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본 보니와 트윌이 멈춰선다. 불을 피우려고 했던지 나뭇가지를 손에 잔뜩 쥐고 있다. 트윌은 마침내 헝겊을 꺼내드는 데 성공한다. 갈색 스카프다. 간단히 땅에 버릴 수 있도록 흙과 닮은 색을 띠고 있다. 불이 있다면 태워버리기도 쉬울 것 같다.


 “우리는 평화유지군이 아니에요. 우리는 당신 편이에요, 다프네.”



 트윌은 나뭇가지를 바닥에 던지고 스카프를 펼쳐보인다. 월계수 가지가 투박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걸 쥐고 있는 건... 흉내어치인가? 나는 칼을 다시 칼집에 꽂는다. 보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저 그림은 뭐죠?”


 “몰라요, 다프네?”


 “12번 구역에서는 소식을 접하기 쉽지 않거든요.”


 보니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절뚝거리는 낌새로 보아 발목을 삔 것 같다.


 “우리는 당신의 반지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보여 준 그 장면에서도요. 흉내어치와 노래하는 장면.”


 “그게 저항의 상징이 되었어요. 우리는 반란을 일으킬 거예요, 다프네.”


 트윌의 갈색 눈동자와 마주친다. 두려움 속에 나무처럼 단단한 의지가 보인다. 그들은 반란의 상징을 내게 보여준 것이다.


 “당신들... 어디에서 왔죠?”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환기시키고 바뀐 걸 알아낼 때다.




 나는 보니와 트윌이 나무를 줍는 걸 도와주며 이야기를 듣는다. 헝거 게임 직후 8번 구역 사람들의 불만이 점점 고조되었고, 우승자 투어 때 그 불만은 분노로 변했다.


 “다프네가 12번 구역에서 특집 방송을 찍을 때, 정말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였어요. 당신이 규칙을 어기고도 그렇게 멀쩡할 수 있다면, 우리도 행동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 나왔죠.”


 캐피톨에서 했던 우승자 투어 인터뷰 때, 8번 구역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본다는 핑계로 광장이나 지역 주민 센터 등에 모여 평화유지군들이 어떤 식으로 배치되었는지, 주요 거점의 출입구는 어떤지 등을 살폈다. 다음날 4번 구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두려움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언더시 시장이 받은 소식이 4번 구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었구나. 피닉이 말해준 소식도 그 의미일 것이다.



 우승자 투어 전에 그들은 시끄러운 공장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몰래 말을 전하며 계획을 세웠다. 추운 점검 부두에서 일하는 보니와 그녀의 친구는 제복을 빼돌리는 역할을 맡았다. 일단 반란이 시작되면 구역 밖으로 소식을 알려야 반란의 불길을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사람이 입고 있는 제복은 원래 트윌과 그녀의 남편이 입을 것이었다.



 원래 결행일은 우승자 투어의 마지막 날이었다. 하지만 8번 구역 사람들은 4번 구역에 200명의 평화유지군이 추가로 파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구역에서만 반란이 일어나면 쉽게 제압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3번 구역과 동시에 행동하기로 했어요. 3번 구역도 불만이 많았고, 우리와 가까우니까.”


 내 기억에는 투어가 끝나고 지금까지 반란이 일어날 만한 큰 사건이 없었다. 나는 마른 나뭇가지를 골라내 불을 붙인다.


 “그래서 성공했나요?”


 “아니요, 다프네. 우리는 아직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어요.”


 트윌이 말한다. 옆에서 보니는 내가 불을 붙이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럼 언제....”


 “이번 25주년 특집 발표 때요. 그때는 모두가 의무적으로 방송을 시청해야 하니까... 50주년을 겪은 사람들이 기념식을 2월 마지막 날에 한다고 알려줬어요.”


 “그러면 어떻게 감시를 뚫고 빠져나온 거죠?”


 다행히 밤과 콩을 비롯한 곡식과 냄비를 포함한 가재도구가 오두막에 조금 있었다. 내가 오두막에 많이 머무니까 게일이 한참 전에 가져다 둔 거겠지. 나는 밤을 굽고 굴러다니는 냄비에 눈을 담아 끓이기 시작한다. 찾아보니 사냥감 자루도 있다.


 “폭발이 있었어요. 공장 한 군데가 폭발했어요. 내가 담임이었던 반과 내 친구들이 일하던 곳이요.”


 트윌이 가냘프게 말한다.


