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혁이 몇살이에요?' 의 외전...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가볍게 쓴글이니 가볍게 읽어주세요ㅎ

([중독] 우리중혁이 몇살이에요? : http://posty.pe/c6nl02 )



까만 머리통 세 개가 나란히 턱을 괴고 앉아 싱글거렸다. 한수영의 옆자리엔 신유승이, 신유승의 옆자리엔 이지혜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던 유중혁이 그꼴을 보고있다가 짜증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아브우….”

고작 옹알이 하나에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길다못해 바닥에 질질 끌리기까지 하는 후드티를 입고 바닥을 느릿느릿 기어다니는 아기의 시선이 사람들 너머에 있는 유중혁을 향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표정의 의미를, 유중혁은 알고 있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그러했으니까.

“독자아저씨 울 것 같은데요?”

“배고픈가보다. 우유 먹여야하나?”

“사부때도 그냥 이유식만들어 먹이지 않았어요?”

“저놈은 아기여도 위장이 강철일 것 같으니까 그랬지. 이건 김독자잖냐.”

“아…하긴….”

하긴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아기는, 정확하게 아기가 된 김독자가 결국 빼액 울음을 터트렸다. 울려고 했던게 아닌데, 아기가 된 몸은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의 제한적이었고, 결국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저멀리서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대는 유중혁의 낯짝을 보고 김독자가 더욱 서럽게 울었다. 넌 뭔데 끄덕거리냐! 라는 의미였으나 이윽고 낮았던 시선이 공중으로 붕 떴다. 한수영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김독자를 품에 안은탓이었다. 가뜩이나 고양이처럼 새초롬한 눈매가 그녀의 기분을 따라 한층 더 치켜올라가 있었다.

“그래도 이놈은 제대로 해결방법이 있어서 다행이네.”

한수영의 한마디에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공중으로 향했다.

 

[히든 시나리오 - 생명의 신비]

 

난이도 : A

클리어 조건 : 성운 <김독자 컴퍼니>의 대표, 성좌 「구원의 마왕」이 무사히 성장할수 있도록 지켜봐줄 것.

제한시간 : 없음.

보상 : 50,000코인, 성장한 「구원의 마왕」

실패시 : ???

 

그랬다. 얼마전 유중혁을 아이로 변하게 만들었던 시나리오의 잔재를 쫓아 홀로 돌아다니던 김독자는, 그와 마찬가지로 아기가 된채 공단에 돌아왔다. 유중혁때와는 다르게 시나리오도 오류없이 발동해서인지 완벽하게 한두살 젖먹이의 모습이었다.

“성장할수 있도록 지켜보라는 뜻이…설마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건 아니겠죠?”

“…….”

신유승에 질문에 대답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힐끗 유중혁에게로 시선이 향하기도 했지만 그역시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간만 구기고 있었다. 결국 첫날은 멤버들 모두 아무런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울다지쳐 꾸벅거리는 김독자를 재우곤 모두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누군가의 놀란 외침에 잠에서 깬 사람들이 눈을 부비며 하나둘 거실로 걸어나왔다.

“어제는 겨우 뒤집더니, 오늘은 걷네요.”

유상아가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생글대며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유상아의 손가락 하나를 꾹 부여잡고 조막만한 발을 뒤뚱대며 내걷는 것은, 분명히 김독자였다. 어제와 달리 팔다리를 휘적대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 분명 하루사이 말도 안되게 자란 것은 분명해보였다.

“와…진짜네. 너 이제 말도하냐?”

“브아앗….”

“못하는구만.”

“독자아저씨, 비유가 우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꺄르르 웃는 신유승을 보곤 잘만 걸어가던 김독자가 초췌한 표정을 지었다. 아기인데도, 정말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당연하게도 일행들은 그마저 귀엽다며 연신 볼살을 쿡쿡 찔러댔다.

