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한 연인의 처음 치고는 미적지근한 밤이었다. 둘 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서로에 취하지도 않은 채. 그녀의 두려움과 그의 의무감이 뒤섞여 미적지근한 첫 섹스가 '일어났다'. 

 그녀의 두려움은 더 이상 진전이 없는 관계의 미적지근함에 있었고, 그의 의무감은 마음이 흔들리는 그녀를 곁에 두어야한다는 것에서 기인했다. 한번의 정사 후, 익숙하지 않지만 편안한 침대 곁에는 은은한 조명이 들어왔다. 다 벗고 있어도 춥지 않은 적당한 공기에 꽤 예쁜 야경. 그 둘이 함께 들어갈 일이 없는데도 사랑스러운 곡선을 가진 희고 큰 욕조가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맨 다리와 너풀거리는 가운이 그 욕조를 가렸다. 


이제 와서 뭘 가려. 다 봤는데.


멀찍이 떨어져서 담배를 문 그가 이불 위에서 꼼지락대는 그녀를 흘끗 바라본다. 몸을 가릴 것이 마땅치 않은지 시트를 통째로 몸에 감고서 헤드에 기댄 그녀는 깜빡 졸기도 한다. 이제 와서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도, 몸을 섞는동안 얼마나 예쁜 표정을 지었는지. 그는 문득 몸을 숨기는 그녀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사님.

왜.


모든 대화의 시작은 모두 그녀의 부름이었다. 이사님, 이사님, 이사님. 그 후에 따라붙는 말은 늘 시덥잖은 말이나 부탁이었고, 대개는 안아달라는 칭얼거림이나 계속 옆에 있게 해달라는 우스운 요청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말을 늘어놓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트 안에 소라게처럼 온 몸을 숨겨버린 그녀는 조금 더 특이한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사랑이 뭘까요?

...뭐라는거야.


그는 잠꼬대를 하는거냐고 퉁박을 주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의 표정을 보던 그녀는 잠시 어깨를 움츠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듯이 떨어지는 거래요. 오늘 아침에 본 말인데 좋아서...

지옥이랑 똑같네.


그의 대답에 그녀는 아하하, 하면서 웃음을 터트린다. 흰 시트가 온 몸을 휘감고 따라서 흔들리다 그녀의 발을 쏙 뱉어놓는다. 흰 발도 따라서 흔들리다가 다시 시트 속으로 사라진다. 그는 흰 부분이 한참 남은 담배를 비벼 끄고 그녀의 곁에 가서 앉는다. 그의 몸에 걸쳐져 있던 가운이 자연스럽게 벗겨지고,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시트도 침대 아래로 툭, 떨어진다.


사랑은 지옥같은거네요.

그래, 그런 것 같다.

사랑해요.

지옥에나 가버리라고?

같이 가자는거죠.


사랑해.


두 사람 사이에 불이 붙는다. 마치 지옥처럼.

PRADA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