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럴 빻빻 임신물






'시라부 거기 있지. 주소 불러.'


유스합숙 때 체면치레로 서로 번호를 주고받는 짓조차 않는 너랑 나를 보며 누구는 혀를 찼다. 이 자식들 그래도 서로 연락처라도 알고지내야 나중에 필요할 때 서로 도움 되지 으이? 하며 대신 번호를 입력해주던 애 이름이 뭐였더라. 타쿠미던가? 뭐가 어쨌든 아무렴 어떤가. 아무튼 제삼자에 의해 저장했지만, 핸드폰을 두 번이나 갈아치우는 동안 화면에 한 차례도 뜬 적 없는 우시지마 와카토시 이름 넉 자가 반짝거렸을 때 내 마음이 어땠겠어. 좆같진 않았어도 좋지도 않았다.

그 치는 기껏 전화를 받아줬더니만 밑도 끝도 없는 용건부터 무턱대고 말씀하셔서 다시 한번 전화받은 몇 초 전의 나를 원망하게 했다. 뭐 그래도 나만큼은 예의 차려야지, 생각은 했지만 생각한다고 다 할 수 있겠어. 난 싸가지가 없다고. 달가운 인사말이 나오지 않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신내림이라도 받았어? 묻지도 않고 확신하네.


"근데 그거 때려치워라. 뭔 잡신이 들었길래 헛다리를 당당히도 짚어내시는지."

"아니라면 미안하군."

"시라부는 뭔.. 걔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게 이 동네입니다그려."


딱 여기까지 말하며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코너를 꺾자마자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 우시지마가 떨어뜨렸는지 대문 앞에 시라부가 있었다. 이 사람 진짜 신내림 받았나? 오랜만이다. 넌 왜 클대로 큰 애가 여전히 색소 부족한 유아기에 머물러 허여멀겋냐. 어째 이번에도 반갑다 인사 한마디 쉬이 내지 못해 알 수 없는 웅웅거림만 울리는 골목에서 인기척이라고는 귀에 댄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우시지마 한숨소리가 전부였다.

시라부는 핸드폰을 가리키며 뻐끔뻐끔 입으로 인사를 건넸다. 말 하 지 마. 서론 없이 할 말만 직통으로 꽂는 화끈함이 아주 인상 깊었어. 미야기 현 유치원 예절교육 수준 알만합니다. 내 새끼는 절대 그쪽으로 안 보내야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통화 종료버튼을 누르자 제 숨소리라도 건너가 발각당할까 안절부절못하던 시라부는 그제야 겨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좀 짧은 놈팽이었다면 상투적인 인사보다 더 상투적인 어쩐 일이냐, 여긴 무슨 일이냐 그런 저능한 질문이나 뱉어냈겠지만 내가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한 잔머리 했잖아. 뒤에 꽤 큰 캐리어. 습한 밤공기를 꽤 오래 맞은 듯 물컹한 얼굴. 평소보다 가라앉은 머리카락. 여기 온 이유는 차차 밝혀내고 집으로 끌어들이는게 우선이었다. 주머니 속 열쇠를 꺼내며 다가갔다.


"타이밍도 용하다. 금방 너 찾는 전화 받는 중이었는데. 너 조금만 더 일찍 발견했으면 바로 말했겠어. 내가 한 솔직캐라 거짓말은 못하거든."

"금방 통화한 사람 우시지마 상이지."


뭔 사람이 지 할 말만 하냐. 살짝 멈칫하다가 한 대답이 뭐였지. 미야기 출신들은 다 신기 있어? 였나. 가벼운 척 대꾸하며 대충 온갖 가설을 굴리느라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었다.

추정하기로는 꽤 오래 사귀던 우시지마와 시라부. 역겨울 정도로 진득하게 사랑하다 무슨 바람이 났는지 비교적 최근 헤어졌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우시지마는 연고도 없는 이곳까지 전화해 행방을 물을 정도로 시라부를 애타게 찾는 중이었고, 시라부는 알면서도 대꾸 없이 숨어있고. 가만히 있다 굴러들어온 떡에 속부터 은근히 올라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추운데 우선 안으로 들어와."


