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및 미스테리 장르에 취약하신 분들은 감상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귀신 및 초자연현상에 대한 묘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BGM과 함께 감상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눈이 퀭했다. 태형이 먼저 씻고 나오자 지민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욕실로 향했다. 출근을 하기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씻어야했다. 태형이 달래주면서 했던 말 덕분인지 그 꼬마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고맙다...고마워... 앞으로도 나오지마... 지민은 꼬마 귀신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길 바라며 한참을 속으로 염불외듯 말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망가진 듯 보였다. 다크서클과 푸석해진 피부. 거울을 보던 지민은 한참을 생각했다. 나.. 화연고 계속 다녀도 되는걸까? 


  “선생님. 빨리 준비하세요.”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고민에 빠져있던 지민은 준비를시작했다. 그래 새학기니까 학생들도 오고 다른 선생님들도 오면 좀 나아지겠지. 북적거리면 아무일 없을지 몰라. 재빠르게 샤워를 마친 지민은 드라이기로 머리를 털어냈다. 푸석한 얼굴에 스킨로션과 썬크림을 바르니 조금 볼만했다. 문제는 벌써부터 졸려온다는 사실이었다. 하품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평소 아침을 거르는 지민이었기에 옷까지 다 입고는 바로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해가 쨍했다. 하늘은 푸르렀다. 새학기에 걸맞는 아침이었다. 넓은 부지에 가득한 푸른 잔디밭과 무성한 나무들. 새가 지저귀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상쾌하네.


 “어? 안녕하세요!”

 “어...네. 안녕하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첫 날 교무실에서 뜨거운 시선을 쏟아내던 그가 있었다. 바로 옆에 서있는 태형에게는 아침인사도 하지 않은 그는 바로 지민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악수를 요청하는 모습에 지민도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꽉 잡아오는 악력에 지민이 움찔했다. 저 큰 눈으로 어찌나 빤히 바라보는지. 지민이 시선을 피하는데 그는 끈질기게 시선을 따라붙었다. 옆에 서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태형이 악수하느라 잡혀있는 손을 끊어냈다.


 “나는 안보입니까 전선생?”

 “뭐 매일 보는 얼굴 뭐가 반갑다고 인사를 합니까?”

 “참나, 출근이나 하시죠.”

 “먼저 가세요. 박지민 선생님은 제가 데리고 갈게요.”

 “미쳤어요?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둘의 대화에 멀뚱히 서있던 지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먼저 메인건물로 향했다. 둘이 으르렁대며 먼저 걷는지민을 치열하게 따라가는 모습이 진풍경이었다. 교무실에 도착하니 처음 보는 얼굴의 선생님들이 많았다. 지민은 쭈뼛거리며 제 자리를 찾았다. 이미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새로온 체육선생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는지 자꾸만 힐끔댔다. 지민은 시선을 느끼면서도 할 일을 시작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수업계획표를 급하게 작업하고 있었다. 유경이 닥달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찔려 수업시작 전에는 마무리 하고 싶었다. 개학 첫 날은 아침에 있는 개학식을 제외하고는 수업이 단 한개였다. 2학년 7반. 시간이 많이 남을 듯 하지만 새로 발령된 지민은 바쁘게 보내야만 했다.




奇妙(기묘)

 MELA




 “안녕하세요.”

 “아아..네! 안녕하세요. 새로 발령받은 박지민입니다.”

 “알아요. 박선생님. 역사 민윤기입니다.”

 “아 역사선생님이셨구나... 잘 부탁드립니다.”

 “네.”


 바로 옆 책상에 앉은 민윤기 선생님. 역사 선생님이라던데 뭔가 나른해보이면서도 대답은 간결하고 언뜻 보았을때는 차가운 느낌이다. 지민은 옆 사람이 조용한 사람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꽤 경력이 있는 선생님 같았다. 분명 젊은데도 이상하게 노련해보였다. 지민이 열심히 작업을 하는 동안 윤기는 그런 지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선생님.”

 “...네?”

 “어려운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교장이 어떤 스타일의 계획서를 좋아하는지는 다 아니까요.”

 “정말요?”