그만좀 만져대세요! 라는 의미로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흐뷰으, 같은 이상한 옹알이만 우렁차게 나왔을 뿐이었다. 모든이들이 사랑스러운 눈빛을 띈채 녹아내렸지만 김독자는 홀로 침음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비적비적 걸어오는 새카만 인영을 발견하고 짧막한 팔다리가 바동거렸다.

“쮸으우!”

유중혁이 힐끗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혀를 차며 얼굴을 구겼다. 아니, 저자식은 내가 지 어려졌을 때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키웠는데(?)…! 김독자가 배신감에 몸을 부르르 떨자, 유상아가 쉬야한건 아니냐며 품에 안고 엉덩이를 조물딱거렸다. …정말 치욕스러운 순간이 아닐수 없었다.

눈코입이 오밀조밀한데다 새하얀 얼굴까지 발갛게 달아오르니 지금의 김독자는 정말 돌배기처럼 보였다. 그순간 유상아에게 안겨있던 몸뚱이가 붕 뜨더니, 넓고 탄탄한 가슴팍으로 안겼다.

“애한테 이상한 짓 하지마라.”

능숙한 손길로 김독자를 품에 안은 유중혁의 반대손에는 익숙한 젖병이 들려있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상황은 정 반대였었다. 김독자가 유중혁을 안고, 밥을 먹이고, 트름을 시키고….

“히뀩….”

어울리지않게 씨익 웃음짓는 유중혁의 얼굴을 보며 김독자가 딸꾹질을 했다. 이새끼 복수하는거구나…! 하지만 작은 아이의 몸은 반항은커녕 제대로 고개도 내젓지 못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도, 입에 젖병이 물려지자 김독자는 세상이 무너진 얼굴로 얌전히 우유를 빨았다. 한참을 쳐다보고만 있던 일행들도 시간이 흐르자 익숙하게 하나둘 각자의 일을 찾아갔다.

얼마전처럼 두 사람만이 남은 방안에는 간간히 꼴깍대는 소리만 울렸다. 와중에 몸뚱이가 먹고 자기만 하는 아기인지라, 김독자는 채워지는 배와 함께 가물거리는 눈꺼풀이 느껴졌다. 일어난지 고작 두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끔뻑대는 시야가 야속하기만 했다.

잠들기 직전, 유중혁이 친절하게도 등어리를 토닥여주자 끄륽, 하는 작은 소리로 트름이 나왔다. 수치스럽고 민망함에 죽을 것 같은데, 너무나 졸렸다. 김독자는 혼잣말처럼 옹알이를 내뱉으며 스르르 잠에 빠졌다.

 

“그거 내나….”

“주세요라고 해야지, 꼬맹이.”

“한수여엉, 시끄러.”

꺽꺽대며 웃음을 토해내는 한수영의 뒤에서 커다란 손이 나타나 그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어갔다. 들고있던 것을 빼앗겼음에도 한수영은 웃는데 정신이 팔려 소파를 데굴 굴렀다. 유중혁이 핸드폰을 들고오자 이제 제법 혼자 걷는데 익숙해진 김독자가 쪼르르 달려갔다.

“뛰지마라, 넘어진다.”

“나 애 아니야….”

부루퉁하게 튀어나온 입술위를 저도모르게 잡아보려던 유중혁이 헛기침을 하며 손을 뺐다. 두손에 가득 쥐이는 핸드폰을 건네받은 김독자가 흘러내리는 티셔츠를 꼬깃하게 잡아쥐곤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라고 해봤자, 의자가 높아 앉지못하는 그를 위해 유중혁이 깔아준 2장의 방석이었다. 이지혜가 그걸보곤 강아지 보금자리냐 물었다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선에 쪼그라들었다.

주방에서 걸어나오던 정희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확실히, 빨리 자라기는 하네요.”

“그렇지? 이런식이면 우리가 아는 모습까지 보름도 안걸리겠는데.”

