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큰 사람이 되긴 어려우나, 당신 앞에서 만큼은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때 이렇게 살았었다는 이야기라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어느 주말이었다.

원래는 찾아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우리들을 괴롭히던 사람이 물러났다는 사실을 원덕언니에게 전하고 싶어 한번 더 무극에 내려갔다.

그냥 나 졸업한 것만 전하고 그것으로 끝내려 했지만, 그걸로 끝내기가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래서 한번 더 인사하러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도 꽃 한다발 사들고 갔다. 역시나 백합꽃이었다.

좀더 화려하게 하고 싶었지만, 난 역시 소박한게 좋았으니까.

그리고 커피 하나 사들고 가게 되었다. 저번 머드쉐이크는 내가 음복할 수 없으니까.

추모관에 도착하여 원덕언니 자리에 꽃 한다발 놓고 커피병 뚜껑 따서 자리에 놓으며 말했다.

 

“원덕언니, 한번 더 찾아오게 되었어요. 원래는 저 졸업한거 그걸로 끝내려 했지만, 언니한테 그래도 우리 괴롭히던 사람이 물러나서 그 소식 전하려고 왔어요.”

 

그러면서 원덕언니 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 그 자리 올라갔으니 다행이라 생각해요. 다른건 필요없고, 그 인간만 봉인하면 될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왜 이렇게 쓴 웃음이 나는 걸까? 그 대통령 같지 않던 사람만 봉인하면 되는걸까? 그 생각에 진짜 쓴 웃음만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커피 한모금 마시며 혼자 질문하듯 묻는다.

 

“언니,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요. 대학도 졸업하고, 언니의 원수도 다 갚고, 나는 뭘 해야 할까요?”

 

그것이 내가 원덕언니에게 던지는 화두와도 같았다. 모든걸 다 이룬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것이 왜이렇게 허무한 걸까? 그때문에도 복수란 것이 허무하다고 하는 걸까? 그럴 때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원덕언니가 바라고 원하던 것.

 

- 신율씨는 그냥 재미있게 살면 돼요. 나 보기에 재미있게.

 

그리고 또....

 

-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동안에 뭐하고 지냈는지 나한테 들려주면 돼요. 천일야화라는 것도 있잖아요? 그러니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이야기 거리 꼭 챙겨와야 해요. 설마 그 정도도 못하겠는건 아니겠죠?

 

그래서 결심했다.

비록 내가 훌륭하고 멋진 사람은 되긴 힘들 것 같다. 막 위풍당당한 사람은 못되더라도, 그래도 원덕언니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그런 사람이 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뭐 굳이 업적 남기려고 사는 것 보다는 그래도 남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가는것도 나쁘진 않겠지. 원덕 언니가 원하던 것도 사람답게 살다가 오는걸 원하는 거니까.’

 

원덕언니 자신이 해보지 못했던 것, 그리고 나만이 할수 있는 것. 그것을 찾아 이루면서 사는 것이 그것이 원덕언니가 바라던 일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원덕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게 되었다.

 

“언니, 나 이번만 찾아오고 다신 찾아오지 않을거예요. 그렇다고 언니를 잊겠다는건 아니예요. 하지만 여기로 찾아오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여기엔 언니의 겉껍질만 있는 곳이니까. 나중에 우리가 만날 곳에서 그때.... 다시 만나요. 여기에 오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그때... 못다한 이야기를 다 하면서 진한 커피 마시면서 밤 한번 새봐요. 네?”

 

왜 내 눈에서 눈물이 나는걸까? 더는 눈물도 안나올 것처럼 다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승에서의 만남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원덕언니를 잊기는 굉장히 힘들 것이다. 아마 내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겠지. 내가 원덕언니의 오점인 것일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건, 원덕언니가 날 도와준 것이 후회되지 않게 사는 것이 낫겠다는 그 마음 하나 뿐이었다.

 

남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게 무슨 백합이냐고.

하지만 백합의 형태는 너무나도 다르기에. 하얀 백합만 있지 않고 붉은 백합, 검은 백합도 있듯이.

뭐, 원덕언니가 날 인정하지 않을수도 있겠지만은, 그래도... 언젠가 다시 보게 된다면 국화꽃에 백합꽃 꽃다발 하나 만들어서 선물로 주고 싶은 마음은 매 한가지다.

(혹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이런일이 있었다는걸 사람들이 '제대로'알아줬음 하는 마음에서 적어본 것이라는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원덕언니가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설령 그 아픔이 평생을 간다고 해도

그래도 한가지 믿고 있는건....