 지민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학 시절 교수마다 선호하는템플릿이 달라 고생했었는데, 그런 지민을 살린 것이 선배들의 족보였으니까. 선배들에게 온갖 아양을 다 부려야 겨우 받아냈던 족보인데 이 선생님은 먼저 족보를 주겠노라 선언했다. 그것만으로 지민은 생각했다. 결혼은이 사람이야. 지민은 의자를 조금 돌려 윤기를 바라보고 앉았다. 그러자 윤기가 눈썹을 찡긋 올리더니 시선을 피했다. 그...저... 말을 더듬었다. 부끄러움이 많으신 분인가? 지민도 괜히 분위기에 전염되어 부끄러워져서 다시모니터를 응시했다. 윤기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는 모습에 사뭇 놀랐다. 의외로 밝은 스타일인가? 꼬리가 있으면 바람을 일으키며 흔들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씨...윤기의 귀가 조금 빨갰다.


 “그... 작업 한 거... 제 메신저로 먼저 보내주세요. 봐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네.”


 윤기는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딱딱하게 내용만적혀있던 계획서를 누가봐도 깔끔하고 눈에 딱 들어오게 만들어주었다. 제 모니터를 바라보던 지민은 작업하는 윤기를 한 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빠져들어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 윤기가 힐끔거리는 것을 알았지만 문서 작업을 하는 방식에 집중하기 위해 무시했다.


 “우와. 선생님 진짜 잘하시네요.”

 “...별 거 아닙니다.”

 “너무 겸손하세요... 제가 하는거 열심히 봐뒀으니까 다음에는 혼자 해보겠습니다. 손수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네...뭐, 정말 별거 아닌데.”

 


 윤기가 머쓱한지 뒷머리를 쓸어내리는 사이 교무실 문을 열고 태형이 들어왔다. 태형은 들어오자마자 지민에게 다가왔다. 성큼성큼 웃으며 다가오던 태형은 윤기와 지민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럴 줄 알았어. 저 뱀 같은 인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돌아본 윤기는 표정이 굳은 채 다가오는 태형을 보며 씩 웃었다. 마치 비웃는 것 처럼. 태형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자 윤기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윤기는 웃음을 참기 위해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박선생님.”

 “어! 네! 김선생님. 무슨 일로...”

 “민선생님이 옆자리라니 행운이네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실 겁니다. 어려운게 있으면 뭐든 도와달라고 하세요. 귀찮아도 박선생님 부탁이라면 다 들어줄걸요?”

 “네에? 에이... 제가 어떻게 다 부탁을 하...”

 “아뇨. 하세요.”


 빈 말인 줄 알고 적당히 대응하던 지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끊는 태형을 보며 움찔했다. 마치 제 말을 들으라는 것 같았다. 김태형 선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지민이 이내 끄덕거렸다. 저 그런데 무슨일로 오신거죠? 지민이 묻자 태형은 깜박했다는 듯 다시 지민을 바라보며 웃었다.


 “개학식이요! 가셔야죠.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을 처음 소개하는 날이니까요. 좋은 연설을 기대할게요.”

 “네...?”

 

 지민은 약간 벙쪘다. 연설? 대부분 학교에 발령나면 교장이나 교감이 소개하고 인사하는게 전부 아니었나...? 유경씨도 이런 얘기는 단 한마디도 안했는데. 지민은 아찔한 듯 눈을 꽉 감았다. 그 모습을 본 태형이 웃었다. 순간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머리를 쓰다듬을 뻔 했다.


 “아.. 연설하는 줄 모르셨구나... 그 아침에 봤던 전정국선생이 국어예요. 연설문 도움 받으시는게 어떨까요?”

 “그래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지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위에 놓여진 펜 하나를 들고 정국에게로 향했다. 무료하게 앉아있던 정국은 지민이 다가오자 세상 밝은 얼굴로 환영했다. 아 연설문이요?? 제가 전문이죠! 정국의 밝은 목소리가 교무실에 울려퍼졌다. 저... 목소리 커진거 보게. 태형이 한숨을 쉬었다.


 “김선생. 자네가 같은 방 쓴다고 이길 줄 알았어?”

 “무슨말이예요.”

 “호락호락하진 않을거라는 말이야. 건방진 김태형씨.”

 “누가보면 민선생님이 박선생을 소유라도 한 듯 하네요?”

 “금방 아니겠어? 가장 오랜시간 함께 옆에 있는게 난데? 참고로 전선생은 곧 탈락이야. 자리도 멀고 같은 방도아니고... 국어라 수업도 많고.”

 “그건 그렇죠. 그래도 선생님. 박선생과 가장 가까이하는건 저예요. 눈독들이지 마세요. 물론 귀엽고 착하고 예쁘기까지 하지만.”