멤버들 대부분이 그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룻밤을 다시 자고 일어나니, 김독자는 그새 서너살 아이만큼 자라나 있었다. 제법 문장도 만들어서 말도 할줄알고, 혼자 옷가지도 주워입는 것을 보며 소식을 듣고 달려왔던 아일렌이 줄줄 녹아내렸다. 귀엽다고 달려들려는 것을 유중혁이 겨우 붙잡아 제지한 후에도, 연신 앓는 소리를 내는 탓에 김독자는 조용히 방안으로 숨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수영은 눈에 익은 꿀벌옷을 들고 하루종일 김독자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물론 유중혁에 눈에 발견된 꿀벌무늬 옷은 단숨에 흑천마도에 의해 갈갈이 찢겨져버렸다. 두 사람이 서로 격을 방출하며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반쯤 넋이 나간 김독자는 식탁앞에서 밥을 깨작거렸다. 유상아가 편식하지 말라며 접시에 덜어준 방울토마토를 슬쩍 바닥에 굴려버리려다 들키고 난후엔, 아예 수저까지 빼앗겨버렸다.

얌전히 입안으로 들이밀어지는 식기를 받아먹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편안했다. 이틀내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가 불편했는데, 일일이 먹여주고 갈아입혀지는 생활이 썩 나쁘진 않았다. 어려진 유중혁이 입었던 옷을 그대로 꿰어입은채 식사를 끝낸 김독자가 의자아래로 깡총 뛰어내렸다.

찌이익. 그리곤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조용해졌다. 당황한 김독자가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일행들은 뽀얀살이 보이는 옆구리를 녹아내릴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뒤늦게 찢어진 상의를 돌돌말아 손에 쥐면서 김독자가 몸을 웅크렸다. 고작 밥을 먹는 잠깐 사이에, 딱맞던 티셔츠의 실밥이 튿어질 정도로 팔다리가 자라나버렸다.

“가…갑짜기 커뎌서그래…!”

“읗킄…그래, 이 누나가 옷 가져다줄겤킄킄킄흫흫….”

웃다지쳐 바닥을 기어가는 한수영을 사납게 노려본 김독자의 시선이 당황한 얼굴의 유중혁과 부딪혔다. 깊은 한숨소리와 함께 커다란 담요가 김독자의 몸위로 둘러졌다. 포대기로 아이를 감싸듯, 유중혁은 그대로 그를 안아들곤 폭소가 터진 일행들을 피해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 뚱뚱한거 아니야…!”

“알고 있다.”

“자꼬…자라서 그런거야아….”

“…안다고 했다.”

묵묵히 제 무릎위에 앉혀두고 찢어진 옷을 벗겨내는 유중혁을 보며 김독자가 필사적으로 변명을 쏟아냈다. 옷이 작을 수밖에 없는게, 김독자의 몸은 그새 아침에 입었던 옷가지가 낑길만큼 자라났다. 한참 성장기인 아이들이 그러하듯, 계속해서 팔다리가 늘어나니 옷의 접합부가 헤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급한대로 자신의 티셔츠하나를 입히고 흘러내리지 않게 허리를 붙잡아 매준 유중혁이 김독자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어딘가의 구석에 대충 던져두었던 아이신발을 찾아내 손에 들고온 김독자가 아무 카페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낑낑대며 고사리 같은 손을 움직이더니 겨우 신발두짝에 발을 끼워넣는데 성공했다. 그 모습을 모조리 지켜보고 있던 유중혁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나이 즈음이면.”

“어엉?”

“차야한다고…하지않았던가.”

“…머를….”

…허억. 김독자가 파드득 튀어오르며 놀란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주저앉은채 엉덩이를 씰룩이며 뒤로 도망가는 것이 정말 아이같았다. 막다른 벽에 닿자 입고있던 티셔츠를 꾹 잡은채 몸을 동그랗게 말고 바닥에 웅크렸다. 스스로 김밥말이가 된 김독자를 바라보며 유중혁은 아까부터 말려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느라 숨을 끅끅거렸다.

“…시…시러….”

