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내 사진 동아리의 부장이었다. 매주 화요일 CA시간마다 교내 출사를 기획했는데 이 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교정이 매우 넓은 학교이기도 하고, 애초에 산에 위치한 학교라 매우 야생적(?)이라 자연사진을 자주 찍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 날 이 사진들을 찍으면서 매우 감명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때는 내 접사렌즈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 손으로 렌즈를 들고 찍었었다. 물론, 우산을 잡을 남는 손 따위는 없었기에 그냥 비를 다 맞았다. 교복 윗도리는 벗어서 카메라를 감쌌고, 집에 와서 감기는 걸리지 않았다. 

귤 과육 알갱이 정도 크기의 잎

이 사진은 매우 작은 잎이었다. 잎을 보고 찍은게 아니라, 렌즈를 움직이다 보니 잎이 들어와서 찍었던 사진이다. 발견할 만한 크기도 아니고, 주목할 만한 크기는 더더욱 아니었으니까 꽤나 운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잎사귀 위에 앉아있는 물방울을 들여다 봤다. 물방울 속에 들어간 다른 잎사귀들의 모습이 왜곡되어, 마치 꽃들이 물방울에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그저 멍하니 뷰파인더만 쳐다봤었다. 셔터를 누르면 흔들려서 이 잎사귀를 놓치거나, 물방울이 떨어질까봐 숨을 참으며 미러업 모드에 미러쇼크 방지 설정까지 버튼만 누르면서 조작하고, 매우 조심스레 촬상소자에 담아냈던 기억이 있다.

아마 말꼬마거미(Achaearanea tepidariorum)일 것 같다.... 그것도 뒤집어진.

눈에는 안보이는데 접사렌즈로 찍으니까 보이던 거미. 대체 얼마나 작은건지 모르겠는데, 그 작은 곳에 많은 디테일이 보여서 재밌다. 심지어 거미 다리의 관절을 보면 알겠지만, 이 사진은 거미의 아랫면을 찍었다. 뭐.... 제대로 된 면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들여다 볼 수록 거미가 징그럽지않고 귀여워보여서 좋아하는 사진이다.

물리학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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