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칼라가 단정하게 채워진, 차분하게 정돈된 머리카락을 지닌 신부님이 신의 모습을 한 석상앞에서 기도문 을 읊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하고 기도문을 끝낸 남자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가느다란 손가락을 이용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강형사님? 

'강길영 형사님'하고 저장된 이름이 화면에 떠있어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아… 최 윤 신부님이세요? , 저 고형사입니다! 깡길 파트너인!]


고운 미간이 짙은 눈썹으로 살며시 찡그려졌다. 

강형사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만큼 급한일인건가? 무슨일이라도 있는건가 싶어 물었다.


"무슨일이시죠."


원인모를 불안함이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대답없는 고형사의 모습에 차게 식은 손가락이

조금씩 떨려왔지만, 모르는척 핸드폰을 반대편 손으로 고쳐 쥐었다.


[… 다른게 아니고 이쪽으로 와야할거같아서, 전화드렸어요.]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않는다고 하던가. 고형사님이 말하지않아도 지금하려는말이 무슨말일지, 짐작이갔다. 꿈에서라도 듣고싶지않았던 … 그말이. 


교구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어떻게 나와 무엇을 타고왔는지, 지나가는 사람과 어깨를 여러번 부딪혀 

비틀거리고 몇번이고 무릎에 힘이 풀려 넘어졌지만. 그마저도 확실한 기억이없었다.

그저, 고형사님이 알려준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 지하 모니터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나열되어있었다. 

제발 아니기를. 내가 생각하는게 아니기를. 만약 맞다면…, 동명이인이거나 혼돈이있어 , 잘못알았다던가. 그렇게 빌었다.


" 야, 이새끼야!! 누가 너보고 끌어안고 가랬어. 어? 대답해봐!! 윤화평! "


[계양진 근처 동측바다에서 백골시신이 발견됐어요…. 신원확인결과 택시기사였던 

윤…화평씨로 확인돼서요.]


하얀색 천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덮여져있었다.


왜 다 싸매놓은거지, 숨을 못쉴텐데. 답답하지도 않나.


강형사는 바닥에 주저앉아 '윤화평 이새끼야!' 하면서 큰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고, 고형사는 그런 강형사를 부축하려고 했지만 어찌나 힘이 쎄던지 고형사의 손을 뿌리치고 윤화평이 누워있는 곳으로 가 손이 있을만한 곳을 더듬었다.


그때문인지, 순백의 하얀 천이 밀려올라가 그 천 밑에 있던 …, 뼈밖에 남지않은 손이 보였다.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쳐졌다. 목이 졸린사람처럼 콱 막혀 숨도 쉴수없었고, 눈을 깜빡일수도 없었다. 

손가락이 끝이 차게 식어갔고 입술끝이 달달 떨려왔다.

신을 모시며, 신을 믿는 사제가 이런생각을 했다고 하면 사제자리에서 박탈 당할걸 알면서도 최 윤은 생각했다.


신은 없다고.

신은 없다. 있다면 …이래서는 안됐다.

악마에게 할머니를 잃고, 어머니를 잃었으며… 아버지마저도 잃었다.

남은 가족이라고는 할아버지밖에 없는데 그 할아버지에게 빙의된 박일도가있었고,

박일도에게 어머니를 잃은 강형사님도. 하물며 자기자신 조차도 윤화평을 박일도로 의심하며 몰아붙였었다.

나만 불행한줄알았다. 이세상에서 나만큼 불행한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제였던 형이 부모님을 무참히 살해하고, 나이차이많이나는 동생을 죽이려했던것도.

그로인해 사람들이 악마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했던것도.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윤화평을 알고난후, 그의 과거를 알았을땐… 자신마저도 동정심이 일었었다


그랬던 그가 박일도를 없애고, 무얼하고 싶냐는 물음에 그저 '평범하게 살아봐야지.' 하며

나지막히 웃음을 짓던 윤화평의 모습이 아직도 이렇게 눈에 선한데… ….


울다가 탈진했는지 힘없이 축 늘어지는 강형사님을 고형사님이 데리고 나갔다.

온전히 단둘밖에…, 아니 자기자신과 유골하나만 남은 영안실은 . 끔찍할만큼의 적막감이 흘렀다.

"윤화평씨."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윤화평을 부르면 동그란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차며 , 투덜거리면서도.

" 어이, 신부님. 불렀으면 말을해~ "

꼬박꼬박 대답해주던 모습이 생각났다.


"윤화평씨."


"윤화평씨."


"윤화평."


"윤화평!!"


"…뭐라도 말좀해봐요… 제발. "


믿지않았다. 믿기싫었다. 박일도와 함께 사라져버린 윤화평을 1년넘게 강형사님과 하루도 거르지않고 찾아다녔다. 살아있다는 소식도, 죽었다는 소식도 들린적이없어 살아있다고 굳게 믿으며 조그마한 단서라도 눈에 불을키고 찾아다녔다.

죽은 육광이라는 무당 근처에서 윤화평의 신발이 나왔을때도, 신발만 있었지 윤화평이 죽었다는걸 제 두눈으로 확인할수 없었기에. 그랬기에 살아있다고 확신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그랬는데…. 