 


 태형은 싱긋 웃어보이며 자리를 떴다. 굳이 연설문 쓰고 있는 지민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며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무차별적으로 들이대면 쓰나...? 윤기는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던 지민의 모습이 생각나 씨익 웃었다.앞으로 기대되네. 어쩌다 셋이 지민에게 꽂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개학식은 일사천리였다. 체육관에 모인 수많은 학생들이 지겨운 표정으로 단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처음본 교장, 교감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선생님들이 단상에 올라가 간단한 인사를 했다. 학생들 초유의 관심사인 담임 배정에 여기저기서 환호 또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신규 선생님 소개. 사회자인 교감이 지민의 이름을 불렀다. 지민은 첫 출근이라 챙겨입은 수트 자켓을 잡아 펴고는 단상으로 향했다. 학생들의 웅성거림에 지민은 손에 진땀이 났다.


 “안녕하세요. 올해 여러분들과 처음 함께하게 된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체육 선생님이에요.”


 정국이 도와준 연설문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떨리는목소리가 그대로 마이크를 타고 체육관을 울리는 듯 했다. A4용지 반 정도 되는 짧은 듯 긴 연설문을 모두 읽고 나니 학생들은 박수를 쳤다. 한 고비 겨우 넘겼다. 지민은 후다닥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다시 선생님들 무리에 서자 옆에 있던 정국이 어깨를 툭 두들겼다. 잘했어요. 귓속말을 하느라 가까워진 정국에게서 옅은 향수 냄새가 났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금사빠는 아니었지만 임용고시 준비에 학교 졸업에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지민은 연애가 고팠다. 기댈 사람이필요하기도 했고. 안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의 무엇에 반했든 호의를 가지고 들이대는 사람을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 잘 되면 좋은거고 아니면 마는거고. 사실 학교 발령되면서 크게 기대는 안했다. 워낙 학업성적과 결과에 목매는 학교니까. 그런데 그 생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같은 방 룸메 김태형 선생, 딱 봐도 자신에게 들이대는 것이 보이는 전정국 선생, 옆자리 민윤기 선생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학생들은 개학식이 종료되자 시끌벅적하게 교실로 돌아갔다. 대부분 서울 상위권 대학을 노리는 학생들이고 외국 명문대학 진학도 목표로 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아 긴장했는데, 웬걸 일반 고등학생들과 똑같다. 지민은 귀여운 모습에 웃었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지민은 교무실로 돌아가 교장, 교감에게 인사를 다시 한번 드리고 제 자리에 앉았다.


 “후우...”

 

 진이 빠졌다. 수트를 당장이라도 갈아입고 싶었다. 어깨가 뻐근했다. 멍하니 앉아있는 지민을 본 윤기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걸었다. 이 사람 조용한 사람 아니었어...?


 “아예 첫 학교이신가요?”

 “네..!”

 “힘드시겠어요. 첫 학교가 화연고라니... 어제 잘 주무셨나요?”

 “...저 너무 피곤해요. 어제 사실...아... 아니에요.”

 “무슨 일인데요?”

 “혹시... 선생님도 귀신...같은거 보셨어요?”

 “아아. 네. 자주보죠. 이젠 익숙해서 그러려니 해요. 보다보면 정도 들고.”

 “...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귀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큰 사고가 터지거나 흔히들 말하는 터가 안좋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죠. 설립된지 15년이 지나서 갑자기 생겨난거니까요. 뭐 그래서 그런 규칙들이 만들어진 거예요. 그런데 그 규칙들만 잘 지키면 정말 아무 일 없어요. 그냥 학교랑 같아요.”

 “...학생들은요? 말 안듣는 애들도 있지 않아요?”

 “우리 학생들. 어리게만 보일텐데 생각보다 영악해요.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그정도 규칙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구요. 만약 못 지킨다고 해도 뭐... 징계 받으면 본인들 손해인데요. 선생님도 규칙만 잘 지키면 됩니다. 우리 학교 시설도 좋고 평판도 좋고... 월급도 괜찮잖아요?”


 윤기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지민은 힘이 더욱 빠지는 느낌이었다. 어제 보았던 까만눈의 아이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귀신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건가? 지민의 얼굴 색이 파리해지자 윤기는 애써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나 알게 된 것은 민윤기 선생님은 거짓말을 잘 못한다는 점이었다.