평소라면 캐리어 들어주는 기사도 정신은 오버라 욕이나 먹고도 남았을텐데 그 밤은 유독 추웠으니까. 또 시라부는 쪼그려 앉아있었는지 서있었는지 기약 없는 집주인의 귀가를 기다리느라 오랜 시간 굳었던 것 같다. 말대로 거절은 없었다. 나도 친절을 베푼다면 베푸는 인간이에요. 그간 아주 독선적이고 지밖에 모르는 놈이며 원망과 함께 떠나가던 애인들이 보면 땅을 치고 저주할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왜 그랬담? 알면서도 모르는 척 궁금해하는 가식을 부리는 미야 아츠무는 현재 그 재회로부터 멀리 가지 못해,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해진 과보호로 신체시스템을 재부팅해 시라부 먹을 토스트에 버터까지 직접 발라주는 중이다. 팍팍 발라라 팍팍. 흥없이 부추기는 시라부 말씀을 받들어 듬성듬성 덩어리가 보이게 버터를 펴발랐다. 팔은 어디에 뒀는지 입만 아 벌린 시라부의 입술 사이로 토스트 한 귀퉁이를 넣어줬다. 오 맛있어. 성의 없는 엄지 척에 황송해 그냥 웃었다. 네가 웃을 수만 있다면 광대라도 좋아 마인드의 좆찐따 짝사랑 마니아의 아가페적 사랑에서 우러나는 짓은 아니고, 다 이유가 있으니까 하는 짓이다. 와작와작 토스트를 잘도 베어먹는 애 얼굴이나 구경하다가 시선이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볼록하다는 표현까지도 붙일 수 있을 만큼 조금 나온 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안에 뭐가 있다는게 이해가 안 가.."

"돌머리야?"

"경이롭다는 표현이지. 얘는 무슨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시라부는 고개를 으쓱이며 다시 한번 토스트를 크게 베어 문다. 옳지 잘해 그래. 잘 먹어라. 너도 애도 피둥피둥 살찌우며 커나가는 데에 내가 해다 바친 음식이 일조했다는 것만 기억해주련. 과학과 의학 법학의 심판을 받기 전부터 시라부가 나는 애아빠 죽어도 아니랬으니 죽었다 깨어나도 양육권에 일언반구 못하겠지만, 방법이 아주 없겠어? 아까도 말했지만 좆찐따 짝사랑 마니아와는 인연이 없는 팔자다. 이런 식으로 잘 보필하고 모시며 살다가 자연스럽게 애 태어나는 모습도, 애 자라는 모습도 지켜보며 함께 키우다 보면 인문학적 아버지 지위 정도라도 얻어낼 수 있지 않겠냐는 속셈이지.

우시지마는 어디까지 가볼 작정인가. 시라부 출국기록이라도 확인됐다면 세계일주라도 했을 기세로 전국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라 했다. 소식을 전해 듣긴 했으나 굳이 시라부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런 속 뒤집어지는 최신 뉴스 전해 애 입맛 떨어뜨리거나 성질 돋우느니 맛있는 거라도 하나 더 먹이는게 합리적이다. 사실 그런 얘기 들어봤자 묵묵하게 제 앞의 밥그릇은 비워낼 놈이지만 이럴 때 속 얹혀 게워내기라도 하면 어쩔건데. 절대 그런 일이 생겨선 안 된다. 새로운 가훈의 탄생이다. 아무쪼록 너는 잘생긴 놈들만 보고 좋은 것만 들으며 백합처럼 무사하길.

손이 발이 되도록 귀히 모시고 입히고 재우고 먹인 보람이 있게 토스트에 집중하는 시라부 볼은 참 예쁘다. 세상 예민하게 생겨서는 남의 집이라 맘 편히 투정도 못 부리겠다 이건가? 입덧도 없고 잠 설치는 일 없이 푹 자더니 통통하게 오른 볼살은 언제 한번 방심해 뽀득뽀득 세수시켰다간 도자기 인형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예뻐 죽겠는데 이상하게 또 이게 더 안쓰럽단 말이지. 이러나 저러나 나는 너한테 껌뻑 죽을 운명인가보다.