"…윤화평씨… …, 윤화평… 화평아 …. " 


두눈에서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혼자 도망가서라도 잘살지. 박일도에게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뭐가 그렇게 미안해서 늘 눈치보고. 얼굴한번 마주한적 없는 타인을 위해 나섰는지 ….


"차라리 도망가서 평범하게 살지 그랬어요."


차라리 그러지…. 그랬으면 멀리서라도 당신을 지켜볼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손에 닿을수도 없는곳으로 가버리면. 난 이제 어떻게 살아 가야 해요?


눈물이 눈앞을 가리며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 신경쓰지 않았다.


할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야, 윤화평. 잘지냈냐? 어떻게 꿈에 한번 안나와? 그렇게 거기가 좋냐?"


강길영이 마른웃음을 지었다. 벌써 윤화평이 떠나간지도 10년이 지났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번 경찰서에서 구박만 받던 막내 강길영이. 어느새 한 부서의 팀장자리까지 올라갔고, 

평생 혼자살거같았던 자신의 곁에는 나를 믿고 지지해주며 응원해주는 남편이 있었고.

자신의 바지춤을 꾹 눌러잡는 작은 고사리같은 아들이 있었다.


" 엄…마 여기 모야? "


웅얼웅얼, 치아가 발달하지못해 앙증맞게 발음이 세는 자신의 아들을 안아든 강길영이 웃으며 얘기했다.


" 응, 엄마 오래전 친구들."


윤화평이 잠들어있는 묘에 시선을 뒀던 길영은, 이내 그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옆에는 또다른 묘가 동그스름하게 있었다.


" 최윤, 이새끼야 … 그렇게 윤화평이 좋았어? 너가 그렇게 믿던 신마저 저버릴만큼? "


파스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길영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모습이 마치 최윤이 대답을 해준것처럼 느껴져서 강길영은 소리내어 웃었다.


" 그래, 너희들이 그렇게 좋다는데 내가 어쩌겠냐. 난 너희들보다 훨씬 늦게 갈거다, 늦게왔다고 삐지면 

진짜 … 죽는다?"




[ 10년전 ]


최윤이, 윤화평의 시신을 매장한 묘를 몇날 며칠… 한시도 떨어지지않고 그앞에서 가만히 앉아 허공만 바라봤을땐 최윤이 쓰러지진않을까, 정신을 놓아버리진않을까 걱정했지만

밥도 잘 챙겨먹고, 잠도 자는 모습을 보며 길영은 괜한 기우 였다며 한시름 놓고는 더이상 일을 뺄수없다며 경찰서로 울며 겨자먹기로 출근했다.

장례를 치루고 윤화평의 물건을 정리하러 화평의 집을 찾아간 길영은, 화평의 책상위에있는 편지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쓴거지?

편지를 들자마자 보이는 간결한 글씨체가 딱 자기성격을 그대로 편지에 담아놓은듯 했다.


ㅡ 강형사님께. 저 최윤입니다. 강형사님.  아마 지금 이 편지를 보실때 쯤, 저는 …  ㅡ


편지를 와락 움켜쥔 길영은 차를 타, 윤화평이있는 … 계양진으로 거칠게 차를 몰았다.


길영은, 자신의 두눈을 믿을수없었다. 자신이 보고있는게 무엇인지, 인지했지만 … 수긍 할수없었다.


윤화평의 묘가있는곳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경찰들과, 귓가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너무멀게만 느껴졌다. 다급하게 뛰어가는 자신을 막는 경찰들에게 정신없이 경찰이라며 뱃지를 보여준후에야 , 다가갈수있었다.


최윤은, 윤화평의 묘위에 기대듯 누워 눈을 감고있었다. 축 늘어진 몸 옆에는 나뒹굴고있는 알약들과,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잔뜩 적셨다.

이럴리가없어. 야, 장난치지마. 최윤.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최윤을 보는 길영을 지나쳐 구급대가 들것을 이용해 최윤을 구급차로 옮겼다.

윤화평이 있었던 그 병원에서, 최윤 또한 조용히 윤화평의 곁으로 갔다.


길영은, 최윤을 윤화평의 묘 바로 옆에다가 세웠고 풀썩. 주저앉아 최윤이 남기고간 구겨져버린 편지를 폈다.


ㅡ 아마 지금 이편지를 보실때 쯤, 전 윤화평씨 곁에 가있을거같네요.

미안해요, 강형사님. 제 세상에 윤화평씨가 없는게 더이상 상상 조차 할수없어요.

강형사님은 제 몫까지 , 윤화평씨 몫까지 더 평범하고… 행복하게. 특별한 일 없어도 즐거운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하고싶었던 말이지만, 오늘이 아니면 더이상 할수가 없을거같아 

서 말씀드려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강길영 누나. ㅡ




주책맞게, 예전생각만 나면 눈물이 났다. 눈가를 손으로 벅벅 문지르던 길영은, 아빠 올 시간됐다며

자신의 아들손을 잡고 내려갔다. 길영의 아들이 가다가 멈칫 서더니 돌아서서 작은 고사리같은 손을 흔들었다.

" 아들, 누구한테 인사한거야? "

길영의 질문에 아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 형아들! "

아무도 없었는데 …? 의아한 길영의 얼굴에도 아이는 고개를 작게 도리질 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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