“…네 놈이, 그러지않았던가. 기저귀는 차는게 좋다고.”

“너도 안해짜나…!”

“넌 채우려고 했지.”

“아…안해쓰면 되지 모….”

사실 정말로 해볼생각은 없었는데 저렇게까지 귀엽게 거부하는 것을 보고있자니 괜한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몰래 이수경에게 연락해 받아온 기저귀를 숨겨두고 있던 유중혁은 또다시 하루가 지나고, 일곱,여덟살만큼 커버린 김독자를 보며 짜증스레 혀를 찼다.

“…너 왜 짜증내냐?”

“…….”

유중혁은 대꾸하는 대신 작게 피어오른 모닥불에 무언가 천쪼가리를 던져넣었다. 어디서 봤던것같은데, 뭐지…. 기저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김독자가 갸웃하는 사이, 오늘도 김독자컴퍼니의 숙소에 방문한 아일렌은 제멋대로 가져온 아이옷을 주욱 늘어놓았다.

사이즈는 어떻게 안건지 별별 희한한 디자인의 옷이 족히 열벌은 튀어나왔다. 꼬마신사 같은 아이정장도 있었고, 자그마한 멜빵이 달린 청바지도 있었고, 알록달록한 반바지에 단정한 셔츠도 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땐 귀여운 디자인의 옷들이었지만, 김독자는 뭐라 입을 여는대신 한숨과 함께 유중혁의 다리사이로 폭 숨어버렸다.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아일렌은 옷만 남겨둔채 포기하고 돌아갔다. 잘먹고 잘자는 것만으로도 시나리오는 클리어 될텐데, 어쩐지 작아진 몸에 피로가 쌓이는 느낌에 김독자가 흐느적거렸다. 아기 오징어처럼 느물거리던 몸뚱이가 침대에 풀썩 쓰러지자 유중혁이 혀를 찼다.

“침대위엔 씻고 올라가라.”

“…알았어….”

“대답만 하지말고.”

“알았다구우….”

역시 몸뚱이만 작아졌을 뿐 김독자는 김독자였다. 유중혁은 새삼 그 사실을 깨닫고 귀찮음으로 늘어진 작은 오징어를 휙 들어올렸다. 단숨에 넓적한 품에 안기게 된 김독자가 바동거리자 그를 잡은 팔뚝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내가 씻을수 있어….”

씻을순 있겠지만 씻겠다는 의지라곤 전혀 없을것이라는 유중혁의 잔소리에 김독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자식은 왜이렇게 날 잘아는걸까…. 얌전히 들려 욕실로 향한뒤 김독자는 한번더 파드득 떨었다.

“얌전히 벌려라.”

“응부븝….”

꾹 다물린 입술을 투명한 치약이 짜인 칫솔이 톡톡 두드렸다. 이 몸뚱이면 유치원생, 아니 초등저학년은 될텐데 칫솔질까지 해주려는 격한 친절함에 김독자가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하지만 유중혁의 손이 매끄러운 턱끝을 쑥 잡아당기자 금세 입이 벌어졌다. 칫솔모가 부드럽게 잇몸을 훑고 지나가는 감각에 김독자가 어깨를 움츠렸다.

어렸을때도 누가 이를 대신 닦아준적은 없었는데…. 묵묵히 칫솔질을 하는 유중혁의 얼굴이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침묵이 어색하기만한 김독자와는 달리 유중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금니까지 닦아내느라 집중하고 있었다.

허리를 반쯤 굽히고 몰두하느라 찌푸려진 미간이 낮아진 눈높이에서 아른거렸다. 보기드문 그 얼굴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양치하는 시간은 짧았다. 물이 넘실거리는 작은 물컵을 건네며 유중혁이 굽은 허리를 주욱 폈다.

“헹구는건 할수 있겠지.”

“…으응.”

