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브 a와 히로가 연애를 하는 이야기/ 코우지의 과거 연애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돌은 절대로 연애를 하지 않아야 해. 누군가 하나만의 것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니까."

하야미 히로는 그 말을 버릇처럼 되풀이하였다. 

사실은, 핑계라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아이돌이라서 한 명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하나만의 것이 되어 다른 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 매우도 두려웠다. 아직 성장하지 못하였던 히로는 애달프게도 관심을 바라왔다. 어머니가 제게 주지 못한 그 반짝이는 감정들을 채워 넣고 싶었다. 

그런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적어도 이 단 하나밖에 없는 친우, 미하마 코우지에게 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코우지는 아주 단단한 자신을 좋아해주었다. 그가 주는 다정한 눈길이 무엇보다도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는 강인한 하야미 히로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히로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사실은 겁쟁이고, 달아나고 싶고, 껍질을 깨면 안에는 상처가 뭉개져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리가. 

그래서 히로는 자신이 아이돌이기에 연애를 하지 않을 거란 말을 반복하였다. 그는 히로의 말을 계속 들어주었다. 그의 말에 수긍을 해주었고 그럴 때마다 히로는 안심하였다. 들키지 않았다는 생각에 묵직하던 감정 하나가 소모된 기분이었다. 



'오늘도 바빠요?'

히로는 그렇게 문자를 보내놓았다. 메세지 창의 마지막 말은, '잘 자요.'라는 자신의 메세지였다. 물론, 그 뒤로 답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히로가 실망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바빴나 보다 할 뿐. 그가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 것이 그리 서운치 않았다. 히로도 항상 바쁘니까, 같은 업계의 사람이면 한창 바쁠 시기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서운함은 다른 곳에서 오고 있었다. 

코우지는 여전히 제게 말을 걸지 않는다. 히로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수긍한 눈치기는 하지만 딱딱한 태도는 여전하였다. 그래도 사람들을 의식하여선지 전 보다는 풀린 듯 하지만 히로는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코우지가 저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는데,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코우지와의 대화가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말을 걸라 치면 꼭 바쁘다는 듯 굴고 가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 마주친 눈에는 동요가 들어 있었다. 그가 왜 그러는 지 히로는 알 수 없었다. 

코우지는, 꽤나 긴 연애를 한 끝에 담백하게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의 의사로 실행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다 소중한 친구들이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굳이 기분나쁠 이야기를 꺼낼 이유는 없었다. 두 사람은 헤어진 사람들 치고는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한 쪽은 사랑스러운 새로운 연인과 함께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더더욱 거리낄게 없는 것일까. 

어쨌든 코우지는 꽤 오랜 나날을 연애하였다. 히로는 그런 코우지의 연애를 꽤나 응원하였다. 그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일 아닐까. 물론 가끔 오버 더 레인보우에게 어떤 위기가 찾아올 지라도, 그가 행복하지 않다면 프리즘쇼는 할 수 없을 테니까. 히로는 자신의 친우가 행복한 엔딩을 맞기를 바랐다.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은 히로가 코우지보다도 더 안타까워 했을 것이다. 그는 그 후로 연애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도 했지만 그 또한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가 더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도록, 일상을 함께 보내 주었다. 어느 새 서로의 일상이 그대로 자신의 일상이 될 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쌓여 있었다. 

이대로 둘이 살아도 되지 않을까. 히로는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벌써 자신도 23살을 맞이하였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한 번 쯤 미래를 생각해 볼 나이. 다른 누군가가 미래에 함께 한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인지 결국 종착점은 이대로 코우지와 늙어서 하하호호 하고 있는 미래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 고민들 중에 누군가가 히로에게 다가왔다. 자상한 사람이었다. 단 내가 풀풀나는 눈으로 다가와 적극적으로 관심이 있다고 표현하여 왔다. 단 한번도 연애를 생각하여 본 적 없었던 히로에게 처음으로 고민이란 것을 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의 고백은, 소박하면서도 대담하였다. 그럭 저럭 관계를 유지해 간 지 보름이 되었을 즘, 그는 마치 때가 되었다는 듯 자연스레 사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반지는 부담스러울까, 목걸이를 준비했다며 수줍게 꺼내 놓은 것은 심플하지만 분명 값이 꽤나 나갈 것 같은 목걸이였다. 

