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주변 사람들은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데렉에게 돌을 던졌다. 


이전 같으면 작은 결계라도 쳐서 막아냈겠지만, 그게 불가능했다. 


데렉은 아무런 제지도 안 하고 돌을 맞으면서도, 시선은 그라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라프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주민들의 태도가 곧 바뀌며, 데렉을 조용히 내버려두었다.



"그대는 상처가 아프지 않은 건가?"



마법사는 단상 위에서 물어보았다.



"아프지."



이전에 마법사였으나 평범한 사람이 된, 로브를 뒤집어 쓴 여행자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힘들지 않은가?"



"힘들어."



"여기 있는 모두도 마찬가지네. 


아픈 원인을 조금이라도 보듬을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네만."



"그건 아니지."



데렉은 단칼에 잘라 말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누구나 상처를 입어. 아파하고, 힘들어하지. 


들판의 커다란 암석도, 길 옆에 자라난 코스모스도 서로 부대끼며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야. 


사람이 산다는 건 상처가 없이는 불가능해. 



사람 사이에서 받는 것이든, 아니면 시대나 상황, 조건에서 받는 것이든. 


어쨌든 사람의 인생은 상처 투성이야."



필요가 없어진, 이제는 그냥 습관으로 들고 다니는 지팡이마저 손에서 놓았다. 


낡은 나무 작대기는 바닥에 부딪치며 작은 소리를 내었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끔찍한 것이던가?"



그라프는 인상을 한껏 쓰고 데렉을 노려보았다.



"그래. 당신 말대로... 그건 슬픈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지."



데렉도 그 상처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 고통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는지 잠깐 말을 멈추고 이를 악문 채로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그걸 피하고 무시하며 엎드려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상처받아 주저앉은 사람의 모든 투정과 어리광을 받아줄 정도로 세상이 관대한가?"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으로 돌아온 데렉은, 그런 처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사에게 쏘아붙였다.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계속 살아가야 해!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인생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앞을 바라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해!"



데렉은 주먹을 쥐었다.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심상에서는 아무것도 퍼올릴 수 없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빈 손이지만, 데렉은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실패와 후회를 딛고, 아픔을 겪으며 사람은 살아가야 해. 


과거의 상처만 바라보며 한숨쉬고, 


마법같은 미봉책에만 기대는 건 죽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



"그럼, 사람들을 잃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이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의 육신만이라도 돌려놓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건가?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그라프도 목소리가 커졌다. 


고집과 화가 덕지덕지 붙은 얼굴을 하고 데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마법사가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



"의미가 없지 당연히! 


어차피 저 사람들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거야! 


그냥 돌아다니는, 똑같은 모양의 인형과 다를 바가 없다고! 


그리움은 더 커질 것이고, 마법을 위해 고정시켜둔 마음의 한이 사람들을 갉아먹겠지!"



데렉은 그라프의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소리쳤다. 


소리를 지를 때 마다 자신의 아픈 마음이 뜨끔거리는 것을 참고, 아직 상처받은 심장에 균열이 가는 것 같았지만...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짐을 들어주는 것이 선행이다. 


그 옆에서 같이 걷다가 다시 실패하고, 넘어지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서 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사랑이고.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에게 치사량의 진통제를 주고 누워 쉬라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 


기만이지."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했다. 


그런다고 해서 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설령 돌아오더라도 그 동안 당신들이 바뀌었으니 죽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라고. 


아픔은 가슴속에 묻고 앞을 바라봐야 한다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해야 했다.



"상처 입은 자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 안주하게 만드는 건 도움이 아니야. 


제자리에 퍼져 앉아서 굳어지는 건... 죽은 자가 하는 짓이잖아."



데렉도 자신이 말을 하며 스스로를 상처입히고 있었다. 


아직 덜 아문 상처와 흉터에서 피가 새어나오듯, 데렉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그게 반 년 동안 상실에 몸부림치며 내린 답인가?"



그라프의 말에 데렉은 이를 악물어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로브의 소매로 눈물을 닦고 올려다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사라져 잇엇다.



"안타깝지만, 힘들겠지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으로 두어야 해. 


그 마법은 미련일 뿐이야."



잠깐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걸 알면서도, 데렉은 굳이 눈물을 닦지 않았다.



"아깝군... 


그 마음에 들어있는 고통을 마로 바꾼다면, 진짜로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쩌적]



그라프의 말과 함께 하늘 한복판에 커다란 검은색 균열이 그어졌다. 


심지어 그 파편이 바닥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무슨..."



"아, 심상세계를 이렇게 길게 여는 건 본 적이 없나? 


한 2개월이 넘어가면 이렇게 되더라고."



"뭐?"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되묻는 데렉을 바라보며, 그라프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자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나?"



"... 어?"



이 마을 사람이었나? 


장례식이나 묘지에서도 본 적이 없었는데. 



반 년 동안 이런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이름을... 어떻게 알았더라?



[쿵]



다시 하늘에는 굉음이 울리며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길었어. 이게 최대 길이였네."



