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천사를 그려보라 한다면, 아이는 사람에게 하얀 날개를 붙이고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릴 것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천사의 상징은 그 두 가지였다. 날개와 머리 위의 동그라미.

광륜. 헤일로. 머리 위에 둥실 떠다니는 빛의 고리. 빛으로 대표되는 신은 천사들의 머리 위에 자신의 동그란 일부를 얹어주었다. 그 반짝이는 원은 천사들에게 언제나 신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고, 그 사실은 작은 위안과 천사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 고리는 그들을 신의 아래에 묶어두는 족쇄이기도 했다. 언제나 천사들의 위에서 감시하는 동그란 눈.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벨제붑, 어찌 그런 불경한 말을!"

벨제붑의 말이 끝나자 가브리엘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그를 질책했다. 벨제붑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벨제붑은 생각하는 자였고 가브리엘은 행동하는 자였다. 생각이 이어지면 결국에는 의심으로 번지게 된다.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벨제붑은 누군가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합리적인 의심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다.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고, 몇몇은 그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내비추기도 했다. 물론, 가장 큰 반감을 드러낸 것은 지금 제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허공의 눈치를 살피는 가브리엘이었다.

"신께서 노하실거네."

"정말로 신이 분노했다면, 지금 바로 나는 사라졌겠지. 이게 날 지켜보고 있으니까."

벨제붑은 파란 눈으로 제 위의 원을 바라봤다. 보고 계십니까? 질문하는 듯한 시선이 몇 초간 이어졌다. 가브리엘은 그런 벨제붑을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에게는 찡그릴 표정을 감추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가브리엘은 행동하는 자였다. 그 말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게 하기 위해 믿음의 벽을 견고하게 쌓아올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벨제붑은 그 믿음의 호수에 돌을 던졌지만, 돌은 호수에 닿기도 전에 단단한 성채에 가로막혔다. 그에게 있어 신은 절대적인 존재였고, 그의 일에 의문을 갖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절대자가 잘못을 할 리는 없잖은가.

그 후, 모두가 알듯이 전쟁이 일어났고, 악은 천사의 자격을 모두 박탈당한 뒤 추방당했다. 그들은 추락했다. 머리 위의 빛이 사라지고 날개가 검게 변했다. 벨제붑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하얀 옷을 검게 물들이고 어둠과 동화되었다. 그들은 추락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았다. 머리 위의 원 따위는 그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벨제붑은 자신의 의지 없이 신의 뜻대로만 사는 마리오네트같은 삶을 원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광륜 대신 왕관을 쓴 이유였다.

* * *

그로부터 육천년 후. 크로울리는 언제나 그랬듯 잠을 자기 위해 누웠고 아지라파엘은 그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기로 했다. 아지라파엘은 읽다 만 책을 들고 누워있는 크로울리의 옆에 앉았다.

"...천사."

"응, 크로울리?"

"지금...지금 그걸 조명으로 쓰는 거야?"

크로울리는 제 옆에 앉아있는 아지라파엘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지라파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마주봤다.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 듯한 말간 표정이었다. 크롤리의 손가락이 천천히 올라가더니 아지라파엘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이건... 헤일로잖아."

"그렇지."

"그리고 넌 그걸 책 읽는 데 쓰고 있고."

"응."

"대단한데. 나조차도 생각치 못한 새로운 사용법이야."

크로울리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느리게 박수를 쳤다. 아지라파엘은 그 행동이 자신을 비꼬는 것인지, 진정으로 칭찬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에게 그만하라고 말한 뒤 웃으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 아지라파엘은 제 머리 위에 떠있는 고리를 순전히 독서를 위한 조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고작' 책을 읽는 데에 기적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고-가브리엘이 알게 된다면 또 기적을 남용했냐며 저를 들들 볶을 게 뻔했으니까-램프는 그가 앉은 자리에서 켜기에는 너무 멀었다. 일어나기에는 지금의 자세가 너무 편했고, 그렇다고 잠을 자려고 막 누운 크로울리를 방해하기는 또 싫었다. 책을 읽지 말자니 잠을 자지 않는 그로서는 밤이 아까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아지라파엘은 남들이 신성함의 상징이라고 여기는 것을 독서용 조명으로 사용하는 중이었다.

크로울리는 자리에 누운 채 아지라파엘을 올려다봤다. 책에 집중하면 으레 그러듯이 입술을 앙다문 얼굴이 맨 처음 보였고, 하얗게 빛나는 곱슬머리가 그 다음으로 들어왔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동그랗게 내려오는 빛.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빛은 아지라파엘의 신성함을 배가시켰다. 크로울리는 팔을 뻗어 아지라파엘의 헤일로를 손 끝으로 건드렸다. 손가락은 보기좋게 빛을 통과했다. 언젠가는 제 머리 위에도 있던 것. 그 빛에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손가락이 아렸다. 마음이 아린 건가.

"이런 데에 쓰면 벌 받지 않을까?"

크로울리는 손을 내리고는 물었다. 아지라파엘은 책장을 넘기며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아무 말 없었는걸."

"오, 신이 꽤 관대하신가본데."

저도 모르게 비꼬는 투로 말이 나왔다. 크로울리는 혹시 아지라파엘이 기분이 상했을까 잠시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도 아지라파엘은 책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의 말투까지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신은 언제나 자비로우시지."

"그래?"

크로울리는 베개에 머리를 푹, 쳐박듯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자비, 자비롭다라. 크로울리는 별로 타락하고 싶지 않았지만 슬슬 아래로 내려가게 된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다. 자비?

"나한테는 별로 그렇지 않던데."

"뭐라고? 못 들었어."

"아무것도 아니야, 천사. 계속 읽어. 방해 안 하고 잘게."

크로울리는 말을 마치고 아지라파엘을 등지고 누웠다. 평소같았으면 잠들기 직전까지 그를 바라봤을 테지만, 왠지 그 빛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크로울리는 벽에 희미하게 반사되는 흰 빛을 무시하려 애쓰며 눈을 감았다. 얇은 눈꺼풀은 그럭저럭 빛을 가려주었다.

아지라파엘은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한 번도 크로울리가 저를 등지고 자는 일은 없었는데. 그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이것 때문인가. 아지라파엘은 제 머리 위를 환히 밝히는 것을 흘끔 곁눈질했다. 방 안을 환히 밝히는 하얀 빛.

불편했을까? 아지라파엘은 그제야 크로울리가 '저주'받은 것을 아무렇지 않아하는 척 연기하면서도 실은 굉장히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불편했겠지. 이것은 그가 잃은 것들을 상기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을테니까. 아지라파엘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에 한숨을 쉬고는 책을 덮었다.

아지라파엘은 헤일로를 치웠다. 크로울리의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던 희미한 빛이 사라졌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아지라파엘은 책을 나이트 스탠드에 올려놓고, 크로울리를 따라 눕고 이불을 덮으며 나직이 말했다.

"잘 자, 크로울리. 좋은 꿈 꿔."

"...너도, 천사."

크로울리는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웠고, 고개를 돌려 아지라파엘을 힐끔 쳐다봤다. 눈을 감고 잠들려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났다. 크로울리는 그를 따라 눈을 감으며 자세를 고쳤다. 잠시 뒤, 방 안에는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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