히로는 고민하지 않고 수락하였다. 아직 그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연애를 하다보면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면 분명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코우지의 연애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한 사람의 것이 되어도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형태로 히로를 사랑해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더 따뜻한 감정을 가질 수 있으니, 연애가 자신의 생각만큼 모든 것을 잃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이별은 무섭지만 그렇게 무엇이든 무서워 해서는 평생 그런 감정은 가져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히로는 그를 사랑해보려고 노력하기로 마음 먹었다. 

'조금 바쁘네요. 히로씨는 어때요?'

'저는 지금 이동 중이에요.'

메세지가 오자마자 답장을 하고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차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다음 주에는 드라이브 데이트나 하자고 할까. 아, 그도 운전을 못하지. 코우지는 잘 해서 곧잘 교외로 나가곤 했는데. 그런 잡다한 생각들이 차들 사이로 같이 스쳐지나갔다. 

이 전 스케쥴은 개인이었지만 다음은 코우지가 함께하는 스케쥴이었다. '돌아보는 명곡'이란 제목의 프로그램으로, 세월이 좀 지난 명곡의 당사자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보는 약간은 개그성이 들어가면서도 교양적인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PRIDE'의 차례가 돌아 왔던 것이다. 제의가 들어온 것이 한 달 전. 그리고 코우지와 냉전상태가 된 것이 3주쯤. 그 전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을 거절했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히로도 듣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아직 어리던 히로는 코우지가 그저 작사 작곡의 천재라고만 생각하며 한 없이 즐거워 했지만, 지금의 히로에게는 조금 의문점이 들었다. 코우지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질척한 가사를 쏟아낸 것일까. 

아직 중학생들이던 저희에게는 너무도 깊은 감정의 가사였다. 비록 노래가 좋고, 모두가 만족할 만한 노래긴 하였지만 중학생들이 부를 곡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거운 감정이지 않을까. 

코우지는 누구를 위하여 그런 노래를 만들어낸 것일까. 그런 약간은 잡다한 것들이 저도 궁금하였다. 오늘 주인공은 자신과 코우지였지만 아마도 코우지가 해낼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방송국에서는 지금 흥미진진하게 질문지를 잔뜩 떠안겨 주었다. 해산되었던 유닛의 이야기부터, 노래의 권리까지. 아마도 꽤나 눈독을 들였을 만큼 사연이 많은 노래긴 하니 이때다 하고 개처럼 달려든 것이겠지. 어느 정도 쳐내긴 했지만 모두 이야기를 거절하여서야 나올 분량이 없으니 그나마 괜찮은 것을 추려냈다. 방송국은 아쉬운 듯 하면서도 출연을 거절할까 싶어 수긍하였다. 

히로는 질문지를 다시 훑어보았다. 자신을 저격하는 질문도 꽤나 있었다. 

'히로에게 PRIDE의 첫 인상은?'

'히로는 이 노래가 말하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있을까요?'

두 번째는 꽤나 자극적 요소를 끌어당겨 보고자 싶어 넣은 것일테고, 아마도 그들이 궁금한 것은 첫번째겠지. 

히로는 잠시 눈을 감고 과거를 떠올렸다. 때 마침 귓가에 메세지 알림이 울렸다. 아마도 제 애인이겠지만, 지금은 별로 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어차피 나중에 전화 한 번 하면 되니까. 

오래된 기억이 감은 눈 사이로 살며시 내려 앉았다.  




"정말 사연이 많은 곡이죠. 두 분이 여러모로 많은 녹초를 겪으셨고 말이죠."

"다 옛날 일이죠. 그 시절은 어리기도 했고."

