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서현 합작에 낸 연성입니다

중학생 서현과 고등학생 박정우

3월 4주 위클리 정서와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분들의 연성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셔서 감상해 주세요!

Weekly 정우서현 : http://jwsh.creatorli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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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문드문 늦어지는 정우의 연락을 볼 때마다 서현의 한숨을 한 번씩 늘어갔다. 물론 마음으로는 아직도 학생인 자기와 정우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감정은 그렇지 못했다. 언제는 연락만 하면 당장 달려올 것처럼 굴더니. 현이 조그만 입을 삐죽 내밀면서 책상에 엎드렸다. 학교랑 학원에서는 공부를 해야 하니까 조금 나았는데, 집에 오면 늘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집중되지 않았다.



“…왜 공부가 이렇게 안 되는 거지.”



사실 원인과 결과는 너무 완벽한데, 서현은 애써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하긴 안 그래도 태어날 때부터 눈칫밥 먹고 기가 눌려서 지낸 애한테는 너무 힘든 감정일 수도 있었다. 자기가 어리고 동생 같아서 예쁘게 봐주는 걸까. 우리 형은 나한테 그런 소리 안 했는데. 형처럼 대해주는 걸까. 아니면. 여기까지 생각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눈에 걸리는 문제집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고, 정우한테 연락이 오지 않으면 세상은 온통 흑백처럼 축축한 기분만 들었다.



‘이런 거 싫은데…….’



사실 서현이 감당하기엔 너무 과한 감정이었다. 안 그래도 예민함을 타고 난 아이인데, 그런 성향조차 몰라봐 주는 집안에서 눌려있다 보니 세세한 감정 교류를 힘들어했다. 그나마 서현의 예민함을 알아봐 주고 토닥여주는 사람이 박정우여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 마음을 줬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우 앞에 서기만 하면 살살 풀리는 입꼬리부터 곱게 내려앉는 눈매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평소의 서현을 아는 사람이라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더 정우가 좋았다. 자신이 말을 해도 제대로 안 들어주는 사람이 수두룩하게 빽빽한데, 정우는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만 보고 알아차리곤 했다. 아 그렇구나. 서현은 콩콩 뛰는 가슴 위를 두 손으로 꾹 누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런 상태론 문제집을 풀어도 제대로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애초에 이렇게 흔들리면 안 되는 일인데, 정우와 관계가 되면 뭘 하더라도 자꾸 이런 식이었다.



[현아 10:44]

“정우 선배!”



짧게 울리는 진동 소리를 날카롭게 알아차린 서현이 고개를 들었다. 뺨에 아직도 핸드폰 웅웅 거리는 진동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손을 살짝 대봤다가 떼었고, 급하게 핸드폰을 켜니 정우의 메시지가 가장 먼저 보였다. 하긴 이렇게 연락하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 요새 들어 정우 연락이 조금 늦어지자 서현의 핸드폰은 또 텅 비어갔다. 그래서 더 핸드폰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선배 바빠요? 10:44]

[조금? 우리 현이 나 보고 싶었던 건가? 10:45]

[그걸 말이라고 해요 10:45]

[그런 소리 들으니까 나 정말 기쁜데 10:45]

[선배 10:50]

[응? 10:51]

[혹시 말이죠 10:58]

[왜 무슨일이야? 10:58]



여기까지 토톡토톡 화면을 두드리던 서현이 손가락을 잠시 멈추고 눈만 깜박였다. 여기서 말을 해도 되는 걸까. 정우가 혹시 지겹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서현은 제 나이보다 좀 더 과하게 철이 들었는데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몇 번이나 상황을 넘어가면서 걱정하곤 했다. 바로 지금도 그랬다. 안 그래도 좋아하는 정우 앞에서 너무 어리고 철없는 소리를 할까 봐 끙끙 앓았다.



[현아? 11:15]

[현아? 11:16]

[현아 무슨 일이야 11:18]



갑자기 뚝 끊긴 연락이 걱정된 것인지 정우가 답지 않게 급한 연락을 보낸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급한 적은 없는데, 서현은 흐릿한 흑백 세상에서 검은 글자가 토도독 올라가는 것만 보고 있었다. 고작 답장 이십 분쯤 안 했다고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



정우가 걱정이 된 건지 전화를 건다. 서현이 그 화면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이제야 화면이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이제야 제 속도를 찾았다. 잠깐 고민하다가 통화 버튼을 꾹 누르니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가 툭 툭 흘러나왔다.



“현아.”

“…….”

“현아. 무슨 일이야. 갑자기 연락이 없어서…….”

“…….”

“혹시 자는 거 아닐까 했는데, 영 불안해서 전화했어.”

“…….”

“듣고 있니?”

“선배…….”

“응? 왜 그래요?”