 “아..아니, 괜찮아요. 거의 안보여요. 무서우면 제가 들고다니는 부적이라도 드릴까요...? 선생님이 이렇게 무서워하는 줄 모르고 제가 과장해서 말했네요.”



 선생님... 부적을 들고 다녀야 하는건가요...?



**


 첫 수업. 2학년 7반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첫 날이기 때문에 체육 수업이 아니라 오티를 진행하라는 교감 선생님의 말에 수긍하고 교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본관 1층은 교무실, 교장실, 행정실, 양호실 등이 있었고 2층부터가 교실이었다. 1학년이 4층, 2학년이 3층, 3학년이 2층. 3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실제 명화인지는모르겠지만 어느 시대를 휩쓸었던 미술 양식의 그림들이 화려하게 걸려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중앙 계단 위 벽에 걸린 역대 이사장의 초상화였다. 시선은 자연스레 가장 마지막에 걸린 이사장의 초상화로 향했다. 머리가 희끗하여 노인처럼 보이지만 표정이 남달랐다. 계단에 서있는 자신을 노려보는 듯 했다. 저 이사장이 취임하고 나서 부터 귀신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방금 교무실을 나오면서 들었다.


 애써 무시하며 겨우 도달한 3층. 복도를 쭉 걸어 7반으로 향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학기 첫 날인 만큼 친해지느라 바쁜 교실 안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자 정적이 흘렀다. 지민은 어색한 표정을 감추려 웃으며 교탁으로 향했다. 교탁에 출석부와 자잘한 서류들을 내려놓고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와아아!!!”


 갑자기 터져나온 환호성에 지민이 깜짝 놀라 굳었다. 학생들은 지민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으며 반기고 있었다. 울컥 하는 느낌이었다. 몸 깊숙한 어느 곳에서 부터 올라오는 뜨거움. 선생님이 되길 잘 했어. 지민은 편해진 표정으로 웃었다.


 “안녕하세요. 체육 박지민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학생들은 마치 유치원생이라도 된 듯 지민의 말 하나하나에 대답하고 눈을 밝혔다. 지민은 신이 나서 앞으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 설명했다. 특히 공부를 하며 오래 앉아만 있는 학생들을 위해 체력 키우기 운동을 집중적으로 설명하던 지민은 학생들에게 물었다.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어요?”

 “수영이요!”

 “배구도 좋아요!”

 “피구랑 축구요!”

 “알겠어요. 참고로 우린 전부 다 하게 될거예요. 자유시간을 받으려면 수업에 참여를 잘 해야겠죠?”

 “네!!”

 “선생님~”

 “네?”

 “오티는 이정도로 하시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건 어떠세요?”



 질문 타임. 교생을 나갔을때도 학생들은 질문 타임을 좋아했다. 지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맨 뒤에 앉은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지민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어깨 위에 있는 발은 누구예요?”


 분위기가 싸해졌다. 지민은 갑자기 드는 오한에 몸을 잘게 떨었다. 표정이 굳었다. 학생들은 여전히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짓궂었다. 고등학생이니까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어딜 가나 그런 친구들은 있으니까. 그런데 이건 어제 검은 눈의 아이와 문 밖에서 노크하며자신을 조종하던 무언가 때문에 잠 못 이룬 지민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장난이었다.


 “무슨말이죠?”

 “선생님 기숙사에서 지내신다던데. 무슨 귀신 보셨어요?”

 “야! 적당히 해. 선생님 놀라시잖아.”


 계속 된 질문에 지민이 굳어있자 여학생 한 명이 남학생을 말리기 시작했다. 지민은 여전히 답을 할 수 없었다. 수트로 인해 답답하고 무겁게 느껴질 어깨일텐데 그학생의 말 한마디에 지민은 정말 내 위에 귀신이라도 서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우리 학교 특이하잖아요. 귀신도 많고. 우리야 뭐 익숙해졌지만 1학년이나 새로 오신 선생님 같은 경우는 많이 힘드시겠어요.”


 남학생은 웃었다. 가볍게 놀리듯이 무서운 말을 뱉었다. 결국 과한 장난에 지민의 눈빛이 차가워지자 학생은 입을 닫았다. 첫 시간이라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지민은 잠을 못자 예민한 상황에 그런 장난을 받아 줄 여유가 없었다. 참자. 참아야해. 


 “아무것도 못 봤어요. 장난은 그만 치세요.”

