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오지니






딸랑-. 유리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울리며 카페의 문이 활짝 열렸다. 정장으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긴 다리를 저벅이며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은은하게 맴도는 커피 향. 기분 좋게 숨을 들이 마신 남자는 곧 주위를 두리번거려 누군가를 찾는다. 여기서 만나자고 했는데. 이내 남자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무른다.


"이야, 지민씨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나?"

"네. 이 작가님도 잘 지내셨구요."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손 인사를 하자 입에 미소를 담은 남자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정장으로 쫙 빼입은 남자와 달리 간편한 차림새를 한 또 다른 남자는 다가오는 남자의 이름을 거론하여 반갑게 인사했다. 동시에 갑자기 술렁이는 주변, 카페에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남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 뭐야, 연예인이야? '

' 헐, 박지민 아니야? 진짜 잘생겼다.. '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남자는 형식적인 미소를 유지하며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 지민씨 인기 많네-. 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을 칭찬하자 남자는 눈을 접어 웃어 보였다. 연예인이니까 그런 거죠. 속으로 말을 삼키고. 앞에 있는 남자를 눈웃음으로 대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가식적인-, 누구나 다 그러는 것처럼.


"아니에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 거죠."


남자의 말에 이번엔 앞에 앉은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공공장소에서 민폐적인 행동이었지만, 가식적인 말이 마음에 든 건지 그게 좋다고 남자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지민씨 겸손 한 건 여전해-. 이번에도 칭찬을 들은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가식적인 대답.


"감사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박지민, 23세, 배우.]




"지민씨, 퀴어 작품은 처음이지?"


남자의 목소리가 카페 안에서 울리는 음악 중으로 퍼졌다. 지민은 퀴어라는 다소 자극적인 단어에 눈을 치켜떠 다시 한번 곱씹다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처음이죠."


얼마 전, 이전 작품에서 관객 수 천만을 넘기고 잠시 공백기를 가졌던 지민은 또 다른 작품을 찾던 중 이 작가에게서부터 캐스팅 요청으로 작품을 하나 받았다. 장르는 동성 로맨스. 시나리오를 전해 받은 지민은 꽤 자극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일 안에 오케이를 던졌다. 데뷔 후로 이제껏 퀴어 소재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지민은 캐스팅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유는 다름 아닌, '흥미로워서'. 단지 그것뿐이었다.


"상대 배우에 대해 들은 얘기가 없는데, 누구인지 알 수 있나요."


지민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며 남자에게 물었다. 작품에 대한 시나리오를 듣던 당시, 열심히 설명하는 내용 속에 상대 배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지민도 그때는 아직 할 만한 배우를 찾지 못 했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며칠이나 지난 후에도 남자는 상대 배우를 알려 주지 않았다. 같은 작품을 하는 입장으로서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지민의 질문에 눈을 깜빡인 남자가 대답한다.


"아~ 상대 배우는 내가 이번에 연극단에서 한 명 쓸 건데,"

"연극단이요?"


지민이 예상치 못 한 대답에 눈을 번뜩였다. 연예계 사람이 아닌 연극단이라니. 대학로 주변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지민은 앞에서 해맑게 상대 배우에 대해 설명하는 남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은 연예계에 데뷔 전 지민도 대학로를 떠돌아다니던 연극단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 데뷔 기회가 찾아와 이후 미련 없이 연극단을 떠났는데, 만약 이번 작품에서 연극단 중 아는 얼굴을 만난다면 곤란해질 게 뻔했다. 지민은 속으로 초조해하며 남자를 바라봤다.


"작가ㄴ,"

"지금 열심히 알아보는 중이니까 나중에 다시 만날 때 알려줄게요. 내 안목 알지?"

"네.. 알죠."


그러나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남자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지민은 마지 못 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시했다. 그러자 또 호탕하게 웃는 앞에 남자. 분명 아는 얼굴을 만날 게 뻔한데. 너무 뻔한데. 그날 지민은 이어지는 대화 내내 머릿속으로 아는 얼굴들을 찬찬히 기억해 내야 했다.




간단히 콘티 작업이 있는 날, 촬영장에 아직 오지 않은 배우들만 빼고 촬영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많지 않은 카메라들과 줌 마이크, 대체적으로 적은 촬영 부품들이 놓여 있고 사람 수도 적어 그리 요란한 모습은 아니었다. 스윽-. 적막한 공간에 부드럽게 열리는 문 하나.


"박 배우님 오셨습니다!"




지민이 먼저 촬영장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돌아다닌 지민은 전체적으로 촬영장 분위기를 훑었다. 지민은 오늘 찍어 볼 콘티의 장면이 '이별'이라 듣고 대본도 착실히 외워서 왔다. 그나저나 상대 배우는 누구려나. 그러나 지민이 촬영장에 오면서 제일 궁금했던 건 그 무엇도 아닌 상대 배우의 정체였다. 작가와 만났을 때 연극단의 배우라고 들은 게 다여서인지 만남 뒤로 지민은 오늘이 되기 전까지 빠짐없이 상대를 궁금해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배우라고는 아직 자신 빼고 없는 것 같은데. 지민이 가만히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아까처럼 똑같은 문이 재차 열렸다. 이번에는 아주 화알짝.


"늦어서 죄송합니다!"


힘찬 목소리가 울리고 촬영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지민도 가깝게 들린 소리에 '설마 상대 배우인가' 하고 기대를 가지며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그런데 순간 지민의 동공이 떨린 건 기분 탓일까. 지민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것은, 눈에 띄게 티가 났다.


"두 배우가 다 왔네.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김석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유독 한 사람만 웃고 있지 않는 건, 이상하게도 기분 탓이 아니었다. 지민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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