 

[그래도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그 희망 하나?]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이별을 겪기 마련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났다고 한대도, 언젠가 살았어도 죽었어도 반드시 다시 만날 날이 있다고 할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 부끄럽지 않게 살다 가기로 한 것이었다. 내가 나쁜짓을 하게 되면, 만약 삶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게 된다면, 만날 수 있다는 그 희망마저도 놔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정말, 떳떳하게 살다가 가서 다시한번 보고 싶은데, 내가 나쁘게 살다 간다면? 볼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겨 버리는 것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정말로 잘 살게 된다면?

재단 하나를 세우고 싶다.

그 언니 이름 뒷 글자, 내 이름 뒷 글자 따서

그래서 나처럼 배우고 싶어도 학교 가기 어려운 애들이라던가, 나아가서 안된 동물들도 돕고 살고 싶다.

안된 동물들 돕고 싶은 이유는, 원덕언니가 동물들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그래서 강아지도, 고양이도 같이 돕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가능할지는 몰라도....

 

언젠가 시간이 평가해 줄지 모르겠지만, 시간의 평가는 어느쪽을 택할지 모르겠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숭고한 희생을 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만이 기억하는 아련한 그리움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이 이야기를 본다면, 이 그리움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택은 보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언젠가 이 이야기를 다시 보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이 일이 작은 일일지라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걸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소망 하나.

 

그리고 나는?

언젠가 만날날을 기다리며

남 부끄럽게 살다가지 않길 바라며 지내는 것.

그거 하나 뿐이다.

 

 

나만이 기억하는 사랑 2부 완.

 

  

 

에필로그

2010년에 처음 그 언니를 만나고 2020년이 된 지금, 나는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삶을 살고 있다.

나한테는 너무나도 버거운 삶이었고, 현실이고 지금도 이어지는 삶이기에.

돌이켜 보면? 아예 그 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그것을 뒤집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친구들, 나보다 앞서서 변화해 버린 친구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짐 때문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걸 비웃을 생각은 없다. 왜냐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순리같은 것일테고, 나는 그 순리에 벗어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어떻게 보면 내가 홀가분 하게 느껴지겠지만, 어쩌면 내가 바보일지, 아니면 친구들이 바보일지 그것은 보는 사람의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가명으로 원덕이라 하였지만, 진짜 이름은 그보다도 더 예뻤고, 그보다도 흔하지 않은 이름이다. 그리고 정말로 용문행 전철역에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힌트 : 용문역 4정거장 전)

만약에 그 언니가 이거 보면 진짜 배꼽을 빼고 웃을일이고, 어떻게 자기 자신을 이런 백합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느냐고 할지....

아니면?

 

[아버지한테 이용당하느니 차라리 백합소설의 주인공이 나을 것 같아요]

 

라고 할지.

그건 아무도 알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확실한건?

그 언니가 원했던 삶, 그리고 그 언니가 누리지 못했던 삶을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가서 다시금 만나야 겠다는 생각 밖에 없다.

 

3부, 낼까?

 

그럼 마지막으로 들려드리는 시입니다

 

 

 

어느 전철역에서 - 백합향기

 

용문 가는 마지막 길에

아무도 찾지않는 어느 전철역 하나

이름만 들어도

눈물날 것 같은 전철역 앞

그 사람이 그리도 그리워 했던

고향 같던 길

 

언젠가

 

내 그리운 사람

만나러

그 곳에 다시 갈까

 

다시 만나면

국화꽃에 백합꽃다발

한아름 싸서 드리리

 

하지만 지금은 기약없이

전철만 기다리는

아무도 없는 역앞

 

용문 가는 마지막 길에

아무도 찾지않던 전철역 하나

언젠가 그곳에서 마주칠

어느 두 사람....




작가 후기

이렇게 2부가 끝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역사 나열하는 수준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편향적이라고 들을지도 모르겠지만은, 적어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가슴 먹먹한 이야기만 쓰기도 그래서 적어도 그 언니가 원했던 재밌었던 일화도 적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3부를 정말로 적게 된다면? 나중에 시간 한 1~2년 뒤에 쓸 생각입니다.

3부의 내용은 바로 이 [코로나 사태]를 직접적으로 적을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3부의 시작과도 비슷한 외전을 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한다면?

 

러브라이버 로서의 일대기를 한번 적어보고자 합니다.

그럼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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