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au. 약간의 크리주나 주의.



*



 아르주나는 사랑받는 이다. 날 때부터 축복을 뒤집어쓰고 태어난 것 마냥 만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위로 형이 둘, 아래로 쌍둥이 동생이 둘. 사이에 낀 애매한 위치임에도 아르주나는 퍽이나 예쁨 받았다. 일곱 살이 되어도 무릎에 흔한 생채기 하나 없었고 열 살이 되어도 마냥 발이 보드라웠다. 열 살이나 차이 나는 동생을 품에서 내려놓을 줄 모르는 사촌이 있는 탓이었다. 숨 쉴 적마다 사랑한다 속삭여주고, 품에서 놓질 못하고, 온 얼굴에 입 맞추어 주는 사람. 희고 달고 부드러운 것만 입 안에 넣어주던 사람. 이는 마치 신이 인간에게 쏟는 자애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르주나는 제 사촌의 사랑을 그리 말하곤 했다.


 “크리슈나의 사랑은 아가페에 가깝지.”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카르나는 까딱이던 손으로 턱을 괸다. 아가페. 입 안에서 부서지는 음절을 뱉어낸다. 허나 그 역시 인간이 아닌가. 불만스러운 생각은 속으로만 삭여냈다.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카르나는 손에 쥔 숟가락을 입가에 가져다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피부만큼 짙은 색의 입술이 보기 좋게 벌어지는 것을 보다 손을 조금 더 움직인다. 아이에게 먹이는 것 마냥 조심스러운 동작이 스스로도 조금 우습다. 스물이 넘은 사내가 누군가 먹여주는 것에 이리 거부감이 없을 줄이야.


 “입맛에 맞는가.”

 “...제법 괜찮군.”

 

 순순히 대답하는 눈매가 슬몃 휘어져있다. 그러고 보면 아르주나는 단 것을 꽤 좋아했지. 세간의 눈으로 보면 과보호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품에 안겨 자랐던 탓에 선호하는 음식들의 종류는 한정적이었다. 달고, 부드럽고, 한없이 순한 것들.


 “입맛은 여전하군.”

 “무슨 의미지?”

 “글쎄.”

 

 정확한 대답 대신 다시 숟가락을 입가로 가져다 댄다. 숟가락 위로는 크림이 담뿍 얹어져있다. 아르주나가 좋아하는 것. 희고 달고 부드러운 것.


 “정말이지 속을 모르겠군.”

 

 불만스럽게 웅얼거리면서도 받아먹는 입은 착실하다. 벙긋이는 입술 새로 숟가락이 물렸다 빠져나온다. 숟가락 위로 희고 옅은 흔적이 생긴다. 입술 위로도.

 말없이 손을 뻗었지만 몸을 물리는 기색은 없다. 이 역시 어릴 적부터 쉼 없이 쏟아졌던 애정 탓일까. 입가를 문질러주는 손가락에도 떨림이 없고, 뺨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한 없이 유순한 것은.

 마치 이래서는 신의 사랑을 받는 신도와 같지 않나. 생각이 그까지 미친 순간 익숙한 단어가 입안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가페.”

 “왜 그러지?”

 “아니, 아무것도.”

 

 묘하게 목소리에 음이 붙는다. 아무것도. 제 말을 곱씹는 아르주나의 목소리는 노래와 같다. 눈이 마주치자 엷게 웃는 모습 옆으로 햇살이 쏟아진다. 하얗고 금빛이 반짝이는 입자가 짙은 피부 위로 부서진다. 일견 금사로 짜인 베일을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의 사랑을 받는 자. 카르나는 신애에 대해 생각한다.



*


 

 다리 위로 뉘인 머리의 무게가 있다. 카르나는 허벅지 한쪽을 지긋이 누르는 무게를 보다 손을 쥐었다.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펴는 동작에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욕망이 담겨있다.

 

 “아르주나.”

 

 한참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탓에 부른 이름이 온통 잠겨있다. 발목까지 깊게 묻혀있는 탓에 카르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큼, 큼.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보다 두 걸음 더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 우물 벽을 긁어대는 소리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르주나.”

 

 다시 꺼낸 이름은 전보다는 나았다. 발목 께까지 찰박거리는 감각이라는 것에서 그렇다. 카르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대답이 없는 얼굴 위로 손바닥을 펼쳤다. 아르주나, 이번에는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가 감은 눈 위로 쏟아진다.

 

 “으, 음...”

 

 입술이 달싹이며 나온 음절은 그저 하나의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충분한 무게를 지닌다. 카르나는 쥐었다 편 손을 맥 위로 가져다 댄다.

 

 “아르주나. ....아르주나.”

 

 쉼 없이 이름을 부른다. 길고 둥근 목의 모양새를 따라 손바닥을 덮는다. 손등에 핏줄이 불거지고 뼈대가 보일 만큼 힘을 주지만 감은 눈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쉬이 목을 비틀어낼 수 있는 힘이지만 손금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한 탓이다.

 카르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제멋대로 뻗친 머리가 기울어지는 고개를 따라 흔들거린다. 아르주나, 숫제 속삭임에 가까운 이름이 잠든 이의 이마 위로 흩어진다. 그리고,


 “...카르나.”

 

 조금 전의 카르나처럼 발목까지 잠긴 목소리가 이름을 부른다. 느리게 깜빡이는 눈은 흐리지만 바라보는 대상은 확고하다.

 

 “후후...”

 

 허나 온전히 꿈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듯 눈동자에 졸음이 어룽거리는 것이 보인다. 입가로 비죽비죽 새어나오는 웃음도 그렇다. 다리에 머리를 뉘인 채로, 목을 쥐고 있는 사내에게 보이기에는 한없이....

 어째서. 카르나는 입 안에 온통 와글거리는 의문을 삼킨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것은 피부가 닿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뺨에 이마를 비비는 탓에.

 

 “조금 더 자고 싶은데...”

 

 아래로 죽죽 늘어지는 목소리에는 어리광이 매달려있다. 끝맺지 않은 문장이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시 눈이 감긴다. 목에 닿아있는 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이마를 비빈다. 등허리 근처 옷자락을 쥐는 손이 있다.

 아르주나가 다시 잠에 빠지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이 빠지고, 뺨이 비비던 이마가 떨어지고 나서야 카르나는 제 손 안에 닿아있는 피부를 느낀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은 목. 허나 그는 목을 쥔 손에 힘을 가하는 대신 드러난 이마 위로 입 맞추는 것을 택한다. 최초의 인간에게 사랑을 전하던 신처럼.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