사실 양치질도 혼자 할수 있었다고 말하려다가 김독자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서늘한 시선에 다시금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았다. 열심히 물을 머금고 우물거리다 뱉어내는 내내 사나운 흑안은 떨어지질 않았다. 부담스러웠지만 어찌저찌 물한컵으로 입을 씻궈내고 나니 마른 수건이 목에 감겨왔다.

“…응?”

“멍청하게 서있지말고 눈이나 감아라.”

아니 뭘하려고….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김독자는 눈을 꾸욱 감을 수밖에 없었다. 잔상처가 많아 거칠기만한 유중혁의 손이 물을 묻히고 얼굴을 쓸어내렸기 때문이었다.

으프풉,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김독자가 파득 얼굴을 털어냈지만 뒷목이 꽉 잡혀있는터라 고개도 돌릴수 없었다. 연신 물로 얼굴을 닦아내던 손이 우유향이 나는 비누까지 손에 들었다. 조물조물 커다란 손에서 몇 번 구르던 비누에서 거품이 일자 다시 얼굴로 다가왔다.

결국 비눗물까지 모두 씻궈내고 유중혁이 흥, 하며 코까지 풀어주고 나서야 김독자는 욕실에서 빠져나올수 있었다. 중간에 놀라 눈을 떠버렸더니 따가워서, 살짝 붉은기가 올라오는 눈가를 비비적거렸다. 김독자가 불만스레 투덜거리는 와중에, 부드러운 수건이 그의 손을 제지했다.

“비비면 따가울거다.”

유중혁이 느리게, 그리고 부드럽게 수건으로 닦아내리는 동안 김독자는 얌전히 그의 손에 얼굴을 맡겼다. 이래저래 투덜거리기는 했어도, 오래전 동생을 돌보았던 실력덕인지 유중혁의 손길은 섬세하고 유연했다.

물기를 모두 닦아내고 나서 유중혁의 손이 김독자의 코끝을 살짝 쥐었다 놓았다. 그제야 한쪽눈을 빼꼼 뜨며 김독자가 눈을 깜박였다. 이틀내내 꼬질꼬질하던 아이가 이제좀 멀끔해진 얼굴을 보며 유중혁은 희미하게 웃음지었다.

“야아, 너 그표정 진짜 잘생겼다. 평소에도 좀 그렇게 웃어봐라.”

그 한마디에 미소는 바로 지워졌다. 쯧, 혀를 차며 얼굴에 수건을 던지고 욕실을 나서는 유중혁을 따라 김독자가 쪼르르 따라갔다. 따로 해줄 필요도 없이, 혼자 부지런히 성장중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일행들의 걱정은 줄었다. 이따금 히든 시나리오를 찾으러 나가는 몇몇을 제외하고, 김독자의 몸이 돌아올 때까지는 모두가 휴식기간이었다.

다른 일행들이 잠시 외출한 사이 집안에는 한수영과 유중혁만 남게되었다. 몸이 작아져서 인지 김독자는 방안에 틀어박혀 별달리 하는것없이 자거나 뒹굴거렸다. 오늘도 벌써 세시간이 넘도록 그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야, 유중혁.”

“…뭐냐.”

“저 새끼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있냐.”

“…….”

“너도 그생각했지.”

했다. 벌써 한시간이 넘도록 같은 생각을 하느라 초조해하던 두 사람이 눈을 번뜩이며 김독자의 방으로 들이닥쳤다.

“…이…오징어자식이…!”

한수영이 이를 갈고 유중혁은 검을 빼들었다. 김독자의 방안에는 활짝 열린 창문밖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살랑거렸다. 인기척은 전혀없었다. 뒹굴거리던 모양새가 그대로 남아있는 구겨진 이부자리에서 새카만 깃털하나가 발견되었다. 누구를 닮아서 참 버석버석하고 윤기없는 닭털같았다. 손에 쥐인 깃털이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쥔 유중혁이 그대로 창밖을 향해 소리쳤다.

“…김독자!!!!”