 “어깨 위에 귀신 안느껴져요? 전 보이는데?”

 “그만하라고!”


 지민이 결국 참지 못라고 크게 소리치자 남학생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거 참 예민하시네. 지민은 한숨을 크게 뱉었다. 정적이 흐르는 분위기에 앞 줄에 앉은 여학생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다른 질문을 시작했다.


 “선생님! 대학때 어느 스포츠 전공이었어요?”


 정상적인 질문이 나오자 지민은 무서움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로 인해 펄쩍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선생님은 왜이렇게 잘 생겼어요? 여자친구 있어요? 아니면 남자친구? 여러 학생들의 사심이 담긴 질문이 터져나오고 점점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어쩌다 마주친 시선에 그 남학생은 분명 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내 위에 정말 누가 있는 것 처럼.



 **



 힘들었던 수업이 끝나고 다음 시간 안내를 했다. 다음 시간부터는 배구를 시작하려고 하니 체육복을 꼭 챙겨오고, 운동화를 반드시 신으라는 안내였다. 학생들은 결론적으로 즐거웠는지 자기들끼리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아직 반장이 정해지지 않아 1번인 학생이 예비 반장으로 인사를 했고 지민도 맞인사를 하고는 교실을 벗어났다. 첫 수업이라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분명 아이들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짓궂게 굴던 학생도 귀신들에 둘러싸여 규칙을 지키는 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내가 힘들지 않았다.


 교무실로 돌아와 출석부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직 3월이라 창문 밖으로는 벌써 해가 지는 것 같았다. 겨우 5시인데. 지민은 괜히 어깨를 두어번 손으로털어내고 이전 체육선생님이 했던 것 처럼 수업에 대한 짧은 보고를 일기 형식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 메신저가 깜박거렸다.


 

 [선생님. 오늘 저녁 드시고 다시 교무실로 와주세요. 6시까지 입니다. -김유경-]



 무슨일이지? 지민은 영문을 몰라 옆자리 민선생님에게말을 걸었다. 지민의 이야기를 들은 윤기는 바로 아~ 하며 답해줬다. 


 “순찰이요.”

 “네?”

 “학생들 야간자율학습 감독 겸 순찰이예요.”

 “야자 감독은 그렇다치는데 순찰은 경비선생님이 하시는거 아니었어요?”

 “경비선생님은 밤 10시 이후부터 순찰하시거든요. 그 전에는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확인합니다. 아마 첫 날이라 교육 겸 해서 유경씨가 부른 것 같네요.”

 “아.. 감사합니다.”

 “... 무서우면 같이 가줄까요?”

 “아뇨! 아뇨. 괜찮아요. 민폐를 끼칠 순 없죠.”


 이 등신 박지민. 멍청한 박지민! 지민은 후회하고 있다.윤기가 내뱉은 선의를 거절했으면 안되는거였는데... 도서관 책상 아래 숨어있는 지민은 제 앞에 보이는 광경에경악하며 숨죽이고 있었다.


 바로 몇시간 전, 지민은 가볍게 저녁을 먹은 후 산책 겸 다시 교무실로 향했다. 야간자율학습 감독도 겸한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게 자신과 유경씨 뿐이었다. 교실도 많아서 두세명은 될 줄 알았는데?


 “저 유경씨?”

 “아 오셨어요?”

 “저 혼자인가요?”

 “아아 네. 화연고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감독은 필요 없습니다. 이제부터 하실 역할은 몇몇 학생들의 일탈을 막아주시는거예요. 아참, 규칙 기억 하시죠?”

 “네...”

 “10시 이후 외출은 금지예요. 그러니까... 건물 밖을 나가면 안된다는 말이죠. 야간자율학습은 9시 50분 종료입니다. 반드시 10시 이전에 기숙사로 돌아가야해요. 만약 늦게 된다면 그냥 교무실에 계세요. 아 문은 꼭 잠그셔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순찰하다가 10시 넘어서 도서관에 계시게 된다면... 최대한 몸을 숙여서 빠져나오세요. 그리고 바로 뛰세요. 다른데 쳐다보지 말고 바로 교무실로 오세요.”

 “무시무시하게 들리네요.”

 “사실 9시 50분 까지 교실 점검하고 학생들 보고, 도망치면 잡아오고. 10시 전에 기숙사 돌아가셔서 주무시면되는겁니다. 간단하죠.”

 “네...”