“…….”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입을 삐죽삐죽 내밀던 녀석은 영상통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약간 안도하면서 일부러 눈을 세게 문질렀다. 이걸 어떻게 자기 입으로 말하느냐. 이게 약간 문제였는데, 정우가 너무 걱정하고 있어서 입을 닫아버리기도 조금 민망한 상황이 되었다.



“선배, 혹시 내가 귀찮아?”

“응?”

“…….”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현아.

“…아니 그냥.”

“…….”

“그러니까.”

“…….”

“요새 연락도, 잘 없고. 그게…내가 꼭 그걸 원하는 건 아니지만.”

“현이 섭섭했구나.”

“아, 아니야.”



섭섭했냐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때마다 서현 주변에 제 색깔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혹시 저 너머로 들릴까 봐. 숨을 참아봤지만 그렇다고 뛰는 심장이 멈추진 않았다. 서현의 말이 뚝뚝 끊어질수록 정우는 더욱 걱정하고 있었다. 너무 몰아세우는 것처럼 말을 걸면 저 예민하고 섬세한 녀석이 놀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붙잡고 방안을 빙빙 돌았다. 가끔 들리는 한숨 소리에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들으니 걱정이 켜켜이 쌓여만 갔다. 저 예민한 아이를 저런 살벌한 집안에 혼자 두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좀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정도 병이라고. 박정우 눈에 그 어리고 작은 아이가 들어온 순간 평생을 바쳐서 그 아이를 쫓을 수밖에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현아? 괜찮아?”

“…응.”

“네가 갑자기 말이 없어지면 내 심장이 이렇게 아픈 거 알아?”

“…….”

“힘들면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

“…….”

“적어도 나한테는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수 없는 걸까?”

“…….”

“혹시 내가 바라는 게 너무 힘든 거니? 그러면 그것도 말해줘. 난 정말…이지.”

“…….”

“우리 현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사랑을 처음 해봐서. 짝사랑이 당연한 줄 알고 살던 아이는 이제야 색깔이 꽉꽉 들어찬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박정우의 입에서 저런 말까지 들었는데도 망설이는 것은 그저 제 말과 행동이 정우에게 폐가 될까 고민을 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제 나이에 맞게 투정을 부려도 되고, 그게 민망하면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데. 정우는 그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다.



“…나 행복하게 할 거면 말이야.”

“응?”

“졸업식…올 수 있어?”

“당연하지. 저번에 알려줬잖아. 날짜.”

“…….”

“요새 연락 잘 못 한 거 미안해. 너무 자주 전화하면 공부도 자꾸 끊길 것 같고 그래서 그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인가 싶다.”

“형이 그랬구나?”

“무슨 소리지?”

“형이 나랑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했나 보네. 뻔하지 뭐.”

“…….”

“아니라곤 말 못 하겠어. 그런데 네 손에서 널 떼어낼 생각도 없는데.”

“…….”

“넌 어떻게 생각하니 현아.”



고백인 듯 아닌 듯. 짝사랑의 결실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현의 얼굴이 붉게 물들다 못해 손가락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우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심장에 푹푹 박혀서 피를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것 같았다. 정우가 들 자신에게 딸기우유를 줬었는데. 그러면 박정우가 하는 말은 다 딸기우유 색이었던 걸까. 서현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다.



“나도…나도.”

“…….”

“선배가 나 포기 안 했으면 좋겠어.”

“…….”

“공부 열심히 할 테니까…언젠가는 그러니까.”

“고마워. 현아.”

“…….”



정말 이런 말을 가족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서, 차마 가족이란 테두리에 정우를 끌어들일 수 없었다. 물론 그 가족의 힘으로 좋은 밥 먹고 편하게 공부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이 모두 돈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현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감정적 교류를 해야 했지만, 그런 섬세함을 알아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




어떻게 형을 설득했는지, 서현 앞에 차가 서 있었다.

동그랗게 눈을 뜬 채 꼭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목을 빼고 안쪽을 살피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늘 데리러 오던 기사는 아닌 것 같고. 형이 다른 사람을 아무렇게나 보낼 리도 없고. 가만히 그 차 앞에 서 있던 현이 눈을 다섯 번 정도 깜박였을 때, 단단히 닫혀있던 창문이 슥 내려갔다.



“현아.”

“…정우 선배?”

“놀라게 해주려고 일부러 가만히 있었는데, 미안해.”

“아니…갑작스러워서. 선배 여기 있으면 우리 형이…또. 뭐라고 할 텐데.”

“형이랑은 알아서 정리했어.”

“…….”

“왜? 나 못 믿는 구나?”

“…….”