 “그래서 선생님과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폭발 때문에 선생님의 남편 분께서 돌아가셨고, 모두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날 식사 당번이었던 게 운이 좋았죠.”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런 건가요?”


 나는 콩과 마른 옥수수를 냄비에 넣고 끓인다.


 “우리는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3번 구역으로 가기로 결심했어요. 하지만 평화유지군에게 들킬 뻔했죠.”


 “거기도 계획이 들켰거나 4번 구역 때문에 경계를 강화한 걸지도 몰라요.”


 보니가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13번 구역으로 가기로 했어요. 방향은 철로를 보고 잡았고요. 어제 12번 구역에 도착했고, 보니가 발을 삐어서 더 이상 걷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당신을 만나게 된 거고요.”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가요? 불만 피우지 않으면 이곳에서 며칠은 머물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아뇨, 다프네. 우리는 조금 이따가 13번 구역으로 출발할 거예요.”


 보니가 내 말을 끊는다. 갑자기 끼어든 것을 미안해하는 표정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결행일은 다가오고... 우리는 13번 구역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나는 완성된 죽을 두 사람이 그릇 대용으로 쓰는 통조림 통에 담아준다. 다 구워진 밤을 까준다. 내가 상황을 다 망친 걸까? 원작에서는 8번 구역의 반란은 어느 정도 성공했었다. 잠시뿐이었지만 주요 시설을 점거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도 못하면 어쩌지? 캐피톨의 계획을 제외한 모든 일이 다 느리게 일어나고, 2월의 마지막 날은 이제 2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캐피톨의 하얀 눈이 간신히 피어난 불씨를 꺼뜨릴까 봐 걱정된다.



 똑같이 13번 구역으로 향하던 두 사람이 떠오른다. 무성인이 된 빨강머리 여자아이와 금발의 남자아이. 13번 구역으로 향하기 전에 이 두 사람에게도 호버크래프트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나는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도와줄 수밖에 없다.



 먼저 보니의 발목을 손본다. 코트 하나를 찢고, 오두막의 바닥을 부숴 판판한 판자를 만든다. 그렇게 부목을 대주고, 남은 천으로 보니의 신발을 채운다. 그러고서도 남는 천에는 끝이 불에 탄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린다. 보아 하니 보니에게는 반란 세력의 표식이 없어서이다. 나중에 평화유지군으로 오인당하면 큰일이다. 마침 코트 색깔이 갈색이라 다행이다.



 트윌을 데리고 나가 사냥감 코스를 돌며 사냥감들을 모은다. 게일의 덫을 한두 가지 챙겨준다. 우리가 숲에 다시 가 사냥을 할 날은 이제 요원하다. 원작대로 흘러간다면, 나는 다시 경기장에 돌아가 죽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게일은 광부로, 나는 우승자로서 폭정에 시달리는 12번 구역에서 계속 살 것이다.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만 멍하니 바라보면서.



 보니가 오두막 앞을 지나가던 다람쥐에게 총을 쏴 보지만, 햇볕을 모아 광선으로 바꿔서 내보내는 총이라 다람쥐는 거의 숯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나는 두 사람이 사냥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잡은 사냥감을 손질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나마 덫이 더 희망적이겠지. 두 사람은 숲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동안 12번 구역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려 달라고 한다.




 나는 하늘을 쳐다본다. 곧 어두워질 것 같다. 그 전에 우승자 마을의 내 집에 다녀올 수 있을까? 이미 울타리에는 전기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불을 피우는 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불을 피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내 칼을 주는 것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다. 그나마 사냥감 자루가 다 찬 게 다행이다.


 “이곳에서 13번 구역까지는 얼마나 걸리죠?”


 “이 지도로 보면 12일 정도는 걸릴 것 같아요.”


 두 사람은 평화유지군에게 보급되는 지도를 가지고 있다. 교과서에서 대략적으로 그려진 지도 말고, 판엠의 상세한 지도를 보는 건 처음이다.


 “그들과 어떻게 접촉하려고요?”


 “13번 구역 안에는 침입자를 감지하는 기계가 있다고 들었어요. 전쟁이 끝나고, 캐피톨과 협정을 맺었을 때, 캐피톨이 다른 공격을 시도할까 봐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다고요.”


 원작에서 12번 구역에 폭격이 가해졌을 때는 그들이 왔지만, 구역 사람들이 탈출해 13번 구역에 도달한 사례는 원작에서 자세히 서술되지 않았다. 정말 그런 시스템이 있을까? 나는 연기가 12번 구역에서 보일까 봐 불을 끈다.