"오사무는 아침부터 나가던데, 아츠무 너는 일 없어? 저녁 어떡할래?"

"이따 마트만 다녀오려고. 참고로 오늘 저녁 메뉴는 두부 전골이랍니다."

"뭐야 말투 토나와."

"너 진짜 어디 안 아프냐? 아프지 않고서야 말하는 싸가지 바가지가 이럴 수는 없는데."


말은 이래도 행동은 아주 충신이 따로 없지. 남은 토스트 한 조각은 메이플시럽에 푹 찍어 대령한다.


"싸가지 왕이시여. 마지막 한 입 드십쇼."

"오냐."


앞니로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물어가면서 입술로 스친 손가락이 저려온다. 그래서 뭐 어쩔건데. 어쩌겠단 생각은 아니고.. 그렇지만 얌전히 뒷정리나 할 생각은 없다. 설거지는 사무에게 맡길 생각으로 빈 접시 위에 식빵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상만 정리한다. 조금 느리게 껌뻑이는 시라부의 눈꺼풀이 무겁다. 좀 잘래? 무심코 물은 말에 다정함이 주제를 모르고 넘쳐버렸지만 졸린 애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며 빈 잔을 들어올린다. 냉큼 우유를 따라주며 오늘도 나는 음흉한 주문이나 왼다. 우유도, 내 질펀한 애정도 다 쭉쭉 들이켜라 시라부. 쑥쑥 자라서 나 없이는 안 될 지경까지 다다르길. 옳지 잘한다. 입 주변으로 진하게 난 우유수염은 냉큼 엄지로 쓸어 닦아주었다.


"시라부, 자기 전에 좀 씻을래? 습해서 그런가 좀 끈적이네."

"귀찮은데.. 그래."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목욕 권할 타이밍 재느라고 심장이 터질 뻔했다. 시라부는 별 의심없이 대답했다. 아니 얘라면 또 몰라. 알면서도 넘어가준 걸지도. 귀찮아서? 졸려서? 내가 좋아서? 뭐가 됐든 다 마음에 들었다. 방긋방긋 웃으니 무심히 보던 시라부는 한 마디 툭 내뱉는다.


"웃지 마. 정들어."


어젯밤에 같이 본 영화에서 나오던 명대사. 같이 웩웩거리며 비웃었는데 네가 하니까 무슨 명언 같다. 씩 웃는 시라부도, 가슴 떨려하는 아츠무도, 쌍으로 지랄났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그날 집에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시라부는 다짜고짜 용건부터 말했다. 사정은 차차 밝히겠는데 범죄에 연루된 건 아니니까 걱정 말고, 당분간 니네 집에서 얹혀살아도 돼? 물음에 동거인 아츠무와의 상의도 없이 그러십사 쌍수 들고 환영했다. 범죄는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해도 믿지 않을 작정이었고 그런 나를 알았으니 넌 여기까지 왔겠지. 손바닥 위에 상대방을 올려놓고 굴릴 만큼 서로에 대해 통달했다기엔 무리가 있었으나 나름 서로 밑바닥까지 보인 사이인데 모를 건 딱히 없었다.

굳이 바쁜 시간 할애해 만날 만큼의 돈독한 사이는 아니었다. 대회 기간에나 몇 번 마주치고 둘이 따로 몇 번 놀았던게 전부였으나 솔직히 그 이상 뭘 더 어떻게 할 필요야 없지. 노골적으로 입맛 다시던 저를 이 똑똑한 시라부는 처음부터 눈치챘으며 그걸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노리고 여기까지 온거지. 뻔하다.