솔직히 박정우가 말하는 거지만, 아무리 봐도 믿을 수 없었다. 그 무서운 형이 박정우 말을 들어줬다니. 그런 일은 세상이 뒤집혀도 있을 수 없었다. 서현은 형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정우는 정우 나름대로 형과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형이 박정우를 만나고 온 다음 제법 화를 냈던 기억이 있었다. 괜히 숨 쉬는 소리라도 내면 불똥이 튀길까 봐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가끔 화를 내는 소리가 살짝 열린 방문을 통해 들어오곤 했다. 서현은 형한테 대들지도 못하면서 정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어떻게든 알고 싶어 했다.



‘감히 하우라인 장남이자 후계자인 내 말을 무시해?’

‘…….’

‘적당히 하면 봐주려 했는데, 어디서 을 주제에 내 앞길에 흙을 뿌리려고…….’

‘…….’



형은 뭐 그럴 줄 알아서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서현은 더 듣는 것을 포기하고 방문을 닫았다. 그리곤 침대에 웅크린 채 애써 잠을 청해보았다. 그런 일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상큼하게 웃고 있는 정우가 생각보다 멋진 대학생이 되어서 제 앞에 있었다. 꼭 박정우랑 교복입고 학교 같이 다니고 싶었는데, 얄미운 나이 차는 그런 서현의 작은 소망조차 들어주지 못했다.



“하나를 얻으려면 나도 뭘 하나 줘야 하잖아. 그래서 줬지.”

“…….”

“왜? 마음에 안 들어?”

“나…때문에 선배가?”

“난 널 만날 수 있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

“혹시 내가 싫거나 부담스럽니?”

“아…아니. 그럴 리가.”

“그럼 됐어. 오늘은 어디 갈까? 저녁까진 자유시간이야.”

“…….”

“정말이라니까. 정 불안하면 형한테 연락해도 괜찮아.”

“…….”



그건 싫었다. 괜히 지금 분위기 좋은데 형 목소리로 한 소리 듣고 나면 그게 아무리 허락이라도 속이 꽉 얹히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냥 갈래. 그 한 마디에 정우가 씩 웃으면서 서현 앞으로 허리를 숙였다. 놀라서 파다닥 움직이던 현의 손이 공중에 어중간하게 멈춰 섰다.



“…안전벨트.”

“아…내가 할 수 있…는데.”

“갈까?”

“…….”

“우리 어디로 갈까?”

“…강.”

“응?”

“한강이나…석촌 호수나. 물 많은데.”

“현이 물 좋아해? 그런 줄 알았으면 저번에 호수 근처로 저녁 먹으러 갈걸.”

“딱히 좋아한다기보단…집에서 머니까.”

“그렇구나. 그럼 석촌 호수?”



끄덕. 끄덕. 하긴 저 녀석은 집에서만 멀리 나오면 숨을 좀 쉬는 것 같아서 두말없이 차를 몰았다. 박정우가 서현 형을 직접 만나서 대담을 지었던 것은 집안 관련도 있지만, 자신이 멀어지면 그나마 버티던 녀석이 금방 무너질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좀 더 가까운 관계가 되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을 떠나 저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받아줄 사람이 이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 말을 듣자마자 하우라인 장남은 픽 웃으면서 박정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말해서 그냥 말했을 뿐인데 꼭 박정우가 제 자존심을 건드린 것처럼 예민하게 반응한다. 하긴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아닌 을이 자신에게 찾아오는 것은 이상했으니까. 하지만. 박정우를 그대로 내칠 수도 없었다. 기업으로 얽힌 것도 있고, 고작 동생한테 잘해준다는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보기 좋지 않은 그림을 만드는 것도 영 이상했다.



‘자꾸 이렇게 정주다가 나중에 더 못 주는 상황이 되면 어쩌려고 그러시는가. 후배님?’

‘그런 저와 현이가 알아서 할 일이죠.’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

‘적어도 제가 서현일 케어하는 쪽이 그쪽에서도 편하니까 절 놔두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닌가요?’

‘그랬었지. 그런데 너무 하잖아. 네가 배 아파서 낳은 것도 아닌데.’

‘좋아하고 마음이 쓰이는 것은 핏줄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참, 말을 잘하네. 우리 후배님.’

‘칭찬이라 듣겠습니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이렇게 쉽게 허락이 떨어질지는 몰랐지만, 조금이라도 서현 의사 만드는 것에 방해가 되면 끝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나서야 겨우 대화가 끝났다. 하긴 정우도 현이 자기를 보는 눈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고, 그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곤 했다.



“…좋다.”

“좋아? 오늘 잘 왔네. 꽃이 다 져서 아깝긴 한데, 그래도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 더 좋다.”

“꽃이 다 진 거구나.”

“활짝 폈을 때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니. 이런 것도 좋은데…….”



적당히 주차하고 내리니 바람이 상쾌했다. 서현이 제멋대로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슥슥 정리를 하며 돌아보니 정우가 차 문을 잡고 있다가 저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 순간 또 세상이 환해진다. 사실 색맹이나 색약이라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모든 것에 흥미가 없어서 흑백으로만 보이는 것 같던 세상이 정우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정우 옆에 좀 더 있고 싶어서 냉큼 옆에 가서 붙어서니 그걸 보던 정우가 조심스럽게 서현의 손을 쥐었다.