공단사람들을 수소문하고, 소식을 들은 일행들이 뿔뿔히 흩어져 찾아헤매고 나서야 김독자는 발견되었다. 이제는 초등학생, 내지 중학생정도로 커버린 김독자는 비둘기처럼 까만 날개양쪽이 정희원의 손에 붙들린채 반쯤 끌려왔다.

“체구가 작으니까 아예 철창같은데 집어넣는건 어때요?”

“그래도 아직 애인데….”

“껍데기에 속지마라. 저놈은 그냥 김독자야.”

“아! 그럼 목줄은 어때요?”

자신을 향한 김독자컴퍼니의 광기어린 집착을 보며 김독자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바들바들 떨었다. 그냥 히든피스가 있지않을까 호기심에 산책을 나갔을 뿐인데 격을 뿜으며 공단을 헤집고 다니는 일행들은 정말로 무서웠다.

조금 품이 큰 셔츠를 입고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김독자에게 새까만 인영이 다가왔다. 그늘진 시야에 고개를 들자 불만스러운 얼굴로 서있는 유중혁이 보였다.

“…볼품없이 말랐군.”

그게 불만이었나. 하긴 이시절즈음 김독자는 눈칫밥을 먹으며 괴롭힘에 시달리느라 또래보다 왜소한 체구였다. 지금이라고 살이 많이 붙은건 아니지만 중학교때는 정말 심했다. 그러니 밥친놈 유중혁의 시선에는 유독 마르고 앙상해보이는게 당연했다.

일행들이 투닥거리는 동안 유중혁은 김독자를 안고 주방으로 향했다. 전날보다도 훨씬 체구는 커졌지만 그런건 개의치 않는다는 듯, 가뿐하게 한팔로 그를 받쳐 들었다. 그만큼 가벼운 몸뚱이였기에 유중혁은 불만스럽게 그를 훑었지만 잔소리는 더 이상 하지않았다.

평소처럼 과한 진수성찬일 것이라 생각한것과 달리 식탁위에 올라온 메뉴는 주먹만한 만두 두 개와 뽀얀 닭국물요리였다. 두가지모두, 김독자가 멸살법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남들이 다 급식소로 향하는 점심시간에 홀로 수돗가에서 배를 채울때도, 일주일 용돈을 털어 샀던 싸구려 햄버거를 양아치놈들에게 빼앗겼을때도, 친척들이 자신만 빼고 호화로운 레스토랑으로 외식을 나갔을때도.

비싸고 고급진 음식들보다는, 그의 삶에 윤활제가 되어주는 이야기속에서 주인공이 만들어낸 음식들이 먹고 싶었다. 그의 어린시절은, 그러했었다.

“…무림만두네.”

“아침밥은 제대로 먹지않길래.”

“…그랬나.”

“네 놈이 가장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무림만두와 닭국물.”

김독자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앞에 놓인 접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젓가락을 들어 만두를 반으로 가르니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지금과 같은 몸집을 가졌을때는, 따뜻한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많지 않았는데. 멸망한 세계를 동경하던 그 시절의 눈높이로, 그렇게나 원했던 음식을 이제야 맛볼수 있었다.

괜스레 마음이 아려오는 기분이 들어 김독자가 고개를 떨궜다. 깨작깨작, 조금씩이지만 느리게 비워지는 접시를 보며 유중혁은 식사가 끝날때까지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유중혁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만 더 도망가면 철창에 가둬서 만두만 먹이겠다.”

딸꾹. 거의 비어버린 접시위로 공포에 질린 딸꾹질이 터져나왔다. 농담이겠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왠지 정수리가 따끔거렸다. 마지막 한입까지 깨끗이 비워내자 유중혁의 손이 빈접시를 수거해갔다. 먹을때는 맛있게 먹었는데 마지막 한마디탓인지 먹고나니 속이 울렁거리는 듯 했다.