고백하자면 그래. 얘랑 몇 번 잤고 존나 좋았다. 호르몬 폭발하는 운동부 애들끼리 단체로 모아놓은 곳에서 눈 맞는 일이야 비밀 따위도 못 됐다. 올림픽 기간에만 배포되는 콘돔이 10만 개가 넘는다는데, 혈기왕성한 배구 꿈나무들은 얼마나 더하겠나. 3년 내내 우리는 시라토리자와 애들이랑 같은 호텔에서 투숙했으니까 기회는 참 많았다. 걔네가 전국 진출 한번 못했을 때 그래서 내가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하여간 연습장이며 경기장 오갈 때마다 각을 재보다가 운 좋게 몇 번 눈을 맞았고 배도 맞았다. 너무 좋아서 싸지른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그 수만큼 카운팅해 배에 기념 타투라도 박을까 했다. 우리 그 시절에 참 좋았어. 그치? 질척한 추억에 젖어 묻는 말에 시라부는 헹 코웃음뿐이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나 앞머리 가르마 말고는 다를거 하나 없이 식성 취향마저.. 물론 디테일한 취향에는 조금 차이가 있긴 해도 교집합 부위가 꽤 넓은 취향을 공유한 쌍둥이 형제라고 다를거 없었으니 오사무가 얘랑 안 놀았을 리도 없다.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으니 어떻게 굴러먹었는지는 모르겠으나 - 알고 싶지도 않다. - 그런 놈이 뭐 이제 와서 시라부와 같이 살기를 거절할 깜냥이나 생겼겠어? 그래서 바로 허락했다.


"너 우리가 이럴줄 알고 무턱대고 캐리어까지 끌고 온거지."

"눈치가 빨라서 좋아."

"야.."


심상찮게 내리깐 목소리에 순간 눈을 가늘게 뜬 시라부가 조금은 눈치를 본다. 너는 이럴 때면 눈치가 없는 편이더라. 더 질질 끌었다간 지레 겁먹고 다시 다른 지역 다른 호구 새끼한테 갈까 싶어 얼른 말을 이었다.


"좋아? 지금 내가..좋다고 했어?"

"개싫다 진짜.."






샤워하겠다는 애 목욕탕에 저도 땀을 많이 흘려 찝찝하다 핑계를 대고 같이 씻자 들어간 아츠무는 홀딱 벗어 촉촉하게 젖은 애 몸뚱아리에 믿지도 않던 신을 찾아봤다. 목욕탕은 하나고 사람은 둘인데 같이 씻는게 뭐 어떠냐, 안일한 생각으로 들어오라 한 시라부도 실수했나 싶었는데 아주 열혈청춘이신 아츠무의 그것을 보고 결국 마음을 고쳐먹는다. 쫓아내야지. 저거 저러다가 사고 치겠군.


"얼씨구. 다리가 세 개셔요?"

"야 시라부. 너는 아직도 뭔 몸이 그렇게.."

"더 말하기만 해봐. 진짜 죽여버릴 테니까."

"이미 죽은 기분이야. 비참해. 둘이 발가벗고 같은 공간에 있는데 털끝 하나 손도 못 대다니."

"장난하지. 그 흉물스러운 것 좀 어떻게 하고 말해 미친 새끼야. 아 세우지 좀 마 돌았나 저게!!!!!"

"흉물스럽다니. 내 진심을 그렇게 폄훼하지 마."

"아 내 눈! 오지 마 미친 새끼야!"

"안 건드려 안 건드려! 내가 이건 어떻게 못 해도 너 싫다면 손 하나 까딱 안 할테니까 씻기나 해!"


기골이 여리여리한 놈도 아니지만 원체 주변에 코끼리만한 놈들만 봐와서 그렇다. 반사적인 반응이었다고. 같이 살 부대끼고 산 지가 몇 달인데 여전히 애 몸은 흥미로운 것들 투성인지. 시뻘게진 얼굴로 몸 벅벅대는 애한테는 조금 미안한데, 좋은걸 어떡해? 몰래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당신을 좀 훑어봐도 되겠어?"

"정중하게 말하면 좋다고 해줄 것 같냐 미친놈아. 동성 간에 성추행도 성범죄 인정된다는 건 알고 하시는 소리세요?"

"아.. 그럼 나 나갈래. 먼저 씻어."

"됐어. 나 다 씻었으니까 있어 미친 새끼야."


미쳤지 내가 진짜. 투덜대던 시라부가 마지막으로 온몸에 물을 끼얹고서 욕실 밖으로 나오는데 그걸 또 안 볼 애였으면 처음부터 욕심 안 부리고 우시지마 불러서 데려가라 했을 놈이다. 적당히 잡힌 근육이 허벅지에 허리에, 그리고 팔뚝에 예쁘게 뭉쳐졌다 갈라졌다 굴곡을 이루고 있었다. 양 가슴 나도 알고 오사무도 알고 우시지마도 아는 그 위치에 물든 분홍색은 왜 또 예쁘고 지랄..