“…….”

“갈까?”

“으응.”



옛날 서현이었다면 석촌 호수 걷는 거 뭐가 재밌는 일이냐고 할 것이 뻔했다. 무엇을 해도 흥미 없는 눈으로 제 가방끈이나 만지작거리면서 학원이나 과외 가야 한다고 홱 몸을 돌렸을 텐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눈가가 살짝 달아오른 채 정우의 손에 잡힌 손가락만 꼼질대면서 눈을 깜박인다. 뭐라고 한마디 하면 얼굴이 푹 익은 토마토처럼 될 것 같아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우가 자연스럽게 그런 서현을 끌고 걷기 시작했고, 아무리 한창 시기가 지난 곳이라지만 제법 사람이 많은 길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 타박. 타박. 한참 걷다가 또 잦아들었다가 살짝 뒤떨어지니 후다닥 걷는 소리가 들린다. 정우는 서현의 정수리를 가만히 보다가 괜히 귀여워서 손을 뻗어서 어깨를 감싼다. 그런 정우의 품에 푹 안긴 채 심장이 쿵쿵 뛰는 채로 한참 걷던 서현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여러 가지 꽃을 담아놓고 파는 좌판이었다. 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서현의 동그랗고 맑은 눈을 보던 정우가 가만히 물었다.



“현아.”

“…….”

“왜? 꽃 사고 싶어?”

“…응?”

“사줄까? 오늘 나한테 귀한 시간 내줬으니 그거에 대한 선물로.”

“아니.”

“왜? 표정은 아닌 거 같은데.”

“꽃은…졸업식 때 받을래.”

“…….”

“그게 좋아.”



서현 나름대로 정한 것인가 싶어서 그러라고 했다. 대신 조그맣게 말아서 파는 작은 말린 꽃다발을 사서 손에 쥐여줬다. 그 작은 손바닥에도 쏙 들어가는 꽃을 바라보던 서현이 그건 거절하지 못하고 살짝 쥐었다. 그렇게 한참 걷고 걷가 멈춰선 곳은 벚꽃이 호수가 가득 떨어진 채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잘 보이는 구간이었다. 안전 바에 바싹 붙어서서 흔들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던 서현이 문득 고개를 들어 정우를 바라보았다.



“선배.”

“응?”

“내 졸업식 때 올 거죠?”

“당연하지. 내가 약속했잖아.”

“그럼…내가 어른이 되면.”

“응? 무슨 소리야?”

“아니야. 이건 나중에 말할래. 이런 거 재밌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선배랑 같이 나오니까 재밌긴 하네.”

“그건 참 영광이네.”

“가끔 사는 게 재미가 없고 귀찮으면 온통 느릿하게 움직이는 흑백 세상에 떨어진 것 같아서 괜히 숨이 막혀서 힘들었는데…….”

“…….”

“선배랑 같이 있으면 원래 색으로 보이는 것 같아.”

“현아…….”

“이게 왜 이러는 걸까?”

“…….”

“병원을 가도 설명을 할 수 없어서 치료가 안 돼.”



서현이 제 가슴 쪽을 꾹 잡았다가 놓는다. 정우는 서현이 왜 그러는지 알지만 차마 제 입으로 말해줄 수 없었다. 이런 건 스스로 알아차려야 했다. 남이 그걸 아무리 사랑이니 열병이니 하고 정의해줘도 당사자가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반대쪽 손을 잡고 살살 만져준다. 그럴 때마다 움찔거리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저 어린 동생이 어느새 이만큼 컸다는 생각도 들고. 조금 욕심도 들고. 박정우도 나름대로 마음이 복잡하고 제 감정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좀 더 어린 서현은 아직도 제 감정의 이름도 모른 채 하염없이 정우만 쫓아다녔다.



“다음에 또 오자고 해도 돼?”

“그럼 왜 안 돼. 공부하다가 답답하면 언제라도 연락하면 되는 거지.”

“다행이다.”



한참 걷고 밥까지 먹였다. 돌아가는 길 따뜻한 차 안에서 잠든 서현을 곁눈질로 가만히 보던 정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자꾸 한 손으로 제 입가를 매만졌다. 이 정도면 마음이 정리될 것 같았다. 아니 서현을 처음 본 순간부터 사실은 그랬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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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제가 처돌아있는 포인트  중학생 현이...

중학생 현이 너무 좋아요...친구 없게 생겨서 정우한테 치대고ㅠㅠㅠㅠㅠㅠ

흑흑...어쩌다보니 연작이 되어가지만,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쩜오 연성 창고 트위터 : @hwanwol_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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