그라프가 한숨을 쉬며 손을 한 번 흔들자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얕은 단상에서 내려와 데렉의 앞에 섰다.



"무슨 일이지?"



"살아남았던 이 마을 사람들 전부가 동력을 제공하고, 내가 지휘를 해서 심상세계를 유지했네. 


6개월 동안."



데렉은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썼다가, 그 규모에 입을 떡 벌리고 뒷걸음질 쳤다.



"마을 사람들 전부의 마음을 이용해 심상을 유지했는데, 안 넘어오더구만. 


조금이라도 그 상실감이나 고통이 '마'로 변한다면 바로 담판을 지을 수 있었을 텐데."



그라프는 몸을 이끄는 것이 힘든지, 마법으로 길다란 의자를 만들어 깔고 앉았다. 


그리고 긴 의자의 반대편 끝을 권했다.



"심상세계의 해체에도 꽤 시간이 걸릴 텐데, 앉겠나? 


아무래도 6개월 짜리니까 말야."



공격을 할 생각이 있다면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데렉은 당장 마법을 쓸 수 없으니, 간단한 공격마법만 있어도 충분히 제압하거나 사살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마법까지도 필요 없이, 칼을 든 장정 두셋만 있어도 충분하다.



"어떻게 된 거지?"



데렉은 긴장을 풀지 않고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심상세계가 박살이 났으면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데렉이 원하는 곳에 의자가 만들어졌다.



"기억을 지우고 심상세계로 끌어들인 거지."



이미 데렉을 해칠 생각이 없는지, 그라프는 심상세계의 주도권을 풀어놓았다.



"설마..."



"그 설마네. 


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전부 마법사 아닌가. 


적어도 연료는 공급해주고 있으니까. 


나머지는 내가 지휘해서 마법을 구현한 것 뿐이야. 


내가 결국 컨트롤 타워니까."



정말 그 수백명의 심상을 엮어서 데렉 하나에게 쏟아붓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쨍그랑]



하늘 일부가 유리잔이 깨지듯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을 흩날렸다. 


데렉은 막아야하나 고민했지만 그라프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겠지.


파편은 빠른 속도로 떨어지다가 허공에 멈춰서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된 거군."



데렉은 간신히 기억을 되찾았다. 


약간의 혼란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뒤흔들었다.



"기억이 돌아온 모양인데, 다시 생각해도 이 마법을 거부할 건가?"



"그렇기에 더욱 거부할거다. 


아니, 아예 마법을 박살내야 할 이유가 생겼는데."



하지만 지팡이를 들지는 않았다. 


심상세계의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몸부림 치지도 않았고, 그저 조용히 무너지는 세계와 철거되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당신... 이 마을에 살았었지?"



그라프는 미미하게 눈을 가늘게 뜨고 데렉을 노려보았다.



"그 병이 돌았을 때, 당신 가족은 어디에 있었지?"



데렉은 땅바닥을 보며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라프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데렉을 노려보기만 할 뿐.



"당신의 가족은 지켰나? 


아니면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묘비를 만들고... 


반년 후에 마법으로 살렸나?"



두 명의 마법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의자에 나란히 앉은 두 마법사는 가깝지 않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쿵]



그저 세상만이,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해주듯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아니지. 아무런 기억도 안 나겠지."



"역시... 들여다 본 건가."



"그 마법의, 저주의 대가는 당신이 전부 다 감당했지? 


당신의 가족에 대한 기억들로."



데렉은 고개를 돌려 대답이 없는 그라프를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잃은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상태를 만들어야 했어. 


마법의 조건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마'를 가져다 쓰기 위한 조건이었겠지."



채워지지 못하는 그리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그 감정이 마음에 쌓여 한으로 맺히고, 결국 마음을 갉아먹으며 마를 만들어낸다.



"기초적인 영구기관이라고 생각은 했어. 


몇 개월 단위로 마법을 유지하려면 어쨌든 외부에서 동력을 얻는 구조로는 불가능할테니까."



가깝게 있지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어 사람들을 고통받게 했다. 


그 고통을 통해 상실감을 누그러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에서 더 큰 상실감을 느끼겠지.



"영구... 까지는 아니네.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내가 죽을 때 까지니까."



"나는 일부러 심상세계에 뛰어들었어."



저항하고자 하면 한참 더 시간을 끄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 아이니가 심상세계에서 빠져나올 때 까지 질질 끌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와중에 데렉은 오히려 그라프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시간을 끌어 전투를 지속하지 않았다.



"뭐하러 그랬지? 


현실에서 나를 끝장내면 되었을 텐데."



현실에서의 그라프는 이미 만신창이였으니, 전투를 지속할 방법이 없었다.



마법을 얼마나 많이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마법은 사람을 치료하지 못한다. 


상처의 전이나 저주를 이용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마저도 효율은 최악이니까. 


한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별개의 사람 다수가 다쳐야 하는 마법은 의미가 없다.



"당신은 이미 지옥에 있으니까."

clorantz@naver.com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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