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캡틴을 믿지 않는 피터

 


“피터! 장난해? 내 지시에 왜 하나도 안 따랐어?”



  단언컨대, 캡틴이 이렇게 화가 난 것을 보는 건 어벤져스 멤버들도 처음이었다.


  정작 캡틴을 화나게 한 피터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토니만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니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캡틴의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피터를 감싸주기엔 오늘 피터가 임무에서 저지른 실수(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의도적인 훼방)이 너무 컸다.



“대답 안 해? 내일도 이럴 거야?”



“...죄송해요.”



“죄송하면 다야? 네가 계속 단독행동하는 바람에 일정이 이틀이나 미뤄지게 생겼어!”



“전 이번 임무에서 빠지겠다고 전에 퓨리한테 말했었어요.”



“그래서 지금 하기 싫은 임무 맡겼다고 시위하는 거야?”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면 뭔데?”



  격해지는 스티브의 목소리에 말려야겠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때, 토니가 입을 열었다. 눈은 여전히 태블릿에 고정된 상태였다.



“스티브, 그만 좀 하지? 사상자 안 나왔으면 됐잖아.”



“우리가 이 임무만 있어? 여기서 이틀 밀리면 이다음 임무는 어쩔 건데? 거기서 사상자 나오면 그땐 어떻게 할 거냐고!”



“스타크씨한테 뭐라고 하지 마요! 제가 잘못한 건데 왜 스타크씨한테 소리를 질러요?”



  스티브는 생전 처음으로 어린애를 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린 것도 아니잖아? 미성년자일 때부터 봐와서 그렇지, 이젠 성인인데. 한 대 때리면 안 되나?


  스티브가 자기를 한 대 때리는 것을 고민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피터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스티브를 노려봤다. 마치 오늘 저지른 자신의 잘못보다 토니에게 한번 소리 지른 게 더 큰 잘못이라는 듯이. 토니는 이 팽팽한 신경전에 한 번 더 끼어들까 하다가 관뒀다. 피터가 캡틴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덮어놓고 감싸주기엔 오늘의 피해가 크기도 했다.



“피터, 따라 나와.”



“네.”



  불쑥 따라 나오라는 토니의 말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피터를 보고 스티브는 더욱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아까 임무 수행 중에는 그렇게 이름을 불러대도 대답 한번 안 했으면서! 그래도 저렇게 토니와 대화하고 오면 피터가 말을 훨씬 잘 듣는다는 것을 아는지라 내버려 뒀다.


  밖으로 나온 토니는 안쓰러운 눈으로 피터를 바라봤다. 오늘 일에 대해서 혼을 낼까, 어르고 달래볼까 고민하다가 근황부터 묻기로 했다.



“요새는 좀 어때. 상담은 꼬박꼬박 받고 있는 거지?”



“당연하죠. 지금까지 하루도 안 빼먹었어요.”



“그래, 잘했어. 오늘 일은...”



“오늘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이렇게까지 팀에 피해가 갈 줄은 몰랐어요. 죄송해요.”



“...그렇게 바로 사과하니까 할 말이 없네.”



“전 토니가 캡틴이랑 같이 있는 게 싫어요.”



  쉴드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터가 캡틴을 싫어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물론 완벽한 착각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많아 피터도 토니도 그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었다. 피터가 토니 없이 캡틴하고만 임무를 뛸 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이 셋이 모였을 때만 벌어졌다.


  그동안 토니가 화도 내보고, 달래도 봤지만 효과는 잠깐이었다. 피터가 바라는 것은 ‘토니와 캡틴이 같은 임무에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집을 쉴드가 받아줄 리 없었다.



“중요한 임무에는 스티브랑 나 둘 다 있어야 해. 특히 오늘처럼 적이 생화학 무기를 가지고 있을 때는.”



“그래서 제가 오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아까 스티브에게 당당하게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피터의 말끝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퓨리도 이젠 우리 셋을 같은 임무에 배정 안 하려고 해. 그런데 이번에 널 넣었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 그만큼 사람이 더 필요했다는 거지.”



“...저도 그건 알아요. 하지만...”



“...”



“막상 토니가 위험해질 것 같은 상황이 오면...자제가 안 돼요. 그냥...그냥 머릿속이 하얘지고, 이 모든 게 다 함정인 것 같고, 캡틴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게 되고...”



“스티브가 지금까지 내 목숨을 셀 수 없이 구했다는 건 알고 있지?”



“알아요, 캡틴한테도 정말 죄송해요. 저도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요...”



  토니는 계속 죄송하다고 말하는 피터에게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피터가 지겹도록 반복한 사과였지만 불안정해 보이는 피터를 몰아붙이기는 싫었다. 그럴 시간에 피터의 전력을 대신할 수 있는 아머를 개발하는 게 나았다.



“됐고, 들어가서 스티브한테 사과나 제대로 해. 아까 네가 대충 사과해서 더 화난 것 같더라.”



“네.”



  어딘가 풀죽은 것 같은 피터가 맘에 쓰여 토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피터, 나 생각보다 엄청 세. 맘 먹고 싸우면 너보다 더 셀걸? 그러니까 걱정 그만해도 돼.”



“알았어요, 스타크씨 센 거 인정해줄게요.”



“뭐? 인정해줘? 내일 너 내 눈에 띄면 거미줄 끊어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아하하! 진짜로 끊을 건 아니죠?”



  토니는 그제야 표정이 풀린 피터를 보며 따라 웃었다. 이럴 땐 정말 애 같은데 말이지. 피터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스티브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오늘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은 그만큼 더 열심히 뛸게요.”