"하지만 노래 내용은 전혀 어리지 않은데요? 이 노래를 누가 중학생이 썼다고 믿겠어요?"

진행자의 능숙한 멘트에 코우지는 잘 받아쳤다. 아무래도 작곡가가 할 이야기가 더 많을 수 밖에 없었다. 히로는 간간히 보조로 이야기를 덧붙이며 녹화를 이끌어갔다. 스태프들의 표정이 밝은 것을 봐서는 원하는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그 때는, 제 안에 있는 말들을 그냥 써내렸어서, 사실 저도 의미를 잘 몰랐어요."

코우지의 갑작스런 발언에, 진행자도 출연자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히로도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는 사전에 말해 주지 않았잖아. 

"어머, 그럼 그 나이에 직접 그런 감정을 겪은 것이란 말인가요?"

"아마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게 제 감정인 줄을 몰랐어요. 만들고 보니 그냥 잘 나와서 그대로 히로와의 데뷔곡으로 쓰고자 했던 거 같아요. 히로에게 잘 어울리겠구나 싶었거든요."

"세상에, 여러분 그래서 준비하였습니다. 그 시절 아직 어리던 코우지씨와 히로씨의 모습입니다."

대략 10년은 다되가는 영상을 그녀가 틀었다. 아직 어리숙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지고 다들 귀엽다는 둥, 아직 어색한 티가 난다는 둥 말을 얹었다. 

히로는 그 사이 코우지를 쿡 찌르며, 마이크를 잠시 막고서 물었다. 

"너 이런 얘기 없었잖아?"

"히로도 나한테 전부 얘기해 주지 않았잖아?"

"무슨 얘.... 아니 거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

히로는 코우지가 무엇을 말하나 하다 이내 눈치채고는 표정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인가. 그러나 코우지는 히로의 표정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더는 말을 않겠다는 뜻으로 마이크를 다시 고정시켰다. 히로는  뭐라 하려다 이내 제 마이크도 다시 고정시키고 앞을 바라보았다. 

"저런 아직 어리던 코우지에게 대체 누가 그런 감정을 가져다 주었을까요?"

모두가 흥미진진한 연애 이야기를 듣는다는 듯 시선을 코우지에게로 쏟아냈다. 히로는 코우지의 태도가 불안한 반면 궁금하였다. 어쩌면 곡의 출발을 듣는 것이니까. 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곡을 써내리게 된 것일까. 어차피 과거의 일이라면 그냥 한 때의 추억 정도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면 그만이니까, 사실은 그냥 이야기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비록 자신과 상의하지 않은 것은 괘씸하지만. 

"아마도,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녹화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스윗한 천재 아티스트의 과거 연애사에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PD는 지금 대박을 건졌다는 듯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모두가 코우지에게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어머, 코우지씨는 정말 사랑꾼인가봐요."

아마도 그 말에는 그의 마지막 연애에 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 코우지는 그 얘기는 자제해달라는 듯 진행자에게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이 컷은 편집이다. 아마 PD는 이 컷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분명 이 씬을 공개도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정말로 빛나던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찬란했어요. 보는 것만으로도 제 가슴이 다 부풀어오르는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아마 곁에 있는 것 만으로 저마저 빛나는 기분이라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꽤 오랬동안 몰랐나봐요."

코우지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이야기를 마저 이어나갔다. 

"그도 그럴게 그 사람은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뒤는 침묵이었다. 멍하니 있던 진행자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 다음은 없나요? 그 사람이랑 어떻게 되었다던가."

"음, 없어요. 알지도 못했던 짝사랑인데 결말이 어디있겠어요."

코우지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는 녹화장 안의 게스트들을 한 번 빙 둘러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히로에게도 시선을 흘렸다. 

시선이 따가웠다. 

잠깐이었지만, 히로는 그의 눈 때문에 잠시 숨을 쉬는 법을 까먹었을 지도 모른다. 그 다음에 부족한 산소를 폐 가득히 빨아들이느라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이 선전포고임을 히로는 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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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어질 생각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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