이었다.


“헉슬리 듣고 있어?”

[네, 말씀하세요!]


슈미츠가 핸드폰으로 헉슬리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 폰으로 연결했다.


“현재 두 피해자들은 각각 용의자를 가지고 있는데 둘 다 살해 시각에 알리바이가 있어. 심지어 cctv가 있지.”


슈미츠가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이상하지 않나? 둘 다 그 시각에 확실한 알리바이를 확보했다는 게. 두 용의자간 공통점 좀 털어봐. 통화내역, 카드 이용내역 전부 다.”

[아하, 네 맡겨만 주세요!]


헉슬리의 대답을 듣고 그녀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슈미츠님 혹시 제가 생각하는 거 맞습니까?”

“당신이 뭘 생각하는데.”

“교차 살인.”


헨리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띠리링-


“헉슬리 벌써?”

[네, 둘 다 같은 심리 클리닉에 다니고 있어요.]

“심리 클리닉?”


헨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네, 로즈 핸버리가 운영하는 곳인데 꽤 유명해요. 집단 상담으로.]


주소 핸드폰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라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넷의 핸드폰에 핸버리 심리 클리닉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전송되었다.


“헉슬리 한가지 더. 상담 내용 확인은 어렵겠지?”

[네에, 그건 어려워요.]

“그래 그럼 그 둘 외에 클리닉에서 결재를 자주한 인물들 리스트 뽑아줄 수 있나?”

[네!]


헨리는 할 수 있는 일이 나오자 신이 난듯한 헉슬리의 목소리에 마치 꼬리가 달려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녀의 핸드폰이 띠링 거리며 빛났다.


“벌써?”


헨리가 반문하자 슈미츠가 끄덕였다.


“해커라고 했잖아.”


리스트를 실피던 그녀는 엘리자베스와 에리히에게 실종자들의 지인들과 교차확인을 지시했다.


“저, 그런데 팀장님 벌써 밤인데요.”


에리히가 약간 피곤한 얼굴로 되물었다. 벌써 10시가 다되어가는 시각으로 서에서 그들이 있는 방만 환한 상태였다.


“그렇군.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마저 조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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