혹여나 이번에도 유중혁이 직접 칫솔질을 해줄까 두려워 김독자는 부리나케 욕실로 달려가 양치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곤 설거지를 끝낸 유중혁이 검을 질질끌며 거실로 향했다.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순조롭게 시나리오가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유중혁의 가슴팍까지 자라난 김독자가 어느순간부터 크지않았다. 하루, 이틀을 기다려도 변화가 없자 여유롭던 일행들도 걱정스럽게 머리를 맞댔다. 영양분이 부족한 탓일까싶어 배가 터지도록 하루 다섯끼를 먹었으나 김독자는 자라지않았다. 근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견이 나오자 김독자는 반강제적으로 스트레칭과 달리기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몸뚱이는 자라나지 않았다.

결국 성장이 멈추고 일주일이 지나서, 유중혁과 김독자는 시나리오가 발생했던 장소로 향했다. 따라가겠다는 일행들은 겨우 말리고 두 사람은 30분가량을 걸어 폐허가 된 시가지로 향했다. 물론 중간에 김독자가 헐떡이며 자리에 주저앉기는 했지만, 유중혁은 망설임없이 그를 한팔가득 안아 들었다. 묵묵히 걸어가는 유중혁의 옆모습을 보며 김독자가 양손을 꼼지락거렸다.

“…여기는 아무런 흔적도 없는데.”

“흠….”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여전히 성장은 멈춰있었다. 아니면 성장하는데에 무슨 조건이라도 있는건가. 김독자는 자신이 게임캐릭터가 된것 같은 기분에 미간을 찌푸렸다. 성장하기 위해선 사전퀘스트를 완료해주세요! 빌어먹을 스타스트림이 그렇게 소리치는 듯 했다.

“아니면 네 놈이 자란 환경과 관련있을지도 모른다.”

“자란 환경?”

“그 시기쯤에 특별한 일은 없었나?”

특별한 일…. 중얼거리던 김독자가 천천히 시선을 굴렸다. 중학생즈음에 이정도 덩치였던가.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다들 한번씩 겪는…. 그런일들이지 뭐.”

그렇게 말하며 김독자가 해사하게 웃었다. 하지만 유중혁은 한순간 그가 시선을 떨구며 지었던 표정을 알아보았다. 어린시절, 사회에 발도 내디뎌본 아이가 짓기에는 너무도 아프고, 슬픈 낯이었다. 괜히 이곳까지 왔다며 돌아서는 김독자의 작은 어깨를, 단단한 사내의 손이 붙잡았다.

“…네 이야기가 듣고 싶다.”

“…….”

“넌, 나의 이야기로 어린 시절을 살아왔다고 했지.”

그러니 그에게도 들을 자격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로 살려낸 독자(讀者)가, 자신의 비극으로 불행을 견뎌낸 아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무엇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기에, 한참 자라나야할 나이의 소년이 미래로 나아가질 못하고 성장을 멈춘것인지를.

“…뻔한 이야기야.”

“그래도 좋다.”

“너 진짜….”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김독자는 무너진 돌무더기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유중혁도 더는 재촉하지 않고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았다. 평소에 입고다니던 코트처럼 새하얀 셔츠에 까만 바지를 걸쳐입은 김독자는 옷이 큰탓인지 더 왜소해보였다. 손등을 죄다 덮는 커다란 셔츠가 자꾸만 그의 손바닥 안에서 구겨졌다 펴지길 반복했다.

“…학교다닐때…. 난 항상 다른 친구들과 떨어져있었어.”

아주 작은 목소리로, 김독자는 이야기했다. 주변 사위가 조용했기에 유중혁의 귓가엔 또렷하게 들렸다. 늘 듣던 것보다 더 앳되고,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다른아이들이 멀어진게 아니였어. 그저…소문이 아이들을 무섭게 만든거지…. 살인자의 아들. 범죄자의 자식…. 사춘기가 오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10센티는 자랐다고 누군가는 부러워했었는데. 희한하게 따돌림을 당하면서…. 자라는게 멈췄어. 물론 군대에서 크긴 했지만.”