 “일단 제가 도서관 안내 해드릴게요. 저번에 안보여드린 것 같아서.”


 그녀는 구두굽 소리를 내며 앞장 서 걸었다. 도서관을 슥 보여준 그녀는 순찰 잘 부탁드린다며 어디론가로 향했다. 지민은 도서관 내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메인 건물 탐방을 시작했다. 4층은 전부 불이 꺼져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혹시 몰라 휴대폰 라이트를 켜서 교실이 모두 닫혀있는지 체크했다. 다음은 3층. 2학년은 최상위권 한 반 정도만 야자를 진행했기에 그 반은 슬쩍 보며 지나갔고 나머지 불 꺼진 교실을 체크했다. 무서운 느낌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아무 일 없었다. 2층에 도달하자 모든 교실에 불이 켜져있었다. 고3학생들은 정적에 가까운 상황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었다. 한참을 돌아보는데 한 학생이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어디가니?”

 “배아파서 화장실이요.”

 “몇학년 몇반?”

 “3학년 1반이요.”

 “다녀와.”

 “네.”

  


 얼굴을 기억해둔 지민은 다른 층을 다시 돌아보다 3학년 1반 앞에서 그 학생이 자리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작은 노트를 들어 체크표시를 했다. 유경씨가 알려준 팁이었다. 학생이 교실을 나가면 얼굴과 반을 확인해두고 체크하라고. 진짜 빡세네... 나같으면 이런 학교 못버티지. 지민이 혼자 생각하며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1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책장 사이사이 학생들이 책을 보고 있었는데 그 책들이 대부분 원서이거나 논문이었다. 고등학생들이 이런걸 읽어도 돼...? 시간이 점점 흐르고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9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학생들이 서서히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2층 3학년 교실들을 재빠르게 확인 한 지민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열람실 책상에 가방 정리조차 안하고 앉아있는 학생을 눈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9시 45분. 지민은 그 학생에게 다가갔다.


 “학생. 이제 나가야해.”

 “...조금만 더요.”

 “9시 50분이 종료인거 알지?”

 “하아... 선생님. 저 3학년이에요. 규칙 다 알아요. 문제가 안풀려서 그러니까 이것만 풀고 나갈게요 네?”

 “알겠어... 그럼 빨리 풀고 나가는거다.”

 “네에...”



  지민은 그 열람실이 멀리 보이는 책상에 앉았다. 피곤하다. 시계를 바라보니 곧 9시 50분이었다. 빨리 풀고 나가야할텐데. 지민은 초조함에 팔짱을 낀 채 다리를 떨었다. 벌써 5분은 지난 듯 했다. 그냥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시계가 가르킨 시간은 21:59. 유경씨의 말이 떠올랐다. 10시에도 도서관이면 몸을 숙이고 나와서 뛰세요. 교무실로. 젠장이다 젠장!! 지민은 일단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책상 아래에 엎드려 있으니 무언가 소리가들렸다. 사락 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 설마 아까 그 학생이 자리에 있나?? 위험함을 감지한 지민이 그 책상쪽을바라보려 했으나 엎드려 있으니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몸을 살짝 일으켰다. 책상 위로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 저 멀리 열람실 책상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자리에 그 학생은 없었다. 뭐지? 놔두고 그대로 나갔나? 지민은 눈을 찡그려 불 켜진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 때 자신의 오른편 책장 사이에서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지민이 다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소리가 가까워졌다. 지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고개를 천천히 책장 쪽으로 돌렸다. 목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툭- 투둑.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액체였다. 높은 유리창에서가로등과 달빛이 한데 섞여 도서관 안을 비추고 있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지민은 입을 틀어막았다.


 책상 바로 옆 책장. 그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찢어내는 소리였다. 다리밖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들어 찢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윽고 액체가 흘러 흘러 지민에게로다가왔다. 엎드려 입을 틀어막고 있는 그에게 닿은 것은미적지근한 피였다. 놀란 지민은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곧 무언가 툭 떨어져 지민의 앞에 떨어졌다. 운동화였다. 비명이 나올 것 같았지만 지민은 혀를 깨물어가며참았다. 여기서 들키면 죽는다. 죽을거야. 난 죽을거야..


 애석하게도 어둠에 점점 적응해가는 시선에 보이는 것은 책장보다도 큰 키의 검은 형체가 아까 앉아있던 학생을 잡아먹는 모습이었다.






짐른은 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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