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로 소위 말하는 ‘냥줍’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다. 당장 도움이 필요한 개체를 ‘구조’하는거라면 또 다를까, 당장 내 눈 앞에 삐약거리는 길고양이가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무작정 데려오는 것은 오히려 그 가정을 깰 수도 있고, 그 나름대로 정교하게 짜여진 거리의 질서를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고양이가 불쌍하다고 그 때마다 무작정 데려오는 것은 오히려 구조를 빙자한 방치이며, 그것대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양이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이렇게 선을 확실하게 긋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길냥이 천지인 동네에 매일 한번씩 사료를 부어주는 것이다.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며 길냥이 사료계의 한 획을 그은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있는 ‘프로베스트 캣’ 대포장 사료를 사서 매일 밤 담벼락 한켠에 부어주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물그릇에 물도 담아줬는데, 동네 사람들이 이게 고양이 물그릇인 줄 모르고 담배꽁초를 버려대서 - 허나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흡연자이고, 길거리에 물그릇이 덜렁 놓여있다면 나 역시도 재떨이로 인식할 거 같으니까 - 그건 포기해 버렸다.

밤 11시에서 12시 사이. 인적이 드문 시간 나는 한웅큼 사료를 집어들고 집을 나선다. 이미 눈치를 챈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레이저를 쏘아 보낸다. 어디 숨었는지도 뻔히 다 보인다. 우리 동네 최고의 대갈장군이자 가장 탁월한 유전자를 보유한 사랑꾼 대길이는 동네 대장답게 숨지도 않고 위풍당당하게 불알을 뽐내며 나를 쳐다본다. 멀찍히 뜬금이가 꼬리를 살랑거린다. 랍스타 녀석은 대담하게 전봇대 밑에서 킁킁거리고 있다. 가끔 다른 구역에 속해있는 짜장이가 저 멀리서 원정을 올 때도 있다. 너무 순하다 못해 매일 대길이에게 맞고 사는 순이가 새끼들을 떼놓고 얻어먹으러 올 때도 있다. 다들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릉거리며 레이저를 쏘아대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어우야, 그냥 대놓고 친한척 하자. 이게 뭐냐.

그득그득 사료를 부어주고 대문을 닫고 한참 동안 동네 친구들의 반응을 쳐다본다. 킁킁거리며 경계하기도 잠깐. 적은 양의 사료를 다같이 나눠먹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걸까. 신기하게도 돌아가면서 한입씩 먹고 줄행랑이다. 이 모든게 마리를 추모하려고 시작했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밤마다 벌어지는 이 행사가 즐겁다. 아주 잠깐 동안의 이 긴장감이 즐겁다. 혹 다음날 출근길에 사료가 남아있기라도 하면 왠지 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집에서 내가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여기에 사는 동안은 너희들에게 깨끗한 밥을 제공하겠다. 많이 찾아줘라. 덕분에 쓰레기 봉투도 안 뜯으니 일석이조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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