둔덕처럼 조금 나온 배를 보자 조금은 배덕감이 들었는데 그건 또 아이에게 속으로 한 사과로 퉁쳤다. 아이야. 너의 인문학적 아버지는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란다. 강제로 이런 꼬라지를 보게 되어 빡친다면 얼른 니네 아빠 식욕을 돌게 만들어 많이 먹고 빨리 자라서 그 속을 탈출해라. 사과 꼬라지가 핵폐기물 수준인가? 너의 인문학적 아버지는 반성도 핵폐기물처럼 하지만 양심이 아직 죽진 않아서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어. 평범한 감상을 시도해본다.


"배가 확실히 좀 나오긴 했네."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사실 이만큼 나올 시기는 아닌데 원래보다 좀 먹어 살이 좀 쪘을걸."


그러고보니 약간 가슴도.. 어떻게 좀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저거 멍울지고나서 봤다간 아츠무는 너무 좋아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타고나기를 머리 좋게 태어나 눈치도 이해도 빠른 미야 아츠무. 그래도 욕망 앞에서는 한낱 미개한 인간일 뿐이었다. 수건으로 대충 휘휘 닦는 애한테 다가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가 뺨을 맞았다. 손바닥도 아니고 주먹으로 아주 세게.


"내가 얼른 여기를 떠야지. 손 안 대기는 개뿔이. 아주 형제가 쌍으로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잠깐만. 나 뇌가 흔들리는 것 같아."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 그냥 뒤져라."


투덜대며 머리 탈탈 터는 시라부의 맨몸 이곳저곳에 다시 물방울이 튀었다. 그의 충실한 발닦개는 흔들리는 뇌의 아픔도 잊고 자처해 닦아주다가 손끝 스친 피부가 예민해 순간 아, 앓는 소리 내는 시라부 때문에 겨우 가라앉혀놓은 것을 다시 벌떡 세워버렸다. 자신의 사이즈에 늘 당당하고 떳떳했던 아츠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끄러워 딱 죽고 싶다. 경멸 어린 시라부의 표정에 결국 벌서는 척 양손이라도 들어 반성의 성의를 보인다.


"알았어. 얼른 씻고 나가서 죽을게."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야.. 짐승은 그래도 발정기에만 이러지, 넌 상대만 있으면 바로 세우고 지랄 났다."

"그래도 그렇지. 나 아무한테나 이러는거 아니거든. 아무리 죽는다 해도 억울해 죽고 싶지는 않아."

"예 지조 있으셔서 좋겠어요 미친놈아."


먼저 나간다. 빼고 와라. 세번째로 저러다가는 터지겠네. 시라부는 검지로 아츠무 볼을 톡톡 치더니 미련 없이 욕실을 나갔다. 열리는 문틈으로 거실의 에어컨 냉기가 들어와 뒷목이 쭈뼛 선다. 아츠무는 대답도 못 하고 문이 닫혀 시라부가 안 보일 때까지 멍하니 쳐다본다. 이젠 살살 아파오기까지 하는 그곳을 붙잡고 거칠게 흔들 때 계속 떠올리려고. 젖은 몸. 촉촉한 피부. 신음 소리. 웃음기 섞인 목소리. 한계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노골적으로 욕실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마찰소리에 밖에 나와 머리를 털던 시라부는 한숨을 쉰다. 문만 닫으면 안 들리는줄 아나. 약아빠진 새끼가 대가리 좀 잘 굴린다 생각했는데 어떻게 저리도 지 본능에 충실하신지. 가면 갈수록 가관이다. 정성이 갸륵해 뭐 어떻게 이대로 쭉 같이 살아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저에게도 실망스러울 지경이다. 임신 17주차, 미야 가 집에서 오사무 그리고 애아빠 후보와 동거한 지는 두 달 반. 시라부에게 여전히 미야 아츠무는 음험한 변태새끼. 거기까지다.




하이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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