아마,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부모의 보호아래에서 자라났어야 할 어린 아이가, 홀로 세상을 견뎌가며 마음이 굳어버린 만큼 몸또한 그대로 굳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필 친척들한테 팔려가듯 떠맡겨져서 한참 구박받고 그랬는데…. 그때는 네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몰라.”

우습지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김독자는 웃었다. 시나리오는 정말 그 시기의 감정과 연결되어 성장을 멈추게 한것일까. 확실하게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유중혁은 한참동안 이어지는 김독자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해주며 별볼일없는 28년이라는, 독자(讀者)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처음으로 회사에 입사하고나서 짓궂은 사수가 호되게 깨졌던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김독자의 목소리에 유중혁도 덩달아 미소지었다. 슬그머니 내려다본 김독자의 손등은 더 이상 셔츠에 덮혀있지 않았다. 이곳에 걸어오는 동안 품이 커서 팔락대던 셔츠는 이제 크지않았다. 제 주인을 만난양, 딱맞게 김독자의 팔목에 소매가 내려앉아있었다.

 

[히든 시나리오 - 생명의 신비가 종료되었습니다.]

 

[50,0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성좌「구원의 마왕」의 성장이 완료되었습니다.]

 

어느샌가 허공에 반투명한 시스템창이 희끄무레하게 떠올라있었다. 이제는 제법 비슷해진 눈높이로 두 사람이 시선을 맞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제 좀 목이 덜 아프네.”

“목?”

“너 키가 하도커서 올려다보는게 힘들었다고, 이자식아.”

“흥. 네 놈이 작은걸 내탓으로 돌리지마라.”

“참나…. 어려서 작아진거잖아.”

“지금은 크다고 생각하나보지?”

돌아가는 길은 평소처럼 서로 투닥거리고 잔소리를 퍼붓기 바빴다. 공단으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는 기뻐했고, 누군가는 아쉬워했다. 한수영은 이번에도 어디선가 주워온 교복을 휘휘 내저으며 혀를 찼다. 평소처럼 다같이 식사를 하고,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며 잠깐 반짝했던 히든 시나리오에 대한 관심은 하나둘 식어갔다. 어쩐지 몸이 어려졌을때보다 못한 관심을 받는게 퍽 억울했지만 김독자도 어깨만 으쓱이곤 자신의 옷을 걸쳤다.

구겨진 코트자락을 탁탁 털자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옷을 털던 김독자도, 가까이에 있던 유중혁도 똑같이 떨어진 물체를 향해 시선이 움직였다. 손바닥보다 자그마한 그것은, 두 사람의 입에 한번씩은 빨렸던 아기쪽쪽이였다. 김독자가 당황한 듯 황급히 쪽쪽이를 주워들었다.

“한수영 이자식은 이걸왜 내 주머니에 넣어놨대….”

“…버릴건가?”

“뭐…?”

당연하게 쓰레기통으로 향하던 김독자가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렸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유중혁을 쳐다보는데도 김독자의 손안으로 향하는 흑안은 꼼짝도 하지않았다.

“…그럼 이걸 어디다써?”

“네 놈이 또다시 작아질지도 모르지않나.”

“그건또 무슨 헛소리야?”

대답대신 유중혁이 재빠르게 쪽쪽이를 낚아채갔다. 슬쩍보인 사내의 표정은 어딘가 아쉬워보이는 듯도 했고, 은근히 기분좋아 보이는 듯도 했다. 뭐 어떠랴. 김독자는 고개를 갸웃했다가 검을 질질 끌고가는 유중혁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다음날 누군가 김독자 컴퍼니의 두 대표가 꼬마가 된 사진을 공단에 열심히 퍼트렸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김독자의 하얀 코트속에는 꼬마유중혁이 잠든 사진이, 유중혁의 까만 코트속에는 꼬마김독자가 젖병을 문 사진이 들어있었지만, 본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공단은 시끌벅적했다. 

성인 판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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