 “그러고 보면 다프네는 13번 구역이 있다는 데 놀라지 않네요.”


 “뉴스 영상에서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거든요. 흉내어치 꼬리가 보이는 똑같은 영상만 쓰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보니는 어딘가 감동한 표정이다. 나는 싱숭생숭한 마음에 괜히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돌린다. 이제 출발하는 두 사람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자, 다 되었어요. 13번 구역에 들어설 때쯤, 둘 다 표식을 눈에 띄는 곳에 묶어요. 혹시나 13번 구역에서 당신들을 평화유지군이라고 오해할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은 연신 고맙다고 하며 나를 끌어안는다. 보니는 내 손을 잡고 말한다.


 “우리가 당신을 실제로 만나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모두가 당신 이야기만 해요. 그 화살을 꺼냈을 때부터요.”


 나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뭔가 답할 말을 찾지만, 결국 나오는 건 간단한 인사말이다.


 “행운을 빌어요.”

 


 

 눈이 한두 송이씩 떨어지고, 숲의 가장자리에 다다랐을 때, 나는 결코 잘못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다. 웅-하며 울타리에 전류가 흐르고 있다.



 이럴 줄 알았다. 스레드가 12번 구역의 울타리에 정기적으로 전류를 흐르게 한 거다. 텅 빈 나무에 있는 무기에 아무도 손을 댄 흔적이 없는 걸 보고 눈치 챘어야 하는데. 그냥 그때 집으로 돌아가서 문을 잠그고 있어야 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지만... 그래도... 보니와 트윌을 만난 대가로 발목이 부러진다면 그걸로 족하다. 두 사람이 이번엔 숲에서 죽지 않는다면 적어도 헛된 일은 아닌 것이다. 적어도 눈이 오니까 그들의 흔적은 지워지겠지.



 오두막에 다시 돌아가는 편이 나을까 생각해보지만, 이미 내 코트 하나는 보니의 부목에 쓰였고, 스레드는 내가 12번 구역에 돌아온 걸 안다. 우승자 마을의 내 집에 인기척이 안 보이면, 그는 반드시 평화유지군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숲에 들어간 걸 알아내겠지. 여름이라면 땅을 팠겠지만, 지금은 늦겨울이다. 땅이 단단히 얼었을 것이다.



 결국 원작대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다. 울타리 위로 솟은 단풍나무와 울타리 근처에 쌓인 눈더미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그나마 지금이 눈이 많이 오는 때라 다행이다. 



 입술만 깨물다가 눈발이 거세지자 행동에 옮긴다. 단풍나무는 아쉽게도 지지대로 삼을 만한 곳이 없다. 그 옆의 나무를 기어올라 단풍나무로 건너뛴다. 단풍나무의 껍질이 미끄러워서 땅으로 떨어질 뻔한다. 루가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울타리 위로 뻗은 가지 위를 천천히 기어간다. 장갑이라도 끼고 있어서 다행이다. 손이 얼었다면 나무에서 미끄러져서 울타리 위에 안착했을 거다. 그리고 감전되어서 죽었겠지. 가지에서 내려다보니 땅과의 거리가 최소 7미터는 넘는 것 같다. 이래서 우리가 울타리를 넘는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었는데. 하지만 그때는 사람들이 우리가 어디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가지에서 몸을 내린다. 이제 내 몸에서 가지에 닿은 부분은 두 손밖에 없다. 셋을 세고 손을 놓는다. 떨어지는 느낌이 나더니, 곧 왼쪽 어깨와 둔부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발을 움직여보니 왼쪽 발목도 아프다. 확실한 건, 나는 이제 한동안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엎드려서 다리를 한쪽씩 바닥에 대고 억지로 일어선다. 발목은 확실히 부러졌고, 어깨와 둔부에는 최소 멍이 들었거나 금이 갔을 것이다. 나는 멀쩡히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머릿속으로 내 집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루트를 그린다. 지금 캣니스의 집으로 갔다가는 의심을 살 것이다. 우승자 마을까지 20분만 걸으면 된다. 응급처치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 캣니스의 집에는 내일 가도 늦지 않다.



 우승자 마을의 조명이 보이자, 내 발목은 더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나는 급한 대로 장갑을 벗어 발목에 대고 묶으려 하지만, 손이 자꾸 어긋난다. 그때 나 대신 매듭을 지어주는 손을 발견한다.


 “어디 갔다 온 거야? 한참 찾았어.”


 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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