  아까는 사과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퓨리 핑계를 대더니, 토니와 5분 얘기하고 들어왔다고 고분고분해진 피터를 보며 스티브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스티브의 기분이 풀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팀원들의 눈빛을 무시하기 힘들어, 애써 피터의 등을 두드리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래, 내일도 그러면 진짜...진짜...혼난다.”



“네!”



  고작 한다는 협박이 ‘진짜 혼난다’라니. 스스로의 몰위엄에 놀란 스티브는 어서 회의실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오늘 피터가 저지른 실수를 윗선에 이해시킬 변명도 마련해야 했다.



“토니, 나랑 얘기 좀 하자. 내일 간부회의 때 쓸 변명거리 생각해 놔야 해.”



“그거 이미 내가 좀 만들었어.”



“뭘 만들어?”



  의아해하는 스티브의 질문에 토니는 아까부터 들고 있던 태블릿을 흔들었다.



“피터 바디캠을 좀 수정했어. 아까 네가 화낼 때 열심히 고쳤지.”



“와...너 솔직히 말해봐. 피터랑 너랑 하이드라에서 온 스파이 아니야? 뭔 실수를 덮으려고 영상을 조작해?”



“원본은 너한테 따로 줄게, 됐지?”



“하...나도 모르겠다. 조작 영상이나 보여줘 그럼.”



“내 연구실로 가자. 세부적인 건 자비스랑 하는 게 나아서.”



  그 말을 끝으로 스티브와 토니는 회의실을 나갔다. 피터는 둘이 떠난 자리를 잠시 응시하다가,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피터까지 회의실을 떠난 후에야 어벤저스 멤버들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토니와 스티브가 막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 피터는 토니의 연구실에서 직선거리로 2km쯤 떨어진 건물 옥상에 앉아있었다. 지난 몇 년간 뉴욕 시내를 누비고 다닌 끝에 고른 최적의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시력을 조금만 집중하면 토니의 연구실이 훤히 다 보였다.


  피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토니와 스티브를 봤다. 둘은 오늘 임무에서 피터가 어깨에 달고 있던 바디캠의 녹화영상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니에 의해 조작된 녹화영상을 보고 있었다. 스티브가 고개를 몇 번 흔들었고, 토니가 몇 번 웃었다. 영상이 꽤 길어서 토니와 스티브는 자리에 앉아 얘기하며 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터의 눈이 욱신거렸지만, 피터는 눈을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둑했던 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진 후에야 토니와 스티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손을 흔들고 스티브가 드디어 토니의 연구실을 나섰다. 스티브가 연구실을 나가고도 30분이 지나서야 피터는 피곤해진 눈을 감싸며 옥상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눈의 뻑뻑함이 좀 가셨다 싶을 때 피터는 손을 치우고 일어나 본부로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내일은 어떻게 해야 티 나지 않게 스티브를 감시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외전 2. 몇 년 뒤


  몇 년이 흐른 뒤, 피터는 낮부터 술에 잔뜩 취해 토니가 일하는 곳으로 쳐들어왔다. 문이 안 열리면 창문으로, 창문도 안되면 환풍구로, 어떻게든 들어오는 피터 때문에 토니는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왜 꿈에도 안 나타나요? 내가 미워요?”



“피터,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해가 쨍쨍한데 뭔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그 말을 들은 피터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마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길 바랐다가 아니란 걸 깨달은 것처럼.



“저는...언제쯤 괜찮아져요? 슬픈 게 사라지질 않아요. 보고 싶은 마음이...사라지질 않아요.”



“....”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피터는 여름만 되면 이렇게 술에 취해 스타크를 찾아오곤 했다. 어느 날은 그냥 얼굴만 보다가 갔고, 어느 날은 토니와 함께했던 추억을 얘기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이렇게 별말 없이 울었다.



“너무 보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 거야.”



“전 잊고 싶은 게 아니에요. 다시 만나고 싶은 거예요. 왜 다들 잊으라고만 해요.”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



“그럴 리 없어요. 로키만 찾으면, 그 공에 소원만 빌면 다시 만날 수 있어요.”



  피터가 공 이야기를 꺼내자, 토니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그건 절대 안 돼. 소원 한번 빈 걸로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두 번 빌게 내버려둘 것 같아?”



“딱 한 번만 보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 뒤엔 어떤 불행이 와도 견딜 수 있어요.”



“이제 그만 잊어야 해. 못 잊겠으면 잊은 척이라도 해야 돼. 왜 날만 더워지면 술을 이렇게 마셔대? 초인이라 잘 취하지도 않을 텐데.”



“...탈수가 올 정도로 술만 마시면 취하더라고요.”

 


  그날 이후, 로키는 공을 가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피터는 한동안 로키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온갖 뉴스와 SNS에 알람 설정도 해놨다. 로키, 신, 단발남, 초록색코스튬 등등 로키를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단어를 알람해놨다. 때문에 피터의 폰은 항상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렸다. 몇 년간 쓸모있는 정보는 단 한 개도 뜨지 않았지만, 하루 동안 쌓인 알람을 훑어보는 것은 피터가 잠들기 전 절대 빼먹지 않는 일과가 되었다.


피터는 그저 로키를 만나 다시 한번 소원을 빌고 싶었다.

한 번만, 다시 한 번만 토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이번엔 그 끝을 함께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로키는 우주 어딘가로 사라져버렸고, 피터가 헤맬 수 있는 범위는 고작해야 뉴욕이 전부였기 때문에 피터가 그 소원을 비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외전이 많이 늦었죠!!!!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ㅎㅎㅎ


#토니피터 #마블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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