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소설
* 영화 <스타트렉> AOS 스팍커크 커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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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Dream in dream 2



스팍은 자신 앞에 놓인 광경에 놀라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 위로 보드라운 햇살이 쏟아져 내렸고, 푸르스름한 들풀과 노랗고 하얀 꽃들이 온기를 나누며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커크의 안은 너무도 밝고 아름다워서 오히려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마인드멜드를 사용해본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손끝을 거쳐 간 이들 가운데 이처럼 세밀하게 정형화된, 섬세하고 서정적인 내면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오랜 기간 보아왔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함장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감성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무척 새로웠다.


‘내가 아는 당신과 당신의 세상에 자리한 당신은 조금 다르군요.’


스팍은 커크의 또다른 면을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가슴 한쪽이 쓸쓸해지는 기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마인드멜드를 하면 평소보다 감정적인 반응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하프 벌칸이기 때문인지, 다른 벌칸도 그러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인드멜드를 하는 대상에게 동화되는 것일까. 그것 역시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은 지체할 틈이 없었다. 벌써부터 감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커크에게도, 스팍에게도 부담이 가는 행위였다.
스팍은 자신이 벌칸이라는 사실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커크를 위해서라도 그는 냉철한 벌칸이 되어야 했다.
솔직한 감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제나와 같이.



_

미간에 조금 힘을 준 스팍은 고개를 가로 세차게 저으며 떠오르는 잡념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얼마 안가 고개를 바로 세운 스팍의 표정은 평소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원하던 것처럼, 조금 더 이성적인 시선으로 커크의 내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제 주인처럼 찬란하게 반짝이는 풍광은 보는 이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풀가지들은 녹빛을 넘어, 햇볕을 품으며 금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근처를 바라보던 스팍은 좀 더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겨보기로 했다.
저 멀리 야트막한 동산 하나가 희미하게 보였다.
넓디넓은 공간 가운데 그 동산이 한 눈에 들어온 까닭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파란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답지만 평범하다고 볼 수 없었다.
현실과의 괴리가 가장 큰 곳,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다.


문제는 거리였다.
이곳은 커크의 내면이자 현재 꾸고 있는 꿈의 일부가 반영된 일종의 가상공간이지만, 소비하는 체력과 정신력은 실제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대로 된 길이 구현되어 있지 않다면 도착하기까지 하루가 걸릴지, 이틀이 걸릴지 장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도달해야할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그 때, 스팍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멀리서 무언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스팍은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을 벗어나 저도 몰래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커크에게 동화되고 있는 것일까.


스팍의 곁으로 다가온 그것은 우아한 갈기를 펄럭이며 아름답게 달리는 백마 한 필이었다.
뜬금없는 상황에 스팍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백마에 올라탔다.
말은 기다렸다는 듯 콧김을 가볍게 뿜고는, 동산을 향해 다그닥 다그닥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보드라운 흙길을 밟는 소리가 무척이나 정겹고 듣기 좋았다.


그 말은 몇 번이나 같은 길을 오간 것처럼 능숙하게 움직였다.
어쩌면 그의 발자국이 쌓이고 쌓여, 이 푸른 평야에 좁다란 오솔길이 자리한 것인지도 몰랐다.
스팍은 말에게서 전해오는 따뜻한 온기에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멍하니 휴식을 취하던 그는 자신을 태우고 걸어가는 백마에게 눈을 돌렸다.
길게 내려온 말의 속눈썹이 커크의 그것처럼, 눈을 깜빡일 때마다 사뿐사뿐 흔들리고 있었다.
문득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새어나오려 했다.
‘아직은... 아직은...’
스팍은 눈을 질끈 감았다.



_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뒤로 하며 얼마간 달렸을까, 야트막한 동산의 정경이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놀랍게도 동산 초입에는 아늑하고 편안해 보이는 앙증맞은 오두막이 한 채 있었다.
스팍은 직감적으로 커크가 그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말은 집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얌전히 그를 내려주었다.
스팍은 잊지 않고 고마움을 담아 말의 보드라운 콧잔등을 몇 번이나 쓸어 주었다.
말은 크고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그의 손길을 즐겼다.
스팍 역시 어딘지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에 말을 계속 매만지고 싶어졌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듯 스팍에게서 떨어지기 아쉬워하던 말은, 오두막 쪽을 잠시 바라보고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멀어져갔다.
백마 덕에 정신을 차린 그는 서둘러 오두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두막집에 가까워질수록 스팍은 발걸음을 재게 움직였다.
심장은 그런 발걸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어느덧 스팍의 바로 앞으로 다가온 작은 오두막집은,  
언젠가 보았던 지구인들의 동화에서와 같이 나무로 만들어진 포근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스팍은 숨을 골랐다.
천천히 깊은 숨을 내뱉으며, 이곳에 오기까지 지나온 무수한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렸다.


‘이 먼 곳, 아담한 오두막 안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마침내 스팍은 오두막의 단단한 문을 밀어젖혔다.
그리고는 평소와 다르게 침착함을 잃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to be continued

글쓰기 연습하는 이너테일 입니다. 영화, 드라마, 만화 커플링 BL소설을 주로 적고 있습니다. 그림도 가끔 그려요.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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